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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54화 (354/483)

354

화르르륵-!

히어로 레코드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불꽃이 회장 전체를 뒤덮었다.

“이, 이게 무슨!”

르하겐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화악-!

날뛰던 검은 불꽃은 이내 관객석을 덮쳤다.

번쩍-!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검은 불꽃에 호락호락하게 당할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쩌저저저적-!

얼음의 벽이 치솟았다.

관객석 맨 앞에 앉아 있던 엘프 마법사에게서 싸늘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그걸 본 주변 이들이 감탄했다.

“북부 마탑주!”

사람들의 시선이 북부 마탑주, 알그렌에게 향했다.

고오오오-!

알그렌의 몸에서 서릿발 같은 마력이 흘러나왔다.

쩌저정-!

얼음의 벽이 마치 살아 슬라임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악-!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 알그렌의 얼음이 순식간에 검은 불꽃을 휘감았다.

그걸 본 르하겐이 소리쳤다.

“북부 마탑주! 이게 무슨 짓이오!”

눈에 핏발이 선 르하겐을 보며 알그렌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고도 모르오? 저 히어로 레코드에서 검은 불꽃이 뿜어져 나왔어. 이 사태의 원흉은 다름 아닌 히어로 레코드. 그걸 처단하는 건 당연한 일이오만?”

“위대한 세이룬님의 기록을 지금 훼손하겠다는 건가!”

“검은 불꽃이라고 하면 단 하나밖에 없지. 그 원흉을 제거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오만?”

알그렌의 말에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었지만 알그렌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검은 불꽃.

그것은 감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재앙의 상징.

“검은 불꽃이라고 꼭 태초의 악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르하겐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이건 위대한 혜성의 마법사 세이룬님의 히어로 레코드란 말이다! 이때까지 드래곤들이 보관하고 있는 것 외에는 발견된 적 없는 영웅의 기록!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이 기록을 파괴하는 무례를 저지르는 건 언어도단이다!”

르하겐이 악에 찬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쩌저적-!

알그렌의 마법에 균열이 갔다.

그걸 본 알그렌의 안색이 돌변했다.

‘벌써?’

알그렌이 놀라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

검은 불꽃이 얼음을 뚫고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회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마법을 사용했다.

어떻게든 검은 불꽃을 꺼트리기 위해 마법을 전개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검은 불꽃은 마력을 집어삼키고 더욱더 거세게 타올랐다.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손에 넣은 혜성의 마법사의 히어로 레코드인데! 이 무슨!”

르하겐이 눈이 핏발이 선 채로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검은 불꽃에는 그 어떠한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걸 지켜볼 때였다.

고오오오-!

순백의 화염이 검은 불꽃을 막았다.

거칠 것 없던 검은 불꽃의 기세가 죽었다.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백색의 화염을 내뿜는 이를 바라보았다.

뚜벅- 뚜벅-

백색의 화염을 몸에 휘감고 감고 앞으로 나선 소녀의 모습은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루니아 엘 룬드아.”

누군가 소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머나먼 과거.

5000년 전 사라진 피닉스 킹의 불꽃을 이은 자.

루니아는 세이룬의 히어로 레코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건 에레보스의 불꽃이 확실해요.”

루니아는 영웅의 세계에서 에레보스와 두 번이나 맞섰다.

물론 그녀가 맞서 싸운 건 에레보스의 아주 작은 에레보스의 편린.

하지만 그조차도 모든 힘을 쥐어 짜내야만 간신히 이길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 그때의 검은 불꽃들과는 달라!’

더욱 깊은 어둠이 느껴졌다.

정화의 불꽃을 계승한 루니아는 에레보스의 불꽃에서 끝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막아야 해!’

이를 악문 루니아가 더욱 강렬한 불꽃을 내뿜었다.

타오를 것 같은 붉은색 머리카락이 순백으로 물든다.

그 광경에 모든 이들이 넋을 잃었다.

미친 듯이 날뛰던 검은 불꽃 역시 루니아를 인지한 듯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가가가가가가-! 화악-!

그런 루니아 앞에 에이란이 섰다.

에이란의 손에는 생명의 빛을 내뿜는 방패가 들려 있었다.

드웨노가 선물한 요정의 힘이 깃든 방패였다.

검은 불꽃을 막아내며 에이란이 고운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강력한 바람의 오러가 휘몰아쳤다.

바람의 오러는 검은 불꽃을 밀어냈다.

세이룬의 학생회장, 하딘이었다.

“세이룬의 학생들은 들어라. 이 건 에레보스의 불꽃이다!”

하딘 역시 루나의 세계에서 에레보스와 맞서 싸웠기에 불꽃의 정체를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하딘의 외침에 세이룬 학생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불꽃의 원흉을 제거한다.”

“하딘 학생!”

르하겐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다.

“세이룬의 학생회장이 감히 세이룬님의 기록을 파괴하겠다는 건가!”

“설령 저것이 세이룬님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이 사태의 원흉을 방치하는 건 세이룬님의 뜻은 물론이고 루나님의 뜻에도 반한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럼, 그럼. 우리 학생회장님 말 잘한다.”

“뭣들 하는 거지? 위대한 성운의 시조와 혜성의 마법사의 뒤를 잇는다면 에레보스와 맞서 싸우는 건 의무다.”

5학년 수석 마르벤과 차석 에버툰의 말에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전투태세에 들어간 세이룬 학생들을 보며 학회에 참석한 마법사들 역시 마법을 전개할 준비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가 검은 불꽃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냐스.”

“예, 레오님.”

북부 마탑주의 딸, 아냐스가 기다렸다는 듯 레오의 뒤에 나타나 정중하게 대답했다.

“북부 마탑주의 능력이라면 여기 있는 전원을 강제로 혜성의 전당 바깥으로 워프시킬 수 있어?”

“바깥에서 안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안에서 바깥으로는 가능할 겁니다.”

레오는 세이룬의 히어로 레코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장 그렇게 해달라고 말을 전해.”

“알겠습니다.”

아냐스가 고개를 숙이며 빠르게 북부 마탑주에게 달려갔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알그렌이 잠시 레오를 바라보더니 이내 마력을 일으켰다.

북부 마탑의 주인답게 알그렌은 회장 전체에 있는 이들을 외부로 워프시켰다.

화악-!

갑작스러운 상황에 전투태세를 취하던 이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북부 마탑주! 이게 무슨 짓이……!”

콰아아아아앙! 화르르르르륵-!

그와 함께 검은 불꽃이 폭발하듯 혜성의 전당을 집어삼켰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그와 함께 높이 치솟은 혜성의 전당이 무너져 내렸다.

오랫동안 보존해온 세이룬의 기록이 불타 사라졌다.

세이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혜성의 전당이 잿더미로 변하여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고 모든 이들이 아연실색했다.

그와 함께.

세이룬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별의 광장에서 죽음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게이트가 열리며 그곳에서 언데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 저게 뭐야!”

“사령왕……?”

“대체 마물 여왕이 세이룬을 침공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령왕의 힘이 이곳에 닿는단 말인가!”

“르하겐 교장 대리! 이 상황을 설명해보시오! 별의 광장은 교장 대리인 그대가 관리하는 곳 아니오!”

세이룬의 선생들이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르하겐은 모습을 감추고 없었다.

세이룬 선생들의 분노가 순혈회에 소속된 이들로 향했다.

그에 순혈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우, 우린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다급히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전에 순혈회에서 주관한 1학년들의 중간고사에서 이미 언데드가 출몰한 적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이상 사태가 발생했으니 생각할 수 있는 원흉은 순혈회 뿐이었다.

그때였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혜성의 전당을 잿더미로 만든 검은 불꽃이 뭉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불꽃의 거인의 형상을 취해가는 에레보스를 보며 모든 이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워어어어어어어어어-!]

거대한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포효 소리를 들은 모든 이들의 얼굴이 겁에 질렸다.

태초의 악.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재앙의 포효는 살아 있는 자들의 전의를 상실시키기 충분했다.

모든 이가 뒷걸음질 쳤다.

공포에 질려 죽음을 직감했다.

그 순간.

“정신 차려!”

거대한 외침이 세이룬에 울려 퍼졌다.

“하울링?”

모든 이들이 놀란 눈으로 소리친 이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온몸에 황금의 오러를 휘감은 레오가 서 있었다.

터벅- 터벅-

“지금은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야. 겁에 질려 있을 때는 더더욱 아니고.”

레오는 에레보스 앞에 섰다.

“너희가 성운의 시조를 존경한다면.”

레오는 에레보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너희가 혜성의 마법사의 의지를 따른다면.”

고오오오-!

레오의 몸에서 회색의 마나가 휘몰아쳤다.

“자신을 믿고 놈에게 맞서 싸워. 그게 이 학교에 입학한 너희의 의무니까.”

절대적인 공포가 사라졌다.

투쟁심을 일으킨 레오가 에레보스를 노려보았다.

‘역시 세이룬의 히어로 레코드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건가.’

드래고니아에서 보관하고 있는 개벽의 히어로 레코드를 제외하고 개벽의 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는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타르타로스에서 집중적으로 파괴한 대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조차도 남아 있다.

하지만 개벽의 영웅의 히어로 레코드는 그보다도 훨씬 적게 남아 있다.

레오는 그 이유를 멜을 통해 들어 알고 있다.

개벽의 영웅들이 에레보스를 막기 위해 영웅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

통로로 이용되는 걸 막기 위해 자신들의 히어로 레코드를 스스로 소멸시켰고 자신들의 손에 미처 닿지 못한 히어로 레코드 역시 소멸시키라는 말을 후대에 남겼기 때문이다.

화르르르륵-!

그때 순백의 불꽃이 치솟았다.

레오가 루니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손에 불꽃의 구체를 만들어낸 루니아가 마력을 전개하고 있었다.

루나가 에레보스에 대응하기 위해 남겼던 마법.

염제.

화악-!

정화를 상징하는 순백의 불꽃이 검은 화염을 집어삼켰다.

[그어어어어어어어!]

분노에 찬 에레보스의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레오가 검을 뽑았다.

화르르륵-!

진홍색 피닉스의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루니아가 만든 틈을 향해 레오가 불꽃의 검격을 날렸다.

콰가가가가각-!

[우워어어어어어어어!]

에레보스의 증오에 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아직 온전하게 해방된 건 아니군.’

레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개벽의 영웅들이 맞서 싸웠던 에레보스의 조각이라고 하기에는 약했다.

그 순간.

휘청-! 쿵-!

에레보스가 휘청이더니 무릎을 꿇었다.

“타격이 있나?”

마법사 한 사람이 다급히 소리쳤다.

‘……아니. 나나 루니아의 공격이 그 정도 타격을 입힌 건 아니야.’

눈을 가늘게 뜬 레오는 일순간 에레보스의 중심에서 불꽃이 일그러지는 걸 느꼈다.

마치 빨려 들어가듯.

그걸 본 레오가 깨달았다.

‘안에서 싸우고 있어.’

***

화아아아아악-!

사방이 검은 불꽃이었다.

이미 풍경은 잿더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코메테스를 쥔 세이룬이 온몸에 마력을 전개했다.

허공에 마법 술식이 떠올랐다.

“종언.”

주문이 완성되자 파괴의 빛이 휘몰아쳤다.

콰아아아아아-!

검은 불꽃이 덧없이 흩어졌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세이룬이 되살아나려는 검은 불꽃을 지팡이로 내려찍었다.

쿵-!

“넌! 여기서 못 나가!”

악을 쓰듯 소리치는 세이룬이 눈앞에 뭉친 검은 불꽃을 보았다.

고오오오오오-!

온몸에 검은 불꽃을 휘감은 재앙의 거인이 나타났다.

[어리석구나.]

검은 불꽃은 무심한 듯 세이룬을 내려다보았다.

[너의 동지들은 이 세계로 올 수 없다.]

그 목소리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발버둥 치는 세이룬을 비웃지도 않았으며 자신을 가로막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지도 않았다.

하물며 귀찮게 하는 세이룬에게 짜증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저 덧없는 생명체를 바라보듯.

그 발버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에레보스는 말했다.

[너 혼자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거지?]

“난…….”

세이룬이 코메테스를 쥐고 이를 악물었다.

“약속했어!”

깨문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루나님과 약속했다고! 그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세계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세이룬의 손이 떨렸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위대한 대영웅들의 희생을 본 순간.

죽음 이미 각오했다.

두려운 건 그들이 남겨준 세계를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이었다.

“루나님께…… 나만…… 믿으라고…… 말했어!”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다잡는 세이룬을 보며 에레보스가 말했다.

[이미 죽은 환상과 나눈 약속에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지?]

“……!”

[그리고…… 설령 약속을 한들 무슨 소용이지?]

에레보스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비웃음이 담겼다.

[너는 너 자신을 과신하는 어리석은 필멸자에 불과하다.]

세이룬의 손이 떨렸다.

[루나 루비넌스는 대단한 존재였다. 불멸의 존재인 나에게 도전할 자격이 있는 하계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지. 그러나 너는 루나 루비넌스가 아니다. 하물며 루나 루비넌스 만큼 대단치도 않지.]

세이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루나 루비넌스가 그런 널 봤다면 믿을 수 있었을까?]

말문이 막혔다.

[이루지 못할 약속은 하는 것이 아니다, 필멸자여.]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무의미한 발버둥이라는 것을.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정신이 마모되어간다.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의지가 꺾여 간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세이룬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들과 약속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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