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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50화 (350/483)

350

세이룬에서 가장 높은 곳.

세이룬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별의 광장에 엘프들이 근심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거지?”

2학년 총괄 담당을 맡고 있는 레베트의 싸늘한 시선이 1학년 상급반을 담당하는 선생들에게 향했다.

가장 선두에 선 상급 1반의 담임, 게라스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상급반이 전원 하급반에게 패배하다니! 대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거지!”

레베트의 분노 섞인 고함에 게라스가 힘겹게 말했다.

“저, 저는 상급 1반 학생들을 도중에 가르치기 시작해서…….”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자네는 그전까지 상급 2반을 담당하지 않았나!”

목에 핏대가 선 레베트를 보며 게라스가 하얗게 질렸다.

“가뜩이나 우리의 원대한 뜻을 이해 못 하고 의심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은 이때!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레베트 선생님, 일단 진정하시죠.”

오를렌이 안경을 고쳐썼다.

“분명 이번 일의 책임소재를 가려야 하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 순혈회의 위신에 금이 갔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 전에.”

오를렌은 1학년을 담당하는 선생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급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하는 것부터 급선무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오를렌에게 향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별의 마법에 대한 재능이 없던 하급반의 학생들이 갑자기 그만한 실력을 손에 놓다니요. 분명 부정한 방법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1학년 하급반에는 루메른의 레오 플로브가 있었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레베트가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그 간악한 녀석이라면 분명 무슨 비겁한 수를 썼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를 쉽게 추궁할 수는 없소, 오를렌 선생. 어찌 되었든 그는 루메른의 학생회장이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는 레베트를 보며 오를렌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레오 플로브는 추궁할 수 없지요. 하지만 하급반을 담당했던 로라 선생은 얼마든지 추궁할 수 있죠.”

“로라 선생의 청문회를 준비해야겠군.”

레베트의 싸늘한 목소리에 오를렌이 빙긋 웃을 때였다.

뚜벅- 뚜벅-

별의 광장에 교장 대행, 르하겐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선생들이 몸을 일으켰다.

“르하겐님. 이번 일에 대한 향후의 대책 회의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진행 안건으로는…….”

“보고는 되었으니 모두 물러가도록.”

“예?”

갑작스러운 르하겐의 말에 선생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을 못 들은 건가?”

하지만 이내 싸늘한 목소리에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모두 별의 광장에서 내려갔다.

혼자서 별의 광장에 남게 된 르하겐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주실까?”

그 말과 함께 허공에 검붉은빛이 번뜩였다.

불길한 빛은 이내 사각형이 되더니 한 남자의 모습을 만들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친애하는 르하겐이여.]

“시치미떼지 마라. 네놈의 간악한 술수를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르하겐이 분노 어린 눈으로 마법 너머의 남자, 헬 카이저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다시 한번 이 세이룬에 어둠을 불러들일 꿍꿍이가 아니었나!”

[오해를 하고 있군.]

헬 카이저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대가 애지중지하는 세이룬의 어린 싹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내가 그대에게 마력을 빌려준 건 사실이다, 르하겐이여. 하지만 내 의지를 벗어난 나의 힘은 통제를 잃을 때가 가끔 있지. 스켈레톤 킹의 소환은 그러한 경우였을 뿐 나의 의지가 아니다.]

“믿을 수 없군.”

[믿고 말고는 그대의 자유네. 르하겐. 하지만 고작 스켈레톤 킹 따위로 세이룬을 어찌할 수 있을 리 없지 않나?]

“그렇긴 하지.”

르하겐이 불편한 심기를 거두지 않으며 말했다.

그런 르하겐을 보며 웃던 헬 카이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 전에, 우리의 거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크흠.”

헬 카이저의 말에 르하겐이 헛기침을 했다.

[르하겐이여. 나는 분명 자네에게 요정왕을 소환할 수 있는 단서를 넘겼네.]

헬 카이저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혜성의 마법사는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요정왕의 맹약자였으며 엘프들의 오랜 숙원인 요정왕과의 맹약을 이룰 수 있는 열쇠가 혜성의 마법사의 유산인 코메테스와 그의 핏줄이라는 사실 역시 알려줬네.]

“그래서 레아 팅겔이 요정왕을 소환하지 않았나!”

[그건 소환이라 할 수 없네. 친애하는 르하겐이여.]

“하! 내 지원에도 불구하고 소환하지 못한 건 내 탓이 아니야! 소환자의 자질이 부족한 걸 나더러 어쩌라는 거지!”

분노를 드러내는 르하겐을 보며 헬 카이저가 말했다.

[내게 시간은 무한하네. 르하겐이여. 시간이 부족한 건 그대지.]

헬 카이저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큭.”

[5000년 전, 성운의 시조와 함께 에레보스를 토벌한 요정왕이라면 분명 에레보스 조각의 행방도 알고 있을 터. 그 조각의 행방을 알아내어 토벌한다. 그 대가로 나는 내가 가진 혜성의 마법사의 유골을 너에게 건넨다. 이 거래를 잊지 말게.]

르하겐이 헬 카이저를 노려보았다.

“세이룬님의 유골을 그대가 가지고 있는 건 분명 사실이겠지?”

[그래. 에레보스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개벽의 영웅들의 시신을 수습한 건 나였으니 말이야. 그대의 강령술이라면 세이룬을 현세에 불러오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지.]

“만약 세이룬님의 유골이 조금이라도 훼손되었다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사령왕이여.”

[그럴 걱정은 없네. 친애하는 르하겐이여.]

헬 카이저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더 좋은 소식을 기대하고 있겠네.]

대화가 끝나기 전.

르하겐이 헬 카이저를 조롱했다.

“타르타로스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주인을 배반하고 죽이려 한다니. 마족의 충성심은 볼 때마다 볼품없군.”

[나는 마족일세. 자네가 성운의 시조와 혜성의 마법사의 뜻을 이어받아 그들의 진정한 후계자가 되어 엘프를 이끄는 것은 엘프에게 있어 숭고한 사명일지 모르지만…… 마족에게는 이미 오래전에 토벌된 주인을 따르는 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일세. 자네의 조롱은 내게 칭찬으로밖에 들리지 않는군.]

웃음을 터트린 헬 카이저가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르하겐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대영웅이 되면 네놈을 꼭 토벌해주마.’

***

“신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도 광신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군요.”

장송의 대공, 아트칸의 말에 헬 카이저가 시체의 권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저건 광신이 아니다.”

헬 카이저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신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어찌 광신을 알겠는가? 저건 그저 아집과 욕망에 눈이 멀었을 뿐이지.”

“어찌 되었든 우리로서는 축복받은 일 아닙니까?”

심복의 말에 헬 카이저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무엇을 그리 생각하십니까?”

“아집과 욕망으로 세상을 파멸로 이끄는 자가 있는 한편 어리석음으로 위대한 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도 있지.”

짜증 섞인 헬 카이저의 말에 아트칸이 얼굴을 굳혔다.

“그 눈.”

레오를 떠올린 헬 카이저가 인상을 찡그렸다.

“놈들을 닮았어.”

신을 토벌한 자들을 떠올리며 헬 카이저가 분노했다.

하물며 레오 플로브는 시작의 영웅과 같은 올 클래스다.

거기에 어린 나이에 심상치 않은 힘을 지녔다.

“될성부른 싹은 크기 전에 자르는 게 맞겠지.”

헬 카이저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고 아트칸은 고개를 조아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

하급반 학생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 하급반 학생들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왜들 그렇게 눈치를 봐? 최고의 시험이었는데 다들 즐겨야지.”

하급반 교실에는 현재 축하 파티를 열고 있었다.

원래라면 왁자지껄한 분위기였을 파티였지만 다들 레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그 레일이 아니라! 그 루메른의 학생회장님. 저희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그…….”

앙르가 뭐라 말할지 몰라서 움츠러들었고 그 모습을 보고 레오가 혀를 찼다.

“다른 학교 학생회장일 뿐인데 뭘 그렇게 눈치들을 봐?”

“그, 그래도. 다른 학교라도 엄연히 선배님이고…… 게다가 학생회장씩이나 되시잖아요.”

“혹시 우리가 무례를 저질렀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하급반 학생들의 말에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드륵-!

하급반 문이 열렸다.

“다들 안녕!”

축하 파티에 초대받은 에클레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레오의 눈치를 보는 하급반 학생들을 보며 잔뜩 당황했다.

“앞에서 뭐 해? 안 들어가?”

그 뒤를 따라 레아가 들어왔다.

“레아 팅겔? 여긴 무슨 일로.”

“축하 파티를 한다길래. 나도 축하 해주러 왔어.”

레아가 빙긋 웃었다.

그런 레아를 보며 앙르가 웃었다.

“고마워.”

“축하 해주러 온 건 나뿐만이 아니야.”

“뭐?”

“뭐야? 분위기가 왜 이렇게 칙칙해? 오늘 시험의 주인공들인데!”

“다들 즐기지 않는 거야?”

트이나 남매가 레아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트이나 선배님들?”

하급반 학생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트이나 남매뿐만 아니었다.

뒤를 따라 유명한 2학년 선배들이 하급반으로 들어오자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루니아 선배님과 에이란 선배님까지?!”

하급반 학생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헤르디움과 로라였다.

“1학년 여러분, 여러분께는 세이룬의 선생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헤르디움이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런 쾌거를 이루다니…… 여러분의 활약은 세이룬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겁니다. 정말…… 정말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세이룬의 유명 선생인 헤르디움을 보며 앙르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아뇨. 로라 선생님과 여기…… 루메른의 학생회장님 덕분인걸요.”

“딱딱하게 계속 학생회장님이라고 부를 거면 그냥 선배라고 불러.”

레오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앙르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그, 그럼 선배님이라 부르는 걸로…….”

그 모습을 보며 헤르디움이 말했다.

“레오 학생, 레오 학생에게는 정말 큰 빚을 졌습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제가 뭘 했다고요. 다 애들이 잘한 거죠.”

레오가 빙긋 웃었다.

“자자!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해요.”

“맞아! 다들 즐겨요!”

가린과 아리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1학년 하급반의 상황은 루니아와 에이란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1학년 1학기 시절 하급반이었던 두 남매였기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험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후배들이 자랑스러웠다.

선배들의 축하에 굳어 있던 분위기도 풀어졌다.

레오 주변에는 세이룬 2학년들이 모여들었다.

“아쉽다, 기왕 교환 학생으로 온 거 같이 공부했으면 좋았을 텐데.”

가린이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넌 인간인데 어떻게 별의 마법을 그렇게 잘 다루는 거야? 비법이라도 있어?”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레오가 음료수를 홀짝이며 말하자 아리스가 혀를 찼다.

“나왔다, 우등생 전매특허. 열심히 공부.”

“그래도 훌륭한 선생님이 있었겠지?”

‘루나가 훌륭한 선생님은 아니지.’

레오는 과거 별의 마법을 배울 때를 떠올렸다.

‘아니, 왜 이걸 못해?’

당시를 떠올리며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세이룬에는 언제까지 있어?”

루니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학회 발표까지는 있을 예정이야.”

***

혜성의 전당 지하에는 회수된 세이룬의 히어로 레코드가 극비리에 보관되고 있었다.

화륵-

일순간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마치 뛰쳐나오려는 듯.

발버둥 치던 검은 불꽃은 이내 빨려 들어가듯 히어로 레코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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