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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실습 공지가 있은 후.
1, 2학년들은 분주하게 임무 실습을 준비했다.
마법학과 학생들은 2학년 대강의실에 모여 임무 실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비밀스러운 임무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루메른 학생이라는 걸 숨기지 않고 대놓고 입국한다니.”
양반다리를 한 채로 의자에 앉은 칼이 깍지 낀 손을 뒤통수에 대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인중에는 펜이 올라가 있었다.
“은밀하게 정보 수집을 하는 그런 걸 생각했는데 말이지.”
칼의 툴툴거림에 쥬엔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그런 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클로에가 쯧- 혀를 찼다.
“1, 2학년 전체가 알레함으로 들어가는데 그게 숨겨질 리가 없잖아.”
그 말대로였다.
아무리 신분을 숨긴다고 하더라도 수백 명이 한꺼번에 워프 게이트를 통해 알레함으로 입국하게 되면 그 사실을 숨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것도 십 대 중후반의 소년, 소녀들이 한꺼번에 입국한다면 더더욱.
“게다가 알레함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가 루메른 학생이라는 걸 알리는 게 도움이 되겠지.”
앞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아바드가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1학년 여학생들 사이에서 작게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2학년 최고의 인기남 중 하나인 아바드인 만큼 행동 하나하나에 후배들에 대한 반응은 최고조였다.
1학년 남학생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왜 굳이 저희의 정체를 밝혀 알레함에게 압박을 가하는 겁니까? 오히려 공식적으로 조사를 하게 되면 더욱 자신들의 비밀을 숨길 수 있지 않습니까?”
“만약 알레함이 정말로 영웅 던전을 은폐하고 싶다면 자기 나라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자들이 달갑지 않겠지.”
1학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비밀을 파헤치려는 자들을 ‘죽여서’라도 막고 싶지 않을까?”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그 내용은 살벌했다.
1학년들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루메른의 학생인데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질문을 했던 남학생이 설마 하는 목소리로 말하자 아바드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몰래 들어가면 공식적으로 루메른의 학생인 건 아니잖아?”
아바드가 턱을 괴었다.
“영웅 던전의 존재를 은폐했다는 건 상당히 심각한 일이야. 어떤 영웅의 히어로 레코드냐에 따라 세계가 위협받을 수도 있어. 특히나 최근에는 히어로 레코드의 폭주에 대한 위협이 더욱 와 닿고 있지. 작년과 올해. 세이룬에서 히어로 레코드의 폭주한 결과 어떤 사태가 초래되었는지는 너희도 잘 알고 있지?”
아바드의 말에 1학년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작년 루세전 당시.
세이룬에 머나먼 과거 시대의 군단장이 영웅의 세계를 통해 넘어온 사실을 모르는 자가 없다.
거기에 더해 마물 여왕의 침공.
“기적적으로 시작의 영웅 카일님과 성운의 시조 루나님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이 자리에 없었을 거야.”
아바드의 말에 1학년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폭주한 영웅던전으로 인해 나라의 존속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그런데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영웅던전을 은폐하고 있는 거야.”
아바드가 덤덤히 말했다.
“그런 자들이 우리가 루메른의 학생이란 걸 신경 쓸까?”
아바드의 말에 1학년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루메른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 절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지. 건드리는 순간 루메른에서 직접적으로 나설 테니까. 그 학생이 소속된 나라 역시 마찬가지고.”
아바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희가 됐든 우리가 됐든. 아직까지는 대부분 학생이 루메른이라는 이름에 보호받아야 한다고 교수님들이 판단하신 거야. 그 점 명심해.”
아바드의 말에 들떠 있던 1학년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첫 임무 실습을 나가게 된 1학년들은 내심 이번 임무 실습을 통해 루메른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들뜨고 지나치게 자신감에 차 있으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아바드는 후배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분위기를 잡은 것이었다.
“저럴 때 보면 확실히 아바드도 장난 아니란 말이지.”
칼이 작게 감탄사를 터트리자 옆에 있던 첼시가 팔짱을 끼고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차기 르왈린의 주인인데. 그나저나 레오 오빠는? 오늘은 마법학과랑 같이 임무 실습 준비를 한다고 했잖아.”
임무 실습 준비는 학과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첼시의 물음에 칼이 답했다.
“잠깐 티나 교수님께 갔다 온다고 하던데?”
***
휘잉- 휘잉-
-내 날개!
티나의 교수실에서 키르안이 들뜬 듯 ∞를 그리며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폴리모프를 한 피오라는 그 모습을 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진짜 나방이 따로 없네요.”
“아흑! 나방이라니! 피오라 양! 저도 그렇게 매도해주세요!”
“엘시가 아티랑 놀지 말랬어요. 해로운 걸 배운다고.”
피오라가 아티와 선을 긋자 아티가 팔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남은 손으로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아아, 해롭다니. 그렇게 귀여운 모습으로 어찌 그런 심한 말을.”
아직 어리기만 한 피오라는 자신의 말에 좋아하는 이 페가수스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티는 제정신이 아니고.’
피오라가 커다란 붉은색 눈을 또르르 굴려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키르안을 바라보았다.
‘저 요정은 나방이고.’
팔짱을 낀 피오라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레오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건 나뿐이네.’
특유의 어른 흉내 내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피오라가 우아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키르안은 그런 피오라의 위로 날아가 두 쌍이 된 날개를 마구 파닥거렸다.
그러자 반짝이는 빛의 피오라의 콧잔등 위로 쏟아졌다.
“에취!”
피오라가 재채기를 했다.
“크흥!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내 날개 멋있지?
“나방 같아 보여요.”
솔직한 피오라의 감상에 키르안이 더더욱 거세게 날개를 파닥거렸다.
정신 사납게 흩날리는 빛의 가루에 쌍심지를 켠 피오라가 얇은 책을 들어 올려 벌레 잡듯 키르안을 잡으려고 했다.
-우하하하! 병아리 녀석! 그런 허접한 공격이 날개를 되찾은 이 몸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냐?
“거기서요! 이 못된 나방!”
우당탕!
티나의 연구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쉭! 파악-!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피오라와 키르안 사이 가운데 정확하게 날카로운 메스가 날아와 꽂혔다.
메스를 던진 티나는 굳어 있는 두 환수에게 말했다.
“자꾸 시끄럽게 굴면 해부할 거야?”
특유의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눈빛은 광기에 차 있었기에 효과는 충분했다.
두 환수는 기겁하며 아티의 뒤에 숨어 버렸다.
그에 아티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고작 저런 협박에 겁을 먹다니. 수치심도 모르세요? 삼대환수로서 창피한 줄 아세요.”
피오라와 키르안이 ‘너한테만큼은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라고 발끈했다.
그러는 사이 티나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코메테스를 살폈다.
“역시 신기하네. 팅겔 가문 사람 이외에 코메테스가 반응하다니.”
세이룬에 교환 학생으로 갔다 온 대가로 키르안의 날개를 받으러 온 레오는 티나에게 코메테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원래는 세이룬 아카데미의 보물이었지만 세이룬이 직접 레오에게 건네준 이상.
소유권은 확실하게 레오에게 있었다.
“확실히 넌 연구 대상인 것 같아, 레오 학생.”
티나가 진하게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빙긋 미소 지었다.
“이 교수님이랑 병원 놀이해보지 않을래?”
어딘지 모르게 위험한 표정을 지은 티나가 입술을 핥았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안 잡아먹을 테니까.”
“거절하겠습니다. 코메테스 연구로 참아주세요.”
“그거 아쉽네.”
레오의 말에 티나는 입맛을 다셨지만 크게 미련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순혈회도 정리되었고 세이룬도 변혁을 맞이할 것 같은데. 이제는 세이룬의 선생으로 부임해도 되지 않나요?”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세이룬에는 해부해보고 싶은 학생이 있으니까.”
‘……루니아인가.’
티나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학생이라면 당장에 떠오르는 건 염제의 불꽃을 다루는 루니아뿐이다.
“뭐, 당장은 코메테스에 담긴 마력에 관한 연구를 더욱 해보고 싶지만.”
현재 티나의 관심은 수천 년 동안 팅겔의 혈통에만 반응해온 코메테스가 레오에게 반응하는 이유에 관한 연구였다.
물론 코메테스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세이룬의 인정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코메테스의 마력 파동은 티나에게 충분한 흥미를 가져다주기 충분했다.
코메테스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티나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알레헴에 간다고 했지?”
“네.”
“알레헴에 간다면.”
티나가 종이에 작게 무언가를 썼다.
“우아르겔라의 여기를 찾아 가봐.”
“우아르겔라? 알레헴의 최대 오아시스 도시 아닌가요?”
“맞아.”
레오는 티나가 건네는 종이를 받았다.
“환락의 성.”
“알레헴의 뒷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주점이야.”
티나는 특유의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보여주면 이번 임무 실습에 큰 도움이 될 거야.”
“감사합니다.”
레오는 쪽지를 품에 갈무리했다.
***
임무 실습 준비 기간이 끝난 다음주 평일.
1, 2학년들이 워프 게이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섰다.
“넌 어디 갈 거냐?”
“난 일단 수도를 집중적으로 조사해보려고.”
“난 마물의 숲 주변. 용병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정보 수집에 용이할 것 같아.”
학생들은 각자의 조사 구역을 정한 듯.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그 장소에만 국한되어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알레함 전체가 조사 대상인 만큼 적극적으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게 분명했다.
거기에 더해 다른 팀과 협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이번 임무실습은 경쟁이 아닌 협동이 주를 이루었다.
그만큼 정보 교류가 중요했고 학생간의 동선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1학년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멘토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내년에는 자신들이 멘토가 되어 후배들을 지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출발하기 전까지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제군들! 준비는 끝이 났나!”
세드젠이 모습을 드러냈다.
워프 게이트 앞에 설치된 세드젠이 화려하게 양팔을 벌렸다.
“이번 임무 실습은 단순한 임무 실습이 아니다! 루메른을 대표해서 알레함을 조사하는 것! 제군들이 이루어낸 성과에 따라 국제 정세가 변할 수도 있고 또한 알레함 주변 국들이 안심할수도 있게 된다! 그러니 그 무게감을 잊지 말고 임무에 임하도록!”
“옙!”
학생들이 힘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알레헴이라는 나라 자체는 아직 제군들에게 ‘자극’ 적인 나라일 수도 있다! 부디 지나친 자극에 길을 잃거나 눈이 흐려지는 일이 없도록!”
세드젠의 말에 칼이 손을 들었다.
“세드젠 교수님! 만약 학생답지 않은 일을 한다거나 시설을 이용하면 어떤 처벌을 받나요?”
칼의 질문에 대답한 건 단상 밑에 서 있던 할린드였다.
“처벌 같은 건 없다.”
누구보다도 교칙에 깐깐한 할린드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학생 전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할린드가 말했다.
“너희는 학생이기 이전에 영웅 후보생이다. 너희들이 행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지.”
할린드는 특유의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쁠 건 없지. 하지만 지나치게 빠져서 너희의 인생이 망하든 말든 학교와는 상관없지.”
할린드의 말에 학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학생들을 한 번 훑어본 할린드가 말했다.
“이번 임무 실습 기간은 이주일이다.”
“예?”
“이 주씩이나요?”
예상치 못한 입무 실습 기간에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장기 임무인 만큼 임무에 필요한 비용을 지금 지급하겠다. 이것 역시 수업의 일환인 만큼 가문의 힘을 빌린다거나 사비를 사용하는 건 금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 주 동안 추가 지원도 없다는 걸 알아둬라.”
그렇게 말한 할린드가 학생들에게 돈주머니를 넘겼다.
주머니를 확인한 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박! 이거 임무 실습 비용 남은 건 어떻게 하나요?”
엄청난 거금이 들어 있자 칼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남은 비용은 개인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이상이다.”
임무 실습으로 지급된 돈은 귀족가 학생들도 깜짝 놀랄 만큼의 거금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세드젠이 말했다.
“그럼! 건투를 빌겠네! 제군들!”
1학기 1, 2학년 합동 임무 실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