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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03화 (303/483)

303

“와아아아아아아!”

“이겼다!”

“거인왕의 군단을 물리쳤어!”

가드스론의 성벽 위에서 많은 이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레오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가드스론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당시 레이사르에서 다급히 귀환했을 때 가드스론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간신히 되찾았던 희망마저 빼앗겼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겨 냈지.’

희망을 준 건 분명 리시나스였다.

하지만 그 희망을 받고 세계가 다시 재건 될 수 있게 힘을 냈던 건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레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히어로 레코드의 공략.

이 세계가 끝나가는 게 보였다.

저벅- 저벅-

“괜찮아?”

아르온이 다가와 물었다.

“네 몸 걱정이나 해.”

“나만큼 엉망이잖아.”

레오도 아르온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르온이 조금이라도 기아스를 처치하는 게 늦었다면.

레오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왜 물의 방패를 거두지 않은 거야?”

아르온의 물음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믿었으니까.”

아르온은 차분한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런 가운데.

“그 망할 거인왕, 결국 도망치고 말았군!”

분노에 찬 탄식을 내뱉으며 드웨노가 성벽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드웨노님, 괜찮으십니까?”

“상처가 심하십니다.”

“난 괜찮네. 그보다 자네들 상처나 돌보게.”

터벅- 터벅-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드웨노는 레오와 아르온에게 다가왔다.

턱-

레오 앞에 선 드웨노가 말했다.

“거인왕, 놓치고 말았네.”

“그놈은 우리가 쓰러트릴 테니 신경 쓰지 마.”

“……떠넘기는 것 같아 미안하군.”

드웨노가 긴 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오늘 밤은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겠어.”

드웨노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즐겁게 술잔이나 나누지 않겠나?”

레오가 씁쓸하게 웃었다.

“말은 고맙지만…… 우린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뭐? 그 몸으로 어딜?”

아르온이 당황했다.

레오는 몸을 일으켰다.

“우리 역할은 여기까지야.”

드웨노의 세계가 닫히는 걸 느끼며 레오가 뒤돌아섰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 누구보다 소중했던 친구이자 동료인 드웨노와 아르온.

그들과 술잔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허락된 시간은 여기까지야.’

레오가 입술을 악 깨물었다.

동료들을 살리지 못했다.

그들의 죽음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던 레오로서는.

자신이 카일이란 사실을 차마 드웨노와 아르온에게 말할 수 없었다.

‘믿지도 않을 테고.’

타박- 타박-

걸음을 옮기는 레오의 뒤를 향해 드웨노가 말했다.

“왜 우리의 죽음에 자네가 죄책감을 가지는 건가?”

우뚝-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눈을 크게 뜬 레오가 뒤를 돌아보았다.

“뭘 그리 얼빠진 표정을 짓나? 설마 내가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건가?”

드웨노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드웨노, 역시 레오는…….”

“맞네, 아르온. 미래에서 온 카일일세.”

아르온이 놀란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드웨노는 팔짱을 꼈다.

“아르온도 어렴풋이 눈치를 챌 정도였는데도 잘 속였다고 생각하다니. 내가 왜 자네를 등신이라고 불렀는지 이제는 알겠나?”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레오가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레오를 보며 피식 웃은 드웨노가 레오 앞으로 다가갔다.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 난 모르네. 하지만 카일.”

툭-!

두꺼운 드웨노의 손이 레오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각오를 다지고 리시나스를 따라 여정에 나섰네. 설령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죽음일지라도.”

드웨노는 웃었다.

“세계가 구원받았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네. 그러니 죄책감을 가지지 말게.”

레오가 주먹을 꾹 쥐었다.

파지직-!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래를 부탁하네.”

“알았어.”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드워프 전사는 레오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떠밀 듯 레오를 밀었다.

“자, 이제 앞으로 나아가게.”

“그래.”

터벅- 터벅-

레오가 몇 걸음 발걸음을 옮기자.

이윽고 세계가 모습을 감추었다.

[공략 보상: 드웨노의 유산, 드웨노의 불꽃.]

***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맑은 하늘이었다.

모두가 얼떨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거대한 싸움이 있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우오오오오?!”

아르가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이것 봐라! 드웨노님이 만드신 각반과 권갑이야!”

손에 들려진 아름다운 각반과 권갑을 보며 아르가 폴짝폴짝 뛰었다.

아르뿐만이 아니었다.

“카타리우님의 깃털이 깃든 지팡이……?!”

루니아는 손에 쥐어진 예술작품과도 같은 지팡이를 보며 넋을 놓았다.

“에르퀸트가…… 마치 새것처럼 말끔해졌어요! 게다가 방패예요!”

에이란은 손에 돌아온 에르퀸트와 방패를 보며 감탄했다.

“나는 연금서야.”

칼은 손에 들린 드웨노의 연금서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책을 펼치니 백지가 있었다.

당황하던 칼은 이내 자신에게 반응하여 글이 생겨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드리아나는 손에 쥐어진 망치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 예술가는 때려치우게.’

자신의 망치를 건네주며 드웨노는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찔끔하는 드리아나의 머리를 드웨노가 토닥여 주었다.

‘자네는 스미스로서 출중한 재능을 가진 아이일세. 그러니 한눈팔지 말고 대장장이로서 정진하게. 나는 나고 자네는 자네일세.’

방황하던 자신을 응원해주던 인자한 신의 대장장이를 떠올리며 드리아나가 다짐했다.

‘드웨노님. 드웨노님의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은 대장장이 겸 예술가가 될게요.’

드웨노가 들었다면 망치를 빼앗아 마구 휘둘렀을 사족을 붙이며 드리아나가 망치를 꼭 쥐었다.

파티는 모두 드웨노가 준비한 선물을 공략 보상으로 받았다.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보상이었다.

신의 대장장이, 드웨노의 물건인 만큼 모두 신기 등급의 무구.

그러나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신기.

그 위대한 유산을 가지고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레오는?”

화르르륵-

레오는 눈앞에 검은 화염을 무미건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인왕 기아스는 이미 모습을 감춘 지 오래다.

하지만 에레보스의 사념만큼은 남아 레오를 향해 증오를 불태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끈질기군.”

“레오님!”

그때 허공이 열리며 멜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럽게 거인왕 기아스가 모습을 드러낸 후 기간테스 무리가 타르캄을 침공…….”

레오의 마력을 느끼고 급히 워프해 온 멜리나는 에레보스의 사념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오래전.

개벽의 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를 공략했던 멜리나는 에레보스의 조각과도 맞서 싸운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살기를 드러내는 멜리나를 보며 레오가 손을 들어 저지했다.

“내가 처리할게.”

“레오님?”

멜리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벅- 저벅-

에레보스의 사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포스테리타스.”

번쩍-!

황금색 빛과 함께 반쯤 녹아내린 롱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보고 멜리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작이라는 이름의 검은 반으로 부러진 칼날을 제외한다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레오님의 불꽃에 반응하여 옛 모습을 되찾은 건가? 하지만 저 검은 그때는 원래 모습을 되찾지 못했는데?’

레오가 가진 드웨노의 불꽃에는 한순간이지만 드웨노가 만든 무구를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힘이 있었다.

신의 대장장이, 드웨노는 그 능력으로 망가졌던 무구를 새것처럼 되돌리곤 했다.

하지만 레오가 드웨노의 무구를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는 건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뿐이었다.

레오가 가진 드웨노의 불꽃은 작은 불씨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공략 보상으로 온전한 드웨노의 불꽃을 이어받았다.

‘물론 완전히 수명이 끝난 물건은 드웨노의 힘으로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겠지만.’

드웨노가 레오에게 만들어줬던 검.

포스테리타스 역시 무구로서 수명이 끝이 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포스테리타스는 레오의 부름을 받고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직 자신이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화르르륵-!

황금색 불꽃이 포스테리타스에 어렸다.

“부탁한다, 그리고…….”

레오는 자신의 최후와 함께했던 검에 작별을 고했다.

“고마웠다.”

우웅! 우웅!

레오의 인사에 응답하듯.

포스테리타스가 회색의 마나를 토해냈다.

과거 카일이 쥐어 짜냈던 마지막 힘의 편린.

콱-!

레오가 포스테리타스로 에레보스 사념을 꿰뚫었다.

파지지직-!

포스테리타스에 금이 갔다.

에레보스 사념을 담고 있는 검의 조각 역시 금이 갔다.

그워어어어어어어!

사념이 최후의 발악을 하듯 검은 불꽃을 토해냈다.

파칭-!

하지만 이내 포스테리타스는 빛의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구오오오오오오!

허공에 검은 불꽃의 덩어리가 나타났다.

불꽃은 고통에 몸부림치더니 이내 흩어지기 시작했다.

콱-!

사념이 소멸하기 직전 레오는 멱살을 쥐듯 사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이번에는 5000년 전의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야.”

레오의 눈에 진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각오해, 이번에야말로.”

씹어 내배듯 레오가 선언했다.

“네놈을 죽여 버릴 테니까.”

***

검은 머리카락의 여인은 가라앉은 눈으로 눈앞에 재건이 시작된 도시를 바라보았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분명 놈들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승리야, 그래도…….’

여인은 거리의 사람들의 눈에 비친 음울한 절망을 보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희망찼던 도시는 마치 다시 희망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해낼 수 있을까?’

지혜롭게 빛나는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집으로 돌아온 여인, 리시나스는 피곤한 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재에 들어가 털썩- 책상 앞에 주저앉고 깊은숨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쓰던 수기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걸 깨닫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수기를 꺼내놨었나?’

그러면서 수기를 펼치던 리시나스가 멈칫했다.

“…….”

수기에 적힌 익숙한 글씨체에 리시나스의 입매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리시나스, 이번 일에 절대 좌절하지 마. 네 말대로 우리는 세계를 구할 테니까. 그러니 힘내.>

“언제 이렇게 남을 응원해 줄 수 있게 되었지?”

우울하던 기운이 가셨다.

턱을 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리시나스의 얼굴이 일순간 굳었다.

‘잠깐. 그 녀석은 이게 내 수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아니, 애초에 내 집에 언제 들어온 거야?’

리시나스의 어깨가 떨렸다.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애초에 이걸 썼다는 건 내 수기를 봤다는…….’

“리시나스 잔해들 다 치우고 왔어. 변태 영감이 토목 쪽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다행이야. 후아~ 역시 노동은 힘들 다니까.”

“넌 마법만 썼을 뿐이잖아. 정작 고생한 건 나나 아르온, 드웨노인데 왜 네가 생색이야?”

“마력 소비도 엄청난 노동인데?”

루나가 카일을 향해 눈을 흘겼다.

“야! 카일!”

그때 리시나스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너너너너너! 언제 우리 집에 몰래 들어온 거야! 그리고 내 집을 마구 뒤져서 내가 쓴 수기를 몰래 읽어? 죽고 싶어!”

“무슨 헛소리야? 내가 미쳤냐? 너희 집에 몰래 들어가서 집을 마구 뒤지게? 애초에 들어오고 싶을 때 마음대로 들어와도 된다며! 그래서 문 여는 법도 가르쳐줬잖아!”

“내가 언제! 네게 문 여는 법을 가르쳐 준 건…… 아! 몰라! 아무튼 이런 식으로 서재 뒤져보란 소린 안 했어!”

“그러니까 들어간 적 없다니까!”

머나먼 미래, 세상을 구원으로 이끈 지혜로운 드래곤과 세상을 구원한 인간의 유치한 싸움을 지켜보며 세상을 구원하는 주문을 만든 엘프는 고민에 빠졌다.

‘……왜 리시나스는 카일에게 문 여는 법을 가르쳐 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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