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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95화 (29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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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가드스론의 성벽 망루에 있던 경비병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의 눈앞에 높기로 유명한 가드스론의 성벽보다도 높은 거대한 거인이 보였다.

“거, 거인왕…… 기아스!”

턱을 덜덜 떨며 눈앞의 괴물의 이명을 입에 담았다.

재앙의 시대.

타르타로스와 전쟁에 한 번이라도 나선 자라면 군단장과 조우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자리에 거인왕의 모습을 실제로 본 이는 한 번도 없었다.

타르타로스의 총사령관이자 에레보스의 가장 강대한 심복이라는 사령왕도.

가장 잔악무도하며 살육을 꽃피우는 마물 여왕이라도.

생존자는 남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거인왕 기아스는 아니었다.

절대 생존자를 남기지 않는 군단장.

그건 그가 절대적인 죽음의 상징이라는 걸 의미했다.

전장에서 만나는 순간 철저한 죽음을 선사해 왔던 거인왕 기아스의 등장에 가드스론의 경비병들은 공포를 느꼈다.

쿵-! 쿵-!

한 걸음, 한 걸음.

기아스의 거구가 다가올 때마다 경비병들이 뒷걸음질 칠 때였다.

“모두 대형을 유지하게.”

강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모든 이들이 차렷했다.

“이곳은 가드스론. 아무리 거인왕이라 할지라도 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넘을 수는 없다.”

“옙!”

드웨노의 말에 모든 이들이 용기를 냈다.

그 모습을 보며 루니아가 중얼거렸다.

“역시 드웨노님이셔. 말 한마디에 피어에 걸린 병사들을 정신 차리게 만들다니.”

대영웅의 관록이 느껴진다 생각하며 루니아가 감탄하자 드리아나가 팔짱을 끼고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드웨노님이니까.”

그런 드리아나 옆에 아르도 팔짱을 끼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아르온님이 나서서 병사들의 사기를 최대한으로 끌어내 주실 거야.”

그런 아르의 말에 드웨노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하네.”

“네?”

“아르온에게 무슨 환상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르온은 지독한 겁쟁이일세.”

그 말을 남기고 드웨노는 가드스론의 성벽 위로 올라서서 팔짱을 꼈다.

작은 드워프였지만 그 뒷모습은 너무도 거대해 보였다.

대부분은 겁에 질린 나머지 성벽 주변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드웨노의 말에 레오를 제외한 파티원들은 충격적인 표정을 지으며 아르온 쪽을 바라보았다.

아르온은 제자인 베르키아 뒤에 숨어 눈을 꼭 감고 벌벌 떨고 있었다.

“베, 베르키아. 어때? 커?”

“무지 큰데요.”

까치발을 들어 성벽 너머의 거인왕의 모습을 본 베르키아가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르온이 겁에 질린 신음성을 내뱉었다.

마치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끼잉- 끼잉- 거리는 아르온을 보며 칼이 입을 떡 벌렸다.

“마, 말도 안 돼. 그 아르온님이 저런 겁쟁이었다니…….”

칼 역시 거인왕의 존재만으로 그 존재감에 의해 제대로 떼기 힘들 정도의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제자의 뒤에 숨어 벌벌 떠는 모습은 확실히 충격적이었다.

그것도 대영웅 중에서 가장 용감하다고 칭송받는 [용자] 아르온이 저렇다는 사실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불굴의 용기를 가진 [용자]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에 더더욱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럽네.”

루니아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특히나 아르는 충격이 심한 듯 풀썩-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부여잡았다.

“우우우- 아르온님이! 이야기 속의 아르온님과 이렇게 다르다니!”

레오는 그런 아르의 뒷덜미를 잡아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거인왕 기아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실제 대영웅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를 수는 있어.”

레오의 말에 루니아가 루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수많은 역사서와 동화책에서는 청초하며 온화하고 자애롭게만 그려졌던 성운의 시조 루나.

하지만 실제 모습은 활기차고 당차며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꽃을 사랑하는 아가씨였다.

근엄하고 강직하며 세계를 위해 무기를 만드는 신의 대장장이 드웨노.

그러나 속으로는 변태 기질이 있으며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바쁜 이상한 영감님이었다.

공명정대하며 모든 것을 아우르는 카리스마로 엘프들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페어리 나이트 베르키아.

그 실상은 툭하면 거짓말을 하고 심술을 부리는 천방지축의 소녀였다.

단지 열흘 동안 같이 지냈을 뿐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그들의 진짜 모습은 완전무결하게 그려졌던 대영웅과 거리가 멀었다.

‘함께 즐겁게 웃고 떠들며 일상을 보냈어.’

어쩌면 아직 만나 보지 못한 리시나스나 카일, 루나와 한자리에 모이게 되더라도 이러지 않을까?

‘루나님을 생각한다면 그렇겠지.’

루니아가 자기 어깨에 손을 올렸다.

환하게 웃으며 서슴없이 어깨동무하며 즐거워하던 루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레오의 말대로야.”

루니아가 환하게 웃었다.

“우리가 아는 모습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드웨노님과 아르온님…… 그리고 베르키아님이야.”

파티원들이 루니아를 보았다.

“세계를 구한 위대한 업적을 세우신 분들인 건 변함 없어.”

오히려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용기를 얻었다.

‘우리와 다르지 않구나.’

……라는 생각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면서 그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친근감과 용기를 준다.

루니아의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르가 아르온을 보았다.

그리고 주먹을 꾹 쥐었다.

“그래! 아르온님은 아르온님이야!”

벌떡 일어나 가슴을 활짝 폈다.

자신이 위대한 용자의 후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콧방귀를 흥! 뀌며 아르가 성벽에 올라갔다.

“거인왕인지 나발인지 면상이나 볼까!”

눈을 치켜뜨고 귀와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던 아르는 당차게 성벽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기아스의 모습을 보자마자 귀와 꼬리를 축 늘어트리고 황급히 내려왔다.

“뭐, 뭐가 저렇게 커!”

“정말로 거대한 산만 하네요.”

“저게 거인왕…… 그렇다면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거잖아?”

영웅의 세계로 들어오기 전.

의문의 거인을 탐문하기 위해 왔던 걸 떠올리며 파티원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쿵-! 쿵!

지축이 계속해서 울렸다.

그 누구도 드웨노처럼 성벽 위로 당당히 올라설 생각을 못 할 때였다.

타닥-!

누군가 드웨노 옆에 당당하게 섰다.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머리카락.

그에 파티원들과 가드스론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아르온이 용기를 가지고 드웨노의 곁에 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웨노의 옆에 선 건 다름 아닌 레오였다.

“쟨 진짜 겁이 없는 것 같아.”

“군단장의 피어를 정면으로 받아내다니…….”

루니아가 혀를 내둘렀고 드리아나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역시 레오님이세요.”

“우웃! 검은 토끼가 한다면 나도!”

에이란이 감탄하자 아르가 오기가 생긴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군단장이 내뿜는 피어.

그 자체만으로 생명체는 겁을 먹는다.

피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마나를 일으켜 피어에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레오와 드웨노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저 덤덤하게 군단장이 내뿜는 피어를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 의연한 모습은 그 뒷모습을 보는 이로 하여금 절망에 맞설 용기를 내게 해주었다.

드웨노가 아공간을 열어 배틀 엑스를 꺼내 들었다.

레오는 팔짱을 낀 채 지축을 울리며 다가오는 거인왕을 바라보았다.

‘원래대로라면 내일 오전에 침공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거인왕이 가드스론에 모습을 드러낸 건 실제 시간보다 훨씬 빨랐다.

‘그렇다는 건…….’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시대의 거인왕이란 소리군.’

현재 영웅의 세계에 거인왕은 둘.

과거의 거인왕.

그리고 영웅의 세계를 불태우기 위해 침입한 지금 시대의 거인왕.

눈앞의 거인왕은 바로 지금 시대의 거인왕이었다.

“자네의 말대로군.”

휘리리릭-! 후아아아앙-!

“거인왕 기아스가 왔어.”

손에 잡힌 배틀 엑스를 허공에 휘두르자 강력한 바람이 흩날렸다.

쿵-!

배틀 엑스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드웨노의 마나가 성벽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와 함께 성벽 위의 병사들이 용기를 되찾았다.

드웨노의 마나가 기아스의 피어를 밀어낸 것이다.

“이제 저 덩치의 목만 치면 되는 건가?”

드웨노의 말에 레오가 검을 뽑았다.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아직 놈의 군단이 없어.”

“흠. 확실히 그렇군.”

“그리고.”

“그리고?”

“거인왕이 둘일 수도 있어.”

드웨노의 눈이 꿈틀거렸다.

“과연.”

레오가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는 드웨노는 그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원래 전투에서 우리가 어찌 되었나?”

“……이겼어.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렇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거야? 나도 들을…….”

그워어어어어어어어-!

“히이익?”

용기를 내서 레오가 선 성벽 위로 올라오려던 아르는 기아스의 포효에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엉덩방아를 찍었다.

아직 가드스론의 성벽과 기아스가 닿으려면 까마득한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워낙 거대한 덩치이다 보니 기아스의 움직임이 한눈에 보였다.

화악-!

거인왕이 아공간에서 거대한 대검을 뽑았다.

검붉은색 검신에 살점이 덕지덕지 눌어 붙은 대검.

그걸 본 드웨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흑마력은……? 요르문간드의 척추뼈로 만든 대검인가? 완성하려면 수백 년은 족히 걸릴 줄 알았는데……?”

카일과 리시나스가 토벌한 요르문간드.

그리고 그 요르문간드의 사체를 회수한 것이 다름 아닌 거인왕 기아스였다.

동료의 사체를 가지고 흉악의 마검을 만들어낸 것이다.

고오오오오오오-!

심상치 않은 마력이 휘몰아쳤다.

거인왕의 흑마력을 빨아먹은 요르문간드의 사체검이 꿈틀거렸다.

콰가가가가강-!

흑녹색의 흑마력이 방출되었다.

탐식왕 요르문간드의 흑마력이 흉악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흑녹색의 흑마력이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가드스론의 성벽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걸 본 모든 이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위, 위험해!”

“검은 토끼! 피해!”

아르가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레오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건 드웨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격당한다면 아무리 드웨노라 해도 위험한 공격이었다.

지금의 레오는 확실하게 죽음에 이를 공격.

성벽을 집어삼켜 흔적도 없이 무너트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흑마력을 보며 많은 이들이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레오는 알고 있었다.

언제나 겁에 질린 나머지 전장에서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겁쟁이.

하지만 그런데도 전투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지는 순간.

탁-!

가장 먼저 달려나갔던 겁쟁이.

백색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화악-!

성벽을 밟은 수인 청년이 허공으로 높이 도약했다.

그 앞에는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는 흑마력의 덩어리가 있었다.

스릉-!

아르온이 검을 뽑았다.

먼 훗날, 용자의 상징이라 불리우는 검, 브레이브.

검에서 황금색 오러가 치솟았다.

번쩍! 콰가가가가각!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격이 승천하듯 치솟았다.

그와 함께 흑녹색의 흑마력 덩어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휘리릭-!

탁-!

휘오오오오-!

바람이 휘몰아쳤다.

백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검을 늘어트린 아르온의 뒷모습을 보며 모든 이가 숨을 삼켰다.

그 흔들림 없는 뒷모습은 언제나 대영웅들에게 거대한 용기를 전해주었다.

‘이것이…… 용자.’

‘세계에서 가장 강한 용기를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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