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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25화 (32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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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의 거점.

방벽 위에 걸터앉은 레오의 곁으로 클로에가 다가왔다.

“첫 교전에서 우리는 큰 이득을 봤어.”

레오 옆에 앉은 클로에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모니의 킹이 첼시라는 거랑 노블의 킹이 칼이라는 걸 알아냈으니까.”

클로에가 다리를 천진하게 까딱거리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 더해 거점 방어를 하면서 하모니와 노블 애들을 상대로 많은 포인트를 벌었고.”

확실하게 글로리는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계속해서 수비 위주로 대항전을 이끌어 나가면서 하모니와 노블끼리의 교전이 일어날 때 끼어들면 우위를 지킬 수 있을 거야. 물론.”

클로에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쟤들이 이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테지만.”

빙긋 웃으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클로에를 보며 레오가 턱을 괴었다.

“너는 하모니와 노블에서 어떻게 나올 거라고 생각해?”

“아마 연합해 오겠지. 그 연합을 주도하는 건 칼일 거고.”

클로에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칼이라면 아마 너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최선의 조합을 짜 오겠지.”

“날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최선의 조합이라.”

레오가 턱을 괴었다.

“전위는 워레든과 첼시. 후방은 아바드. 그리고 전후방을 커버할 역할은 엘리자인가.”

“맞아.”

클로에가 방긋 웃었다.

“셀리아와 듀란은 상성 상 우위에 있는 나와 첸 시아를 노려올테고.”

화염의 오러를 다루는 셀리아와 얼음의 마법을 다루는 클로에.

상성으로 놓고 본다면 셀리아가 유리하다.

그리고 물의 오러와 번개의 오러.

둘의 상성 역시 듀란 쪽이 우위다.

레오를 쓰러트리기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

그건 반드시 클로에와 첸 시아의 합류를 저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심해야 해. 네가 사망 판정을 받으면 우린 그대로 패배하니까.”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해?”

“아니, 하지만…….”

클로에가 동기들을 떠올리며 웃었다.

“걔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분명 눈에 불을 켜고 물고 덤벼들걸?”

“확실하게 힘의 차이를 보여줬어. 네가 그 녀석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떨 것 같아?”

“나는 최선을 다해 부딪힐 거야.”

클로에가 살짝 수줍게 웃었다.

“절대 어느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라는 걸 가르쳐준 사람이 있거든.”

“그래? 누가 가르쳐 줬대?”

레오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클로에가 살짝 뚱한 표정을 지었다.

“너거든?”

그런 클로에를 보며 레오가 빙긋 웃더니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니, 기특하네.”

“억?!”

클로에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

“반장이랑 클로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일리아나가 궁금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작전 회의를 하고 있겠죠.”

첸 시아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글로리의 기사학과 남학생이 팔짱을 꼈다.

“넌 참가 안 하나? 같은 기숙사장이잖아?”

“작전은 레오 도령과 클로에 양이 짜는 걸로 충분해요. 뭐, 사실 여기서 하모니와 노블의 선택지는 많지 않으니 충분히 예상되지만요.”

“그게 예상돼?”

일리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일리아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방법밖에 없겠지?”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나누자 일리아나가 ‘뭐야? 뭐야?’ 하며 말했다.

“가르쳐 줘!”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뻔하지 않나?”

마법학과 학생 한 명이 일리아나를 놀리듯 말하자 일리아나가 뚱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정강이를 걷어찼다.

“끄억?”

정강이를 붙잡고 펄쩍펄쩍 뛰는 그를 보며 일리아나가 말했다.

“나 말고도 예상 못 하는 애들 분명 있을 거거든! 그치?”

하지만 일리아나의 말에 호응하는 학생은 없었다.

“시아! 애들이 날 바보 보듯이 바라봐!”

일리아나가 울상을 지으며 첸 시아에게 안겼다.

그런 일리아나의 머리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이 상황에서 하모니와 노블이 할 수 있는 건 연합이겠죠.”

“아하, 그렇구나.”

일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연합을 하면 오히려 더 불리하지 않나? 자기들끼리 못 싸우잖아.”

팔짱을 낀 일리아나가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이미 포인트를 잔뜩 얻었으니 방어만 전념에도 이길 거고. 기숙사장들이 힘을 합쳐도…… 반장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우린 첸 시아와 클로에도 있잖아.”

“솔직히 나 같으면…… 레오에게 덤빌 엄두를 못 낼 것 같은데.”

“맞아, 너무 강해.”

글로리 학생들이 질렸다는 얼굴로 레오의 모습을 보았다.

“클로에는 아무렇지도 않나? 태연하네.”

일리아나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자 첸 시아가 웃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겠죠.”

그때였다.

“얘들아! 전방에 적이 나타났어!”

감시탑에서 망을 보던 글로리 학생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 물음에 클로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규모는?!”

“……전부…… 쳐들어온 것 같은데?”

긴장된 목소리에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오는 선두에 선 기숙사장들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가볼까?”

***

칼이 옆에 서 있는 첼시를 바라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첼시.”

“…….”

“야, 첼시.”

“응?”

자신의 볼을 콕 찌르는 칼의 손길에 첼시가 화들짝 놀라더니 볼을 감싸고 물러섰다.

“왜?”

“뭘 그리 멍하니 있어?”

“……생각을 좀 하느라.”

첼시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런 첼시를 보며 칼이 씩- 웃었다.

“훗, 그러면 너에게 내가 친구로서 좋은 걸 주지!”

칼은 품에서 작은 포션 병 하나를 꺼낸 후 첼시에게 건네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드웨노님의 연금서에서 얻어낸 비약인데! 용기의 물약이라고…….”

칼이 슥- 슥-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르온님이 이걸 마시고 용기를 얻었데. 단돈 1골드에 너한테 줄…….”

퐁-!

첼시가 노란색 포션이 담긴 병의 뚜껑을 열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말했다.

“……과일 주스인데.”

“……어흠. 큼.”

칼이 헛기침을 했다.

첼시가 병을 닫고 손을 들어 올렸다.

“히익?”

당연히 주먹이 날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칼이 기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첼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덤덤히 칼에게 포션병을 건네고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칼이 머리를 긁적였다.

평소랑은 확실히 달랐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 스스로가 한심해서.”

첼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든…… 레오 오빠든. 그저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 왔어. 우등생이라고 잔뜩 으스대고 있었지만…….”

첼시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저 아무런 목표 없이 살아왔을 뿐이었어.”

자신을 구해준 아바드가 쓰러지고.

셀리아가 쓰러졌을 때.

첼시는 도망쳤다.

킹으로서 당연한 선택.

하지만 아니다.

그 상황에서 킹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첼시는 도망쳤을 것이다.

압도적인 전력을 알고 있기에.

레오와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편인데도 위기의 순간 본능적으로 아바드에게 손을 뻗고.

자신을 위협하는 레오에게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막연하게 동경하는 사람을 쫓아왔기에 이렇게 한심한 모습을 보인 거라고 첼시는 생각했다.

“……오라버니도 분명 나한테 실망했을 거야. 레오 오빠도 마찬가지고.”

의기소침한 첼시를 보며 칼이 머리를 벅벅 긁더니 아바드를 보며 손짓 발짓 하며 입을 뻥긋거렸다.

“오라버니 부르지 마. 지금 내가 너무 한심해서 볼 면목도 없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하는 첼시를 보며 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목표가 없는 게 나쁜 건가?”

“뭐?”

“날 봐. 내 목표는 말이야. 어떻게든 오랫동안 루메른에 붙어 있는 거거든. 그래서 이 타이틀을 가지고 서포터로 취직해서 한탕 한 다음 돈을 잔뜩 벌 거야.”

칼이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동전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비약 같은 걸 만들어서 판 뒤 놀고먹고 편하게 사는 거지.”

“……한심하네.”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슬프긴 한데. 봐, 이런 한심한 목표도 있잖아? 꼭 목표가 있는 게 좋은 건 아니야. 당연히 없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

칼이 킬킬 웃었다.

“레오는 절대 너한테 실망하지 않을걸? 오히려 언제 너만의 목표를 가질지 궁금해하고 있을 거야.”

첼시가 눈을 깜빡거렸다.

신분도 다르고 집안도 다르며 학교 내의 위치도 다르다.

하지만 칼은 입학 때부터 첼시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온 친구였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의기소침하고 갈 길을 잃은 첼시에게 더 크게 와 닿았다.

“당장에 목표를 찾을 필요는 없어. 지금 중요한 건 레오와 맞서 싸우는 거야.”

“넌 겁이 안 나?”

“무섭지. 내가 전투 지휘를 맡게 되었잖아. 실수하면 엘리자가 얼마나 들들 볶겠어?”

칼이 몸서리쳤다.

첼시가 느끼는 두려움과는 달랐다.

첼시의 두려움은 레오와 자신의 거리였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방정맞은 칼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이건 말이야, 너한테만 해주는 말이거든?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뭔데?”

“용자 아르온님은 말이야. 사실 엄청난 겁쟁이야.”

꽉-!

“끄아아악!”

첼시가 칼의 발을 가차 없이 밟았다.

칼이 바닥에 쓰러져 마구 뒹굴었다.

“어디서 약을 팔아?”

첼시가 코웃음을 치자 칼이 쩔뚝거리며 일어났다.

“진짜거든? 레오한테 물어봐!”

칼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돼.”

첼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첼시를 보며 칼이 말했다.

“보고도 안 믿겼어. 그런데 말이야. 결국에는 가장 용기 있게 앞으로 나서더라.”

칼이 씩- 웃었다.

“두려움을 이겨내니까 용자라는 걸 깨달았어.”

칼이 손에 들린 포션 병을 첼시에게 주었다.

“그리고 이건 실제로 아르온님이 즐겨 마시던 과일 주스야.”

첼시가 포션병을 내려다보았다.

칼은 그런 첼시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후 후방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글로리의 방벽이 보였다.

그 방벽을 본 첼시가 심호흡했다.

찰싹-!

그리고 자신의 뺨을 때린 후 심호흡하고 포션병을 쭉 들이켰다.

“음! 맛있어!”

눈이 반짝 빛났다.

용기가 샘솟는 기분이었다.

“좋았어! 힘내보는 거야! 아자! 아자! 아자!”

휘오오오오-!

첼시가 기운을 차린 순간.

첼시 앞에 폭풍이 불어닥쳤다.

“어?”

“기운을 차린 모양이네.”

검을 치켜든 레오가 어느새 첼시 앞에 나타나 있었다.

첼시가 다급히 전투태세를 취했다.

“허어어억!”

“레오의 기습이다!”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다.

화악-!

레오가 검을 휘두르자 첼시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채앵-!

바람의 칼날이 서로 교차했다.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제법인데.”

“누가 잘 훈련시켜줬거든.”

첼시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휘오오오오-!

“바람을 이용한 근접 전투에서…… 절대 쉽게 지진 않아!”

첼시가 다른 손에 쥐어진 기다란 지팡이에 마력을 주입했다.

후아아아아아앙!

기습적으로 첼시를 노렸던 레오의 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파지지지지직-!

그런 레오를 번개의 오러가 덮쳤다.

번쩍! 파바바바밧!

일순간 물의 장막이 레오를 보호했다.

“첸 시아.”

“듀란 군은 어차피 나랑 싸워야 되죠? 상대해 줄게요.”

“흥.”

듀란이 코웃음을 쳤다.

화르르르륵! 쩌저저저저정!

방벽 쪽에서는 불꽃과 얼음이 치솟았다.

셀리아와 클로에의 격돌이 신호탄이 되어 하모니와 노블 학생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탁-!

레오가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네 명을 바라보더니 맨 뒤에 있는 칼을 보며 웃었다.

“칼, 준비는 잘해 왔어?”

“물론!”

칼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웃었다.

“그래? 그럼.”

레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차이를 체감할 각오가 됐다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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