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키르안의 날개가 봉인된 수정구를 바라보며 레오는 생각에 잠겼다.
‘과연, 그 말도 안 되는 슬라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원천이 저거였나?’
키르안.
페어리 프린스.
로열 페어리로서 차기 요정왕인 요정이었다.
그러나 워낙 심한 장난기 탓에, 현재의 요정왕인 실로드에 의해 벌로써 날개를 모두 박탈당한 채 페어리 랜드에서 쫓겨났다.
한 쌍의 날개를 찾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머지 두 쌍의 날개를 찾지 못한 상황.
그런데 남은 두 쌍 중 하나가 여기 있었다.
레오는 키르안을 떠올렸다.
루메리아 호수에 자리 잡은 환수의 섬.
현재 그곳에 자리 잡은 키르안은 신입생 소환학과생들을 상대로 온갖 장난을 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정보의 출처는 키르안의 앙숙인 피오라였다.
‘뭐, 과한 장난은 안 치고 있는 것 같다만.’
레오가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클로에는 티나와 마법 이론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흐응. 이게 네 고유 마법 술식이구나? 훌륭한걸?”
티나는 클로에의 고유 마법인 [얼음 세계] 의 마법 술식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네. 그래서 이번 중간고사 과제는 [얼음 세계]를 응용해 보려고요.”
“필드 마법을 사역마 마법에 응용할 거라고? 흥미로운 발상인데?”
티나가 눈을 빛냈다.
“레오 학생은 시험 과제로 뭘 할 생각이지?”
“정령을 응용해 볼 생각입니다.”
“정령? 확실히 다재다능한 건 좋네.”
티나가 빙긋 웃었다.
“그나저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니?”
“저건 어디서 구한 겁니까.”
레오가 수정구를 가리켰다.
그런 레오를 보며 티나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안목이 좋은 걸?”
티나가 손을 뻗어 수정구를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렸다.
그걸 본 클로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안에 날개는 뭔가요?”
“요정의 날개야.”
클로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클로에를 보며 티나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역시 올 클래스라서 요정의 마력에 예민하게 반응한 거니?”
“그렇죠.”
“그래서, 갖고 싶어?”
“주실 건가요?”
레오가 웃는 얼굴로 묻자 티나는 빙긋 웃었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어떤 거죠.”
“네 몸을 조금 구석구석 조사해보고 싶은데?”
“모, 몸을 구석구석?”
클로에가 일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클로에를 보며 티나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올 클래스의 능력에 관심이 있어서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니?”
“아, 아뇨. 그러니깐 전…….”
“혹시 내가 얘를 홀딱 벗기는 상상이라도 한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클로에가 새빨개진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어때? 나한테 몸을 맡겨볼 생각 없어?”
티나의 물음에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양할게요.”
“그거 아쉽네.”
무료한 미소를 지으며 티나는 수정구를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고. 혹시 해부에 관심 있으면 더더욱 환영이야.”
교수실 바깥까지 두 사람을 마중 나온 티나는 스르륵- 소리 없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말없이 복도를 걷던 클로에가 말했다.
“레오, 말해두겠는데. 그런 상상 안 했어.”
“무슨 상상?”
“그러니까. 그게…… 아, 아무것도 아니야! 빨리 저녁 먹으러 가자!”
클로에가 헛기침을 하고 걸어갔다.
그 뒤를 따르며 피식 웃은 레오가 뒤따랐다.
***
그날 저녁.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레오는 키르안을 소환했다.
우웅-
소환진에서 키르안이 쏙-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야, 레오?]
키르안을 필두로 소환진 너머에서 엘시와 아티까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네 날개 중 한 쌍을 찾았어.”
[뭐? 정말?!]
키르안이 눈을 크게 뜨더니 이얏호! 하고 환성을 지르며 방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키르안이 날갯짓할 때마다 은빛의 가루가 솔솔솔 흩날렸다.
키르안의 마법으로 사람 형태가 된 피오라는 오독오독- 쿠키를 먹으며 눈을 흘겼다.
“먼지 날리지 마요. 이 바보 요정.”
[비닉스가 이상한 소리를 하네.]
“비닉스? 바본가요? 난 피닉스에요.”
[응. 비만 피닉스. 주려서 비닉스. 또 과자를 잔뜩 먹어서 돼지처럼 뚱뚱해지려고?]
“누구더러 돼지라는 거예요!”
발끈한 피오라가 품에서 파리채를 꺼내 키르안에게 마구 휘둘렀다.
찰싹- 찰싹-
-그런 허접한 공격으로 날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키르안이 자유자재로 곡예비행을 하며 피오라를 농락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티가 레오 앞으로 다가갔다.
“주인님.”
“왜?”
“저도 돼지라고 매도해주고 파리채로 찰싹찰싹 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몸을 배배 꼬며 말하는 아티를 보며 레오가 머리를 붙잡았다.
“아티.”
“네, 주인님.”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예.”
“넌 페가수스잖아.”
“맞아요.”
“내가 전생에 계약했던 환수가 페가수스거든.”
레오가 어딘지 회의적인 눈빛을 아티에게 보냈다.
“그 녀석은 언제나 진지했거든. 항상 진지하라는 말은 안 하겠지만 최소한 날 볼 때마다 그런 변태적인 요구를 하는 건 조금 그만두지 않을래?”
레오의 말에 아티의 얼굴이 굳었다.
“……그 말은…… 이전의 맹약자와 비교하면 제가 지나치게 천박한 요구를 주인님께 하고 또한 그 페가수스보다 볼썽사납다는 뜻인가요?”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는데.”
“그렇군요. 저는 주인님을 실망시키고 있었군요.”
아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티의 몸이 조금씩 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엘시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티도 열심히 하고 싸울 때는 큰 도움이 되는데 그 말은 조금 너무했어요.]
엘시의 말에 레오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 듣고도 기뻐하는 쟤가 더 너무하지 않냐?”
[네?]
레오의 말에 엘시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쪼르르 날아가 아티의 얼굴을 보았다.
푹 숙인 아티의 얼굴은 상기 되어 있었고 눈은 희열에 차 있었다.
“천박하고 볼썽사나운 페가수스…… 아아! 세상에 어느 누가 이 나에게 저런 심한 말을……!”
엘시가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
레오는 그런 엘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우냐?”
[이런 분들이 제 동료라는 사실이 너무 창피해요.]
“아흥!”
엘시의 말을 듣고 아티는 심장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엘시 양도 날 매도하다니…… 너무 좋아.”
‘쟨 시간이 자면 지날수록 점점 더 중증이 되어가네.’
변태 페가수스를 보며 레오가 한숨을 쉴 때였다.
[우하하하! 비닉스! 비닉스!]
“거기서요!”
현란한 곡예비행으로 허공을 마구 날던 키르안이 엘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끼눈을 뜬 피오라가 파리채를 치켜들고 키르안에게 휘둘렀다.
쉬익-! 팍-!
[어?]
“아?”
피오라의 파리채가 엘시를 후려쳤다.
바닥에 추락한 엘시가 침묵했다.
피오라는 샥-! 하고 파리채를 등 뒤로 숨겼고 키르안은 아티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동시에 소리쳤다.
“저 요정 잘못이에요!”
[저 피닉스 잘못이야!]
엘시가 몸을 일으켰다.
검은색 머리카락 사이로 검은 안광이 번뜩였다.
‘화났네.’
레오가 속으로 혀를 찼다.
피오라와 키르안, 아티는 본 적이 없지만, 레오는 확실하게 알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의 엘시가 아닌 머나먼 과거.
모든 것을 잃고 증오를 불태우던 시절의 엘시.
엘시 본인조차도 모르는 자기 이면의 모습이 눈을 뜬 것이다.
스르륵-!
레오의 영력을 이용해 성인의 크기로 변한 엘시가 손을 뻗었다.
피오라의 손에 있던 파리채를 어느새 그림자가 집어삼켰다.
파리채를 빼앗은 엘시가 그것으로 키르안을 마구 후려쳤다.
[커헉? 자, 잠깐! 꺼억?]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처참하게 키르안을 묵사발 낸 엘시가 피오라에게 말했다.
“종아리 걷어요.”
“난 잘못 없어요! 그리고 전 엄마한테도 맞아 본적 없…….”
“종아리 걷으라고.”
피오라는 울상을 지으며 종아리를 걷었다.
엘시는 파리채를 거꾸로 쥐고 종아리를 마구 때렸다.
순식간에 환수술사들의 로망인 피닉스와 요정을 제압한 엘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철없이 굴면 가만 안 둘 테니 그렇게 아세요.”
[네, 넵…….]
“네에…….”
파리채에 짓눌린 모기 마냥 꿈틀거리는 키르안과 종아리를 움켜쥐고 훌쩍이던 피오라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엘시의 서슬퍼런 기세에 어린 환수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가 자신의 뒤에 숨을 아티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도 혼내 달라고 하지 그러냐? 저런 거 좋아하잖아”
“저런 엘시 양에게는 혼나고 싶지 않아요.”
쓸데없이 눈치 빠른 변태 페가수스를 보며 레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
[내 날개를 웬 엘프가 가지고 있다 그거지?!]
키르안이 흥분된 표정을 지었다.
힘을 잃고 있었던 키르안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날개를 되찾고 싶어 했다.
날개를 모두 되찾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야 페어리 프린스의 지위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잃어버린 날개 중 한 쌍을 발견했다는 레오의 말은 키르안을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그럼 뭐해! 지금 당장 가야지!]
“찾는 게 쉽지는 않을걸? 어쨌든 지금 소유주는 그 초빙 교수니까.”
[어허! 날개의 주인은 나인데 왜 소유주가 그 엘프라는 거야!]
양손에 허리를 올린 키르안이 쌍심지를 켰다.
“어쨌거나 보관하고 있는 건 티나 교수니까 그렇지.”
[흥! 내가 힘을 되찾으면 레오 너한테도 도움이 되는데 왜 그렇게 소심하게 굴고 그래?]
코웃음을 친 키르안이 날개를 활짝 편 후 창문으로 날아가며 말했다.
[두고 봐! 난 내 날개를 찾아올 테니까!]
자신 있게 소리친 키르안을 보며 레오가 턱을 괴었다.
“쉽진 않을 텐데.”
[그 티나 교수라는 엘프는 어떤 사람인가요?]
원래처럼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모습으로 돌아온 엘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괴짜야.”
[음. 상상이 안 가네요. 혹시 키르안이 잡힌다고 문제 생기거나 하진 않겠죠?]
자신의 키만 한 길이의 스푼을 든 엘시가 차에 설탕을 넣으며 물었다.
“글쎄. 해부하려고 들지 않을까?”
레오의 말에 엘시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
다음 날.
2학년 기숙사 식당.
대부분 2학년들은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곤 했다.
그렇다 보니 하루 시작.
모든 기숙사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그날은 레오 혼자 아침을 먹고 있었다.
레오는 평소보다 아침 식사를 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적다는 걸 느꼈다.
“레오 오빠! 좋은 아침!”
식판을 든 첼시가 반갑게 인사하고는 레오 앞에 앉았다.
“잘 잤어?”
“응!”
1기숙사. 글로리.
2기숙사. 하모니.
3기숙사. 노블.
이 세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다.
그렇다 보니 수업이 끝나거나 저녁이라면 모를까?
모든 기숙사생이 한곳에 모이는 아침 식사에서는 일반 학생들이라면 모를까.
기숙사장들끼리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셀리아 역시 사촌인 레오나 절친한 클로에와 아침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첼시는 유독 레오나 아바드와 자주 아침 식사를 하곤 했다.
“으음~”
오늘 아침에 나온 딸기잼이 맛있는지 첼시가 얼굴을 감싸 쥐고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레오 오빠,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어젯밤 2학년 기숙사 주변에서 요정이 나타났데.”
그 말에 레오는 고개를 들어 식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부족하다 싶었는데 ‘소환학과’ 학생들의 숫자가 전멸에 가까운 수준으로 없었다.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라더라. 그래서 지금 난리 났어.”
첼시의 말에 레오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자식이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