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기숙사 대항전 모의 전투의 준비 기간은 한 달.
그리고 그 기간동안 루메른은 시험 기간에 들어갔다.
“그래! 이래야 시험 기간 답지!”
마법학과 수업 시작 전.
칼은 두둑해진 주머니를 짤랑 흔들며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었다.
“난 시험 기간이 정말 좋아! 평소보다 수익이 배로 늘어난다니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수입을 정산하고 있는 칼을 보며 클로에가 턱을 괴고 물었다.
“그렇게 좋아?”
“그럼! 매일매일 시험 기간이면 좋겠다!”
“성적표를 본 후에도 좋을까?”
“그래서 매일매일 시험 기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야!”
칼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성적표를 안 받아도 되잖아.”
그 모습을 보고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칼! 피로 회복 포션 남는 거 있냐?”
“아니, 다 떨어졌는데.”
다급히 묻는 남학생을 보며 칼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그에 남학생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1년 동안 칼의 피로 회복 포션의 효과는 입증이 되었다.
그 덕에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애용하는 물건이 되었다.
“대신.”
칼이 훗-! 하고 웃었다.
“신제품이 있지.”
“신제품?”
“그래. 내가 며칠 동안 꼬박 밤을 새면서 만든 물건이야.”
칼이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칼을 보며 남학생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하지 그랬냐?”
“훗. 내가 공부한다고 꼴찌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하긴.”
“아니, 순순히 인정하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슬픈데.”
어깨를 축 늘어트린 칼이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병 하나를 꺼냈다.
탁-!
책상 위에 엄지 만한 크기의 작은 병을 꺼낸 칼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걸 보고 클로에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이 포션의 효과가 뭐야?”
“집중력 상승 포션. 이걸 마시면 24시간 동안 엄청나게 집중력이 상승한다! 이 말이지!”
칼이 씩- 웃었다.
“어때? 시제품이라 지금이라면 공짜로 줄…….”
“거절한다.”
남학생이 가차 없이 말했다.
“새로운 비약의 실험체가 되는 건 사양이야.”
남학생의 말에 칼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몸에 해롭거나 하지는 않거든? 그냥 조금 부작용이 있을 뿐이야.”
“흥. 역시 그렇군. 그래, 부작용이 뭔데?”
“24시간 동안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어. 자고 난 후에는 꼬박 이틀 동안 자야 하고. 물론 깨어 있기는 한데 조금 잠에 취해 맛이 간 상태라고 할까?”
“그래서 저번 주말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클로에는 지난 주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거절이다.”
남학생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변에 흥미를 가진 다른 학생들도 이내 칼의 신제품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클로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순순히 부작용 같은 걸 다 실토하다니, 너답지 않네.”
“어허! 장사에는 신뢰가 중요하거늘! 날 뭐로 보는 거야. 내가 사기 치는 거 본 적 있어?”
“사기는 친 적 없지. 그런데 아직 부작용이 해결되지 않은 포션을 시제품으로 팔면 나중에 장사가 잘 안되지 않아?”
“물론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칼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너희들, 곧 이걸 엄청 원하게 될걸.”
손가락으로 포션을 든 칼이 살랑살랑 흔들었다.
작은 병 안에 담긴 금빛 액체가 찰랑거렸다.
클로에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마시고 싶지 않은데.”
“맞아.”
“누가 그런 부작용 심한 걸 마시고 싶어 하겠냐?”
여기저기서 야유 소리가 쏟아졌다.
“이 포션은 드웨노님의 연금술 책에 적힌 레시피 대로 만든 거거든.”
“뭣?”
“드웨노님이라고?!”
학생들이 눈을 부릅뜨고 칼을 바라보았다.
저기 멀리 함께 있던 아바드와 첼시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미 칼이 공략 보상으로 드웨노의 연금서를 얻은 건 유명하다.
스미스 전속 계약 기간이 끝나고 루메른에 돌아오자마자 마법학과 고학년들까지 몰려왔을 정도였다.
연금술 내용을 공유해달라는 요청에 결국에는 루메른의 여왕, 엘레나가 나섰다.
‘드웨노님의 공략 보상과 관련되서어 소란을 일으키는 분이 있다면 재미있는 꼴을 당하게 해줄게요.’
‘웃기지 마! 엘레나 제르온! 그건 학생회의 월권행위야! 하르크가 네 말에 동의할 것 같아?’
평소 엘레나를 아니꼽게 여기는 마법학과 5학년생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어머? 전 학생회의 일원이 아니라 루메른 이사장 대리의 신분으로 한 시행 명령인데요? 그리고.’
엘레나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하르크 선배라고 딱히 이 상황을 좋게 볼 것 같진 않은데요? 불만이면 하르크 선배까지 갈 필요 없어요. 지금 덤벼요.’
4학년이지만 작년에 토루아의 졸업 이후.
루메른 마법학과 학생 최강의 칭호를 물려받은 것은 다름 아닌 엘레나였다.
단순히 마법학과 최강이 아니라 학생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하르크와 대등한 수준의 강자.
배경, 실력.
무엇 하나 꿀리는 것 없는 엘레나의 등장에 칼과 관련된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와중에 칼이 직접 드웨노가 남긴 제조법으로 만든 포션이라는 선전을 내걸었다.
당연히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자~ 이 포션의 효과로 말할 것 같으면. 24시간 동안 집중력이 상승 됩니다.”
칼이 약장수 같은 목소리로 포션을 높이 치켜들었다.
“부작용은 24시간이 지난 후 48시간 동안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포션을 마실 때 동안 외웠던 것들을 거의 잊어먹는다는 것!”
“에이, 뭐야.”
“좋다 말았잖아.”
몇몇 학생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어허. 포션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상승된 집중력 덕분에 기억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하거든? 그 말인즉슨!”
칼이 눈을 부릅떴다.
“벼락치기가 가능하다는 거다! 효과는 내가 보장해! 암기력에서 효과가 발군이었다고!”
“……!”
학생들이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필기시험 마지막 과목의 경우에는 날로 먹을 수 있어!”
“오오오…….”
“확실히!”
학생들이 혹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고 클로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그건 일종의 도핑이잖아? 학칙 위반 아니야?”
“확실히 실기 시험에서 능력을 일시적으로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포션은 도핑이지. 그런 류의 포션은 부작용도 심하고.”
칼이 별것 아니라는 듯 웃었다.
“하지만 이 포션은 아니란 말씀! 그냥 필기시험 공부를 도와주는 자양강장제 같은 거야. 자양강장제.”
“아니, 그래도 그건 조금 아닌 것 같은데.”
클로에가 당황했다.
어느새 다가온 아바드와 첼시 역시 클로에의 말에 동의했다.
“클로에의 말처럼 괜히 문제 일으키지 않는 걸 추천해.”
“오라버니 말이 맞아.”
“우우!”
“필기시험 만점자들은 물러가라!”
“너희들이 우리의 고통을 알아?”
학생들 사이에서 야유가 나오자 첼시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런 거에 관심 가질 시간에 교과서라도 한 번 더 봐. 레오 오빠도 그렇게 생각…… 응? 레오 오빠?”
첼시가 레오가 없어진 걸 깨닫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는 사이 칼은 약장수처럼 계속해서 포션을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쾅-!
“학생회다!”
“이곳에서 불법 약물 제조 및 판매를 하는 녀석이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우락부락해 보이는 학생회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이닥쳤다.
느닷없는 학생회의 등장에 칼이 입을 뻐끔거렸다.
험상궂은 학생회 선배 중 한 사람이 모여 있는 2학년들을 보며 눈을 치켜떴다.
“이놈들이……!”
“누가 주동자지?”
“저, 저희는 잘못 없어요!”
“맞아요!”
“쟤예요! 쟤가 범인이에요!”
2학년들이 칼을 가리켰다.
“어음…… 그러니까…… 이건…….”
칼이 식은땀을 흘리며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잡아라!”
“네놈을 불법 약물 제조 및 판매! 유통 위반으로 체포한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팔아도 되는 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학생회에게 붙잡힌 칼이 수갑을 차며 오열하듯 용서를 빌었다.
그 모습을 보며 클로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학생회가 어떻게 알고 바로 출동한 거야?”
“내가 신고했어.”
어느새 강의실로 돌아온 레오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네가?”
클로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응. 시험 칠 때 마시면 문제가 될 것 같더라고.”
레오 역시 드웨노가 만든 그 포션을 본적이 있었다.
칼이 말한 부작용 이외에 큰 부작용은 없다.
하지만 시험에서는 확실히 반칙이라고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물건 같았기에 학생회를 부른 것이었다.
“그런데 학생회가 온 건 이상한데? 칼은 쓸데없이 잔머리를 잘 굴려서 이미 교칙 위반에 걸리지 않는다는 건 사전에 다 조사하고 팔려고 했을 텐데?”
첼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방금 전까지는 교칙 위반은 아니었지. 금지 약물도 아니었고.”
“그런데 학생회가 저렇게 잡아갈 수 있나?”
아무리 학생회의 권력이 막강해도 교칙에 없는 내용으로 학생을 잡아가면 월권행위다.
“괜찮아. 내가 관련 교칙을 지금 만들었거든.”
“…….”
클로에가 벙찐 얼굴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첼시는 배를 붙잡고 마구 웃었다.
새로운 교칙을 만들고 신고하는 기상천외한 신고법에 클로에가 속으로 생각했다.
‘맞다, 예 학생회장이지.’
“권력이 좋긴 좋아.”
***
한바탕 소란이 있은 후.
다행히 칼은 레오의 도움으로 경고만 받고 풀려날 수 있었다.
“흑흑! 학생회 끌려가서 험한 꼴 당하는 줄 알았어! 레오! 고맙다!”
칼이 레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자기가 끌려간 원인을 만든 게 레오란 걸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
클로에가 속으로 고개를 저을 때였다.
끼익-!
강의실 문이 열리며 렌 교수와 안나 부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다! 제군들!”
“안녕하세요! 렌 교수님!”
학생들이 밝은 목소리로 입을 모아 인사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렌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수업에 앞서! 이번 중간고사 마법학과 필기시험 및 과제를 발표하겠다!”
렌의 말에 마법학과생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런 그들을 보며 렌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번 중간고사 마법학과 필기시험 범위는 [마법 인조 공학]의 술식 풀이다!”
마법 인조 공학.
마법 공학을 이용해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분야다.
“그리고 과제는 바로 마법 인조 공학을 이용한 사역마 제작이다!”
렌의 발표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교수님! 마법 인조 공학을 이용한 사역마 제작이라고 하면 골렘이나 키메라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다!”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을 위해 [마법 인조 공학]에서 저명한 마법사님 한 분을 내가 초청했지!”
자신만만하게 웃은 렌이 안나를 바라보았다.
“안나 부교수! 그분을!”
“…….”
안나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그런 안나를 보며 학생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천하의 안나가 머뭇거리다니!
엄청나게 위험한 사람을 데려온 게 분명했다.
모두가 긴장된 표정을 짓는 사이 안나는 강의실 문으로 다가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들어오세요.”
그 말에 문이 열리고 창백한 피부를 가진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크서클로 퀭한 눈동자.
어딘지 모르게 피곤함에 찌들어있는 여인은 산발이 된 회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색이 바랜 하얀색 연구 가운을 입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대외활동에 취미가 없는 전형적인 은둔형 마법사의 모습이었다.
결정적으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이 바로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뾰족한 귀.
“엘프?”
“엘프라니. 신기하네.”
모두가 웅성거릴 때였다.
“여기 이분의 이름은 티나 팅겔이다.”
그 말에 학생들이 눈을 부릅떴다.
“마법 인조 공학 분야의 최고봉이자 그 유명한! 세이룬의 설립자! 세이룬 팅겔의 후손이지!”
렌의 소개에 티나 팅겔이 앞으로 나섰다.
“만나서 반가워, 루메른의 영웅 후보생들.”
티나는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나 해서 묻고 싶은데.”
티나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해부에 관심 있는 사람?”
티나의 물음에 학생들의 기이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없어? 아쉽네. 자원자를 찾으려고 했는데.”
입맛을 다시는 티나를 보며 모두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뭐야! 이 엘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