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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88화 (288/483)

288

넘실거리는 백색의 화염을 두른 카타리우를 보며 모든 이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이 왜 소환된 거야?’

하지만 역시 가장 당황한 건 카타리우를 소환한 레오였다.

피오라의 힘을 더욱 끌어내기 위해 영력을 사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카타리우가 소환되었다.

그것도 계약이 된 형태로.

레오는 카타리우와 계약한 적이 없다.

그건 카일 시절에도 마찬가지다.

자신도 모르는 계약이 이루어졌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레오가 경악한 눈으로 카타리우를 바라보았다.

[다시 묻겠다, 인간. 왜 네가 내 계약의 문장을 가지고 있는 거냐?]

카타리우의 말에 레오가 말했다.

“나도 모르겠는데. 나는 내 계약자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영력을 사용했을 뿐이야.”

[계약자?]

카타리우가 힐끗, 레오의 검을 바라보았다.

화륵-

검에서 넘실거리던 불꽃이 이내 작은 새 형태가 되었다.

“삐약.”

[…….]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크기의 동그란 병아리를 보며 카타리우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린 피닉스군. 그런데 왜 저렇게 살이 찐 거지?]

“난들 아냐.”

다른 학생들이 주는 간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먹은 후유증이었지만 레오는 떳떳했다.

‘내 잘못 아니야.’

피오라를 잠시 바라보던 카타리우가 레오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대, 올 클래스인가?]

단번에 레오의 능력을 꿰뚫어 본 카타리우의 몸이 화염에 휘감겼다.

탁-!

바닥에 착지한 건 순백색 머리칼에 붉은색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 무례한 카일 이외에도 올 클래스의 능력자가 있었다니. 놀랍구나.”

잠시 레오를 바라보던 카타리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묻겠다. 혹시 그대의 가문은 피닉스와 인연이 깊은 가문인가?”

카타리우는 레오의 몸속에 흐르는 제르딩거 가문의 피를 꿰뚫어 보았다.

“그래.”

“흐음. 과연. 흔하지는 않지만, 유전으로 의한 계약의 승계인가? 선대 피닉스 왕이 맺은 계약이 그대의 가문에서 계속 되물림 되다가 그대에게서 각성한 모양이군.”

카타리우는 나름대로 왜 계약을 맺지 않은 레오가 자신을 소환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유추하고 있었다.

레오 역시 속으로 자신이 카타리우를 소환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군…… 리시나스의 드래곤 하트를 얻었기 때문인가.’

에레보스와의 마지막 결전 직전.

레오는 죽어가는 리시나스의 드래곤 하트를 받아 그녀의 힘을 계승했다.

강제로 얻은 것이 아닌 리시나스의 의지에 의한 계승.

그 과정에서 리시나스가 가진 정령과 환수들의 계약도 계승 받았다.

리시나스의 마력은 카일의 육체가 소모됨과 동시에 사라졌다.

하지만 계승의 증표는 육체가 아닌 영혼에 각인 되었다.

‘멜이 말했지. 영웅의 세계에서 계승한 리시나스의 마력이 내 통제를 따른다고.’

계약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시대 리시나스가 맺은 계약들은 레오를 ‘리시나스’로 인지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레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나저나 그 나이에 어리다고는 하나 피닉스와 계약을 하다니.”

카타리우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다 내가 모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피닉스까지 남아 있었다니. 신기하군.”

삐약- 삐약-

피오라는 신기한 듯 날개를 파닥이며 카타리우의 주위를 뺑뺑 돌았다.

오만한 빛이 감돌던 카타리우의 눈에 살짝 따스한 감정이 올라왔다.

기본적으로 싸가지가 없는 카타리우였지만 자신의 맹약자와 동족에게는 온화한 피닉스였다.

“나는 재능 있는 이를 사랑하지.”

마지막 피닉스의 왕은 우아한 얼굴로 레오에게 발을 내밀었다.

“내 발등에 키스를 하고 예를 취할 수 있는 영광을 주겠다. 어린 피닉스의 맹약자여. 물론 그것이 끝난 이후에 계약을 끊는 건 잊지 말도록.”

카타리우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재능 있는 이 라고는 하지만 인간 따위와 계약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하물며 내가 맺지 않은 계약이라면 더더욱.”

삐약- 삐약!

어느새 레오 앞으로 걸어온 피오라가 어서 하라는 듯 삐약거렸다.

피오라의 시대에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카타리우가 피닉스의 왕이란 걸 깨닫고 그녀의 편을 들은 것이다.

“넌 대체 누구 편인데.”

한숨을 쉰 레오가 무릎을 꿇었다.

그런 레오를 보며 카타리우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뺙?

레오는 그대로 바닥에 있는 피오라를 붙잡아 카타리우의 얼굴에 문댔다.

“푸훕?”

뺘아아아악!

카타리우가 허우적거렸고 피오라가 비명을 내질렀다.

“무례한 녀석!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잿더미가 되고 싶으냐!”

“리시나스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 녀석! 나와 리시나스의 맹약 조건을 어떻게!”

뺘뺘뺘뺙!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겁 없이 피닉스의 왕의 얼굴에 자신의 맹약자로 문지를 생각을 하는 정신 나간 피닉스의 계약자는 처음 만났다.

그렇게 레오와 두 피닉스가 소란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앗! 아르온 스승님!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무사했구나, 베르키아.”

“저야 물론 무사하죠. 그건 그렇고…….”

어느새 되돌아온 베르키아는 레오 쪽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저 재수 없는 피닉스는 여기 왜 있는 거고 왜 쟤랑 싸우고 있어요?”

“……복잡한 이유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르온이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그러고는 카타리우의 멱살까지 잡는 레오를 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카일 같네.”

여러 가지 면에서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오늘 처음 만난 소년을 보며 아르온은 부드럽게 웃었다.

***

콰앙-!

“커헉?!”

아르의 강력한 발차기에 배를 적중 당한 수인이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탁-!

바닥에 착지한 아르는 그대로 왼 무릎을 굽히고 오른 다리를 쭉 폈다.

그리고 왼발을 중심축으로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했다.

퍼버버벅-!

“억?”

“끅?!”

전광석화 같은 하단 공격에 아르를 포위하던 병사들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르의 하얀 귀가 쫑긋거렸다.

콰앙-!

아르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배틀 엑스가 꽂혔다.

“멋진 체술이군.”

“칭찬 고마워.”

“게다가 아르온님의 수화 능력까지. 정체가 뭐지?”

거대한 덩치의 곰 수인은 배틀 엑스를 회수하고 눈을 번뜩였다.

그런 곰 수인을 보며 아르가 손톱을 세웠다.

“멋진 여자는 비밀이 많은 법이지.”

“훗. 좀 더 자웅을 겨루고 싶지만, 수상한 자들이 더 이상 날뛰게 둘 수는 없는 법.”

고오오오오오-!

곰 수인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오러와 투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 수인, 강하다.’

그걸 보고 아르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이때까지 상대한 어중이떠중이와는 달랐다.

거침없이 눈앞의 이들을 날려버리며 에이란을 구출하러 가던 아르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돌격한 곰 수인의 코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플레임 익스플로전.”

영창 소리와 함께 아르의 코앞에서 선홍색의 스파크가 튀었다.

그걸 보자마자 아르는 기겁하며 몸을 날렸다.

콰가가가가가가강-!

“끄어어어어어억!”

코앞에서 루니아의 마법에 직격당한 곰 수인이 그대로 날아가 처박혔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아르가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항의하자 루니아가 덤덤히 말했다.

“괜찮아, 저 정도로 안 죽어.”

치이이익-!

검붉게 그을려 쓰러져 있는 곰 수인을 가리키며 루니아가 덤덤히 말하자 아르가 캬릉-!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게 아니라! 나까지 휘말릴 뻔했잖아!”

“기습은 상대가 방심하고 있을 때 해야 하잖아? 네 코앞까지 도달했을 때는 난 신경 안 쓰고 있었을 테니까 마법 공격이 효과적이지. 네 반사 신경이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계산이었다면야.”

“맞았다고 해도 수화로 강화된 상태라 멀쩡했을 것 같고.”

“결국 내가 휘말려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썼다는 거잖아!”

아르가 흥분했다.

“지금은 시간이 급하니까! 그리고 이제 저 계단만 올라가면 1층이야!”

마나 봉인을 풀고 두 사람이 지하 감옥을 돌파하는 건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조금 전 굉장한 실력자였던 곰 수인과 싸웠다면 아무리 아르라도 고전을 면치 못했을 테지만 루니아의 마법으로 순식간에 최후의 수문장까지 빠르게 돌파했다.

‘에이란! 조금만 참아!’

이를 악문 루니아가 1층 계단으로 올라섰을 때였다.

“화려하게 날뛰고 있구먼.”

“……!”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드워프를 보며 루니아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아르 역시 그 드워프가 드웨노라는 사실을 깨닫고 꼬리를 바짝 세웠다.

지하 감옥 입구는 주변은 거대한 공터였다.

드웨노 이외에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니아는 거대한 절망감을 느꼈다.

눈앞의 이는 다름 아닌 전설 속의 대영웅.

루니아와 아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일단 도주부터……!’

루니아가 빠르게 눈을 굴려 도주로를 생각한 순간.

휘이이잉! 쾅-!

루니아가 빈틈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 거대한 도끼가 날아와 박혔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걸세.”

루니아의 낌새를 정확하게 눈치챈 드웨노가 길목을 차단했다.

루니아가 이를 악물 때였다.

“세이룬의 대표. 먼저 가.”

아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드웨노님은 내가 막아 볼게!”

“혼자서는 무리야!”

루니아가 다급한 외침에 아르가 씩- 웃었다.

“둘이서도 무리지, 상대는 드웨노님이니까.”

“……!”

“하지만 네 도주로 정도는 만드는 건 가능해.”

아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런 아르를 보며 드웨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모한 새끼 고양이구먼.”

“아르온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절대로 도망치지 않았…….”

“무슨 소린가, 바로 도망쳤겠지.”

“…….”

자신이 아는 아르온에 대해 이야기하려다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박당한 아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르온님은 그런 비겁한 남자가 아니……!”

“누구보다 비겁한 남자지.”

“아르온님을 모욕하지 마아악!”

흥분한 아르가 털을 부풀리며 하악-! 거렸다.

“저 바보……!”

그런 아르를 보며 루니아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재미있는 아가씨구먼!”

껄껄 웃으면서도 드웨노의 눈은 날카롭게 변했다.

‘보름달이 아닌데도 수화를?’

힐끗- 하늘을 올려다본 드웨노가 자신에게 돌격하는 아르를 보았다.

무턱대고 드웨노에게 돌격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르였지만 사실은 치밀한 동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저 엘프 소녀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있군.’

자신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아르의 날카로운 눈을 보며 드웨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 엘프 소녀도 대단했지만, 이 수인 소녀도 대단하군.’

가히 희망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파앗-!

아르의 움직임이 빠르게 변했다.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며 드웨노의 눈을 어지럽혔다.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어야 해!’

아르가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과 드웨노와의 격차는 듣지 않아도 안다.

단순히 신기급의 무구를 만들었기에 대영웅이 아니다.

그는 엄연한 전사로서 아르온과 토벌대의 최전방에 섰던 최강의 전설 중 한 사람.

콰악-!

아르의 주먹이 드웨노의 얼굴을 노렸다.

그리고 드웨노의 반격을 대비하고 몸을 긴장시킬 때였다.

콰아아앙-!

화악!

“……!”

거대한 소리와 함께 강력한 풍압이 일어나 주변의 먼지가 모두 밀려 나갔다.

아르의 눈이 부릅떠졌다.

놀랍게도 아르의 강력한 주먹은 정확하게 드웨노의 뺨에 꽂혀 있었다.

하지만 드웨노는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혼신의 공격이 담긴 공격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드웨노를 보며 아르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리고 신의 대장장이 드웨노의 또 다른 별명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용자 아르온이 최전방에서 적들을 도륙하며 막아냈던 전사라면.

신의 대장장이 드웨노는…….

‘어떠한 공격이든 막아냈던…… 절대 방패……!’

전투에서 가장 굳은일을 도맡았던 대영웅들의 기둥.

아르가 날린 혼신의 일격에도 전혀 까딱하지 않았다.

“훌륭해.”

아르의 공격을 칭찬한 드웨노가 그대로 아르의 손목을 붙잡았다.

콰앙-!

“커헉!”

그리고 그대로 아르를 바닥에 꽂았다.

아르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였다.

화르륵-!

성화의 불꽃이 번뜩였다.

‘이 마법 술식은?’

마법 술식에서 익숙함을 감지한 드웨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콰가가가가강-!

피닉스의 불꽃이 드웨노를 휘감았다.

화르르륵-!

하지만 드웨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색 불꽃이 루니아의 마법을 집어삼켰다.

“반갑군. 타고난 불꽃의 사용자라니.”

드웨노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악물고 루니아를 바라보았다.

“엘프는 동족 의식이 강하지. 잡혀간 친구를 구하러 가는 거 아니었나?”

“구하러 갈 거예요. 그 애를 데리고.”

루니아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건 무리일세. 자네들이 대단한 건 사실일세. 하지만 내 기준으로 봤을 때는 병아리에 불과하지. 둘 중 하나는 포기했어야 가능성이 있었을 것을.”

드웨노가 냉정하게 말했다.

드웨노가 발치에 있는 아르를 툭툭 발끝으로 차며 말했다.

“어차피 내 손에 붙잡히겠지만 포기한다면 이 친구를 포기하는 게 좋지 않나?”

“웃기지…… 마요!”

번쩍-!

루니아의 주변에 빛의 파편이 생겨났다.

‘드웨노님께 내 불꽃은 통하지 않아! 그렇다면……!’

별의 마법으로 상대를 해야 했다.

마치 밤하늘의 별빛을 떠올리는 빛의 파편을 보며 드웨노의 안색이 변했다.

‘역시 이 마법은…….’

별빛의 파편이 드웨노에게 날아들었다.

“후우.”

드웨노가 숨을 들이마셨다.

“왁!”

귀를 찢을 듯한 고함소리와 함께 루니아의 마법 술식이 파괴되었다.

“조잡해.”

기합으로 마법 술식을 파괴한 드웨노를 보며 루니아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이게…… 대영웅…… 세계를 구한 자의 실력.’

상식을 벗어나도 너무도 벗어난 강함이었다.

“포기하고 순순히 붙잡히는 게 신상에 좋을 걸세.”

드웨노가 차갑게 말했다.

***

바깥에서 소란이 잠잠해지자 칼은 드리아나와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향했다.

1층으로 빠져나온 칼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아르는 한 드워프의 손에 멱살이 잡힌 채 늘어져 있었다.

루니아는 그 드워프에게 등이 밟힌 채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세이룬과 아조니아의 2학년 최강들을 제압한 드워프의 몸에는 조금의 상처도 없었다.

“자네들도 탈옥한 건가?”

드웨노의 무감정한 눈빛이 칼과 드리아나에게 향했다.

두 사람의 눈이 공포에 질렸다.

드웨노의 한마디에는 강력한 압박감이 깃들어있었다.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힘.

마력을 제압당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절대적인 공포와 눈앞에 마주했다.

하지만 칼은 감옥을 빠져나오며 손에 넣은 석궁을 붙잡았다.

드리아나는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 했다.

‘보통은 저 소녀와 같은 반응이 맞겠지.’

압도적인 절망에 조우했을 때.

사람은 주저앉는다.

그게 정상이다.

드웨노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그리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간 마법사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도싸울 생각을 하는 거지.’

텁-!

그때 완전히 힘을 잃은 아르가 드웨노의 팔목을 잡았다.

아르의 푸른 눈이 번뜩였다.

고오오오-!

드웨노의 발에 밟힌 루니아도 마력을 쥐어 짜냈다.

‘무지에서 오는 만용인가?’

이 아이들은 자신의 강함을 모르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아이들은 내 강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해.’

처음 정령의 영역에서 루니아와 드리아나는 조금의 저항도 하지 않고 바로 항복했다.

탈옥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조우한 순간 두 소녀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이 소년 소녀들은 드웨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강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싸울 의지를 다잡는다.

“포기하면 편해질 것을. 미련한 아집이군.”

드웨노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애를 한 명 알거든요.”

그때 드웨노의 발에 짓밟힌 루니아가 힘겹게 말했다.

눈은 의지로 번뜩였다.

“그 녀석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아요.”

드웨노가 물끄러미 루니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아르를 보았다.

‘아르온과 루나를 떠올리게 하는 소녀들…… 그런데…….’

드웨노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눈빛은 카일을 닮았군. 저기 마법사 소년까지 말이야.’

드웨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릴 때였다.

“그쯤 해둬.”

삐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니아와 아르, 칼과 드리아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드웨노는 모습을 드러낸 인간 소년이 칼과 옷차림이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탈옥범들의 일행인가. 친구를 구하러 온 모양이군.”

레오가 드웨노 앞에 섰다.

“베르키아는 아르온과 함께 가드스론으로 돌아왔어.”

드웨노의 살기 어린 목소리에도 레오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당신이 그 애들을 엉망으로 만드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을 거 아니야?”

“마치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드웨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나를 일으켰다.

화르르륵-!

황금색 화염이 레오를 잿더미로 만들기 위해 타올랐다.

“레오!”

칼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드웨노의 불꽃은 레오를 태우지 않았다.

“시험은 이걸로 충분해?”

“……무섭지 않나?”

드웨노가 허탈하게 웃으며 묻자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딱히.”

드웨노의 불꽃 속에서 레오는 말했다.

“불꽃의 본질이 파괴는 아니잖아?”

그 말에 드웨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 누구인가?”

“난 레오 플로브라고 해.”

드웨노의 물음에 레오가 덤덤히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 레오를 빤히 바라보던 드웨노가 다른 파티원들을 가리켰다.

“그럼 이 아이들은 무엇인가?”

드웨노의 물음에 레오가 빙긋 웃었다.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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