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
레오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부러졌던 코메테스가 허공에 떴다.
레오의 손에 닿은 코메테스가 환한 빛을 내뿜더니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화악-!
그것뿐만이 아니다.
레오를 중심으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불타던 세계가 재구성되었다.
말 그대로 기적.
레오가 세이룬을 긍정한 순간.
모든 것이 원상 복구되었다.
레오의 손에 쥐어진 코메테스에서 강력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이 코메테스는 세이룬이 루나의 세계를 공략하여 얻은 공략 보상이 아닌 세이룬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가짜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세계 속에서만큼은 현실과 똑같은 힘을 지닌 물건이다.
그렇기에 자격이 있는 이의 손에서만 그 힘을 발휘했다.
세이룬은 에레보스를 막기 위해 영웅의 세계로 들어오기 전.
자신의 동생에게 자신의 마력 일부분과 유산을 남겼다.
아마 현세에는 동생의 후손만이 코메테스의 힘을 사용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그런 코메테스가 레오의 손에 쥐어진 것만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세이룬의 손에서도 마법을 쓸 때라면 모를까, 손에 쥔 것만으로 저렇게 빛나지 않는다.
레오는 찬란하게 빛나는 코메테스를 그립다는 듯 바라보며 그것을 세이룬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세이룬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정말로…… 카일 님이신가요?”
“맞아.”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저를 알고 계신 거죠? 또 그 모습은 대체…….”
혼란스러운 듯 세이룬이 물었다.
시작의 영웅 카일.
대영웅 중 한 사람이자 최후의 대영웅으로서 끝내 태초의 악을 토벌하고 세상에 평화를 되찾은 위대한 사람.
대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를 몇 번이고 공략했던 세이룬은 카일과 몇 번이나 만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웅의 세계에서의 만남.
아무리 진짜 갔다고 해도 결국에는 환상.
세이룬에게 있어 카일은 2000년 전 인물이었다.
그런 카일이 자신을 알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세이룬을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환생이란 거지.”
그 대답에 세이룬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너희 이야기는 멜리나에게 들었어.”
“멜리나…….”
세이룬이 눈을 크게 떴다.
개벽의 세계에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드래곤 로드.
“힘내고 있다면서?”
레오의 말에 세이룬이 고개를 숙였다.
힘을 내고 있는 게 고작이다.
그저 시간을 버는 게 전부인 상황.
세이룬도 알고 있다.
자신을 포함한 개벽의 영웅들은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를 온전하게 공략한 자들이었다.
에레보스를 히어로 레코드 속에 가두는 과정에서 완벽하게 가두기 위해 히어로 레코드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대영웅을 포함한 많은 영웅들의 기록이 훼손되고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위대한 대영웅들의 힘을 제대로 계승했음에도 에레보스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세이룬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인 채 죄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세이룬을 보며 레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세이룬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고마워.”
“……!”
세이룬이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지킨 세상을 지켜줘서. 우리의 노력이 무의미하지 않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진심이 담긴 감사를 전하는 레오를 보며 세이룬의 볼에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그 한마디는 세이룬에게 처절했던 수천 년의 시간에 대한 보답이자 구원과도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
“염치없는 말이란 건 알지만.”
레오는 미안함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힘내주면 안 될까?”
“……물론이죠!”
세이룬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희망이 보였다.
오랜 기다림의 결심이 드디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세이룬에 쥐여진 코메테스가 찬란하게 빛났다.
혜성의 마법사의 마력이 휘몰아쳤다.
‘할 수 있어.’
세이룬이 손에 힘을 주었다.
고오오오오오-!
주변의 마나가 술렁였다.
모든 것의 시작.
현존하는 모든 영웅의 근원.
세계를 구한 시작의 영웅의 한마디.
이보다 힘이 되는 말이 과연 있을까?
‘나는 혜성의 마법사, 세이룬 팅겔.’
“스텔라 체인.”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됨과 동시에 그곳에서 별빛의 사슬 다발이 튀어나왔다.
‘성운의 시조, 루나의 의지를 잇는 자!’
세이룬의 눈이 빛났다.
차라라라라랑-!
요란한 사슬 소리와 함께 사슬이 허공을 꿰뚫었다.
이미 망가져 가는 세계는 없다.
레오가 다시 써준 세계는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활력을 되찾은 세계는 이곳에 가둔 어둠을 가두는 가장 강력한 감옥이었다.
키이이이이잉-!
공간이 열리며 검은 불꽃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에레보스.’
환생한 후 지금까지 보아온 파편이나 사념과는 달랐다.
자신이 일전에 봉인한 에레보스의 조각.
말 그대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순수한 악의 불꽃이었다.
콰가가가강-!
[놀랍군.]
바깥 세계로 탈출하기 위해 나섰던 에레보스는 원래 모습을 되찾은 세계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가증스러운 신들의 감옥이 원래 모습을 되찾다니, 무슨 술수를 쓴 거냐. 필멸자여.]
“이 세계의 진짜 주인이 왔을 뿐이야.”
[진짜 주인?]
고오오오오오오오-!
에레보스의 불꽃이 더욱 강렬하게 휘몰아쳤다.
의문을 느끼지는 않았다.
신에 필적하는 존재인 만큼 에레보스는 세이룬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에레보스의 검붉은 눈동자가 세이룬 옆에 있는 인간에게로 향했다.
화르르르륵-!
[그렇군.]
에레보스의 눈이 번뜩였다.
“오랜만이야.”
레오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피차 다시 만나고 싶진 않았겠지만.”
콰가가가가가강-!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검은 불꽃이 레오를 덮쳤다.
하지만 검은 불꽃이 레오에게 닿기 전.
세이룬의 마법이 검은 불꽃을 튕겨냈다.
주변 일대에 타오르는 검은 불꽃에 시선조차 주지 않은 레오는 에레보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살아남는 영웅. 어떻게 새로운 육신을 얻어 현세를 살아가고 있는 거냐?]
“네놈을 완전히 끝장내라는 신들의 뜻이 아닐까?”
[말은 잘하는군. 전생에 날 패배시킨 게 네놈 혼자 힘은 아닐 텐데?]
“물론 아니지.”
레오가 웃었다.
“하지만 5000년이 지났어도 녀석들과의 인연이 끊어지는 건 아니야.”
레오가 손을 뻗었다.
“세대를 거듭하며 결국에는 인연이 이어지니까.”
레오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폴리움을 소환했다.
“지금처럼.”
[세이룬이 계승한 ‘성운의 시조’ 의 마력이 계승됩니다.]
힘을 잃었던 폴리움의 마력이 루나의 마력에 반응하며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알겠다, 히어로 레코드의 진짜 능력.’
히어로 레코드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힘.
선대 영웅의 힘을 계승하는 시스템.
하지만 히어로 레코드의 주인인 레오는 특별했다.
현재 레오가 있는 세이룬의 세계는 방금 전 새롭게 써진 온전한 히어로 레코드였다.
그림자의 서처럼 에레보스의 힘이 닿지 않는 완전한 세계.
이곳에서 레오는 세이룬이 루나의 세계를 공략하면서 얻은 보상을 자동으로 얻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주인에게 보상이란 게 있는 게 이상하잖아?’
히어로 레코드.
일전에 루나의 세계에서 만난 신, 피브아가 말한 레코드 시스템은 말 그대로 기록된 이의 힘을 구연하는 것.
‘레코드의 주인은 레코드에 기록된 이의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거였어.’
말 그대로 신들이 남긴 사기적인 기적.
레오가 세이룬이 얻은 루나의 힘을 얻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별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레오를 보며 에레보스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놈…….]
레오는 에레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레오가 폴리움을 들어 올렸다.
“조만간 널 끝장내러 갈 테니까.”
우웅-!
허공에 거대한 마력진이 생성되었다.
복잡하게 수놓아진 룬어를 보며 세이룬이 눈을 크게 떴다.
‘종언? 아니…… 이건……!’
세이룬조차도 실물로 본 건 처음이었다.
“이노센트.”
순백의 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빛에 노출된 에레보스의 몸이 일그러졌다.
[결국에는 발버둥일 뿐이다.]
에레보스가 말했다.
[결국 네놈은 혼자니까.]
화악-!
순백의 빛에 집어삼켜진 에레보스가 모습을 감추었다.
세이룬이 경이롭다는 듯 말했다.
“역시…… 카일 님이세요.”
“히어로 레코드의 힘일 뿐이야.”
레오는 몸속에서 휘몰아치는 루나의 마력을 느끼며 혀를 찼다.
“이 영웅의 페이지는 결국 파괴해야 해. 언제든지 통로로 쓰일 수 있으니까.”
이 히어로 레코드가 파괴되면 지금 얻은 루나의 마력도 사라진다.
레오의 말에 세이룬이 말했다.
“그래도…… 카일 님이 환생해 주신 덕분에 저희는 좀 더 힘을 낼 수 있어요.”
세이룬은 에레보스가 모습을 감춘 곳을 바라보며 힘 있게 말했다.
“기다릴게요, 카일 님이 오실 날을.”
의지를 다지는 세이룬을 말없이 바라보던 레오가 발을 들어 올렸다.
퍽-!
“꺅?”
세이룬이 비명을 내질렀다.
잔뜩 당황한 얼굴로 엉덩이를 문지르며 물었다.
“가, 갑자기 왜 때리세요?”
“야. 너. 내가 루나를 좋아한다는 이상한 소설 썼지?”
세이룬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다 나보고 등신이라고 써놨지?”
사나운 목소리로 묻는 레오를 보며 눈치를 보던 세이룬이 이내 말했다.
“그, 그치만! 루나 님이 그렇게 마음을 표현했는데 모르셨잖아요! 루나 님이 얼마나 카일 님을 사랑했는데요!”
“그 녀석 티 낸 적 한 번도 없거든?”
“티 엄청 내셨거든요!”
울컥하며 말하던 세이룬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잠깐! 그러면 루나 님의 마음을 알고서도 모른 척하신건가요? 야속하세요!”
“환생한 이후 알았다. 히어로 레코드를 통해 루나가 고백한 덕분에.”
레오의 말을 들은 세이룬이 꽁알거렸다.
“등신 맞네.”
딱- 딱- 딱-
“아, 아파요!”
레오가 손에 쥔 폴리움으로 세이룬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
세이룬은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눈앞의 대선배를 등신이라 칭한 걸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세계를 구한 대영웅과 그런 대영웅의 유지를 잇는 개벽의 영웅의 유치한 싸움을 봤다면 후대 사람들이 통탄할 일이었다.
“후배라는 게 이렇게 귀염성이 없어서야.”
“루나 님은 절 보고 귀엽다고 해주셨어요.”
“뻔뻔한 것까지 루나를 닮을 필요는 없는데.”
레오의 말에 세이룬이 웃었다.
그런 세이룬을 바라보던 레오가 말했다.
“손 내밀어볼래?”
그 말에 세이룬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난 루나는 아니지만.”
레오는 손에 쥐어진 폴리움을 세이룬에게 주었다.
세이룬이 눈을 휘둥그레 뜨였다.
“루나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널 후계자로 인정했을 거야.”
마법사가 마법사에게 지팡이를 건넨다는 건 특별한 의식이었다.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한다는 의미.
이미 수천 년 전 사라진 폴리움을 레오에게 직접 받은 세이룬이 눈시울을 붉혔다.
“카일 님. 저는…… 저희는 잘한 걸까요?”
폴리움을 품에 꼭 쥔 세이룬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레오가 말했다.
“……잠깐만 바깥에 나가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