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35화 (335/483)

335

휘오오오오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때 워프 게이트에서 마력이 휘몰아쳤다.

번쩍-!

밝은 빛이 걷히고 레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때는 완연한 봄.

하지만 그러한 계절과 관계없이 혹한의 대지는 차가움을 뽐내고 있었다.

“후우.”

레오가 가볍게 숨을 내뱉자 입김이 시야를 가렸다.

짐이 가득 든 짐가방을 들고 워프 게이트에서 내렸다.

루메른에서 세이룬으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를 탄 사람은 레오 한 사람뿐이었다.

‘아직 학회 기간이 아니니까 안나 부교수는 학회 일정에 맞춰서 올 거고.’

뚜벅- 뚜벅-

대리석 바닥을 걸으며 레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늦은 시각.

세이룬의 학과 일정이 모두 끝난 상태.

워프 게이트에 있는 건 워프 게이트를 운용하는 마법사들 뿐이었다.

‘루니아나 에이란. 둘 중 한 명은 마중을 나왔을 줄 알았는데?’

세이룬에서 환영받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레오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학생 중에는 루니아와 에이란은 절친했으며 선생 중에서도 헤르디움은 아주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의아함을 느끼며 레오는 워프 게이트를 운용하고 있는 엘프 마도사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엘프 마도사가 힐끗 레오를 바라보았다.

이미 워프 게이트에는 이야기가 되었는지 세이룬에 느닷없이 루메른 학생이 왔는데도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뭐죠?”

“루메른에서 교환 학생으로 온 레오 플로브라고 하는데요. 혹시 마중 나온 사람이 없을까요?”

“없어요.”

고개를 저은 엘프 마도사가 워프 게이트 바깥으로 레오를 안내해준 후 멀리 보이는 세이룬 교정을 가리켰다.

“세이룬 교정의 입구에 가시면 아마 교직원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 설명을 들은 레오가 고개를 끄덕인 후 워프 게이트를 나섰다.

그런 레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엘프 마도사가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저…… 힘내세요.”

그 말에 레오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엘프 마도사는 레오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워프 게이트 앞의 눈을 쓸었다.

‘마법사로서는 역량이 높은데, 별의 마법은 성취가 뛰어나지 못하네.’

별의 마법.

루나가 만든 고유의 마법 체계이자 지금은 엘프 종족 자체의 고유 마법이 되어 버린 엘프의 상징과도 같은 마법이다.

엘프 마법사라면 누구나 별의 마법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별의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른 마법이 뛰어나다 해도 별의 마법의 성취가 낮은 엘프 마법사도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엘프는 우대받지 못한다고 했었나?’

세이룬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강했다.

혜성의 마법사가 설립한 영웅 사관 학교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건 별의 마법.

아무리 뛰어난 오러의 재능과 소환술 재능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별의 마법’을 익히지 못했다면 세이룬 입학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

그렇기에 오러나 소환수를 다루는 세이룬의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듀얼 클래스였다.

별의 마법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별의 마법에 대한 자부심 역시 막강했다.

레오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을 넘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아마 저 엘프 마법사는 교환 학생으로 온 레오를 세이룬에서 어떻게 대우할지 예상을 했기에 저런 말을 한 것이리라.

‘반응을 보면 나랑 사적인 얘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문책당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도 처음 보는 레오가 걱정되어 저런 말을 해준 것이다.

‘어딜 가든 선의를 가진 사람은 있어.’

세이룬으로 향하며 레오가 빙긋 웃었다.

리시나스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세상을 위해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고 했다.

뽀드득- 뽀드득-

레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 위에 발자국이 생겨났다.

얼마 걷지 않아 세이룬의 정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깐깐하게 보이는 엘프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루메른의 레오 플로브 학생. 세이룬 2학년의 예절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오를렌 아젤이라고 합니다.”

“레오 플로브라고 합니다. 앞으로 한 달간 잘 부탁드립니다.”

레오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오를렌은 획-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레오는 세이룬 내부에 있는 성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성문을 열고 들어서자 드넓은 현관이 펼쳐졌다.

성 내부에 있는 작은 방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명의 교직원은 물론이고 학생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드넓은 성은 마치 쥐죽은 듯 조용했다.

작은 방에 들어선 오를렌은 이윽고 레오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짧은 시간이라고 하지만 교환 학생으로 온 이상 지엄한 세이룬의 교칙을 따라야 합니다.”

오를렌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방 한쪽 옷장에 문이 열리며 교복과 교과서로 보이는 책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 뒀다.

“외부에서 반입된 서적과 짐들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모두 여기에 두고 가세요.”

그 말에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고 짐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또 한 가지, 레오 플로브. 당신은 세이룬에 공부를 위해 온 거죠?”

“예.”

“그렇다면 스스로 교환 학생인 걸 티 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를렌이 안경을 고쳐 썼다.

“세이룬에서 배우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모습도 필요하죠. 세이룬에 있는 동안 당신은 엘프처럼 지내주시기를 바랍니다. 겉모습까지도요. 당신의 존재가 학생들 사이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레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교환 학생 이야기는 세이룬 학생들도 알고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모릅니다.”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고 해도 엘프처럼 꾸민다고 절 몰라볼 것 같지는 않은데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쓸데없이 강하군요, 레오 플로브.”

오를렌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여기는 루메른이 아니라 세이룬입니다. 인간 사회가 아닌 엘프 사회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루메른과 인간 사회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까지 당신의 유명세가 통용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코웃음을 친 오를렌이 차갑게 말했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교복과 함께 있는 목걸이를 착용해주시죠. 그리고 교정 약도를 줄 테니 그곳에서 머무르시면 됩니다.”

그 말을 남기고 오를렌은 방을 나섰다.

‘뭔 소리야? 어차피 세이룬 2학년들은 전부 내 얼굴을 알잖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이룬 교복으로 갈아입으려던 레오가 교과서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멈칫했다.

그리고 교과서를 본 다음 피식- 웃었다.

“그런 뜻이었어?”

오를렌의 말뜻이 이제 이해가 되었다.

오를렌이 레오에게 건네준 교과서는 다름 아닌 세이룬 1학년들의 교과서였다.

‘과연, 어지간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아마도 2학년과 같은 수업을 듣게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거기에 더해 루니아와 에이란과도 만나지 않게 하려는 듯했다.

‘내가 두 사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 건가?’

지난 스미스 전속 계약 당시.

루니아는 세이룬의 총괄 선생의 눈밖에 났다.

세이룬 입장에서는 루니아는 불량학생이 되었고 그 위신이 추락 되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로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차기 학생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루니아를 배제하겠다는 으름장까지 놓았다.

‘하지만 루니아가 드웨노의 세계를 공략함으로써 상황이 달라졌겠지.’

루니아를 위해 드웨노가 직접 만든 신기를 손에 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재앙의 시대 당시 명맥이 끊겼던 피닉스 왕의 불꽃을 계승했다.

말 그대로 전대미문.

루니아를 버리기에는 그녀의 가치가 너무도 커졌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루니아를 자신들의 입맛에 바꾸고 싶어 할 것이다.

“……어떻게 안 좋은 거는 안 가르쳐줘도 이렇게 잘 배우냐?”

5000년 전 하이 엘프들의 방식을 떠올리며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세이룬의 교복으로 갈아입은 레오가 오를렌이 말한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별의 마법, 환상 마법이 걸린 목걸이었다.

거울 앞으로 갔다.

하얀 세이룬의 교복을 입고 나니 귀가 엘프 귀로 변해 있었다.

말 그대로 영락없는 세이룬의 학생이 서 있었다.

“팔자에도 없는 세이룬 1학년 행세를 하게 생겼군.”

레오는 거울 앞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재미있겠네.”

어차피 레오는 공부를 하러 온 게 아니다.

키르안의 날개를 얻는 대가로 세이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바랐던 티나의 요청으로 세이룬에 온 것이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올해 입학한 조카에게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이참에 세이룬 1학년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실하게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교과서를 챙겨 든 레오가 방을 나섰다.

***

오를렌이 남겨 둔 약도를 따라 걸으며 레오는 기숙사 방으로 향했다.

사실상 반쯤 레오를 방치한 것과 같은 상황.

하지만 레오는 어렵지 않게 약도를 봐가며 기숙사 구역으로 향했다.

잠시 후.

레오는 어렵지 않게 기숙사 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숙사 구역에 도착하자 늦은 시간임에도 두 사람이 휴게실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이야기 들었어?”

휴게실 한 가운데 앉은 남학생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루메른의 중간고사에서 루메른의 학생 회장.”

“레오 플로브를 말하는 거야?”

여학생 한 명이 차를 홀짝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그 사람이 시험에서 요정을 소환했다고 하더라?”

“풉! 넌 그 말을 믿니?”

남학생의 말을 들은 여학생이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피닉스의 계약자라면서? 그런데 뜬금없이 요정?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주변 학생들도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페가수스도 소환했데.”

처음 레오의 이야기를 꺼냈던 남학생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야! 더 말이 안 되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고작 2학년이 3대 환수 전부와 계약을 맺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쯔쯔쯔- 여학생이 남학생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런 여학생을 보며 남학생이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도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어. 이번 세루전을 대비해야 하니까. 루메른의 이야기는 잘 안 들어오니까. 사소한 정보라도 모아서 대비해야지.”

신중한 성격인 듯.

레오를 계속 경계하는 듯한 발언을 꺼내는 남학생을 보며 여학생이 훗- 하고 웃었다.

“뭐, 레오 플로브가 대단하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우리의 실질적인 경쟁자인 루메른 1학년 중에는 딱히 소문이 크게 난 아이들은 없잖아? 있어봤자 원래부터 유명했던 검성의 증손녀 정도?”

차를 홀짝인 여학생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거기다, 이번 우리 기수 1등이 누구라고 생각해? 레아 팅겔이야.”

씩- 여학생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수천 년 만에 요정왕 소환에 성공한 레아가 있는데 머리 아프게 루메른에 대해 왜 고민을 해? 루니아 선배님과 에이란 선배님도 있으니까 이번 세루전은 확실히 우리 승리야!”

“대화 중에 미안한데.”

“으헉?”

뒤에서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여학생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소파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앞으로 내민 레오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누가 누굴 소환했다고?”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같은 시간을 공유한 친구의 이야기에 레오는 큰 관심을 기우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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