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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58화 (358/483)

358

세이룬의 가장 높은 곳.

별의 광장.

그곳은 교장의 권한으로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세이룬 내에 중요 안건 회의.

혹은 엘프 의회 때만 사용될 정도로 별의 광장은 엘프 사회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장소였다.

그러한 곳에서 사령왕의 힘이 깃든 언데드가 출현했다.

그렇다면 의심할 만한 인물은 단 하나.

거기에 엘프의 그림자들까지.

상황이 거기까지 이르자 사건이 수습된 후 세이룬의 순혈회들은 조사를 위해 모두 구속되었다.

이후 레오는 곧바로 교장 대행인 르하겐을 쫓았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도망이라도 치는 건가?”

“도망?”

르하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왜 도망을 친다는 거지? 루메른의 학생회장이라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거냐? 어디서 그딴 망발을…….”

“타르타로스와 거래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도망치는 게 가장 좋을테니까.”

르하겐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이내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타르타로스와 거래?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그 누구보다도 성운의 시조와 혜성의 마법사의 뜻을 따르는……!”

“루나와 세이룬의 뜻을 따랐다면.”

레오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렇게 학생들을 차별하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

터벅-

레오의 눈에서 흘러나온 스산한 살기에 흘러나왔다.

“누구보다도 루나와 세이룬의 뜻을 따랐다고? 웃기지 마. 넌 그저 그 두 사람의 뜻을 네가 듣고 싶은 대로 해석했을 뿐이야.”

“망발을 지껄이는군! 인간 따위가 감히 내 앞에서 성운의 시조와 혜성의 마법사의 뜻을 가르치려 들어? 주제를 모르는구나!”

“주제를 모르는 건 너겠지. 최소한 두 사람의 뜻을 따랐다면 타르타로스와 거래를 하는 지껄이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후후후…… 훗.”

르하겐이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젖비린내 나는 어린놈은 이해할 수 없겠지.”

“이젠 부정조차 하지 않는 거냐?”

레오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게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다. 루나님과 세이룬님의 뒤를 이어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한 길이지!”

르하겐이 레오를 바라보았다.

“어리석은 사령왕은 나에게 멍청한 속내를 드러냈다! 타르타로스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에레보스를 없애달라고 부탁했지! 그 거래의 대가로 나는 세이룬님의 유골을 받기로 했다! 강령술사인 이 나에게 말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나? 레오 플로브! 세계를 위해 더러운 길을 마다하지 않는 나의 숭고함이 이해가 되느냔 말이다!”

르하겐은 조금의 죄책감이나 잘못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 르하겐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이것 하나만 알겠군.”

레오가 검을 뽑았다.

“네가 덜떨어진 녀석이란 걸.”

“뭐라고?”

“애초부터 타르타로스는 사령왕의 것이나 마찬가지야.”

레오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군단장은 광신자. 절대 에레보스를 배신하지 않아. 놈들에게 있어 에레보스는 신이니까.”

레오의 안광이 번뜩였다.

“넌 네 욕심을 위해 세계를 위험으로 몰고 갔을 뿐이야. 더 이상 루나와 세이룬을 모욕하지 마.”

고오오오오-!

르하겐의 몸에서 강력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모욕? 역시 아둔한 네놈 따위가 내 뜻을 이해할 수 없지!”

우웅-!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나에게 적의를 드러낸 걸 후회하게 해주지! 어린 나이에 루메른의 학생회장이 되었다고 기고만장했겠지만, 세상은 넓다!”

르하겐이 일갈을 내지르자 눈부신 섬광이 레오를 향해 내리꽂혔다.

“네놈은 그저 기나긴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한낱 영웅 후보생에 불과하다!”

번쩍! 콰가가가강!

순백의 벼락이 레오 주변을 파괴했다.

거대한 위력이 담긴 마법에 정통으로 직격당한 레오를 보며 르하겐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순간.

화악-!

뇌전의 폭풍을 뚫고 레오가 르하겐을 향해 돌격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르하겐의 눈이 부릅떠진 순간.

서걱-!

레오의 검이 르하겐의 손목을 날려버렸다.

텅그렁! 철퍽-!

“끄아아아악!”

지팡이를 든 손이 바닥을 나뒹굴며 피가 튀었다.

손목을 붙잡고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르하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레오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마법을 방어하는 낌새는 없었다.

“무슨 비겁한 술수를 쓴 것이냐!”

“비겁한 술수?”

레오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릎을 꿇은 르하겐을 바라보았다.

“난 그저 네 마법을 해제했을 뿐이야.”

르하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란 말이냐!”

분노한 르하겐의 몸에서 폭주하듯 마력이 쏟아졌다.

레오를 향해 르하겐의 별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마법은 레오에게 닿기도 전에 마력의 파편이 되어 흩어질 뿐이었다.

“이, 이건 악몽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상식을 벗어난 상황에 르하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르하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별의 마법이 레오의 눈길 한 번에 해제된다는 걸.

레오 앞에서 르하겐의 별의 마법은 조잡한 장난질에 불과했다.

‘이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일평생을 바쳐온 별의 마법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냐! 어떻게 인간 따위가 그런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거지! 대체 네놈에게 별의 마법을 가르친 건 누구냐!”

“내게 별의 마법을 가르쳐준 사람?”

르하겐의 앞까지 온 레오가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루나 루비넌스.”

“네놈…… 끝까지!”

르하겐의 눈에 핏발이 섰다.

콱-!

그 순간 레오의 검이 번뜩였다.

르하겐의 머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푸확-! 털썩- 떼구르르-!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레오는 무감정한 얼굴로 르하겐의 몸뚱이로 다가가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푹-!

르하겐의 숨통을 완전하게 끊어버린 레오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숨어서 볼 생각이지?”

레오의 말과 함께 뒤로 북부 마탑, 알그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엘프의 그림자 군주인 그는 레오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샨의 주인을 뵙습니다.”

아무리 루메른의 학생회장이라고는 하나 일개 학생에게 북부 마탑의 수장이 고개를 숙이는 기묘한 광경.

그러나 레오는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알그렌은 북부 마탑주가 아닌 그림자 군주로서 샨 제국과 그림자 서의 주인인 레오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었다.

“굉장하군요. 르하겐은 만만치 않은 엘프일 텐데 이렇게 간단하게 처리하시다니.”

알그렌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레오 곁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어떻게 저보다 일찍 그를 추격할 수 있었던 겁니까?”

알그렌은 르하겐이 사라진 걸 인지한 순간부터 그를 쫓았다.

하지만 레오는 그런 알그렌 보다 훨씬 빠르게 르하겐을 추격했다.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며 목표물을 추격하고 처치하는 건 그림자의 주특기.

알그렌은 어둠이 아닌 빛 속에서 살아가는 영웅 후보생인 레오가 어째서 그림자 군주인 자신보다 빠르게 르하겐에게 닿을 수 있었는지에 의문을 느꼈다.

그런 르하겐의 질문에 레오가 대답했다.

“샤우 황제가 샨 제국을 나에게 바친 이유가 단순히 내가 그림자 서의 주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레오의 물음에 알그렌이 눈을 조금 크게 뜨더니 이내 미소 지었다.

‘과연. 아냐스가 괜한 소리를 했던 건 아니군.’

어젯밤, 딸인 아냐스가 레오를 모실 가치가 있는 주인이라고 했을 때만 해도 알그렌은 레오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레오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영웅 후보생으로서 이뤄낸 행적만 본다 하더라도 레오가 대단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훗날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영웅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빛 속을 살아가는 영웅과 어둠 속을 살아가는 그림자는 다르다.

‘어린 그림자들은 홀리듯 따르고 싶어 하는 영웅이 생기지.’

수천 년 동안 그림자는 영웅이 하지 못하는 더러운 일을 대신 해왔다.

하지만 단순히 뒤처리 같은 일만 해온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영웅의 그림자로서 영웅을 따르는 임무도 맡았다.

실제로 유서 깊은 영웅 명가에서도 어둠 저편으로 그림자들이 있다.

아냐스 역시 레오라는 강렬한 빛에 눈길을 사로잡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깊은 어둠에 빠진 셈이로군.’

그림자 군주로서 깊은 어둠에 발을 담가온 알그렌은 알 수 있었다.

배신자를 망설임 없이 처단하는 그는 영웅임과 동시에 그림자라고.

이미 오래전부터 어둠 속 깊이 발을 담가 온 사람이란 걸.

빛과 어둠, 양면성을 지닌 자.

‘회색…… 이런 사람도 존재할 수 있구나.’

알그렌이 레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레오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 레오의 뒤를 따르며 알그렌이 말했다.

“레오님은 그가 배신자라는 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비슷한 수법을 본 적 있거든.”

재앙의 시대.

엘프들의 틈을 파고들어 곪게 했던 사령왕의 수법은 지금과 비슷했다.

5000년.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당신은 어떻게 알아낸 거지?”

“히어로 슬레이어가 순혈회와 접촉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걸음을 멈춘 레오가 알그렌을 보았다.

그런 레오를 보며 알그렌이 고개를 숙였다.

“수많은 영웅을 살해한 배반자입니다.”

“그건 알아.”

히어로 슬레이어.

수없이 많은 영웅을 살해한 역사상 최악의 히어로 킬러.

그 전율스러운 악명에 의해 역사책에도 그 이름이 남아 있다.

그를 모르는 자는 없다.

“히어로 슬레이어는 500년 전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많은 영웅의 피를 흩뿌리며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던 어느 날, 그는 홀연히 역사의 뒤 페이지로 자취를 감추었다.

영웅들의 손에 토벌되었다거나 그림자들에 의해 말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확실한 건 그가 500년 전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렇죠. 하지만 대륙 북부에서 그림자들이 히어로 슬레이어와 같은 힘을 쓰는 자와 마주쳤습니다. 생존자는 단 한 명뿐이었죠.”

“…….”

“현재 우리는 사령왕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침 순혈회 역시 사령왕과 밀접한 연관이 있죠.”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세한 사실을 알게 되면 아냐스를 통해 레오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언제 봤다고 그렇게 충직하게 날 대하는 거야? 아냐스야 아직 어려서 감정에 치우치는 것 같지만 당신은 아니잖아?”

“제 딸은 레오님보다 연상입니다만.”

기묘한 얼굴로 대답하는 알그렌을 보며 레오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레오의 대답에 알그렌이 웃었다.

“당신이 그림자 서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인정받으면 그림자 역시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릴 수 있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의 명령에 목숨조차 버릴 그림자들이 많을 겁니다.”

수 천년 동안 차별받아온 그림자들의 염원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레오였다.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텐데?”

“그림자 군주로서 당신의 능력을 보고 싶기도 합니다.”

알그렌은 레오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의 운명을 맡겨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를 말이지요.”

“기대에 부응할 수 있으면 좋겠군.”

레오의 대답에 알그렌이 웃었다.

‘이 소년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빛으로 그림자들을 이끄는 것이 아닌 어둠으로 그림자를 품는 것이.’

밝은 빛 속에서 살아가는 영웅도 아니며 그렇다고 깊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그림자도 아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의문인 것처럼.

빛과 어둠을 붙잡고 있는 자.

‘모든 것의 시작인 카일님과 같을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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