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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89화 (289/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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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스론의 중심.

가드스론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저택 건물의 응접실 창가에 선 레오가 창문 너머로 가드스론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이 풍경을 다시 볼 날이 올 줄이야.’

에레보스 토벌을 위한 마지막 원정을 떠나기 전 눈에 새겼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완전 어둡네.”

칼이 레오 옆으로 와 혀를 내둘렀다.

“이만큼 거대한 도시인데…… 너무 어두운걸?”

“그런 시대였으니까.”

레오는 덤덤히 말했다.

“지금 시대처럼 찬란할 수 없던 시대였으니까.”

“하긴. 재앙의 시대니까.”

세계가 멸망해가던 시대.

밤하늘에 떠 있는 붉은 달을 보며 칼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나저나…… 일단 이곳에 안내받기는 했는데.”

칼은 응접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루니아와 아르를 보며 목을 움츠렸다.

“살벌하군.”

“자신감을 가지게. 왜 그렇게 표정들이 안 좋나?”

드리아나가 팔짱을 끼며 말하자 이마에 손을 대고 있던 루니아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드웨노님일세. 그대들이 그만큼 맞서 싸운 것도 대단한 거야. 난 무서워서 움직이지도 못했지 않나.”

“……검은 토끼는 아르온님을 상대로 혼자서 맞서 싸웠다고 했어.”

볼과 이마에 칼이 만든 포션 패치를 붙인 아르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우린 둘이서 드웨노님에게 저항조차 제대로 못 했고.”

어딘지 모르게 분한 표정을 짓는 아르를 보며 칼이 어색하게 웃었다.

“야야. 레오야 워낙 말도 안 되게 강한 놈이라…….”

“그건 자네들이 자만하고 있었다는 소린가?”

드리아나가 냉정하게 말하자 두 소녀가 고개를 숙였다.

칼은 얼굴을 감싸 쥐며 드리아나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야, 달래줘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말해버리면 어떻게 하냐?”

“쓴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해줬을 뿐이네.”

드리아나가 앙증맞은 손으로 자신의 귓가에 얼굴을 들이민 칼의 얼굴을 치웠다.

“더 위를 보고 있다면 위에 있는 자와 자신의 차이를 알아야 하는 법일세.”

“좋은 말이네.”

레오가 피식 웃으며 의자에 와서 앉았다.

“난 아르온과 제대로 붙진 않았어. 아르온은 반격하지 않았으니까. 그와 반대로 드웨노는 너희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모양이야.”

“시험?”

고개를 든 루니아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시험?”

“그건 나야 그것까지는 모르지.”

벌컥-!

응접실 문이 열리며 에이란이 들어왔다.

“여러분!”

“에이란!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자리에서 일어난 루니아가 에이란에게 다가가 이리저리 살폈다.

“네, 저는 멀쩡해요. 그런데 저보다 루니아양과 아르양이 더 심하게 다치신 것 같은데요?”

에이란이 놀란 눈으로 루니아와 아르의 상처를 살폈다.

“난 멀쩡해.”

아르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아르를 보며 에이란이 요정의 마력을 일으켜 손바닥으로 아르의 뺨을 감쌌다.

그러자 순식간에 붓기가 빠졌다.

에이란은 황급히 드웨노와의 전투에서 입은 루니아와 아르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그때 응접실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드웨노와 데페세르였다.

데페세르의 등장에 레오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 에이란을 데리고 갈 때의 살벌하고 흉흉한 기세가 떠오른 것이다.

그런 친구들의 반응을 본 레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 봐도 알겠네. 베르키아와 관련되어서 엄청 난리를 쳤나 보군.’

데페세르는 리시나스의 심복이었던 만큼 레오도 잘 알고 있는 드래곤이었다.

에이란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안경을 고쳐 쓴 데페세르가 슥- 응접실 내부를 바라보았다.

그의 무감정한 황금색 눈동자가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실례했습니다.”

사과한 데페세르가 에이란 앞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고귀한 숲의 종족이여. 작은 오해 때문에 그대를 곤경에 처하게 하였습니다. 이 사과를 어찌해야 할지…….”

“아, 아니에요.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에요.”

데페세르의 정중한 사과에 에이란이 당황했다.

조금 전과 다르게 돌변한 그의 태도에 루니아와 아르, 칼과 드리아나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시 보니 반갑네.’

가드스론의 내정을 총괄했던 데페세르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을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어린 싹들이야 말로 미래의 희망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가드스론의 아이들을 정말 아꼈다.

그렇기에 베르키아가 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분노했을 것이다.

데페세르의 정중한 태도에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린 와중에.

드웨노가 말했다.

“자네들에 대한 혐의는 풀렸네. 그래서 묻는 건데. 자네들은 어디 출신인가?”

그 말에 레오를 제외한 파티가 움찔 몸을 떨었다.

“하나 같이 마나의 실로 짜인 옷을 입고 있는데 디자인들도 비슷하고.”

드웨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범상치 않은 실력까지.”

일행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살피며 드웨노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유명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일세.”

‘크, 큰일 났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영웅의 세계 공략의 철칙 중 하나는 바로 영웅의 세계 내부의 이에게 현재의 세계가 가짜라는 것을 알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공략자의 입장에서는 영웅의 세계는 가짜 세계이지만 영웅의 세계의 인물들에게는 이 세계는 진짜다.

영웅의 세계의 주민들에게 자신이 공략자라는 것을 밝힌 이들은 의지와 관계없이 공략이 실패처리 되었다.

그리고 영웅 던전에서의 공략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과거의 대영웅들에게 ‘우리는 5000년 후의 미래에서 왔습니다.’ 라는 말 따위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질문을 타개할 수 있는 대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영웅 후보생은 어떤 시대의 영웅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도록 각 시대의 상황이나 상식 등을 공부하고 배운다.

하지만 재앙의 시대는 지금 시대에 이르러서 대부분 자료가 소실 되었다.

그렇기에 영웅 사관 학교 역사 수업에서도 재앙의 시대만큼은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무언가 둘러대야 한다.

기껏 의심이 풀렸는데 여기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면 다시 감옥으로 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둘러대는 것도 아는 것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렇게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할 때였다.

“우린 레이사르 빈민가 출신이야.”

드웨노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빈민가 아이들치고는 때깔들이 곱구먼.”

“실력이 있어서 레이사르 영주에게 거두어져 훈련을 받았거든.”

레오가 드웨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에레보스를 토벌하기 위해.”

“…….”

레이사르의 영주가 에레보스와 타르타로스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 내의 고아들을 거두어 훈련 시킨 건 유명한 이야기다.

‘물론 놈은 배신자이긴 했지만.’

고아들을 거두어 가혹한 훈련을 시켰던 것도 결국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레이사르의 영주가 고아들을 거두었고 그중 우수한 이들에게는 높은 직책을 주었던 건 사실이다.

레오의 말을 들은 데페세르가 말했다.

“당신들 같은 대단한 인재들을 레이사르의 영주가 가드스론에 보낼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요.”

데페세르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 말에 레오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 보니 아르온과 베르키아는 나와 리시나스, 루나가 지금 부재중이라고 했지?’

아르온은 세 사람이 레이사르에 지원을 갔다고 했었다.

다른 도시에 지원이나 파견을 가는 일은 흔했기에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나와 리시나스, 루나는 부재중이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레이사르의 영주 놈은 아직 살아 있는 것 같고. 데페세르 역시 살아 있어. 그리고 베르키아의 나이는 17살.’

레오는 영웅의 세계에 들어온 후의 모은 정보들을 종합했다.

‘거기에 거인왕이 지금 이 세계에 들어와 있어.’

거인왕이 무슨 이유로 이곳에 들어왔을까?

일전에 에레보스의 파편이 있던 루나의 영웅의 세계에는 군단장이 아닌 그들의 부하들이 들어와 있었다.

‘신중한 거인왕 놈이 직접 움직일 정도라면…….’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세계가 군단장이 움직일 만큼 중요하거나…… 아니면 놈의 개인적인 원한이거나.’

거기까지 정보를 모은 레오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거인왕은 드웨노에게 강한 원한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 원한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할 만한 사건은 놈이 드웨노에게 완전히 박살 났던 사건밖에 없어. 마침 이때야.’

마신기의 제작자이기도 한 거인왕은 어떤 전투에서 드웨노에게 철저한 패배를 맞이했다.

단순히 힘으로서 드웨노에게 패배한 것뿐만 아니라 대장장이로서도 완전히 꺾였다.

‘가드스론 공방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드웨노의 세계. 챕터: 중장-가드스론 공방전.]

[공략 목표: 거인왕의 침공을 저지하십시오.]

“헉!”

“흡?!”

“켁?”

일행이 비명에 가까운 신음성을 내뱉었다.

“갑자기 왜들 저러나?”

드웨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어.”

현재의 시점을 정확하게 파악한 레오는 말했다.

“레이사르 영주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어. 그래서 가드스론으로 온 거야.”

“그 말은 즉…… 가드스론으로 도망쳐 왔다는 겁니까?”

데페세르가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묻자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카일님의 예상이 맞나보군요.”

살기 어린 눈빛으로 안경을 고쳐 쓴 데페세르.

이 시기.

카일이 가드스론을 비운 이유는 하나였다.

‘레이사르 영주놈의 배신을 처단하기 위해서.’

리시나스와 루나는 레이사르를 지원하기 위해 갔지만 원래 카일은 가드스론에 남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림자로서 레이사르 영주를 처단하기 위해 함께 떠났다.

‘결국 가드스론의 방비를 허술하게 만들 거인왕 놈의 미끼였지만.’

레오는 주먹을 꾹 쥐었다.

데페세르의 얼굴이 슬픔으로 물들었다.

“그런 간악한 자의 밑에서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냈습니까…… 아직 이리도 어린데…… 크흡!”

입을 막고 힘겹게 눈물을 삼키는 데페세르가 말했다.

“드웨노님! 이 아이들은 분명 미래에 큰 희망이 될 아이들입니다! 간악한 레이사르 영주에 의해 학대받고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게 분명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곱게 자란 것 같네만?”

“잔악하십니다! 어찌 고생한 아이들에게 그런 냉정한 말씀을!”

레오의 말에 멋대로 이야기를 짜 맞춘 데페세르가 일행의 편을 들었다.

어린아이라면 껌뻑 죽는 데페세르다.

“레이사르 영주 이야기가 나왔을 때 두려워하던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공략 목표를 보고 두려움에 떤 것을 멋지게 착각한 데페세르가 옹호하고 나섰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칼이 힘겨운 표정을 지었다.

“힘들었습니다…… 매일매일 고된 경쟁을 해야 했어요.”

칼의 말에 루니아와 아르도 다급히 힘겨운 표정을 지었다.

“아아! 다른 아이들을 밟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했어요.”

“괴로워! 괴롭다구!”

‘그 발연기는 대체 뭔데!’

칼이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누가 봐도 과장 된 연기였지만 이미 콩깍지가 씐 데페세르에게는 잘 먹혀들었다.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그런 슬픈 과거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드웨노는 그 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수상하긴 해도 딱히 위험하거나 도시에 위해를 끼칠 아이들은 아닌 듯하니 감옥에는 가두지 않아도 되겠지. 굉장한 실력을 가진 아이들이니 세계의 구원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예!”

“숙소를 내어주게.”

“알겠습니다!”

드웨노의 말에 데페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빈 곳은…… 그래.”

드웨노가 품에서 곰방대를 꺼내 물었다.

“카일의 집을 빌려주면 되겠군.”

“예? 카일님의 집을요? 분명 비어 있긴 하지만 카일님이 알면 좋아하지 않으실 텐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네. 리시나스나 루나처럼 그 친구 집에 큰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저 친구는 올 클래스라고 하더군.”

드웨노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데페세르는 놀란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카일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만나게 해주고 싶네.”

“아, 알겠습니다.”

데페세르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느닷없이 대영웅의 집에.

그것도 지금 시대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시작의 영웅의 집에 가게 된 일행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영웅이 살았던 곳에 직접 간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기 충분했다.

레오 역시 기묘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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