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55화 (355/483)

355

[그워어어어어어어-!]

에레보스가 포효를 내질렀다.

그와 함께 팔을 치켜들었다.

화르륵-!

검은 불꽃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세이룬의 학생들이 다급히 물러섰다.

그런 에레보스를 향해 레오가 망설임 없이 돌진했다.

“야! 잠깐……!”

루니아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레오를 만류했다.

에레보스의 공격에 대한 방어 준비를 하던 다른 이들도 그런 레오의 돌발 행동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의 검 끝이 떨렸다.

키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온 건 회색의 오러.

콰앙-!

에레보스의 주먹이 바닥을 때렸다.

그와 함께 무수히 많은 검은 불꽃이 치솟았다.

용오름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거대한 검은 불꽃 기둥은 살아 있는 뱀처럼 레오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레오는 그대로 그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레오의 붉은 눈이 사방에서 자신을 덮치는 검은 불꽃의 궤적을 쫓았다.

‘역시 이건 에레보스 힘의 일부분일 뿐이야. 이성은 존재하지 않아.’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 본체는 히어로 레코드 너머에 있다.

‘역시 에레보스를 붙잡고 있는 건 세이룬이야.’

레오가 다리에 힘을 주어 허공을 박찼다.

화악-!

검은 불꽃의 기둥이 레오의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

불꽃의 기둥들이 마치 난반사되는 빛처럼 어지럽게 레오를 덮쳐왔다.

당장에라도 레오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움직임.

하지만 레오는 그러한 에레보스의 공격을 모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왔다.

그걸 본 루니아가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언제 잿더미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 위험 속에서도 레오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에레보스를 향해 접근했다.

“굉장해.”

에이란은 넋을 놓고 레오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기사로서.

지금 레오의 움직임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이라는 표정으로는 부족한 수준이다.

조금의 실수로 인해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런 압박감 속에서 태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니.

화악-!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불꽃의 기둥을 뒤로한 채 레오가 검을 치켜들었다.

몇 번이고 맞서 싸워온 에레보스다.

그 에레보스의 힘 중 극히 일부분.

게다가 본능밖에 존재하지 않은 에레보스의 공격을 피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에레보스의 존재가 대영웅의 감각을 깨웠다.

날카롭게 가다듬어진 레오의 검이 허공에 나선의 궤적을 그렸다.

‘오랜만에 쓰는군.’

카일의 오러 스킬, 스파이럴.

콰가가가각-!

나선의 오러 궤적이 에레보스를 난도질했다.

에레보스의 몸이 갈라졌다.

레오는 망설이지 않고 그 틈을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중심에 도달했을 때 히어로 레코드가 보였다.

화라라라락-!

불타고 있는 히어로 레코드로 손을 뻗으려던 레오가 혀를 찼다.

에레보스의 힘이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폭발한다.’

레오가 빠르게 에레보스의 몸의 중심에서 벗어났다.

탁-!

바닥에 착지한 레오가 몸을 일으켰다.

콰가가강-!

그와 함께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레오는 그 폭발을 뒤돌아보지 않고 검을 고쳐 쥐고 루니아에게로 걸어왔다.

‘지금 내 힘으로는 혼자서 히어로 레코드까지 손을 뻗는 게 불가능해.’

그렇다고 섣부르게 히어로 레코드를 파괴할 수도 없었다.

‘에레보스에게 히어로 레코드는 문, 이쪽으로 넘어오기 전에 파괴한다면 몰라도 이렇게 바깥과 연결된 상황에서 함부로 파괴한다면 무슨 사태가 일어날지 몰라.’

이미 바깥으로 탈출하기 시작한 에레보스를 도와주게 될지도 몰랐다.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세이룬의 세계 내부에서 해결하는 게 좋겠군.’

“어떻게 벤 거지? 아무리 베어도 베이지 않았는데?”

앞에 서서 언데드와 맞서 싸우던 하딘이 감탄하며 물었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놈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없을 겁니다.”

레오는 덤덤하게 검을 내려다보았다.

치이이이익-!

에레보스를 베어낸 영향으로 검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 검 역시 뛰어난 장인이 만들어낸 명검.

그러나 에레보스를 베어낸 것만으로 검의 수명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조금 전 너의 공격은 어지간한 공격이 아니었다는 건가?”

“그런 셈이죠.”

레오는 검에 힘을 주어 에레보스의 힘을 떨쳐냈다.

레오의 마나 특성인 순수.

거기에 레오가 오랜 세월 연마해온 검술이 합쳐져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나는 베는 것 하나만큼은 아르온 만큼 잘했으니까.’

시작의 영웅 카일은 용자 아르온처럼 무의 극에 이르지는 못했다.

말 그대로 무의 극에 이른 아르온은 전투에 한해서는 전율스러운 힘을 가졌었다.

카일은 아르온이 남겨준 오러를 끝내 완벽하게 다루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하나.

무언가를 베는 것만큼은 아르온에 못지않았다.

레오가 다시 부활하기 시작한 에레보스를 바라보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에레보스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아마 본체가 넘어온다면 세계는 3000년 만에 또다시 재앙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통로를 닫아야 해.’

레오가 몸을 일으키는 재앙의 불꽃을 바라보았다.

“루니아.”

“응.”

“나는 지금부터 세이룬의 영웅의 세계로 들어갈 거야.”

“뭐?”

루니아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지금 세이룬의 영웅의 세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해. 그 원흉이 뭔지 확인해보고 올 생각이야.”

“너무 무모해! 그렇다면 검은 불꽃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잖아!”

“그렇지.”

레오는 검은 불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네 역할이 중요해.”

레오가 루니아의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길을 열어줘. 너의 불꽃이라면 가능해.”

“하지만…… 내 마법은 고작 검은 불꽃을 막는 게 전부야.”

루니아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루니아의 정화의 불꽃이 에레보스의 불꽃에 대응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루니아의 힘으로는 뻗어 나온 검은 불꽃의 파편을 잠재우는 것이 전부.

본체에는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검은 불꽃은 자신에게 대항하는 하얀 불꽃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런 루니아를 보며 레오가 손을 뻗었다.

“어?”

손으로 루니아의 턱을 잡고 자신을 보게 만든 레오는 잔뜩 당황하고 있는 루니아를 보며 말했다.

“자신을 믿어라.”

레오가 빙긋 웃었다.

“너희 학교의 교훈이잖아?”

어른스러운 미소를 짓는 레오를 루니아가 넋 놓고 바라보았다.

“넌 루나가 에레보스를 물리치기 위해 만든 마법의 유일무이한 계승자야.”

자신과 똑같은 붉은 눈을 바라보며 루니아가 눈을 크게 떴다.

“루나의 마법을 믿고, 그 마법을 너에게 전해준 나를 믿어.”

볼을 톡톡 건드려준 레오가 에레보스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 레오의 뒷모습을 보며 루니아가 자신을 뺨을 찰싹 때렸다.

“정말이지.”

그리고 살짝 골이 난 얼굴로 레오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쟨 저런 어른 행세가 왜 저렇게 어울리는 거야?”

가슴속에 불안감이 가셨다.

심호흡한 루니아가 말했다.

“에이란, 날 지켜…… 왜 그래?”

루니아는 손을 꼼지락거리는 에이란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뭔가…… 분위기가 엄청 야했어요.”

“넌 이 상황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히익?”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는 루니아를 보며 살짝 움츠러든 에이란이 허둥지둥 검과 방패를 들고 루니아 앞에 섰다.

“정말이지.”

못 말리겠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쉰 루니아가 마법을 준비했다.

그에 따라 주변에 있던 세이룬 학생들이 루니아를 지키기 위해 주변에 포진했다.

‘해보자!’

루니아의 몸에 순백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루니아가 준비가 끝난 걸 느낀 레오가 자세를 낮추었다.

루니아의 입에서 룬어가 흘러 나온다.

별의 룬어.

정면에는 에레보스, 뒤에는 루나가 남긴 마법.

‘루나, 5000년이 지나도 넌 여전히 내게 용기를 주는구나.’

친구의 존재를 느끼며 레오가 웃었다.

고오오오오오-!

마력이 부풀어 오른다.

그와 함께 따뜻한 열기가 레오를 감쌌다.

“염제.”

루니아의 마법이 해방되었다.

그와 동시에 레오는 망설이지 않고 에레보스를 향해 질주했다.

순백의 불꽃이 에레보스를 꿰뚫었다.

그 찰나의 틈으로 레오가 파고들었다.

루니아가 만들어 준 틈.

그곳을 향해 레오가 손을 뻗었다.

텁-!

그와 함께 검은 불꽃을 토해내고 있는 히어로 레코드를 움켜쥐었다.

[히어로 레코드 오픈. ■■■의 세■. ■■: ■■■■■]

형태도 알아볼 수 없는 메시지가 눈앞에 떴다.

화악-!

그와 동시에 레오의 몸이 영웅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잿더미였다.

주변이 불타고 있었다.

레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광경.

에레보스가 모든 것을 불태우고 지나간 잿더미.

그런 레오의 눈에 한 엘프가 보였다.

자리에 주저앉은 채 부러진 지팡이를 손에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엘프.

윤기를 잃은 백금발.

‘세이룬 팅겔.’

레오가 엘프를 알아보고 걸음을 옮기는 순간.

“난…… 실패했어.”

세이룬이 어깨를 떨며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레오가 딛고 서 있는 땅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레오의 발이 빠지기 시작했다.

레오뿐만이 아니다.

세이룬 역시 서서히 어둠의 진창으로 빨려들어 갔다.

***

콰가가가가가-!

검은 불꽃이 치솟았다.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에레보스는 세이룬에게 선고를 내렸다.

[무의미한 발버둥일 뿐이지.]

세이룬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세계가 불타오른다.

영웅의 세계가 일그러졌다.

화악-!

남아 있던 풍경이 잿더미로 변했다.

영웅의 세계 전체가 불탄다.

세이룬의 머릿속에 ‘끝’이라는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한 사람의 영웅의 세계는 모두 이어져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영웅의 세계에 들어온 영웅은 자신이 원하는 페이지로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레보스를 막아내기 위해 함께 들어온 동료들은 아니다.

개벽의 영웅들이 공유할 수 있는 영웅의 세계는 오직 단 하나.

에레보스의 조각을 토벌했던 최종장.

그 외에는 다른 동료의 세계로 이동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에레보스는 신적인 존재.

그 존재 자체만으로 신들이 만든 법칙을 일그러트리고 망가트린다.

다른 영웅의 페이지는 에레보스에게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개벽의 영웅들은 최종장에 가기 전.

자신의 히어로 레코드를 찾아 봉인하고 파괴하는 걸 명령했다.

‘……누군가 히어로 레코드를 파괴하지 않았어.’

세이룬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미 몸은 진즉에 한계에 도달했다.

에레보스는 그런 세이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세계에 갇혀 너의 세계와 함께 죽음을 기다려라. 어리석은 필멸자여.]

그 말을 남긴 에레보스는 세이룬을 죽일 가치조차 없다는 듯.

바깥으로 나서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끝…… 났다.’

자신에게는 무엇이 있단 말인가?

앞을 지켜주던 루메른과 데미안은 없다.

곁에 서서 함께 싸우던 아조니아도…… 뒤에서 믿음을 주던 로디아도 없다.

“얘들아…… 미안해…… 미안해.”

세이룬이 오열하며 동료들에게 사죄했다.

“난…… 실패했어.”

스믈-

어둠이 서서히 세이룬을 집어삼켰다.

“결국 나 때문에 세계를 구하지 못했어.”

온몸이 어둠에 빨려 들어갔다.

끝이 다가온다.

이 영웅의 세계가 끝이 난다면…….

세이룬은 죽고 에레보스는 완전히 해방될 것이다.

온몸이 어둠 깊이 잠겼다.

기분 나쁜 부유감이 온몸을 덮쳤다.

깊은 어둠에 잠겨 숨이 막혀 온다.

그러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손을 허우적거렸다.

이미 마음이 꺾이고 자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했지만.

최후의 최후까지 발버둥 치기 위해.

에레보스를 막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이내 힘이 다했다.

의식이 아득해지며 눈을 감으려는 순간.

턱-!

강한 힘이 담긴 손이 손목을 붙들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리듯.

누군가 세이룬을 어둠 바깥으로 잡아당겼다.

푸확-!

하반신은 어둠에 잠긴 채.

상반신만 가까스로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세이룬의 눈에 순백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누구?”

세이룬이 멍하니 물었다.

“네가 왜 실패했다는 거지?”

소년은 미소 짓고 있었다.

“봐,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잖아?”

세이룬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이해한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세이룬을 어둠에서 건져냈다.

소년의 힘에 의해 어둠을 벗어난 세이룬은 멍하니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저것과 똑같은 미소를 짓던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일찍이 세계를 구원했던 한 남자가…… 위대한 위업을 이룬 자신의 동료 마법사에게 지어줬던 미소.

그 웃음에 잔뜩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던 마법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 한 번 봤을 뿐이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미소.

“넌 실패하지 않았어.”

세계를 구한 영웅이 실패 절망했을 때 그 실패를 부정할 수 있는 자는 누가 있을까?

아마…….

“고개를 들어, 세이룬 팅겔.”

이미 앞서 세상을 구한 사람일 것이다.

“넌 세상을 구한 거야.”

[당신의 위업이 기록됩니다.]

세이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불타 사라졌던 세상이 순식간에 본 모습을 되찾았다.

다시 한번 세이룬의 위업이 기록된다.

히어로 레코드는 신이 하계에 남긴 유산.

그 기록을 다시 쓸 수 있는 건 세이룬이 알고 있는 한 히어로 레코드의 주인밖에 없다.

그리고 세이룬은 그 주인을 알고 있었다.

“시작의 영웅?”

그 말에 긍정하듯 레오는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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