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쿠구구구구궁-!
땅의 대정령, 티타움이 손을 치켜 들었다.
그걸 본 레오가 빠르게 몸을 날렸다.
화악-! 콰가가가가가강! 쿠구구구구궁-!
티타움의 공격에 지축이 흔들리고 섬 전체가 흔들렸다.
멀찍이서 경악스러운 눈으로 레오와 워레든의 대결을 바라보던 다른 학생들이 그 여파에 휘청거렸다.
티타움의 공격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레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언제 대정령과 계약을 한 거지?’
티타움을 등에 두고 자신을 바라보는 워레든을 바라보며 레오는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루메른에서 워레든의 재능과 저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레오였다.
실력으로만 놓고 본다고 해도 자신을 제외하면 2학년 중 최강.
전투력만 놓고 본다면 루니아와 아르와 맞먹거나 그 이상이다.
타고난 강함과 재능이 남다른…… 말 그대로 괴물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정령사였다.
하지만 워레든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학과 일정에 대한 참여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원채 과묵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레오는 워레든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항상 무엇을 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목표로 하는 자리에 올라선 사람.
워레든은 항상 레오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를 꺾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혼자서 묵묵히.
최강을 목표로 하는 길을 걸었다.
루메른 2학년 중 입학 이후 가장 많은 수련을 해온 이가 바로 워레든이었다.
‘나를 따라잡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한 결과가…… 대정령이라는 건가.’
레오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워레든을 바라보며 검을 뻗었다.
고오오오-!
불꽃이 레오의 몸을 감쌌다.
화르륵-
레오의 등 뒤로 불꽃의 날개 형상이 타올랐다.
화악-
레오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쿠구구궁-!
티타움이 고개를 숙여 손을 뻗었고 워레든이 그 손 위에 올라탔다.
쿠구궁-!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학생들이 레오와 워레든을 올려다보았다.
꿀꺽-
피닉스와 땅의 대정령이 대치한 상황에 학생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티타움의 어깨 위에 올라선 워레든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레오를 무표정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그런 워레든을 바라보며 레오가 말했다.
“설마 대정령과 계약했을 줄은 몰랐는걸?”
레오가 빙긋 웃었다.
그런 레오를 보며 워레든이 입을 열었다.
“너를 볼 때마다 깨닫는 게 있다, 레오 플로브.”
“뭔데?”
“다른 사람을 올려다보는 기분.”
“올려다보기만 할 거야?”
그 물음에 워레든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릴 적 어리석은 자에 관한 책을 읽은적이 있다.”
워레든의 몸에서 영력이 휘몰아쳤다.
“태양에 다가가기 위해 높이 올라가다 끝내 추락해 죽은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였지.”
쿠구구궁-!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지축이 흔들렸다.
“다른 아이들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비웃었지만 나는 비웃지 않았다.”
워레든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 따라 티타움 역시 팔을 들어 올렸다.
“우러러보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삶 따위, 관심 없다.”
워레든이 레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결국 닿지 못하고 끝내 추락한다 해도…….”
쿠구구궁-!
“내 모든 걸 걸고 목표를 향해 손을 뻗는 걸…… 나는 멈추지 않는다!”
워레든의 일갈과 동시에 티타움의 팔이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졌다.
그에 따라 레오가 몸의 하늘 위로 치솟았다.
화르륵-!
레오가 검을 들자 화염이 넘실거렸다.
콰가가가가가각-!
불과 땅.
속성의 상성상 레오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하지만 레오는 개의치 않았다.
마치 타오르는 태양처럼 레오의 몸이 눈부시게 타올랐다.
쿠과가가가각-!
레오 검에서 뻗어나온 피닉스의 불꽃이 티타움의 팔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쿠구구궁-!
잿더미가 된 팔이 형태를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후왁-!
하지만 이내 순식간에 팔이 복구 되었다.
콰가가각-
티타움이 손을 뻗자 마치 거미줄처럼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진 줄이 뻗어 나왔다.
레오의 붉은 눈이 빠르게 궤적을 그렸다.
화악-!
수많은 바위의 줄을 빠르게 회피하며 워레든을 향해 돌격했다.
그런 레오를 보며 워레든이 팔을 휘둘렀다.
텁-!
티타움의 팔이 빠르게 레오를 움켜잡았다.
모든 학생이 눈을 크게 뜬 순간.
티타움이 주먹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쿠구구궁! 쿠가가가가가가강!
“으아아아악!”
“진짜 무슨 적당히가 없어요!”
싸움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기겁하며 도망쳤다.
화르륵-!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충격을 받았음에도 티타움의 주먹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주먹을 쥔 채로 바닥에 내리 꽂았던 워레든은 강대한 힘에 의해 손아귀가 펴지는 걸 느끼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현재 워레든과 티타움은 정령술 스킬 중 하나인 동화였다.
정령과 자신을 동화시켜 정령의 힘을 원하는 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상위 정령술.
단점이 있다면 정령이 받는 데미지를 고스란히 정령술사가 받는다는 점이었다.
“티타움, 어스 웨이브다.”
워레든의 말과 동시에 땅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콰가가강-!
워레든은 손아귀에 쥐어진 레오를 땅 깊숙이 처박아 버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피오라가 내뿜는 강렬한 불꽃과 티타움이 조종하는 대지에 의해 이미 안개는 모두 걷힌 상태였다.
-과연…… 정령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괴물답군.
티타움이 감탄했다.
“…….”
-하지만 무모했어. 상성이 좋지 않은 피닉스를 데리고 나와 싸우려 하다니 말이야.
“티타움.”
-음?
“온다.”
쿠콰가가가가가강-!
땅속 깊숙이 처박혔던 레오가 하늘로 치솟았다.
-아니!
티타움이 경악했고 워레든은 전투태세를 취했다.
머리에 상처를 입은 레오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호전적인 미소를 지은 레오가 말했다.
“훌륭해.”
고오오오오오오-!
레오의 검에 피닉스의 불꽃이 휘몰아쳤다.
워레든이 다급히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레오가 티타움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 것이 빨랐다.
“큭.”
워레든은 일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쿠구구구궁-!
일순간 티타움이 역소환 되었다.
거대한 흙무더기가 무너졌다.
거기에 섞여 워레든 역시 바닥으로 추락해 흙무더기 사이에 파묻혔다.
‘워레든 녀석…… 괴물은 괴물이군.’
바닥에 착지한 레오는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깊게 심호흡했다.
‘설마 이런 비장의 카드를 숨겨 뒀을 줄이야.’
물론 온전하게 티타움을 다루지는 못했다.
대정령의 힘을 온전하게 끌어내기에는 아직 역량이 부족했다.
하지만 17살이라는 나이에 대정령을 소환한 것 자체가 워레든이 얼마나 대단한 잠재 능력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아직 채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 이 정도라니.’
혀를 내두르며 흙무더기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아직 쓰러지지 않았어.’
엄청난 타격을 입긴 했지만 워레든은 아직 사망 판정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레오가 검을 다잡을 때였다.
“내가 먼저다!”
“웃기지마요! 내가 먼저예요!”
티격태격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오는 검을 지팡이처럼 바닥에 꽂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번개의 오러를 두른 듀란과 윈드 와이번을 탄 엘리자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학생들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듀란과 엘리자의 합류.
아무리 천하의 레오라도 워레든과의 전투에 의해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합류한다면 레오라도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탁-! 타닥-!
듀란과 엘리자가 레오 앞에 섰다.
찌릿-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을 보며 레오가 웃었다.
“둘이서 협공하게?”
“웃기지 마요. 레오 플로브.”
엘리자가 품에서 채찍을 꺼냈다.
“듀란 모이라와 손을 잡고 당신을 쓰러트리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 하지 않아요.”
“호오, 웬일로 옳은 말을 하는군. 엘리자 헤르긴. 네놈과 손을 잡을 바에 네놈을 쓰러트리고 레오 플로브와 싸우겠다.”
“어머, 쓰러지는 건 당신이에요.”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리는 듀란과 엘리자를 보며 학생들이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야! 너희 같은 편이잖아!’
‘왜 레오를 앞에 두고 너희들끼리 죽일 듯 싸우냐고!’
노블과 하모니 학생들이 머리를 부여잡을 때였다.
쿠구구궁-!
흙무더기를 헤치고 워레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나와 레오 플로브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워레든이 무표정한 얼굴로 듀란과 엘리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둘 다 꺼져라.”
“승패는 난 것 같으니 당신이야말로 물러서시죠, 워레든 타이든.”
“흥. 네놈까지 같이 쓰러트려 주마.”
엘리자와 듀란이 차갑게 냉소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포기라는 걸 모르는 애들이라니까.’
힘의 차이는 세 사람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래도 아등바등 발버둥 친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무서울 것 없이 도전해 온다.
기죽을 법도 한데.
아니, 이미 기가 죽었음에도 무모하게 도전을 이어 나간다.
‘십 대의 패기는 무섭네.’
포기하지 않는 법을 레오는 동료들에게서 배웠다.
끝없는 어둠에서 빛을 찾는 법을 리시나스가 가르쳐줬다.
그 빛을 향해 나아가는 법을 루나가 알려줬으며 그러면서 용기를 잃지 않는 법을 아르온에게 배웠다.
마지막으로 동료에게 믿고 의지할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드웨노가 깨닫게 해주었다.
워레든, 듀란, 엘리자 뿐만 아니다.
‘셀리아, 클로에, 아바드…… 그리고 첸 시아까지.’
각자의 이상과 목적지는 달라도 레오를 목표로 하는 건 변함 없다.
그 뒤를 따라 아등바등 좇는다.
대영웅인 자신과.
이제 자라나는 영웅의 새싹.
출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같은 출발선에서 정신차리고 보면 저만치 나아가는 레오의 등만 보였을 것이다.
‘다들 대단한 영웅으로 성장하겠지.’
레오가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함께 싸울 동료로 성장할 거야.’
루메른의 동기들은 언젠가 등을 맡길 동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같은 보폭으로 걷기 위해 노력했지.’
눈높이를 맞추었다.
너무도 다른 눈높이에 절망하고 망가지지 않게.
까마득한 선배 영웅으로서.
후배들을 배려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계속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진심을 다해 부딪혀 오는 동기들에게.
레오 플로브로서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건…… 과연 옳은 일인가?
“자네가 선택한 미래를 믿으라는 말일세.”
드웨노의 충고가 떠올랐다.
‘너희들이 정말로 영웅으로서 에레보스와의 전장에 설 가능성이 있다면.’
레오가 눈을 떴다.
‘그 가능성을…….’
압도적인 절망과 조우 했을 때 일어설 수 있을지 없을지.
‘지금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레오가 오러를 일으켰다.
그에 서로를 견제하던 듀란과 엘리자, 워레든이 멈칫했다.
지금까지 동기들에게 레오 플로브로서의 모습만 보여줬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랐다.
레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에 세 사람의 몸이 움찔했다.
“그만 다퉈.”
루메른 아카데미의 2학년, 학생회장 레오 플로브라면.
이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이 옳다.
아무리 레오 플로브라도 워레든, 듀란, 엘리자.
이 세 사람과 싸우는 건 너무 무모한 일이니까.
하지만…….
카일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셋 모두, 한꺼번에 덤벼.”
“우리를 무시하는 건가요? 레오 플로…….”
콰가가가각-!
“……!”
엘리자가 다급히 몸을 날렸다.
듀란이 본능적으로 검을 뻗어 오러의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완전히 틀지는 못했다.
듀란이 조금이라도 레오가 날린 오러를 쳐내는 게 늦었다면.
엘리자가 피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사망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소름 끼치게 날카로운 검기에 듀란이 검에 힘을 주었다.
‘……뭐냐, 이건.’
듀란이 레오를 바라보았다.
“무시를 하는 게 아니야.”
레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스스로 증명해봐. 너희가…….”
레오의 몸에서 살기와 투기가 쏟아졌다.
“나랑 같은 무대에 설 자격이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