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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가가가강-!
“흐읍!”
눈앞에 파도처럼 치솟은 충격파를 본 드웨노가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의 이마에 불끈-! 핏줄이 치솟았다.
레오는 몸을 날려 그런 드웨노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쿠가가가가가강-!
충격파의 폭풍이 드웨노를 정면으로 덮쳤다.
“흐랴아아압!”
배틀 엑스를 방패로 삼은 드웨노가 충격파의 폭풍을 버텨냈다.
충격파가 가시자 드웨노가 도끼를 고쳐 쥐고 기아스에게 돌격하기 위해 자세를 낮출 때였다.
우뚝-!
드웨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왜 그래?”
의아한 표정을 짓던 레오 역시 안색이 돌변했다.
쿵-! 쿵-!
기아스 역시 걸음을 멈추고 가드스론 쪽을 바라보았다.
-흐흐흐.
웃음을 터트리는 기아스를 보며 드웨노가 배특 엑스를 고쳐 쥐었다.
“기분 나쁜 웃음이군.”
-레오 플로브.
기아스의 시선이 레오에게로 향했다.
-네가 말했지? 넌 내가 세운 계획의 가장 큰 변수라고? 그래, 인정하마. 네놈의 존재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넌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나를 번거롭게 하고 있다. 그 점을 칭찬해주지.
느닷 없는 말에 레오가 인상을 찡그렸다.
-네놈이 어떻게 여기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세계는 아직 던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영웅 던전이 아니라고?
영웅 던전.
불안전한 상태의 히어로 레코드가 폭주를 일으켜 주변 일대를 잠식하는 현상.
히어로 레코드 속에 에레보스가 봉인됨에 따라 생긴 부작용이다.
에레보스의 힘에 오염된 페이지들이 일으키는 폭주.
레오는 드웨노의 세계가 그런 폭주로 생성된 영웅 던전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드웨노의 히어로 레코드가 에레보스의 힘에 오염되지 않았다면…… 에이란이 만졌기에 영웅의 세계가 발동된 것이겠군.’
베르키아 역시 이 세계의 주역 중 한 사람이 분명했다.
가드스론 공방전 이후 베르키아가 본격적으로 전장에 섰으니까.
그런 베르키아의 후손인 에이란.
그리고 레오가 건네준 에르퀸트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에이란이 열쇠가 된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 자식은 대체 어떻게 여기에 들어 온 거지?’
-궁금하지 않나? 내가 이 불쾌한 세계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가?
기아스의 눈이 번뜩였다.
-위대한 신의 인도가 있었다.
“뭐?”
-신께서 이 세계로 올 수 있는 열쇠를 나에게 하사하셨지. 그리고 지금 신께서 오랜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셨다.
히죽-
기아스가 징그러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놈이 변수가 되던 상관없다.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고 이 세계는 불타 사라질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기아스의 조롱에 드웨노가 말했다.
“가드스론으로 돌아가게.”
-가든 가지 않든, 결과는 똑같겠지만.
쿵-!
기아스의 거대한 발이 가드스론으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했다.
-네놈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둘성싶으냐.
그 말에 드웨노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배틀 엑스를 장전하듯 뒤로 당겼다.
후화아아앙! 쩍-!
-큭?!
“자네의 의견 따위 내 알 바 아니네, 기아스.”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간 베틀 엑스가 기아스의 발목을 찍어 버렸다.
“난 이 친구를 보고 가드스론에 돌아가라고 말했네. 그렇다면 자네가 무슨 짓을 하든 그렇게 만들겠다는 소리지.”
쿵-!
발목이 잘려나간 기아스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 틈을 타 레오가 가드스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도약했다.
-내버려 둘성싶으냐!
기아스가 자유로운 팔을 레오에게 휘둘렀다.
화악-!
드웨노는 그런 기아스의 손바닥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돌격했다.
쾅-!
드웨노의 몸통박치기에 레오를 노리던 기아스의 손이 튕겨져 나갔다.
-놈!
분노한 기아스가 반대 손으로 드웨노를 후려쳤다.
휘이잉! 쾅-!
기아스의 손에 맞은 드웨노가 엄청난 속도로 바닥에 처박혔다.
깊은 구덩이가 생성 되었다.
콰앙-!
하지만 구덩이를 뚫고 나온 드웨노가 그대로 날아가 기아스의 턱에 머리를 들이박아 버렸다.
-컥?!
레오를 저지하려던 기아스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탁-!
바닥에 착지한 드웨노가 말했다.
“말했지 않나. 자네는 저 친구를 보내줄 수밖에 없다고.”
쿠구구궁-!
잘려 나갔던 발목이 회복 되고 기아스가 몸을 일으켰다.
-쓸데없는 발버둥을…….
쿠웅-!
기아스가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산과도 같은 크기.
그런 그가 모든 종족 중에서도 가장 작은 드워프를 내려다보았다.
드웨노는 고개를 들어 끝도 없는 높이의 기아스를 바라보았다.
-신의 불꽃은 끝내 모든 것을 불태울 것이다.
기아스가 요르문간드의 사체검을 들어 올렸다.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기 전까지 끝없이 타오를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친다 해도 네놈들의 운명은…… 세계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기아스의 눈이 번뜩였다.
-네놈과 네놈의 동료들…… 모든 것들은 결국 불타 사라질 운명이다.
“자신만만하게 떠드는군. 그런것 치고는 미래는 찬란하게 빛나는 모양이지만.”
드웨노의 말에 기아스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네놈…….
“그 말인 즉슨…… 우리의 원정은 성공 했다는 의미 아닌가?”
드웨노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무얼 바꾸려고 이 먼 과거로 기어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드웨노의 눈이 번뜩였다.
“자네의 미래는 바뀌지 않을 거야.”
-마음껏 떠들어라. 과거의 망령 따위가 지껄이는 말에 귀를 기우리지 않을 테니.
기아스의 몸에 힘줄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싸움 역시 지금부터가 시작일 테니까.
‘권능인가.’
거인왕 기아스의 권능 버서커.
버서커를 발동시키는 순간 모든 힘이 폭등하며 파괴만을 일삼는 파멸의 마인으로 변모한다.
끝내 드웨노의 고향을 멸망시킨 것 역시 버서커가 된 기아스였다.
‘단점은…… 이성의 상실.’
거대한 몸은 바꿔말하면 거대한 표적이기도 하다.
아무리 강대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계속 된 공격에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거대한 덩치는 기아스에게 거대한 파괴력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지나칠 정도로 모든 것을 경계하는 성격으로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괴물은 어떤 의미에서 공격할 곳이 많은 사냥감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양날의 검과 같은 권능.
‘이번에야말로 그 질긴 악연을 끊어주마.’
***
탁-!
가드스론의 성벽으로 되돌아온 레오는 눈앞의 상황을 목격하고 얼굴을 굳혔다.
콰가가가각-!
타오르는 검은 화염 속에서 아르온이 검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마인과 격렬한 검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콱-!
아르온의 발차기가 화염 마인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쾅-!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간 마인의 몸이 성벽에 처박혔다.
이빨을 드러낸 아르온이 마인의 앞으로 쇄도해 손을 치켜들었다.
콰가각-!
날카로운 손톱이 화염의 마인을 찢어발겼다.
탱! 탱! 챙그랑-!
마인의 몸이 불꽃이 되어 흩어짐과 동시에 그 몸의 중심에 있던 쇳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레오의 시선이 그 녹아내린 쇳조각에 사로잡혔다.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드웨노가 유일하게 작품이라 여겼던 무구.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올 클래스만을 위한 검.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 달라는 의미에서 드웨노가 카일에게 주었던 검.
“포스테리타스.”
에레보스와의 마지막 사투에서.
포스테라티스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두 동강 났다.
부러진 게 아니다.
녹아내려 에레보스의 몸에 박혔던 검의 끝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 이후 남은 반쪽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카일은 힘을 다해 눈을 감았고.
카일이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손잡이 부분은 먼 훗날 드워프들이 회수를 했다.
다른 부분은 녹아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태조차 제대로 남지 않은 상태로 지금 이 영웅의 세계에 와 있었다.
‘신께서 이 세계로 올 수 있는 열쇠를 나에게 하사하셨지. 그리고 지금 신께서 오랜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셨다.’
조금 전 기아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 순간.
번뜩-
검에서 검붉은색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혐오스러운 검붉은색 눈은 명백한 증오를 담고 레오 쪽을 바라보았다.
그 눈을 본 레오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본 적 있는 눈이다.
단 하나의 의지.
레오를 향한 증오 어린 적의.
일전에 입학시험이 끝난 직후.
찰나의 순간에 봤던 에레보스의 눈과 똑같았다.
화악-!
포스테라티스의 조각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또다시 사람의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이번에 향한 상대는 다름 아닌 레오였다.
화악-!
그때 빈틈을 노리고 날아든 아르가 마인의 측면을 노렸다.
터엉-!
“엇?!”
순간 발동된 마법이 아르의 공격을 가로막았다.
그와 함께…….
우웅-!
소환진이 떠오름과 동시에 마수가 쏟아져 나왔다.
흉측한 형태의 마수가 아가리를 벌리고 레오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했다.
콰가가각-!
연은빛의 오러가 휘몰아치며 에이란이 마수들의 목을 베어냈다.
“레오님! 괜찮으신가요?”
“……괜찮아.”
레오가 얼굴을 굳힐 때였다.
“그만 부활하고 이제 그만 뒈져!”
분노에 찬 목소리와 함께 루니아의 붉은 화염이 마인을 휘감았다.
하지만 마인은 그 화염을 뚫었다.
아르와 에이란이 마인을 저지하기 위해 손톱과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몸이 찢겨 나가는 와중에도 마인의 검은 레오를 향했다.
레오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콱-!
순간 머리가 허공에 떠올랐다.
검을 뽑은 레오가 그대로 마인의 목을 그어 버렸다.
“불쾌하네.”
깨달았다.
이건 에레보스의 사념이다.
‘이걸로 이 세계에 들어온 건가.’
에레보스가 남긴 의식의 찌꺼기.
포스테라티스의 검 끝에 남아 잠들어있던 사념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눈을 떴다.
그리고 기아스를 불러들인 것이다.
영웅의 세계에 들어온 사념의 찌꺼기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과거의 자신에게 영향을 받아 조금씩 힘을 되찾아 각성한 것이다.
‘그리고 포스테라티스에 깃든 기억을 읽고 그 모습을 취한 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레오가 얼굴을 굳혔다.
‘빨리 처리해야 해.’
꺼져가는 잔불에 불쏘시개가 닿는 순간.
잔불은 다시 타오른다.
지금은 작은 불씨에 불과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거대한 불씨로 변할 것이다.
레오가 이를 악물 때였다.
화악-!
허공에 마법진이 떠오름과 동시에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도 알고 있는 소년이었다.
‘제르스.’
과거, 가드스론 공방전에서 목숨을 잃은 드래곤족 소년이었다.
“아, 아르온님! 가드스론 서쪽에서……! 거, 거인왕과 그 군단이 모습을……!”
“뭐?”
아르온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르온 뿐만 아니다.
보고를 들은 모든 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 잠깐! 거인왕은 지금 드웨노님께서 저지하고 계시잖아! 그런데 거인왕이 왜 또 나타나는 건데!”
엘프 마도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도 이유를 잘……!”
제르스가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을 했다.
미래의 기아스는 드웨노가 상대하고 있다.
과거의 기아스의 등장까지는 익히 예상했던 범위 내의 일.
하지만 에레보스의 사념은 아니었다.
너무도 절박했다.
‘이놈을 쓰러트리고 빠르게 서쪽 입구로 가야 하나? 하지만 그사이 서쪽 입구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레오가 이를 악물었다.
손이 부족하다.
레오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건 예상범위까지의 일.
그 예상이 벗어나 일이 너무 커졌다.
“아르온님! 여러분! 어서 빨리 서쪽으로!”
제르스가 발을 동동 구를 때였다.
휘이이이이잉- 콰앙!
“꺄아아악!”
“뭐, 뭐야! 공격인가!”
멀리 기아스 쪽에서 무언가 날아와 성벽 위에 처박혔다.
모두가 패닉에 빠진 가운데 먼지를 꿇고 드웨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흠! 아프구먼!”
툭툭-!
먼지를 털어내며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 모습은 엉망이었다.
드웨노는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검은 불꽃을 바라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레오에게 물었다.
“저건 뭔가?”
“……아무래도…… 에레보스의 조각 같아.”
“조각이라.”
드웨노가 턱을 쓰다듬을 때였다.
“드, 드웨노님! 서쪽에 또 다른 거인왕 기아스와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가?”
드웨노의 눈이 가라앉았다.
깊은 한숨을 쉰 드웨노가 말했다.
“아르온 자네가 서쪽에 있는 놈들을 막게. 레오. 자네는 아르온을 도와주고.”
그 말에 아르온이 머뭇거렸다.
“그러면 에레보스는 어떻게 해야해?”
“성벽 위에서 놔두면 전투에 큰 방해가 되니 치워야지.”
“치워? 어디로?”
“어디로긴.”
드웨노가 돌진하여 도끼를 고쳐 쥐어 옆면으로 에레보스의 사념을 후려갈겼다.
쩌엉-!
쇠를 때리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에레보스의 사념이 도시 내부에 날아가 처박혔다.
콰가강-!
건물이 무너지며 자욱한 먼지가 일어났다.
“저건 도시 내부에서 처리해야겠지.”
그 말에 데페세르가 말했다.
“저와 드래곤들이 상대하겠습니다.”
“아니, 자네들은 서쪽에 나타난 거인왕의 군단을 막게.”
드웨노가 힐끗- 에레보스의 사념을 바라보았다.
“저건 베르키아와 루니아, 아르, 에이란, 드리아나. 그리고 칼. 자네들이 막게.”
“넵!”
“알겠어요.”
아르가 힘차게 대답했고 루니아는 손가락 관절을 풀며 에레보스의 사념이 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드웨노에게 다가가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위험해.”
레오가 말했다.
“저놈의 힘은 당신도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지금 당신이 정한 멤버에 내가 합류한다고 해도 벅찰 정도야!”
단기간 내에 불타오르기 시작한 에레보스의 사념의 힘은 막강했다.
레오가 예상한 전장의 판도를 단숨에 뒤집어 엎을 정도로.
말 그대로 절망적인 변수였다.
드웨노가 선택한 여섯 명이 강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미완성된 영웅의 그릇.
그런 그들에게 막강해진 에레보스의 사념을 상대하라는 건 너무 무모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자네가 저놈을 상대하게 할 순 없네. 아르온에게는 자네가 필요할 테니까.”
“그래도…….”
“방법이 없네. 외통수일세.”
드웨노가 덤덤히 레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레오가 주먹을 쥘 때였다.
“그러니 믿게.”
“……뭐?”
“자네가 선택한 미래를 믿으라는 말일세.”
“……!”
“내가 보기에 저 아이들은 시련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네.”
드웨노가 차분한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충분히 자네의 등을 지탱해줄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네. 그러니 믿게.”
레오가 고개를 돌려 전투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보았다.
“언제까지 혼자 짊어지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
레오가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나이를 헛으로 먹지는 않았네.”
“훗. 리시나스 조차 나에게 인생 상담을 할 정도지.”
“리시나스가?”
“그래. 어떤 등신의 등신짓 덕분에 하는 푸념에 가깝지만.”
드웨노의 신랄한 말에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드웨노가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기아스를 바라보았다.
“그럼, 2차전을 시작해볼까?”
***
쿵-! 쿵-!
눈앞에 펼쳐진 공포스러운 광경에 서쪽 성벽으로 온 모든 이들이 겁에 질렸다.
압도적인 절망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르온 혼자서 군단과 군단장을 막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이대로 끝나는 건가.”
누군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대로 멸망당하는 거야?”
절망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다.
그리고 스며들기 시작한 공포는 끝도 없이 새로운 공포를 낳는다.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늑대의 포효가 가드스론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포효에 군단의 진군이 멈추었다.
공포에 질려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또렷하게 변했다.
전염되던 공포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울려 퍼지던 하울링은 어느새 뚝- 멈추었다.
“다들 싸울 준비 해.”
언제나 겁에 질려 있던 목소리가 차분하게 모두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탁-!
어느새 성벽 위에 모습을 드러낸 아르온이 검을 뽑았다.
스릉-!
그와 함께 그의 몸이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송곳니는 길어지고 손톱은 날카로워졌다.
온몸에 털이 부풀어 올랐다.
“오늘 우리는 끝날 수도 있어.”
덤덤히…… 각오를 다진 아르온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끝이 아닐 수도 있잖아?”
아르온이 미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영웅들을 뒤돌아 보았다.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잖아. 포기하지 않아서 희망을 본 거잖아?”
아르온이 웃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자.”
화려한 연설도 아니다.
그저 용기를 내라는 작은 응원.
하지만.
가장 앞에 나선 겁쟁이의 응원은 모든 이들에게 힘을 주었다.
“아무리 봐도, 이럴 때 연설은 리시나스 보다 네가 더 잘하는 것 같다니까.”
휘익-! 탁-!
아르온 옆에 선 레오가 웃으며 말했다.
모두의 눈에 용기가 치솟았다.
공포가 전염성이 강하다면.
용기 역시 전염성이 강하다.
“우리는 이길 수 있어.”
레오가 확신에 찬 어조로 아르온에게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레오가 왼손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꺼낸 왼손 사이사이에는 붉은색, 푸른색, 연은색, 갈색. 네 가지 색의 구슬이 끼어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