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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38화 (338/483)

338

세이룬 점심시간.

레오가 1학년 ‘시작의 성’ 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터벅- 터벅-

그리고 기나긴 복도 끝.

슥-

복도 코너의 벽에서 회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레오 플로브 맞겠지? 확실하지? 비슷하게 생긴 사람 아니겠지?’

레오가 식당을 나서는 걸 본 레아는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레오의 뒤를 쫓았다.

분명 레오라고 확신하는 레아였지만 여전히 지금의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루메른의 학생회장이 세이룬 학생 행세를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1학년의 하급반에서?’

너무도 이상한 상황에 상대가 레오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레오의 뒤를 쫓았다.

터벅-

그때 레오가 걸음을 멈추자 흠칫한 레아가 자신도 모르게 샥-! 하고 벽의 갑옷 장식물 뒤로 숨었다.

‘잠깐만, 내가 숨을 이유가 뭐가 있지? 그냥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야?’

잘못한 것도 없는데 굳이 숨어버린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낄 때였다.

“뭐해?”

“꺄아악?!”

뒤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레아가 기겁하며 갑옷 장식물에 매달렸다.

휘익-!

갑옷 장식물이 레아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텁-! 휘잉-!

레오는 손을 뻗어 레아를 붙잡아 주었다.

갑옷 장식물은 바람 마법을 이용해 원래대로 세웠다.

레오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게 된 레아는 확신하게 되었다.

‘역시 레오 플로브다!’

“괜찮아?”

레오는 중심을 잃은 레아를 일으켜 세워주며 물었다.

빤히 레오를 바라보던 레아가 핫-! 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레오와 거리를 벌리며 황급히 뒤돌아섰다.

‘레오 플로브야! 진짜 레오 플로브라고!’

레아가 황급히 자신의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헛기침하고 뒤돌아섰다.

자신 보다 키가 큰 소년을 올려다보며 레아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레아 팅겔이라고 해요.”

교복 치맛자락까지 살짝 들어 보이며 예법에 맞는 인사를 하는 레아를 보며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1학년 수석?’

티나 교수가 말했던 세이룬 1학년 대표이자 실로드와 교신에 성공했다는 세이룬의 우등생.

‘뭐, 같은 1학년이니까 만나도 이상할 건 없는데 태도가 왜 이렇게 정중해?’

같은 1학년.

그것도 하급반인 레오를 상대로 마치 상급 학생을 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의문이 들었다.

그런 레오의 의아함은 곧 레아가 풀어주었다.

“레오 플로브 맞죠? 어째서 세이룬 1학년 식당에 있으셨던 건가요? 그것도 하급반으로.”

‘날 알아본 모양이군.’

“호, 혹시! 티나 고모님께서 세이룬으로 보내주신 건가요? 그런 건가요? 네? 네?”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전 당신을 좋아하거든요!”

“…….”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선언하는 소녀를 보며 레오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레아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을 쏟아냈다.

“전 어려서부터 시작의 영웅 카일의 동화책을 좋아했어요! 그분의 이야기는 뭐랄까…… 처절하잖아요? 가슴을 울리는 진정한 대영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카일과 같은 올 클래스! 거기에 더해 카일이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을 밝히는데 엄청난 공도 세웠죠! 아아! 당신의 영웅담을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가슴 설렜는지 몰라요!”

무시무시한 속도로 말을 쏟아내는 레아를 보며 레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루메른 학생 중에서도 대영웅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그건 루메른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영웅 사관 학교의 특성이다.

영웅을 동경하고 영웅을 꿈꾸는 만큼.

이 세상을 구원하고 가장 위대한 영웅이라 할 수 있는 대영웅에 깊은 존경심을 가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나 굳이 같은 종족의 대영웅이 꼭 가장 좋아하는 대영웅이 되라는 법도 없다.

엘프 중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를 가졌었던 아르온을 존경할 수 있다.

혹은 지혜롭게 모든 이들을 이끌었다는 리시나스를 가장 좋아할 수도 있다.

각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신봉하는 대영웅이 다른 건 지극히 당연하니까.

그런데…….

‘얘는 특이하게 날 제일 좋아한다고?’

지금이야 카일이 실존했었다는 게 밝혀졌지만.

지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가상의 인물 취급 받아 온 카일을 가장 좋아하는 대영웅이라고 칭하는 건 확실히 괴짜였다.

대영웅 중에서도 카일은 상당히 마이너했다.

실제로 카일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해봐야 첼시, 에이란, 루크 정도가 전부다.

그들도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대영웅이 카일인 건 아니다.

그런데 다른 종족.

심지어 종족의 자부심이 강한 엘프 중에서 카일을 가장 좋아하는 대영웅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래서 말이죠! 루메른에 입학하고 싶어서 입학시험을 치려고 했는데! 집안에서 엄청나게 반대하는 거 있죠?”

조잘조잘 떠들던 레아가 양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왜 세이룬에 있으신 건가요?”

“교환 학생으로 왔어.”

“교환 학생! 아! 그렇군요! 그런데…….”

레아가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왜…… 1학년 하급반에……?”

교환 학생 제도는 세이룬에 없다.

하지만 팅겔 가문의 직계인 레아는 가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고 있다.

비록 가문에서는 이름을 알릴 수 없는 티나이지만 그녀의 부탁이라면 없는 제도를 특례로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레아도 레오라는 존재가 세이룬에 교환학생으로 온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직접 만난 적도 없고 아는 사이도 아니다.

하지만 영웅 후보생으로서 레오가 이루어 온 위업을 본다면 대단한 사람이란 건 명백한 사실.

‘마치 영웅님들 같은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 2학년이 아닌 1학년에 오다니.

좋게 생각해서 1학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라면 그럴 수도 있다.

레오 때문에 루메른 입학도 고려했던 레아다.

함께 공부 할 수 있다면 열렬한 환영이었다.

‘그런데…… 하급반?’

이해할 수 없었다.

당황하는 레아를 힐끗 본 레오가 물었다.

“레아 팅겔.”

“앗! 편하게 레아라고 부르세요! 플로브 선배님!”

“선배? 난 세이룬 학생이 아닌데?”

“다른 영웅 사관 학교라도 같은 영웅 후보생으로서 저보다 1년 먼저 입학하셨는데 당연히 선배님이죠! 플로브 선배님…… 아! 이 얼마나 좋은 울림이란 말인가.”

혼자서 잔뜩 들떠서 좋아라 하는 레아를 보며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레아. 넌 하급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하급반이요? 하급반 친구들은 선생님들께서 노력하지 않는 학생들이라고 하셨는데요?”

순진무구한 얼굴로 대답하는 레아를 보며 레오가 혀를 찼다.

‘그런 식으로 교육하고 있는 건가.’

아무래도 밑에 반 학생들을 ‘노력하지 않는 낙오자’ 라고 교육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현재 세이룬의 지향점은 확실한 모양이군.’

성운의 시조의 뒤를 따르고자 했던 혜성의 마법사가 설립한 학교.

현재 세이룬을 운영을 주도하는 세력은 세이룬 자체를 혜성의 마법사의 후계자를 육성하는 학교로 만들 계획인 모양이었다.

우수한 별의 마법사만을 위한 학교.

‘……혜성의 마법사가 과연 그것을 원했을까?’

지금도 히어로 레코드 속에서 에레보스의 조각에 맞서 싸우고 있는 개벽의 영웅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인 세이룬.

‘……세이룬이 루나의 영웅의 세계를 공략했다면…….’

레오의 눈이 가라앉았다.

‘정말로 루나의 뜻을 이었다면…… 과연 별의 마법사만을 위한 학교를 원했을까?’

루나가 원한 건 꽃이 만개한 세계.

그 평화로운 풍경 하나를 바라며 모든 걸 걸고 에레보스와 맞섰다.

만난 적도 없는 200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가 있는 까마득한 후배.

하지만 세계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에레보스와 맞서 싸우려 했던 그 마음만큼은 아마 5000년 전의 자신과…… 그리고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세이룬이 ‘별의 마법’ 만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을 터.

루나의 뒤를 잇는 사람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더더욱 세이룬 본인의 후계자를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존경했던 루나가 목숨 걸고 지켜냈던 이 세계를.

자신 이전의 선대들이 온 힘을 다해 재건했던 이 세계를 지키고 싶은 염원을 후대에 넘기고자 이 학교를 설립했을 것이다.

‘우리가 개벽의 영웅들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우리 또한 그랬을 테니까.’

지금의 세이룬은 잘못되었다.

분명 세이룬 고학년 학생 중 그렇게 느끼는 학생이 있을 터.

‘그냥 학교가 망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피식- 웃은 레오가 시작의 영웅을 가장 좋아한다는 이상한 엘프 소녀에게 말했다.

“레아 팅겔.”

“아이참, 레아라고 부르라…….”

“내가 숙제 하나 내주면 해올 자신 있어?”

“어떤거요? 별의 마법 이론에 대해서라면 제가 내일까지 해올…….”

“지금 세이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네 선배에게 물어보고 올래?”

“지금의 세이룬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선배님들에게요? 어떤 선배님들이요?”

“루니아와 에이란.”

지금 학교에서 화제의 중심인 2학년 수석과 차석이 언급되자 레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은 눈치면 내가 물어봤다고 시켜.”

“좋아요! 대신! 해오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실래요?”

“부탁이 뭔데?”

“저를 후배로 대우해주시고 플로브 선배님이 저에게 마법을 가르쳐주세요.”

에헴! 가슴을 활짝 펴는 레아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알았어.”

“만세!”

진심으로 기뻐하는 레아를 보며 레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교환 학생으로 왔다는 건 동급생들에게는 비밀로 하도록 해.”

“플로브 선배님과 저와의 비밀이군요! 알겠어요!”

헤실헤실 웃으며 레아가 복도를 뛰어갔다.

아무래도 바로 루니아와 에이란에게 찾아가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레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괜한 애 불량 학생으로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복도 창밖으로 보이는 ‘시작의 성’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하게 뜯어 고쳐볼까?’

***

북부 대륙의 봄날은 매섭다.

이 차디찬 북부 대륙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하지만 일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 찼다.

이제 곧 완공될 ‘시작의 성’을 바라보는 엘프들의 얼굴은 밝았다.

이곳이 곧 새로운 희망이자 미래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너희 학교도 이제 곧 완공이네.”

“응.”

엘프 여인이 빙긋 웃으며 이곳에 있는 유일한 인간에게 대답했다.

“너희 학교는 어때, 루메른.”

엘프의 물음에 루메른이 대답했다.

“신입생들이 귀여워.”

“그래?”

“응. 너무 그런 표정 짓지마, 세이룬.”

루메른은 어두운 표정의 친구에게 웃으며 말했다.

“분명 미래에 세계를 구해줄 영웅들이 탄생할 테니까.”

“응. 그러기 위한 영웅 사관 학교니까.”

세이룬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메른이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린 사이.

세이룬이 고개를 들었다.

마침 그것이 나타났다.

아마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진짜’ 인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재앙의 상징.

검은 불꽃.

영웅 사관 학교를 설립할 때만 해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세계를 지켜줄 영웅이 탄생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벌써 2900년……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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