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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는 앙르와 함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아무리 하급반이라도 일평생을 마법에 바쳐온 젊은 마법사인 로라가 엘프 중에서도 엘리트만 모이는 세이룬 학생들을 만족시킬만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기에 처음 레오를 보고 의욕에 불타던 로라는 금방 실망하고 레오를 앙르와 함께 보냈다.
학생들끼리 자력으로 공부를 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로라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셔.”
앙르는 레오 앞을 걸으며 말했다.
“우리 반 아이들 전체에게 관심을 엄청나게 가져 주시거든. 마법 수업 역시 재미있게 진행하셔서 이해하기 정말 쉬워.”
앙르는 입이 닳도록 로라를 칭찬했다.
“너도 로라 선생님은 금방 좋아하게 될 거야.”
빙긋 웃던 앙르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다른 수업을 가르치는 게 부족하시지만.”
귀가 살짝 늘어졌던 앙르가 이내 어색하게 웃었다.
“아, 미안해. 너도 하급반에 와서 기분이 많이 안 좋을 텐데 괜한 이야기를 했네!”
“신경 쓰지 마.”
레오가 덤덤히 대답하자 앙르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런데 조금 궁금한 게 있는데. 네가 중급반에서 하급반으로 왔다는 건…… 하급반 중 한 사람이…… 그러니까…… 그…….”
앙르 레오의 눈치를 보며 떠듬떠듬 힘겹게 말을 이었다.
“하급반에서 중급반으로 올라가는 학생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
“아.”
앙르가 탄식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이내 힘겹게 웃었다.
루메른도 그렇고 세이룬도 그렇고 학생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중급반에서 한 명이 하급반으로 왔으면 한 명이 올라가는 건 당연하지만 레오는 중급반에서 하급반으로 온 게 아니기에 하급반에서 승급하는 학생은 없었다.
“괜한 소리를 해서 미안해.”
어색하게 미소 지은 앙르가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앙르의 뒤를 따르며 레오가 고민에 빠졌다.
‘문제가 엄청 심각한 것 같은데?’
학년 대표급의 실력자가 하급반에 있는 것도 그렇고.
하급반이 이렇게 방치되듯 있는 것도 그렇고.
세이룬의 문제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해 보였다.
‘전부터 지나치게 별의 마법에만 집착하는 면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이룬이 별의 마법사만 우대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다른 분야에 특출난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고작 1학년.
전문적인 선생의 지도를 받지 못해 학생들끼리 수업하고 있다니.
레오가 눈을 가늘게 뜰 때였다
“다 왔어.”
앙르는 허름한 강당 건물로 레오를 안내했다.
드넓은 강당에서 1학년 학생들이 각자 무기를 쥐고 대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물었다.
“따로 이론 수업은 안 해?”
레오의 질문에 앙르가 볼을 긁적였다.
“응, 최대한 이론 수업도 하려고 하는데…… 일단은 실전 위주의 수련을 하고 있어.”
“그래?”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레오를 보며 앙르가 창을 고쳐 쥐었다.
“어때, 레일. 이왕 온 거 대련 한 번 해볼래?”
앙르의 물음에 레오가 빙긋 웃었다.
“오늘은 참관만 할게.”
“그래? 알았어. 너도 심란할 테니까.”
앙르는 더 이상 권유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과 대련을 시작했다.
몇몇 학생들이 레오를 보고 수군거렸다.
“누구야?”
남학생 한 명이 묻자 앙르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중급반에서 왔데.”
“진짜? 우리랑 같은 낙오자 신세네.”
쯧- 혀를 찬 남학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보기만 하는 거야?”
“오늘은 참관만 하겠대.”
“지옥에 온 걸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군.”
남학생이 한숨을 쉬며 앙르와 대련을 시작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관찰하던 레오가 턱을 괴었다.
‘실력이 좋은 애들이 많네.’
당장에 앙르는 세이룬 1학년 중에서도 학년 대표를 노려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 외에 다른 학생들 역시 실력이 매우 출중했다.
이들이 부족한 점은 단 하나.
오직 별의 마법의 성취가 낮다는 점이었다.
잠시 학생들을 바라보던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을 나섰다.
하급반 학생들은 그런 레오를 보았지만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하급반 학생들은 중급반과 상급반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급반 학생들이 분류도 없이 같은 반에서 단 한 명의 선생에게 지도받아야 하는 이유.
그건 1학년에 배정된 인력 대부분이 상급반의 실력 향상을 위해 투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중급반은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언제든지 상급반으로 올라갈 수 있기에 세이룬 윗선에서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급반은 아니었다.
오직 로라.
단 한 명의 선생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이들을 가망성 없다고 판단했으며 상급반과 중급반 학생들은 하급반 학생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보냈다.
기회조차 강탈당한 상태에서 그런 취급을 당해왔으니 하급반 아이들에게 중급반 출신이라는 레오가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강당을 나온 레오가 말했다.
“엘시.”
레오의 부름과 동시에 검은 덩어리가 뭉치더니 엘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 레오.
“이 주변에서 소환사들이 다수 모여 있는 곳을 찾아봐.”
-잠시만요.
엘시는 눈을 감고 잠시 집중했다.
이윽고 눈을 뜬 엘시가 말했다.
-이쪽이에요.
레오의 예상대로 1학년 하급반에서 소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수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빈 교실에 모여 정령과 환수와 교감하고 있는 하급반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본 레오가 혀를 찼다.
‘역시나 애들 실력이 괜찮네.’
앙르처럼 압도적인 실력자는 없었다.
하지만 소환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 역시 대다수 왜 하급반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학생들이 많았다.
‘문제는 대충 알겠군.’
복도를 걸으며 턱을 쓰다듬던 레오는 이내 하급반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교탁 앞에 앉아 오러학 강의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로라와 마주쳤다.
“아, 레일 학생. 여긴 어쩐 일이세요? 혹시 필요한 걸 놔두고 갔나요?”
로라가 밝게 웃으며 물었다.
그런 로라 앞에 앉으며 레오가 말했다.
“수업 듣고 싶은데요.”
“네?”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싶어요. 혼자서 듣는 건 안 되나요?”
“그, 그럴 리가요!”
로라는 환하게 웃으며 교탁 앞에 섰다.
그리고 에헴! 하고 헛기침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오러학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
또각- 또각-
2학년 교실 구역.
화려한 붉은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복도를 걷고 있었다.
소녀의 모습을 발견한 2학년들이 모두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2학년 수석.
루니아 엘 룬드아가 드디어 교실 구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학년 스미스 전속 계약 학과 일정 이후.
루니아가 교정이 필요하다고 판단 한 고위 엘프들은 루니아에게 보충 수업만 지시한 게 아니었다.
모든 수업을 혼자서 받게 되었다.
명목상으로는 2학년 수석을 위한 특별 대우였지만 실상은 행여나 루니아가 다른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격리였다.
오랜만에 교실에 온 루니아가 교실문을 열었다.
드륵-
교실 문이 열리고 수업 준비를 하던 2학년 상급 1반 학생들은 루니아의 귀환에 밝은 표정을 지었다.
“루니아, 돌아왔구나! 특별 수업은 어땠어?”
한 학생이 루니아에게 친한 척하며 다가왔다.
루니아는 힐끗 그를 보고는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말 걸지 말아 줄래?”
루니아의 싸늘한 목소리에 다가서던 학생이 흠칫했다.
루니아는 자신에게 말을 건 남학생이 싫었다.
1학년 동안 3등을 차지했던 친구.
루카가 하프 엘프라는 이유만으로 학과 일정에서 배제 고 그 자리를 대신 승급한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전형적인 엘프 순혈주의자.
말을 섞는 것조차 싫었다.
루나의 싸늘한 시선에 눈치를 보던 그는 이내 슥 떠났다.
루니아는 창가 쪽 가장 뒷자리인 자신의 자리에 가서 털썩 앉았다.
몇몇 학생이 루니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특별 수업 어땠어?”
“네가 없으니까 너무 허전하더라.”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학교 친구들을 보며 루니아가 빙긋 웃었다.
“딱히 특별한 수업은 아니었어. 그냥 엘프의 마음가짐에 대한 수업이랄까?”
“아…….”
루니아의 말에 친구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1학년 내내 같은 반이었으니 그들도 루니아가 다른 엘프에 비해 살짝 거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큰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루니아니까.’
‘좀 언행이 험악하고 행동이 거칠다고 루니아가 문제 있는 건 아니잖아.’
학생들이 속으로 생각할 때였다.
드륵-
교실문이 열리고 에이란이 들어왔다.
에이란은 루니아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뜨더니 달려왔다.
그리고 루니아의 손을 꼭 잡고 울먹거렸다.
“돌아왔군요! 루니아 양!”
“나 없는 동안 잘 지냈어?”
울먹거리는 친구의 머리를 토닥여주며 빙긋 웃은 루니아가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나 없는 동안 무슨 특별한 일 없었어?”
“특별한 일은 어제 있었지. 그거 때문에 지금 학교가 난리야.”
“무슨 일이길래?”
“1학년의 레아 팅겔.”
“1학년 수석이 왜? 그 우등생이 무슨 사고 쳤어?
“사고라면 사고지. 아주 대형 사건을 터트렸어.”
여학생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제 요정왕 실로드와 이야기를 나누었대.”
“뭐?”
“그거 때문에 난리야.”
“굉장한 사건이 있었네.”
“마침 잘됐다. 오늘 방과 후에 친한 애들끼리 레아 팅겔을 보러 가보려고 했었거든.”
학생들끼리 신나게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교실 문이 열리고 엘프 선생이 들어왔다.
학생들이 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엘프 선생이 말했다.
“공지 사항이 있습니다. 곧 중간고사라는 건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엘프 선생은 슥-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1학년들은 처음 맞는 중간 고사죠. 이번 시험이 중요한 1학년들도 있습니다, 가령 하급반이라던가 말이죠.”
선생이 빙긋 웃었다.
“아무리 열등생이라도 중간고사 때는 노력하겠죠? 그런 1학년 하급반 학생들을 배려해 고학년들은 1학년 하급반에 접근하는 걸 금지합니다. 한참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니까요.”
그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공지사항으로 1학년 중 하급반만 만나지 말라니?
뭔가 이상했다.
그에 루니아가 손을 들었다.
“네, 루니아 엘 룬드아 학생.”
“1학년 하급반일수록 선배들의 지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왜 그걸 막는 거죠?”
“여러분 같이 뛰어난 학생들이 조언을 해줘봤자 하급반 수준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1학년 하급반에 뭔가 있나 보네.’
이번 학기 들어 세이룬이 변했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윗선에서 뒤가 구린 일을 할 때면 이런 식으로 되도않는 이유를 붙여 학생들을 통제했단 말이야?’
루니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만나지 말라고 하면 더 만나고 싶어지네.’
***
점심시간.
로라의 오러학, 영력학, 마력학 수업을 들은 레오는 생각에 잠겼다.
‘좋은 선생님이네.’
앙르의 평가대로 로라는 선생으로서 훌륭한 사람이었다.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데도 오러학과 영력학에서 어떻게든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수업 내용이 크게 지금 하급반 애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
레오는 생각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풍경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식당도 등급이 나뉘어 있었다.
상급, 중급, 하급.
상급반 쪽은 화려한 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중급반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학식.
마지막으로 하급반은 물과 빵만이 있었다.
심지어 하급반 식탁에는 식사를 하는 학생도 없었다.
레오 혼자만 밥을 먹으러 온 것이다.
“쟨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하급반인가?”
“하급반이 식당에 온 걸 오랜만인데?”
엘프 1학년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우리 학교 애들이 봤다면 먹는 거로 차별한다고 난동 부렸겠군.’
루메른 학생들은 루메른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학식에 익숙해져 있다.
거기에 더해 루메른에 입점한 최고의 가게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보니 학생 모두가 미식가였다.
그렇기에 루메른 학생들은 특히 음식에 민감했다.
식사 메뉴가 불만이라고 밥을 굶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레오는 자신을 보며 키득거리는 학생들을 무시하고 하급반 자리로 가서 혼자서 빵과 물을 먹었다.
중급반과 상급반 학생들이 비웃음을 날렸지만 애초에 개가 짖는 걸로 취급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어? 어젯밤에 봤던 걔다.”
상급반에서 식사를 하던 에클레르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구?”
그 말에 회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왜? 이상한 하급반 애가 있었다고 아까 말했잖아.”
에클레르는 친구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친구의 말에 1학년 수석, 레아 팅겔은 음료수를 홀짝이며 친구가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세이룬 교복을 입은 ‘낯익은 얼굴’을 보며 심드렁하게 관심을 끊으렸던 레아 다급히 다시 한번 레오의 얼굴을 확인했다.
“후흡?! 콜록! 콜록!”
그리고 너무 놀라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에클레르가 당황하며 친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내 진정을 한 레아는 다시 한번 레오의 얼굴을 확인했다.
세이룬 교복.
거기에 뾰족한 귀.
그걸 제외하고는 엘프 사회에서는 구하기 힘든 ‘인간 사회’ 의 신문에서 본적이 있는 얼굴이 분명했다.
‘왜 루메른의 학생회장이 세이룬 1학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