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티나를 바라보았다.
티나는 늘어지라 하품하며 오른발 끝으로 왼쪽 종아리를 벅벅 긁었다.
가운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놓고 의욕 없는 표정을 하고있는 티나는 확실히 평범한 엘프와 달랐다.
“뭔가 이상한 분이신데?”
칼이 레오를 향해 소곤거렸다.
“확실히 괴짜네.”
턱을 괸 레오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것 치고는 별로 놀란 눈치는 아닌데?”
칼의 물음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워낙 이상한 엘프들을 많이 봐서 말이야.”
“하긴. 루니아나 에이란도 일반적인 엘프의 이미지랑은 거리가 멀지.”
“네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엘프 이미지는 뭔데?”
“음…… 성운의 시조 루나? 자애롭고 조화를 추구할 것 같은 느낌? 뭐랄까. 청초하기도 하고.”
“…….”
레오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애와 조화, 그리고 청초함.
‘루나랑 가장 안 어울리는 수식어들이군. 걔의 본성은 언제 세상 사람들에게 까발려지려나.’
“그나저나 팅겔 가문의 사람이 왜 루메른에 초빙 교수로 오신 걸까?”
클로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팅겔 가문.
혜성의 마법사 세이룬의 가문.
단순히 엘프들 사이에서만 최고로 뽑히는 게 아닌, 다른 종족들 사이에서도 온 종족을 통틀어 마법 계열 영웅 명가 중에서는 최강의 가문으로 꼽힌다.
그런 팅겔의 사람이 세이룬이 아닌 루메른에 초빙 교수로 온 건 놀라운 일이었다.
하물며 최근 세이룬과 루메른.
정확하게는 인간 마법학계와 엘프 마법 학계는 렌이 발표한 ‘별의 마법 입문학’ 논문 덕분에 굉장히 사이가 좋지 않다.
그 논문을 쓴 장본인인 렌이 티나 교수를 초빙해 낸 건 확실히 의외였다.
클로에의 말에 칼 역시 팔짱을 끼며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내가 루메른에 초빙 교수로 온 게 궁금한 학생들이 몇 명 있나 보군.”
티나의 말에 몇 명 학생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티나가 덤덤히 말했다.
“그리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 난 팅겔 가문의 직계거든.”
티나의 말에 학생들의 시선이 더더욱 기묘하게 변했다.
직계라면 더더욱 루메른에 초빙 교수로 온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거군.”
하지만 아바드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요, 오라버니?”
옆에서 첼시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팅겔 가문의 직계라면 유명해야 하잖아. 그런데 넌 티나 팅겔이라는 이름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니?”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묻는 아바드를 보며 고민하던 첼시가 고개를 저었다.
특유의 연하늘색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직계로서 이름을 알리지 못한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물며 렌 교수님이 마법 인조 공학에서 최고 능력자라고 말씀하셨을 정도면 능력도 대단하신 분일 텐데 말이야.”
“아.”
첼시가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루메른 학생들 역시 하나같이 티나의 말에 숨은 속뜻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메른 애들은 똑똑하네. 대충 수수께끼처럼 이야기를 했는데 결과에 도달하는 걸 보면.”
“훗, 마법사로서 폭넓은 사고방식을 키울 수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추론은 마법 이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니까요.”
“렌 교수님. 지금은 자랑을 하실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안나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티나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요즘 아이들은 발동 수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추론에 약한 경향이 있으니까요.”
티나는 무료한 금색 눈동자로 루메른 학생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희들의 예상대로야. 난 팅겔 가문의 일원이지만 대외적인 활동이 용납되지 않아. 마법 학계에서 활동도 할 수 없지.”
학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 학생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티나가 말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마력을 쓸 수 없는 몸이야. 즉, 사용자로서의 마법사는 아니지.”
“확실히 티나님은 마법을 쓰지 못하지. 하지만 난 이분이 마법사라는 점에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
렌이 씨익- 미소 지었다.
“티나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온갖 마법 인조 공학에서 엄청난 마법 논문을 쓰셨지!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체 마법 발동 각인 술식]을 만든 것! 이 마법 술식은 [별의 마법 입문학]에도 큰 도움을 준 술식이지!”
렌의 설명에 클로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인체 마법 발동 각인 술식]은 데포이라는 마법사님이 쓴 논문이잖아요.”
“데포이는 내 가명이야.”
클로에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얘 갑자기 왜 이래?”
“세상에! 데포이님이래! 데포이님! 나 어떻게 해!”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볼에 홍조를 띠며 클로에를 보며 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클로에가 좋아하는 마법 논문을 많이 쓴 저자야.”
“아.”
레오의 대답에 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적인 저서 중 하나가 [얼음 마법사는 왜 얼음 마법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이유에 관한 고찰]이었지?”
“맞아.”
“뭐야, 그 듣기만 해도 이상하고 골치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책 제목은.”
칼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칼에게는 클로에가 읽는 마도서들은 대부분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칼 뿐만 아니라 2학년 마법학과 학생 절반 이상에게 어려운 책이다.
데포이라는 말을 듣자 흥분한 건 클로에 뿐만이 아니었다.
몇몇 학생들이 들뜬 반응을 보였다.
“렌 교수님.”
“뭔가, 칼 학생.”
“가명을 쓰고 활동하시는 분과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손을 들고 묻는 칼을 보며 렌이 훗- 하고 웃었다.
“오래전부터 티나님 쓰신 마법 논문에 감명을 받고 항상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하지만 학계에서는 도통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정성껏 편지를 썼다.”
마법에 대한 렌의 열정은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렌의 말을 듣고 클로에가 감탄했다.
“그 정성에 티나님께서도 감명 받으신 거군요!”
“아니. 계속 편지를 무시하니까 렌 교수님이 편지에 추적 마법까지 쓰려고 하시더군.”
티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렌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으면 정말로 위치를 찾아서 쳐들어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순히 만난 거야.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해보니 재미있으신 분 같아서 초빙에도 응했지.”
모두가 기이한 눈으로 렌을 바라보았다.
안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모든 학생이 기묘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티나가 말했다.
“렌 교수님의 초청으로 당분간 루메른에서 지내게 될 거야. 그리고 너희에게 ‘마법 인조 공학’ 에 대해 가르칠 예정이야. 너희 시험 과제는 사역마 제작이지.”
티나는 강의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사역마에 대해서 발표 해볼 사람?”
그 말에 여러 학생이 손을 들었다.
티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슥- 학생들을 둘러보다가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는 에미오를 가리켰다.
“거기. 너.”
“에미오 루찬이라고 합니다.”
2학년 마법학과에서 5등인 에미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사역마에 대해서 설명해보도록.”
“사역마는 전통적인 마법사의 보조입니다. 마법사의 마력을 받아 전투에 도움을 주는 존재죠.”
“맞아.”
“하지만 지금은 거의 사장 단계에 이른 분야이기도 합니다.”
에미오가 말을 끝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말에 대부분 마법학과 생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역마의 근원은 소환술사들의 소환술에 있죠. 냉정하게 따지자면 사역마 역시 넓은 의미에서 소환수의 개념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정령과 환수와 계약을 맺지 못하죠. 그렇기에 사역마는 기본적으로 정령과 환수에 비해 등급이 한참 아래에 있는 소환수입니다.”
에미오의 말에 많은 학생들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다음 말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중간 고사 시험 과제가 사역마라는 사실에 의문을 감출 수 없습니다. 왜 사역마인지 렌 교수님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불만 어린 에미오의 말에 렌이 빙긋 웃었다.
“에미오 학생의 말도 충분히 이해가되네. 확실히 사역마는 사장되어가는 상황이니까.”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는 마법을 발동시키기 위한 잠깐의 시간이라도 벌어주기 위해 사역마를 사용했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마법 술식의 진보에 따라 마법 발동 시간 역시 점점 줄어들었지. 최근 수십 년 동안은 사역마를 사용하는데 드는 마력으로 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전투에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다. 사역마의 활용 범위는 가디언, 혹은 연락용으로 한정되었다. 그게 마법계의 트렌드 였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고 말이야.”
렌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하지만 티나님의 연구실을 보고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역마는 다시 마법 학계의 주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사역마가 마법의 주류에서 밀려난 건 이미 수백 년 전의 일.
그런 사역마가 다시 주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학생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에 관해서는 티나 초빙 교수님께서 설명을 해 줄 거야!”
렌의 말에 티나는 엉덩이를 긁적이며 말했다.
“에미오……라고 했지? 너 군인 가문이지?”
“루찬 가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모릅니까?”
“응. 몰라. 그렇게 따지면 난 이름뿐이긴 해도 팅겔이야. 다른 가문을, 그것도 다른 종족 가문의 이름을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지.”
딱 잘라 말하는 티나를 보며 에미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군인 마법사들은 쓸데없이 실용적인 걸 좋아하지. 최근 마법 트렌드가 최고라는 경향도 강하고. 연구보다는 전투를 우선시 두는 경향도 강해. 뭐, 군인이니까 이해는 해.”
티나는 덤덤히 말했다.
“좋아. 그러면 사역마가 얼마나 실전에서 쓸모 있는지 보면 깨닫겠지.”
티나가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나갈까?”
***
마법 강의실에 있는 마법 실험장.
그 한 가운데 티나가 서 있었다.
그런 티나를 보며 에미오가 물었다.
“제가 싸울까요?”
도발적인 그 말에 티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기왕이면 다양한 공격이 가능한 학생이면 좋겠는데.”
티나가 빙긋, 처음으로 웃었다.
“가령 올 클래스라던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레오는 마법 실험장 한가운데 섰다.
“저라도 괜찮다면요.”
“응.”
티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흐리멍덩하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레오는 그 눈빛을 보며 루나를 떠올렸다.
‘처음 날 봤을 때의 눈빛이군.’
올 클래스라는 건 처음 봤다면서 호기심 가득하던 눈빛.
그 눈빛을 떠올리며 레오가 티나가 사역마를 소환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티나가 손을 뻗었다.
스믈스믈- 철퍽-!
티나의 상체에서 푸른색 액체가 흘러나오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뭉치기 시작했다.
그걸 본 학생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슬라임이잖아?”
“슬라임으로 레오랑 싸우려는 건가?”
“뭔가 특이한 사역마 일 줄 알았는데.”
슬라임.
연금술로 만든 인공 생명체로 마법사들의 가장 흔한 사역마 중 하나였다.
여기저기 실망감이 깃든 목소리.
하지만 슬라임을 본 레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이 마개조 된 슬라임은.’
레오는 빠르게 슬라임의 핵에 깃든 마법술식의 개수를 헤아렸다.
‘저만한 마법 술식을 한번에 발동시킬 수 있는 마력 원천이 대체 뭐지?’
보통 슬라임에 사용되는 마법 술식은 많아 봐야 다섯 개.
하지만 이 슬라임에 사용된 마법 술식은 백여 가지 정도 되었다.
레오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사역마를 볼 때였다.
스믈스믈-
슬라임은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 가지 형태를 취했다.
그걸 본 레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엘프?’
형상을 취한 건 레오 또래의 엘프 마법사였다.
그때 클로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혜성의 마법사?”
그 말에 레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슬라임을 바라보았다.
‘똑같이 생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