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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들이 베르키아를?”
“예. 드웨노님께서는 그들이 타르타로스의 첩자는 아닐 것 같다고 말씀하셨지만.”
미간을 좁히고 있는 드웨노를 보며 엘프가 공손하게 보고했다.
“그자들의 소지품에서 에르퀸트가 있었습니다.”
가드스론.
멸망으로 치닫는 세계에 남은 마지막 요새.
신들이 지상을 떠나는 와중에 남긴 마지막 유산.
수없이 많은 타르타로스의 침공에도 굳건했던 기적의 도시였다.
레이사르 같은 난민 도시도 존재하지만 가드스론의 규모는 그러한 도시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으며 최후의 보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대한 도시였다.
하지만 이 도시 역시 눈앞의 드워프 영웅, 마스터 스미스 드웨노가 없었다면 멸망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드웨노 뿐만 아니다.
용왕 리시나스.
천재 마도사 루나.
백랑 아르온.
그리고 살아남는 영웅 카일까지.
에레보스를 토벌하기 위해 결성된 최강의 영웅들이 있었기에 가드스론은 지금까지 굳건하게 그 위상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끝없는 절망 속에서 불가능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 다섯 영웅은 현재 가드스론을 수호하는 상징이었다.
“에르퀸트를 그 아이들이.”
드웨노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에르퀸트.
원래는 드웨노가 루나에게 만들어준 검이지만 루나는 그 검을 제자인 베르키아에게 주었다.
베르키아에게 에르퀸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정말로 에르퀸트라면 베르키아에게서 빼앗았다고밖에 볼 수 없어.’
드웨노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루니아와 드리아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금지 구역에 침입하긴 했지만 정작 자신들도 그곳에 있는 걸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곳이 금지 구역이란 것도 모르는 눈치였어.’
드웨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옷차림으로 본다면 정령의 호수에 들어갔다는 침입자들도 그 아이들의 일행이겠지. 하지만 아르온역시 딱히 수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었지.’
오히려 아르온은 침입자들은 좋게 생각했다.
‘고양이 수인 여자애가 무섭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은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좋은 애들 같았어.’
늑대 수인인 아르온의 위기 감지 능력은 그 누구보다도 날카롭다.
그런 아르온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면 거의 틀릴 일이 없었다.
‘게다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범상치 않은 실력들을 가지고 있었지.’
지금 시대에는 타르타로스와 싸울 수 있는 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
조사를 끝내고 신원만 확인된다면 가드스론으로서는 이보다 환영할 일이 없었다.
고민하던 드웨노가 말했다.
“아르온은 뭐라고 했나?”
“아르온님께서는 일단 그자들의 심문을 금하시고 베르키아를 찾기 위해 가드스론을 나섰습니다.”
엘프는 드웨노에게 강경하게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자신의 결정을 기다리는 엘프를 보며 드웨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리시나스와 루나, 카일은 현재 레이사르에 지원을 간 상황.
가드스론에는 드웨노와 아르온이 남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가드스론의 치안과 방비의 최종 결정권자는 드웨노였다.
“테페세르님께서 현재 심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다혈질인 친구가 나설 줄 알았네.”
드웨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페세르.
어려서부터 리시나스를 보필해온 골드 드래곤으로 리시나스의 개인 비서와도 같은 드래곤이었다.
가드스론의 내정을 맡은 자로서 리시나스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렇기에 리시나스가 미래의 희망이라고 평가한 베르키아에 대한 굉장한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베르키아가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을 부릅뜨고 달려갔을 것이다.
“그 친구를 일단 막게. 베르키아가 무사하다면 곧 아르온이 소식을 전해 오겠지. 그리고 소지품으로 확인한 에르퀸트를 가져와 보게. 그게 가짜라면 베르키아도 무사하다는 소리가 될 테니 소란을 피울 이유가 없겠지.”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엘프는 잠시 후 에르퀸트를 드웨노의 공방으로 가져왔다.
드웨노는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겉모습은 정말로 진짜 같군.”
담배 연기를 한 번 길게 내뿜은 드웨노는 작업대 위에 있는 에르퀸트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에르퀸트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드웨노의 마나가 에르퀸트로 흘러들어갔다.
엘프는 긴장된 얼굴로 그런 드웨노의 얼굴을 살폈다.
잠시 후.
드웨노의 얼굴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드웨노님. 설마 진짜 에르퀸트 입니까?”
엘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드웨노는 단망경을 꺼내 검의 표면을 자세히 살피더니 작은 망치를 꺼내 검을 몇 번 두드려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데페세르에게 가서 베르키아는 곧 아르온과 함께 돌아올 거라고 말하게. 그리고 심문하려고 했던 아이에게는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도 잊지 말라고 말해주고. 성격상 얼마나 겁을 줬겠나?”
엘프의 얼굴이 밝아졌다.
가드스론의 마스터 스미스.
수많은 전설적인 무구를 만들어낸 드웨노의 말이다.
“그 에르퀸트는 가짜군요!”
“……베르키아의 것이 아닐세.”
“옙!”
엘프는 안도하며 방을 나섰다.
공방 내부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흐읍.”
드웨노가 곰방대를 길게 빨아들였다.
담뱃잎이 빠르게 타들어 갔다.
“후우.”
길게 내뿜어져 흩어지는 연기에서 시선을 뗀 드웨노가 작업대 위의 에르퀸트를 보고 말했다.
“널 만든 건 누구지? 난 만든 기억이 없는데.”
우웅-
에르퀸트가 드웨노의 말에 공명하듯 마나를 내뿜었다.
“그래. 확실히 넌 내가 만든 무구야. 하지만.”
드웨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에르퀸트를 두 개 만든 기억은 없는데.”
‘그 아이들은 대체 뭐지?’
드웨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어린 나이에 그만한 실력을 갖췄다면 분명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을 터.’
하지만 최소한 드웨노의 기억 속에 다섯에 비슷한 인물의 소문을 들은 적은 없었다.
‘게다가…… 묘하게 달랐어.’
드웨노의 눈에 비친 루니아와 드리아나는 또래들과는 달랐다.
재앙의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눈이 어둡다.
맑은 하늘을 본 적 없고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이들의 숙명과도 같았다.
아르온 조차도 기본적으로 눈이 어둡다.
하지만 드웨노는 보았다.
반짝반짝 희망으로 빛나던 루니아와 드리아나의 눈을.
어린 소년 소녀들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는 듯한 밝은 눈.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눈.
‘구원을 꿈꾸는 눈과…… 미래를 바라보는 눈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게다가.’
드웨노는 에르퀸트를 보았다.
이 에르퀸트는 진짜다.
제작자인 드웨노가 알아보지 못 할 일은 없다.
다만…….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콰앙-!
그때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드웨노가 몸을 일으켰다.
‘그 아이들인 모양이군. 친구를 구하기 위해 탈옥한 건가?’
‘다시 한번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에르퀸트를 챙긴 드웨노는 공방을 나섰다.
***
레오와 베르키아는 숲을 거닐고 있었다.
“으…… 마물의 피!”
마물의 피를 뒤집어쓴 베르키아는 싫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그러고는 팔등에 코를 대고 킁킁- 거리더니 ‘으웩-’ 혀를 빼물었다.
‘저 선머슴 같은 모습도 오랜만이네.’
레오는 후대에 전해지는 엘프들의 지도자, 베르키아에 대해 떠올렸다.
루나의 후계자로서 엘프들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
베르키아는 자애로운 리더쉽으로 자기 것을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성인군자로 그려지곤 했다.
‘자기걸 남에게 베풀 줄 알기는 개뿔.’
레오는 베르키아와 함께 식사할 때 반찬 한 번 양보 받은 적이 없다.
‘자애로운 리더쉽? 같이 검술이나 마법을 배우는 또래 애들을 울리는 게 리더쉽이라면 리더쉽이겠지.’
레오가 기억하는 베르키아는 귀염성이라고는 없었다.
‘툭하면 내 말에 토 달거나 반항이나 하고 말이야.’
레오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베르키아를 바라보았다.
킁킁- 냄새를 맡던 베르키아가 획-! 레오를 바라보았다.
“왜?”
“그 눈빛. 카일 스승님이랑 비슷해.”
‘하여간 눈치는 빨라요. 왜 또 뒷담 해보지?’
“뭐가 비슷한데.”
“아빠 같아.”
“…….”
의외의 답변에 레오는 놀랐다.
“카일 스승님은 엄하거든.”
베르키아는 기본적으로 루나를 무척 따랐다.
그렇기에 루나는 베르키아를 매우 귀여워했다.
아르온은 아이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베르키아를 매우 챙겼다.
오직 카일만이 베르키아에게 엄했다.
엄할 수밖에 없었다.
베르키아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그렇기에 빠른 시일 내에 전장에 나가야 하는 입장.
받아줄 수만은 없었다.
카일이 해줄 수 있는 건 엄하게 가르쳐서 굳은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일 뿐.
루나와 아르온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베르키아였기에 그런 자신의 엄한 교육이 싫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베르키아가 혼자 이 위험 지역에 수련을 와 있는 것도 결국에는 자신 때문이었다.
그래서 건방지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을 싫어하는 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빠 같다고?”
“응. 물론 난 고아라서 진짜 아빠 같다는 건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베르키아가 덤덤히 말했다.
이 시대에 고아는 흔했기에 자신이 고아라는 걸 밝히는 건 딱히 어두운 이야기 축에도 끼지 못했다.
잠시 베르키아를 바라보던 레오가 말했다.
“아마 진짜 부녀 관계도 네 마음과 크게 다르진 않을 거야.”
“아, 그런가? 넌 부모님이 계셔?”
“있어. 좋은 분들이지.”
“부럽다.”
베르키아는 감탄하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런 베르키아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면 몸을 씻을 수 있는 호숫가 있을 거야. 가서 씻어.”
“응.”
고개를 끄덕이며 레오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려던 베르키아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레오를 바라보았다.
“왜.”
“이 숲은 복잡한데 지리를 잘 알고 있어서. 그리고…….”
“그리고?”
“지금 조금 카일 스승님 같았어.”
신기하다는 듯 레오를 보며 베르키아가 짐을 내려두고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레오는 그런 베르키아의 짐을 챙겨 마법으로 씻으며 쓰게 웃었다.
‘아빠 같다라…….’
설마하니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때는 여유가 없었으니까.
레오가 베르키아에 대해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화악-!
레오의 감각으로 무언가 잡혔다.
‘뭔가 오고 있군.’
엄청난 속도로 레오를 향해 접근하는 누군가가 느껴졌다.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아르온?’
그 생각과 동시에.
타악-!
레오 앞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에 황금색 눈동자.
레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작년. 아조니아 입학시험 당시 아르온의 모습은 레오에게 있어서도 오랜 기억 속 흐릿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늑대 수인은 레오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 그 자체였다.
‘아르온.’
설마하니 드웨노의 세계에서 아르온을 만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레오는 마음이 술렁이는 걸 느꼈다.
‘하긴 베르키아도 만났는데…… 아르온이라고 만나지 못하라는 법은 없지.’
목숨을 잃는 와중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친구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루나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어.’
기적처럼 루나는 영웅의 세계에서의 기억이 떠올랐었다.
이건 아르온의 세계가 아니라 드웨노의 세계.
하지만…….
‘어쩌면 아르온도 이전에 공략 기억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르온의 눈을 본 레오는 이내 쓰게 웃었다.
아르온은 경계 어린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네.’
***
“…….”
아르온은 눈앞의 제자의 짐을 들고 있는 백발의 소년을 보며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처음 보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굉장히 낯이 익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냄새.
그리고 분위기.
처음 보는 소년에게 자신이 반가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겁쟁이인 자신의 본능은 처음 보는 사람을 경계하니까.
잠시간의 당혹감을 느끼며 아르온이 말했다.
“네가 들고 있는 건 내 제자의 물건이야.”
왜인지 모를 반가움 마음을 애써 감추며 아르온은 레오를 추궁했다.
“왜 네가 그걸 가지고 있는 건지 설명해 줄래?”
그런 아르온을 보며 레오는 생각했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네. 내가 베르키아에게 해를 입혔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르온은 기본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매우 부드럽다.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강경한 모습이었다.
잠시 아르온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나와 싸워서 이겨보는 건 어때?”
“뭐?”
아르온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큰 트러블 없이 가드스론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금의 내가 아르온을 상대로 얼마나 싸울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