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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92화 (292/483)

292

지혜의 왕 리시나스.

대영웅들의 리더.

혜안으로 세계를 구원의 길로 인도한 지혜의 용.

영웅들을 선별하여 하나로 모은 자.

수많은 수식어가 붙은 리시나스는 종족을 불문하고 가장 칭송받는 대영웅이었다.

그만큼 리시나스의 존재는 특별했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 그녀에게 가장 특별한 점 한 가지가 있었다.

‘모든 것의 시작.’

세상의 모든 이들이 포기하고 세계의 멸망을 받아들였다.

모두가 그저 하루하루가 존속 되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시절이다.

심지어 신들조차 포기했던 세계.

그 세계의 구원을 믿어 의심치 않고 거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어리석은 자라 비웃을 때도 묵묵히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그렇게 대영웅들을 한 대 모아 희망을 만들어내어 세계에 선물했다.

그렇기에 모든 이들이 대영웅 중에서도 리시나스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야말로 구원의 상징.

레오는 리시나스의 저택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텁- 끼익-!

낡은 경첩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레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또다시 리시나스의 저택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다.

초대받지 않은 자는 리시나스의 저택에 들어갈 수 없다.

그건 대영웅들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들어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

리시나스가 만든 환영 마법을 파훼하는 것뿐.

그러나 지금 레오의 마력으로는 마법을 해체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레오는 다시 한번 리시나스의 저택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레오는 알고 있었다.

저택을 지키는 이 환영 마법을 푸는 방법을.

리시나스가 카일에게 만큼은 해체 술식을 가르쳐준 것이다.

‘절친처럼 가까이 지냈던 루나도 아니고 왜 나에게만 알려 준 거야?’

예전부터 의문이던 사실이 새삼 떠오른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가끔 노골적으로 욕을 하던 리시나스의 눈빛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연스럽게 드웨노가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듯한 바라보던 것 역시 함께 떠올랐다.

그 누구도 리시나스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던 리시나스의 저택.

그 저택을 자신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었던 셈이다.

‘아니야. 함부로 들어오면 죽인다고 했어.’

포악하기 짝이 없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레오는 다시 저택 문을 열었다.

마법이 발동되자 곧바로 해체 술식을 사용했다.

우웅-!

끼익- 탁-!

문이 닫히고 저택 내부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차분한 공기가 감도는 리시나스의 집 내부를 잠시 바라보던 레오가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리시나스의 서재.’

지혜의 왕이 가진 지식의 보고.

5000년의 세월이 지난 먼 훗날.

대대로 드래곤 로드들의 손을 거쳐 멜리나에게까지 이어지는 공간이었다.

물론 리시나스의 서재의 규모는 이 작은 저택보다 거대했다.

하지만 서재 자체가 리시나스가 창조한 공간이었다.

레오는 익숙한 걸음으로 저택 내부를 걸으며 서고에 도달했다.

달칵-!

문이 열리며 서재의 공간이 펼쳐졌다.

탁-

레오가 문을 닫았다.

이 서재는 단순히 리시나스가 모은 문헌과 자료만이 있는 게 아니다.

‘리시나스는 정령의 보옥 중 하나를 여기에 보관 해뒀어.’

정령의 보옥.

그것은 각 속성의 정령들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대정령들이 가지고 있던 일종의 증표였다.

그중 빛의 보옥과 어둠의 보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둠의 보옥은 재앙의 시대 당시 소멸했다.

빛의 보옥은 오래전 카일과 리시나스가 군단장, 탐식왕 요르문간드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소멸의 위기를 맞이했던 빛의 대정령.

루미너스와 함께 봉인되어 있다가 카일이 손에 넣었다.

하지만 다른 대정령들의 보옥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보옥에 특별한 힘은 없다.

하지만 그 역사적인 가치와 상징성만큼은 몹시 중요했다.

그리고 재앙의 시대 당시.

그 보옥의 소유주는 대정령이 아닌 리시나스였다.

‘정확하게는 대정령들이 리시나스에게 맡긴 거지만.’

재앙의 시대 당시.

대정령들은 리시나스에게 보옥을 계약의 증표로 넘겼다.

그리고 리시나스는 그 보옥 속에 대정령들을 봉인했다.

물론 가둔 것이 아닌 보옥 속에 대정령을 깃들게 한 것이다.

보옥에 대정령을 봉인하는 것은 굉장한 리스크를 발생시켰다.

첫 번째. 대정령들의 행동반경이 극단적으로 줄었다.

대정령들의 행동반경은 기껏해야 가드스론.

두 번째. 계약자인 리시나스 조차 보옥이 없으면 대정령의 힘을 사용하지 못했다.

마지막. 리시나스 이외에는 대정령과 계약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이 시대에 아무리 뛰어난 정령술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대정령과 계약은 불가능했다.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보옥에 대정령들을 봉인한 이유는 다름 아닌 가드스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재앙의 시대.

가드스론은 세계 최후의 보루로서 많은 이들을 받아들였다.

레이사르가 난민도시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그런 레이사르보다도 가드스론의 인구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그런 가드스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빛과 물, 비옥한 대지와 맑은 공기가 필요했다.

‘칼과 아르, 에이란이 빠졌다는 정령의 호수. 루니아와 드리아나가 갔다는 불의 영역. 모두가 가드스론을 유지하게 해주는 핵심이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모두 정령의 보옥이 보관되어 있었다.

오직 리시나스만이 손댈 수 있는 보옥.

‘그리고 이 보옥이야말로 이번 영웅의 세계 공략의 핵심이야.’

정령의 보옥은 리시나스의 영력과 대정령의 힘 그 자체.

사용할 수만 있으면 리시나스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리시나스를 제외하면 절대 사용할 수 없기에 어떤 의미에서 리시나스의 전용 무구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리시나스의 힘을 계승했어.’

비록 힘은 오래전 사라졌다.

하지만 리시나스가 맺었던 맹약의 증표는 레오에게 존재했다.

‘카타리우를 소환할 수 있다면…… 정령의 보옥 역시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야.’

터벅-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서재의 한 가운데.

엄지손톱 크기의 연은색 동그란 보석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바람의 보옥.’

바람의 대정령, 실레스타가 봉인되어 있는 보옥.

레오는 보옥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우웅-!

레오의 손길이 닿자 보옥이 반응했다.

하지만 잠들어 있는 실레스타가 눈을 뜨거나 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세 개.’

레오는 보옥을 품에 갈무리했다.

‘거인왕이 침공하는 건 일주일 후.’

과거의 기억과 현재 시점을 확인하며 레오가 심호흡했다.

‘바람의 보옥은 쉽게 손에 넣었지만 다른 보옥들은 그렇지 않아.’

정령의 호수와 불의 영역.

그리고 대지의 신전은 방비가 삼엄하다.

그걸 뚫고 보옥을 가져오는 건 지금의 레오로서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지.’

서재를 빠져나가던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입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책상을 발견한 것이다.

책상으로 다가간 레오는 익숙한 책에 손을 뻗었다.

‘리시나스의 수기.’

잠시 수기를 바라보던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

루니아, 드리아나, 칼은 몹시 긴장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안은 온갖 무구로 가득했다.

‘이게 신의 대장장이…… 드웨노님의 공방.’

‘이것들이 모두 신기라는 거잖아?’

그런 생각이 드니 절로 마른침이 꿀꺽 삼켜졌다.

세 사람은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드웨노를 바라보았다.

“저…… 드웨노님.”

루니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손의 움직임을 멈춘 드웨노가 루니아를 바라보았다.

“왜 부르나?”

“저…… 저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신다고…….”

“그래. 자네들에게 가르쳐 줄 게 있네.”

드웨노가 손을 멈추었다.

그런 드웨노를 보며 드리아나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을 그리고 있으신 건가요?”

루니아와 칼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드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겐가?”

드리아나가 미간을 좁혔다.

“저기, 말투 하나만 써줄래? 근엄한 말투로 하다가 갑자기 귀여운 소녀 말투 쓰면 적응이 심히 안 되는데.”

칼의 물음에 드리아나가 팔짱을 꼈다.

“나의 이 말투는 드웨노님을 향한 존경의 의미이기도 하네. 그러니 절대 바꿀 수 없네!”

“고리타분한 나이 많은 드워프의 말투를 따라 할 필요가 뭐가 있나? 원래 말투를 사용하게.”

“예! 알겠어요!”

“진짜 줏대 없네.”

“그러게.”

냉큼 또래다운 말투를 사용하는 드리아나를 보며 루니아가 고개를 저었고 칼은 그에 동의했다.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은 드웨노가 말했다.

“뭘 그리고 있냐면 만들 무구의 모습을 디자인하고 있네.”

팔락-

드웨노가 종이를 들며 말했다.

“한 번 보겠나?”

드웨노의 물음에 세 사람이 눈을 빛내며 드웨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와- 아름다워.”

“이거 완전 예술품이잖아?”

“역시 드웨노님이세요!”

감탄하는 세 사람을 보며 드웨노가 훗- 하고 웃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이 세상의 진리와도 같지.”

“맞아요! 예술이야말로 이 세상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오, 자네는 뭔가를 아는 드워프구먼.”

드웨노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에서 말일세.”

드웨노가 힐끗 루니아를 보았다.

“루니아라고 했던가? 내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네? 제게 무슨.”

루니아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몹시 아름다운 엘프일세. 루나만큼 말일세.”

“네? 저, 저 같은 게 어떻게 루나님과 비견되겠어요. 아이참.”

루니아가 얼굴을 붉히며 어쩔줄 몰라 했다.

그렇다고 해도 대영웅인 드웨노가 직접 루나만큼 아름답다고 하니 절로 웃음꽃이 피웠다.

“성질머리는 루나님과 딴판인 것 같은데.”

“다시 말해 볼래?”

“그러니까 우등생 그만뒀다고 불량 학생이 될 필요는 없잖아! 왜 이렇게 극단적인 건데!”

자신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쥐는 루니아를 보며 칼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보며 드웨노가 껄껄 웃었다.

“밝아서 보기 좋군.”

즐겁게 웃던 드웨노가 루니아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자네에게 하려는 부탁이 뭐냐면 말일세.”

루니아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내 작품에 모델이 되어 볼 생각이 없나?”

“작품의 모델이요?”

루니아가 수줍게 웃었다.

“그야 써주시면 영광…….”

“누드 모델로 자네의 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하는 걸세.”

뒤에 덧붙여진 말에 루니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누, 누드 모델이요?”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당황하는 루니아를 보며 드리아나가 말했다.

“벗길까요?”

“벗기긴 뭘 벗겨! 이 변태야!”

눈을 부릅뜬 루니아가 드리아나의 뒤통수를 그대로 후려갈겼다.

칼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난 찬성.”

“뭐라고?”

“말이 헛나왔어. 반대야.”

살이 떨릴 정도로 살벌한 눈으로 변하는 루니아를 보며 칼이 냉큼 말했다.

“뭐, 하기 싫다는 걸 강제로 할 수는 없지.”

드웨노가 살짝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을 보며 루니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드웨노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칼. 자네에게는 내 연금술을 전수해주지.”

“네?”

칼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드리아나. 자네에게는 무구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네.”

드리아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루니아, 자네에게는.”

벌컥-!

“무슨 일이지. 변태 드워프. 또 누드모델 같은 무례한 소리를 지껄인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불태워 버리겠어.”

백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화려한 의상의 여성이 들어왔다.

‘피닉스……?’

가문 대대로 피닉스와 계약을 맺어 온 루니아는 눈앞에 나타난 존재의 정체를 단번에 꿰뚫어 봤다.

그리고 떨리는 걸 느꼈다.

‘왕의 혈통……!’

“흐응? 피닉스의 불꽃을 다루는 엘프라. 흥미롭네.”

카타리우가 재미있다는 듯 루니아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드웨노가 말했다.

“자네에게는 불꽃의 정수를 알려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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