283
다음 날.
타르캄의 거리는 활기로 가득 찼다.
에르디엔 산으로 탐색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파티.
타르캄 내부에서 탐문을 하는 파티 등등.
학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번 임무 실습을 풀어가고 있었다.
레오 역시 파티원들과 타르캄의 중앙 광장에서 그날 밤 있었던 괴물의 목격자들을 수소문했다.
“경비병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알아냈어.”
칼이 씩- 웃으며 다가왔다.
드리아나가 호오-! 감탄사를 터트렸다.
“자네. 생각 이상으로 능력 있군.”
“정보 탐색은 주특기라서. 별거 아니야.”
“대단해요, 칼님!”
“훗, 좀 더 칭찬해 봐.”
우쭐한 칼이 양손을 까딱거렸다.
‘윽? 생각보다 잘하잖아?’
‘어떻게 저렇게 샤샥- 정보를 알아 오는 거지?’
루니아는 당황한 얼굴로 칼을 보았고 아르는 관심 없는 척 하품을 하면서도 내심 신경 쓰이는 듯 힐끗- 힐끗- 칼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오가 어제 칼을 파티 리더로 추천 했을 때 루니아와 아르는 내심 불만이 컸다.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파티원 중 칼의 능력이 가장 부족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레오의 설명이 있었지만, 자존심 강한 두 소녀는 쉽게 납득 할 수 없었다.
“어때? 칼은 능력이 있지?”
레오가 빙긋 웃으며 묻자 루니아가 팔짱을 꼈다.
“유능하긴 하네.”
그 말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이번 기회에 칼을 유심히 관찰해봐. 분명 배울 점이 많을 걸?”
“배울 점?”
“그래.”
레오가 칼을 바라보았다.
“루메른에서 최약체인 칼이 2학년까지 살아남은 건 단순히 운 때문이 아니거든.”
루메른은 학생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무한 경쟁.
따라가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하지만 칼은 입학 때부터 최약체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도태될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지금도 당당히 2학년 최약체로 남아있다.
단순히 노력과 운으로 이루어낸 성과가 절대 아니다.
“칼은 너희들이 가지지 못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
“그게 뭔데?”
“자신보다 강한 자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 작전을 짜는 능력.”
본의 아니게 루메른의 환경이 칼에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만들었다.
매순간이 칼에게는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칼은 우등생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자이언트 킬링.
칼은 영웅들이 갖추어야 할 능력을 확실하게 갖추게 되었다.
레오의 말을 듣고 아르가 팔짱을 꼈다.
“흐응. 한계를 넘어서라…… 인가.”
루메른의 교훈을 입에 담은 아르가 칼을 바라보았다.
레오는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칼을 따라갔다.
칼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자 곧 병원에 도착했다.
경비병들의 면회는 금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웅 후보생의 권한으로 파티원들은 큰 어려움 없이 경비병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영웅 후보생이 좋긴 좋아.”
칼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영웅 사관 학교의 학생이라는 신분은 어지간한 일에서는 모두 프리패스였다.
그렇게 다섯 사람이 병원 앞에 섰다.
담당 의사는 파티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면회를 허용하긴 했네만 볼일은 비교적 빨리 끝내 줬으면 좋겠군. 환자의 안정이 최우선이니 말일세.”
“예, 빨리 끝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일행은 병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한 명의 드워프가 병실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이미 한바탕 난동을 피운 듯 병실 내부의 집기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걸 본 파티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경비원의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저런 상태라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칼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입을 꾹- 다문 루니아가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궁금한 게 있는데…….”
“오, 오지마! 오지마아아악!”
경비병은 루니아가 다가오자 공포에 질린 얼굴로 미친 듯이 몸부림 치기 시작했다.
“꺼내줘! 날 붙잡지 말고 여기서 꺼내 달라고! 괴물이! 괴물이 또 올 거야! 괴물이 올 거라고!”
“진정하세요! 우린 영웅 사관 학교의 학생들이에요! 그 일에 관해서 물어 볼 게 있어서 왔을 뿐이에요!”
“끄아아아악!”
경비병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드리아나가 중얼거렸다.
“저주구만.”
“저주?”
“그래. 지금 그 경비병은 단순한 정신 착란 상태가 아닌 공포의 저주에 걸려 있네.”
“잠깐? 이 경비병은 그냥 그 정체불명의 괴물을 본 게 전부 아니야? 본 것만으로 이렇게 강한 저주에 걸린다고?”
루니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칼은 의사에게 받아 온 환자차트를 확인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강한 저주가 아니야. 해주 물약과 해주 술식을 처방받았는데도 저주를 풀지 못한 모양이야.”
마족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저주에 대한 치료법은 오랫동안 연구가 되어 온 분야 중 하나다.
그렇기에 마법 의사는 대부분 저주에 관한 지식이 박식했다.
아무리 강력한 저주라도 시간만 주어진다면 풀 수 있다.
하지만 경비병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주가 되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당황하는 가운데 레오가 말했다.
“에이란, 저주를 풀 수 있겠어?”
“해, 해볼게요.”
에이란이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요정의 마력은 오래전부터 저주와 상극이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페어리 나이트인 베르키아의 후손인 에르사르 가문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저주에 대한 강력한 내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타고난 해주 술사이기도 했다.
“이분이 날뛰지 못하도록 붙잡아 주세요.”그 말에 아르와 드리아나가 경비병의 양팔을 붙잡았다.
“크아아아악!”
그러자 경비병이 더더욱 날뛰었다.
하지만 완력으로 아조니아와 데미안의 학생을 이길 수는 없었다.
에이란의 손에서 연녹색 마력이 흘러나왔다.
생명력이 넘치는 요정의 힘이었다.
에이란이 경비병에게로 손을 뻗은 순간.
파지지직! 펑!
강렬한 검붉은색 스파크와 함께 에이란의 손이 튕겨 나갔다.
“에이란!”
루니아가 깜짝 놀라 에이란에게 다가갔다.
“저, 전 괜찮아요.”
에이란이 웃으면서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에는 어느새 화상을 입은 듯 물집이 잡혀있었다.
힐 마법으로 손을 치료하는 에이란을 보며 파티원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공포의 저주는 해주가 어려운 저주가 아니다.
그런데 요정의 힘의 사용자가 저저주를 풀지 못하고 오히려 리바운드로 인한 타격을 입었다.
‘대체 얼마나 강력한 저주가 걸려 있는 거야?’
상황을 지켜보던 레오가 앞으로 나섰다.
“레, 레오님. 조심하세요! 제 힘의 영향으로 저주의 힘이 발동되었어요.”
에이란이 다급히 말했다.
레오의 손에도 스파크가 튀었다.
파지직-!
하지만 레오는 개의치 않고 회색의 마력을 일으켜 저주의 힘을 밀어냈다.
텁-!
“크아아아아아!”
몸부림치는 경비병에게로 레오의 마력이 흘러 들어갔다.
레오가 빠르게 저주를 해석했다.
‘해주는 어렵겠군.’
복잡한 술식으로 이루어진 저주였다.
물론 레오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해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주를 시도하는 순간 저주를 더욱 강화시키는 술식이 덧씌여져 있었다.
끝내는 저주가 폭주하여 피술자가 죽게 되는 저주였다.
‘리시나스나 루나가 아니면 온전하게 해제 할 수 없겠어.’
레오가 혀를 찼다.
물론 해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파지직-!
레오의 손에서 검붉은색 스파크가 튀었다.
하지만 레오는 개의치 않고 마력을 이용해 저주 술식을 감쌓다.
그리고 천천히 저주 술식을 빼냈다.
스윽-!
경비병의 머리에서 손을 땠다.
레오의 손끝에 검붉은색을 띤 흑마력 구슬이 있었다.
그 안에는 저주 술식이 빼곡하게 각인 되어 있었다.
저주를 해주 하지 않고 그대로 몸에서 빼낸 것이었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주를 자세히 살핀 레오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빠지지직-! 펑!
구슬 형태가 된 저주의 힘을 강하게 @쥐어 파괴했다.
그와 함께 경비병의 발작이 멈추었다.
“이, 이게 대체?”
당혹스러운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경비병을 보며 아르와 드리아나가 조심스럽게 팔을 놓아주었다.
“대단해요! 레오님! 저주 자체를 빼내어서 파괴하신 거군요! 정말 엄청난 마력 컨트롤이세요!”
레오는 저주의 해주가 아닌 저주 자체를 파괴하는 쪽을 선택했다.
언뜻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저주의 특성 파악과 신기에 가까운 마나 컨트롤이 필요한 고난도 기술이었다.
원래대로 돌아온 경비병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이제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거야.”
“응.”
칼이 진지한 얼굴로 경비병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레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저주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이 저주가 누구의 저주인지 알게 되었다.
‘……예상이 틀리길 바랐는데.’
레오가 얼굴을 굳혔다.
‘거인왕.’
***
탐문을 끝낸 레오는 파티원들과 함께 곧장 경비병이 보았다는 에르디엔 산 초입 부분으로 향했다.
레오는 해당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녀석이 나타난 이유가 대체 뭐지?’
1학년 입학 시험 당시.
레오는 분명 게르윈의 영웅의 세계에서 이곳에 있는 에레보스를 봤었다.
‘하지만 그건 온전한 에레보스가 아니었어. 아니. 에레보스라기 보다는 사념에 가까웠어.’
5000년 전.
이 땅에서 자신과 에레보스가 세계의 명운을 걸고 최후의 일전을펼쳤다.
그리고 끝내 에레보스는 토벌 당했다.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봉인되었다.
‘놈의 본질은 신에 준하는 존재라고 했지? 그렇다면 잔류 사념이 남았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세계를 멸망을 앞두고 패배했다는 증오와 원한으로 이루어진 사념.
‘하지만 그것 때문에 거인왕이 움직였을 리 없어. 잔류 사념은 아무런 힘도 없는 그저 의지의 찌꺼기일 테니까.’
에레보스의 의지도 아니며 그렇다고 힘도 아니다.
그저 시작의 영웅, 카일에 대한 원한 덩어리.
타르타로스 입장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의식 덩어리였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는 컸다.
‘놈이 움직였다면…… 더 심각한 일이야.’
레오가 고민에 빠졌다.
“근데 정말로 이 세계에 이 높은 산만한 괴물이 존재한다는 게 가능이나 할까?”
루니아는 주변을 탐색하며 힐끗, 높디 높은 에르디엔 산을 올려다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생명체는 기간테스잖아. 그러고 보니 너희 작년에 기간테스와 싸운 적이 있지? 얼마나 커?”
루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칼이 답했다.
“싸운 건 우리 학년 학과 탑들이야. 난 뭐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지.”
어깨를 으쓱거리던 칼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기간테스는 아직 성체가 아니라고 했는데도 엄청 컸는데…… 답그런데 아무리 성체라도 산만하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칼의 말을 듣고 아르가 검지를 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거인왕이라면 어떨까?”
“5000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 군단장? 너무 뜬금없지 않나? 심지어 재앙의 시대 당시에 토벌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까지 있는 군단장이잖아.”
말 그대로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군단장이었다.
“애초에 그만한 덩치가 공간 이동을 했다면 마력의 파동이 남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일세.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지는 게 이상하지. 헛것을 봤을 확률이 높네. 물론 저주에 걸렸으니 마족과는 연관이 있는 것 같네만…….”
드리아나의 말을 들은 레오가 멈칫했다.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레오는 그런 현상에 대해 아는 것이 있었다.
‘히어로 레코드에 들어갈 때.’
레오가 얼굴을 굳혔다.
‘만약 이곳에 대영웅중 한 사람의 히어로 레코드가 있다면?’
타르타로스는 대영웅의 세계를 공략하여 히어로 레코드를 불태우고 있다.
만약 그런 이유라면 거인왕이 직접 움직였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레오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레오! 너 언제까지 그렇게 생각만 할 거야? 탐색 좀 도와!”
루니아가 뚱한 목소리로 레오에게 항의했다.
“여기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
“오? 정말? 왠지 고양이가 아니라 개 같은데.”
“누구더라 개라는 거야!”
커헉-!
주변을 탐색하던 아르가 코를 킁킁거리던 아르의 말에 칼이 감탄했다.
바로 칼을 응징한 아르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응? 으오오오오옷!”
아르의 외침에 아르에게 옆구리를 걷어 차여 움찔거리던 칼이 몸을 일으켰다.
“뭘 발견했는데!”
“이것 봐! 히어로 레코드야!”
“뭐?!”
“어디! 어디!”
파티원들이 놀라서 아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잠깐!”
레오가 다급히 소리쳤다.
“이건…… 드웨노님의 히어로 레코드에요! 이렇게 온전한 히어로 레코드라니!”
“뭐? 나도 보여줘! 나도! 나도!”
깜짝 놀란 드리아나가 폴짝폴짝 뛰었다.
“그런데 군데군데 뭔가 탄 것 같은 흔적은 뭘까요?”
드리아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에이란이 히어로 레코드에 손을 댄 순간.
[히어로 레코드 오픈. 드웨노의 세계. 챕터: ■■-■■■■ ■■■.]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뭐, 뭐야?”
“영웅 던전?!”
주변 일대가 환한 빛에 휩쓸렸다.
파티원 전체가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며 경악성을 내질렀다.
화악-!
익숙한 빛과 함께 시야가 가려졌다.
그와 함께 레오가 눈을 떴다.
‘뭐야? 갑자기 왜 히어로 레코드가 오픈 됐…….’
레오가 당황하는 순간.
우당탕!
“케헥?!”
“큭?”
균형을 잃음과 동시에 무언가 부딪혀 바닥을 뒹굴었다.
“무, 무거워!”
레오의 밑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오는 몸을 일으켰다.
“미안. 어디 다친 곳은 없…….”
“당신! 갑자기 나타나 이게 무슨 짓이야!”
소녀는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앙칼지게 치켜떠진 눈.
앙다문 입술.
그리고 화가 난 듯 쫑긋거리는 귀.
너무도 잘 아는 엘프 소녀였다.
귀염성이 없다면 몇 번이고 건방지다고 머리를 쥐어박은 적이 있는 소녀.
‘베르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