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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워프 게이트가 빛을 발했다.
“덥네.”
워프 게이트에서 나온 레오가 사막의 더위를 체감하며 중얼거렸다.
레오가 도착한 것은 오아시스 도시 우아르겔라.
엘레헴에서 손꼽히는 대도시 중 한 곳이었다.
레오가 워프 게이트 내부를 걸었다.
그런 레오의 뒤를 따르며 루크가 말했다.
“어, 엄청 더운데요?”
벌써부터 더운 나머지 루크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대륙 중앙 역시 무더운 여름인 관계로 이미 하복으로 갈아입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러한 하복이 무색할 정도로 사막의 날씨는 더웠다.
루크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레오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는 사이 워프 게이트를 타고 다른 학생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아르겔라 자체가 거대한 대도시이다 보니 이곳을 조사하기 위해 온 팀도 많았다.
워프 게이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루메른 학생들을 보며 워프 게이트를 오가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루메른?”
“저들이 왜 이곳에……?”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의 반응에 1학년들은 다양하게 반응했다.
우쭐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학생도 있었다.
2학년들의 경우에는 이미 사람들의 관심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만큼 대체로 심드렁했다.
그렇게 레오가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에 눈을 가늘게 떴다.
루크는 워프 게이트 바깥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시의 거리는 휘황찬란했다.
거리 곳곳에 켜진 마석등의 빛을 받아 도시 전체가 반짝거렸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밝았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거리의 상인들은 갖가지 물건을 팔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싱싱한 과일과 음식, 꽃다발까지.
마치 축제를 연상시키는 듯한 풍경이었다.
“상상했던 거랑은 조금 다르군.”
“그러게요.”
레오의 중얼거림에 루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로드렌의 수도만큼 화려한데.’
레오는 사촌인 셀리아와 함께 갔었던 로드렌의 수도를 떠올렸다.
로드렌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다.
그런 두 나라 간의 대도시의 거리가 별 차이 없다니.
임무를 해야 할 곳이니 만큼 이미 엘레헴에 대한 사전 조사는 끝낸 상태였다.
그렇기에 세계 최빈국이라는 엘레헴의 상황 역시 인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이 거리는 전혀 빈민국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었다.
레오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다른 학생들 역시 워프 게이트를 빠져나와 우아르겔라의 거리를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대박!”
“거의 루메리아 시티급이잖아?”
다른 학생들도 상상과는 다른 거리의 풍경에 잔뜩 들뜬 분위기였다.
특히나 여학생들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거워했다.
혹시나 질이 떨어지는 숙소에서 지내야 할까 봐 고민했는데 거리의 풍경을 봤을 때 그런 걱정이 사라진 셈이었다.
“숙소 문제로 여러 가지 고민을 했었는데 괜히 그런 고민을 했네.”
“일단 숙소부터 잡자!”
“그래! 학교에서 지원도 빵빵하게 해줬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좋은 데서 자야지!”
학생들이 우르르 워프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우리도 일단 숙소부터 잡을까요?”
“그래, 네가 잡아 줄래?”
“제가요?”
“그래.”
레오는 손바닥을 펼쳤다.
화르륵-!
작은 불꽃과 함께 작은 붉은색 병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삐약-
다름 아닌 피오라였다.
레오는 피오라를 루크에게 넘기며 말했다.
“숙소를 잡으면 이 녀석을 통해서 나에게 위치를 알려 주면 돼.”
“예.”
“숙소를 잡은 후에는 네 나름대로 이 도시의 이상 사태에 대해 조사해줘.”
“저 혼자서요?”
“할 수 있지?”
“네!”
루크가 의욕적으로 대답했다.
삐약- 삐약-
피오라가 루크의 정수리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번 쪼아보더니 이내 루크의 예쁜 은발이 마음에 든 듯 우아하게 날갯짓을 한 번 하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치 새가 둥지에 들어가 앉은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잘 부탁해.”
삐약-
루크의 말에 피오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사달라는 거 무조건 사주지 마라.”
“네.”
대답을 한 루크가 숙소를 잡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레오의 어깨에 앉은 엘시가 말했다.
-굳이 혼자서 보낸 이유가 뭔가요?
“쟨 시골 출신이라서 경험이 부족하거든.”
레오가 몸을 돌렸다.
“되도록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 그리고 자신이 충분히 대단한 녀석이란 걸 알려주고 싶기도 하고.”
-충분히 대단하단 걸 알려주고 싶다는 건 무슨 뜻이죠?
엘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레오가 덤덤히 대답했다.
“최근 루크는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거든.”
레오의 말대로였다.
다른 학생들은 빠르게 실력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루크는 레오가 건 제약 덕분에 계속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1학년들은 루크를 조롱하며 비웃곤 했다.
운 좋게 입학을 하고 학생회장의 멘티가 되었지만 결국 재능이 없는 녀석이라는 비웃음.
대부분 1학년들은 루크가 단순히 운이 좋은 녀석으로 취급을 하고 있었다.
레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레오의 이야기를 들은 엘시가 중얼거렸다.
-많이 힘들겠네요.
“힘들지.”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얻지 못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특히나 다른 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학교에서 혼자만 뒤처진다는 생각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기 충분했다.
“아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없을 거고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심정일 거야.”
-그런데도 루크는 노력하는 걸 멈추지 않잖아요.
레오의 말을 믿고 루크는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
당장에 제약을 풀고 웬만한 학생들은 압도할 수 있는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음에도 참았다.
‘선배님, 제가 정말 아이나씨를 이길 수 있을까요?’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제가 아이나씨를 어떻게 이겨요?’
루크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래도 레오 선배님이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해볼게요.’
자신의 가능성은 믿지 못했지만, 레오의 말을 믿었다.
“그런 점에서는 베르키아랑 비하르를 닮았단 말이야.”
레오는 전생에 자신들의 제자를 떠올렸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면서도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제자들.
그렇기에 재앙의 시대가 끝난 이후 세계를 재건하는 대단한 일들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루메른의 학생으로서 대우받다 보면 자신감을 조금 되찾을 거야.”
뭐가 됐든 루메른 입학은 루크가 쟁취한 업적이다.
루메른 학생들끼리만 있으면 그게 대단한 건지 모르지만 바깥에서 본다면 충분히 대단한 위업이다.
“게다가……. 지금 갈 곳은 어린애한테는 조금 자극적일 수도 있거든.”
그 말에 엘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레오가 골목으로 사라졌다.
스윽-
“갔지?”
그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던 소녀가 읽던 신문을 내리고 눈짓으로 레오가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았다.
“선배님.”
“응, 왜 그러니, 후배야.”
오스틴은 자신의 멘토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굳이 도련님을 몰래 지켜보는 이유가 뭡니까?”
오스틴의 물음에 일리아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뭘 모르네. 반장은 말이야. 이런 임무 같은 걸 엄청 잘하거든?”
일리아나가 우아하게 신문을 접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임무 실습에서 반장만 잘 따라가도 날로 먹을 수 있다고.”
그런 일리아나를 보며 오스틴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에게 루크에게 행선지를 물어오라고 시키신 것도 도련님을 따라가기 위해서였습니까?”
“물론이지!”
일리아나가 눈을 반짝였다.
그런 일리아나를 보며 오스틴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우리 힘으로 조사를 하면 안 되는 겁니까?”
“안 되는 건 아닌데.”
일리아나가 지원비가 들어 있는 지갑을 흔들었다.
“기왕 돈도 빵빵하게 받았겠다. 편하게 임무 실습을 하면 좀 좋니?”
“제르딩거의 기사로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르딩거의 기사의 덕목은 첫째, 성실이며. 둘째, 도덕이며. 셋째…….”
“아! 시끄러워! 라덴 가문의 덕목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임무 실습인데 놀 생각을 하는 건…….”
오스틴이 어떻게든 일리아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런 오스틴을 보며 일리아나가 환하게 웃었다.
“오스틴. 너희 도련님이 작년에 학생회장이 되었을 때 지금 부학생회장인 하르크 선배님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니?”
“뭐라고 하셨습니까?”
“까라면 까.”
“…….”
오스틴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일리아나가 멘토로서 부족한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훌륭한 편이다.
잘 가르쳐주고 잘 지도해 준다.
하지만 이렇게 폭주할 때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자, 따라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일리아나가 오스틴과 함께 레오의 뒤를 쫓았다.
“그나저나 쟨 뭐 저렇게 아저씨 같은 표정을 짓는대?”
일리아나는 레오의 표정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골목에 들어선 일리아나와 오스틴은 레오의 뒤를 쫓았다.
골목에 갈림길에 나올 때면 뒷골목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레오가 간 방향을 물어가며 순조롭게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입구?”
뒷골목에 뭔가 입구 같은 게 나타났다.
마치 구역을 나누는 듯한 커튼이 처져 있는 입구를 바라보며 일리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막 입장하려 할 때.
“킬킬킬. 여긴 너희같이 머리에 피도 덜 마른 꼬맹이들이 올 곳이 아니란다.”
입구에 선 노파가 괴팍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일리아나가 팔짱을 꼈다.
“방금 전에 우리랑 비슷한 복장을 한 애가 여길 지나갔죠?”
“그 도련님이라면 지나갔지.”
“우린 걔 뒤를 쫓고 있어요.”
일리아나가 턱을 치켜들었다.
“걔가 갔다면 우리도 들어갈 수 있다는 거죠?”
“그렇기는 하지. 여긴 사람을 가려 받는 곳이 아니니까. 다만…….”
노파가 슥- 일리아나와 오스틴을 바라보았다.
“꼬마들이 오기에는 자극이 심할 텐데.”
끌끌- 웃는 노파를 보며 일리아나가 훗- 하고 웃었다.
“할머니. 전 이래 봬도 다 큰 아가씨랍니다. 순진한 거랑도 거리가 멀어요. 흥! 자극이 심해봤자 얼마나 심하다고.”
일리아나는 당당하게 입구 커튼을 열고 들어갔다.
오스틴은 그런 일리아나를 쫓아가려 할 때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일리아나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배님!”
흠칫한 오스틴이 다급히 검을 뽑고 입구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화악-!
전속력으로 일리아나가 커튼 바깥으로 달려 나왔다.
목까지 빨개진 일리아나가 어버버버버버- 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배님! 무슨 일이십니까!”
“나, 남자랑! 여, 여여여자가! 길 한복판에서어어어어억!”
문화 충격을 받았는지 횡설수설하는 일리아나를 보며 노파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약에 취한 것들이 하필 입구에 있었던 모양이군.”
“여긴 대체 뭐예요!”
붉어진 얼굴로 일리아나가 묻자 노파가 답했다.
“환락의 성이 자리 잡은 환락의 거리지.”
킬킬킬 노파가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낙원. 너희 같은 아가씨나 도련님들이 올 곳이 아니란다. 뭐 그 도련님은 태연하게 걸어가긴 했지만.”
오스틴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일리아나가 중얼거렸다.
“반장이 아저씨 같은 표정을 지었던 이유가 설마……!”
“선배님. 도련님은 그저 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을 뿐일 겁니다.”
오스틴이 레오를 변호했지만, 일리아나는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