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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72화 (372/483)

372

왕좌에 앉은 초로의 중년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루메른에서도 학생들이 입국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폐하.”

“무례하기 짝이 없군!”

쾅-!

엘레헴의 국왕, 비히르 3세는 거칠게 왕좌의 팔걸이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감히 나를 의심하고 나의 땅을 함부로 조사를 한단 말인가!”

격노를 드러내는 비히르 3세를 보며 신하들이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엘레헴.

최대 빈민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곳에서는 불법인 온갖 일들이 합법인 나라이다.

나라에 수많은 백성은 도태되고 굶어 죽는 생지옥도가 펼쳐져 있다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 무시 받는 왕.

그러나 엘레헴에서 만큼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통치자였다.

나라 전체를 도탄으로 밀어 넣어 손에 넣은 부와 권력.

그리고 그 부와 권력에 꼬인 귀족들.

엘레헴은 곧 왕의 말이 법이고 진리였다.

그러나 그러한 엘레헴 왕의 권력은 루메른에 통하지 않는다.

국외에서 제대로 된 국가 취급도 받지 않는 엘레헴의 왕과 다르게 루메른은 범국가적인 단체.

세계를 이끌 영웅 후보생을 육성하는 곳이며 그곳의 학생들은 각 국가의 미래라 불린다.

무수히 많은 나라의 재능 넘치는 학생들이 모인다.

그중에는 엘레헴을 지도상에서 지울 수 있는 힘을 지닌 가문의 자제들도 무수히 많다.

비히르 3세는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 수백 명의 인간이 이 땅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굉장한 짜증을 느꼈다.

눈치를 보던 귀족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루메른의 학생들이 왕궁에 들러 왕궁 마법사들과 이야기를 하러 갔…….”

확! 챙그랑!

“이익! 그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내 땅에 함부로 발을 들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더러운 발로 나의 성까지 침입했단 말이더냐!”

와인이 담겨 있던 황금 잔을 집어 던지며 비히르 3세는 더욱 큰 분노를 토해냈다.

“네놈들은 대체 무얼 하는 것이냐! 이 나라의 귀족들이! 나의 신하란 자들이 그 무엄하기 짝이 없는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이 함부로 하게 둔단 말이더냐!”

비히르 3세의 일갈에 귀족들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다.

루메른이 이번에 학생들을 파견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영웅 던전 탐색’ 이다.

히어로 레코드는 영웅 사관 학교들의 소유다.

그리고 영웅 던전의 방치는 세계를 위협할 수 있는 일이자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그렇게 회수한 영웅 던전을 영웅 사관 학교는 사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없다.

그렇기에 어느 나라든 루메른이 영웅 던전을 탐색하는 걸 막을 권한이 없다.

이건 암룰적인 룰 같은 것이 아니다.

3000년 전.

개벽의 용이라 불렸던 로디아가 세계의 모든 영웅과 왕들을 모아 놓고 규정한 ‘세계의 법’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 말을 할 수 있는 귀족은 없었다.

말을 하는 순간 머리가 잘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귀족들이 눈치를 보고 있을 때였다.

“진정하시죠, 국왕 폐하.”

“크흠! 에버른 공.”

회의실로 들어선 청년의 말에 비히르 3세의 분노가 누그러들었다.

그의 등장에 귀족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델레안 에버른.

5년 전 엘레헴에 정착하여 빠르게 비히르 3세의 최측근의 자리에 오른 남자.

그리고 델레안은 안하무인인 비히르 3세가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존중하는 자이기도 했다.

델레안은 10년 전 루메른의 졸업생.

수백 년 동안 루메른의 졸업생은 고사하고 입학생조차 배출하지 못했던 엘레헴은 무려 루메른 졸업생이라는 인재를 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델레안의 존재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엘레헴의 국정에 깊게 관여하는 건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아는 사실이었다.

비히르 3세를 유일하게 진정시킬 수 있는 자의 등장은 귀족들로서도 환영이었다.

“루메른의 무례함은 루메른의 졸업생인 제가 잘 알고 있죠.”

델레안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루메른을 막을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곧 그들이 법이라고 생각을 하는 자들이니 말입니다.”

델레안의 말에 주먹을 틀어쥔 비히르 3세의 손이 떨렸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

델레안이 예법을 갖추어 인사했다.

“그들은 고작해야 1, 2학년의 애송이들일뿐. 절대 폐하의 보물에 도달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 말에 비히르 3세의 얼굴이 풀어졌다.

엘레헴이 숨기고 있는 영웅 던전 공략을 주도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델레안이었다.

아무리 수백 명이 조사를 하기 위해 알레헴을 찾았다고 해도 그들은 고작해야 1, 2학년.

그리고 그 영웅 던전을 감춘 건 무려 루메른의 졸업생이다.

실력의 격차는 누가 보더라도 훤했다.

“그런데 루메른의 2학년 중에는 학생회장, 레오 플로브가 있지 않은가?”

비히르 3세의 얼굴에 또다시 불편한 기색이 드리웠다.

“레오 플로브, 확실히 괴물 같은 후배 녀석이라고는 들었습니다.”

델레안이 빙긋 웃었다.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2학년일 뿐입니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말이죠.”

“흠. 델레안, 그대만 믿겠네.”

얼굴에 안심한 기색이 떠오른 비히르 3세를 보며 델레안이 빙긋 웃었다.

“제가 엘레헴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드리겠습니다.”

***

환락의 거리를 빠져나온 레오는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라르엘은 빛의 대정령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이 나라의 뒷세계의 한 축인 환락의 성의 주인으로서 활동해 왔다.

‘영웅 던전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어요. 하지만 이 나라가 최소한 5년 전부터 수상한 움직임을 보여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환락의 성의 주인으로서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레오가 메인 스트리트에 도착했다.

“레오 오빠. 레오 오빠는 어느 곳을 숙소로 잡았어? 난 아직 숙소를 안 잡았거든.”

첼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런 첼시를 보며 일리아나가 ‘앗!’ 하고 소리쳤다.

“첼시! 너 반장이랑 파티를 맺어서 이번 과제를 날로 먹으려는 거지?! 선수치지마! 반장이랑 파티는 내가 맺을 거야!”

“내가 너냐?”

“그런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던 거야?”

일리아나의 외침에 첼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클로에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일리아나는 ‘헙!’ 하며 입을 가렸다.

“5반 애들은 레오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강하네.”

클로에가 팔짱을 끼며 빙긋 웃었다.

“우리 1반은 아닌데.”

1학년 당시 라이벌이었던 1반과 5반은 툭하면 경쟁을 하곤 했다.

1반 담임이었던 세드젠이 타도 할린드를 외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1반 역시 5반을 상대로 지지 않으려 했다.

5반은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결국에는 경쟁이 붙어 버렸다.

1반에는 셀리아가 있었기에 첼시가 질 수 없다며 친구들을 들들 볶은 영향도 적지 않았다.

기숙사 간의 경쟁이 된 지금에 와서도 1반 출신과 5반 출신 사이에선 미묘한 경쟁의식이 남아 있었다.

클로에의 말에 첼시가 흥-! 코웃음을 쳤다.

“저 바보랑 똑같은 취급 하지 말아 줄래?”

“맞아. 우리라고 다 일리아나 같은 건 아니거든.”

“야! 칼! 네가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너도 반장이랑 파티를 맺어서 묻어가려는 거 아니야?”

일리아나는 칼의 말에 발끈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칼은 떳떳했다.

“오우~ 노노. 내가 설마 그런 비열한 짓을 할 리가?”

고개를 저으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임무 실습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 바로 정보 수집이잖아? 내 특기 분야라고.”

칼이 손가락으로 자기 턱을 바치며 씩 웃었다.

“임무 실습 중에 협력 요청을 많이 받았거든. 그래서 클로에랑 이미 파티를 맺었지. 누구누구랑 다르게.”

“크윽!”

반박할 수 없는 말에 일리아나가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기왕 이렇게 모인 거 정보 공유라도 하지 않을래?”

“환락의 거리에서 정보를 얻었어?”

“응. 굉장히 유용할 거야.”

“좋아, 그럼 레오의 숙소에 모여서 회의를 하는 걸로 하자.”

칼의 말에 첼시가 말했다.

“내가 사역마로 레오 오빠의 숙소를 알려 줄게. 다들 멘티를 데리고 와.”

첼시가 마법을 통해 사역마를 칼과 클로에에게 건넸다.

그렇게 해산하려고 할 때였다.

“헤헤헤헤, 첼시 아가씨.”

일리아나가 손바닥을 비비며 첼시 앞에 섰다.

“저한테는 사역마를 안주셨는 데요?”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귀엽게 웃는 일리아나를 보며 첼시가 말했다.

“넌 쓸모 없잖아.”

“우린 같은 5반이었잖아. 절친에 그 정도 인정도 못 베푸는 거야?”

“응.”

“반장! 애들이 나만 따돌려!”

첼시의 냉정한 태도에 일리아나가 레오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쉰 첼시가 일리아나에게도 사역마를 건넸다.

***

“레오 선배님! 어서 오세요! 첼시 선배님도 같이 오셨네요.”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루크는 레오와 첼시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 루크를 보며 첼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숙소를 이런 곳에 잡았어?”

그런 첼시의 반응에 루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방마다 개인 샤워실이 있는 숙소는 너무 사치스러운 걸까요?”

루크는 깨끗하고 쾌적한 호텔을 숙소로 잡았다.

그리고 장점은 그게 끝이었다.

온갖 호화스러운 숙소가 널린 거리에서 이 숙소는 지나치게 초라해 보이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골 출신인 루크에게는 이것만으로 지나치게 큰 사치였다.

“여기요, 서비스로 음료가 공짜예요!”

루크는 두 사람에게 음료수를 떠놔 건네주었다.

첼시가 그런 루크를 조금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였다.

“루크, 넌 라운지에서 기다리다가 클로에, 칼, 일리아나가 오면 내 방으로 같이 와. 첼시 너도 씻고 오고.”

“응.”

“네.”

그 말을 남기고 레오는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며 말했다.

“라르엘, 이 나라에서 5년 전부터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건 무슨 뜻이지?”

-그 말 그대로예요. 왕궁에서 은밀하게 특정 지역을 탐색하고 있어요.

“어디지?”

-이곳 우아르겔라의 지하, 그리고 마물의 숲이에요. 아마 영웅 던전은 마물의 숲에 있을 거예요.

솨아아아-!

라르엘의 말에 레오가 머리를 감으며 의아한 듯 물었다.

“영웅 던전이 마물의 숲에 있다는 건 어떻게 확신하지?”

-우아르겔라의 지하에 뭐가 있는지 전 알거든요.

“뭐가 있는데?”

-로디아의 보물고가 존재해요.

그 말에 레오가 멈칫했다.

샤워실을 나선 레오가 수건으로 몸을 닦고 하의를 입은 후 가운을 걸쳤다.

“로디아의 보물고?”

-네. 로디아가 제 맹약자가 될 이를 위해 남긴 보물고죠.

“흐음.”

레오가 턱을 쓰다듬을 때였다.

똑똑-

“레오 오빠, 나왔어.”

첼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벌컥-!

“레오 오빠, 이 호텔 욕실 별로 마음에 안 들어. 뜨거운 물이 안 나와서 내가 마법으로 귀찮게…….”

툴툴거리며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던 첼시가 멈칫했다.

방 내부는 은은한 달빛이 들어와 어두컴컴했다.

그런 달빛을 등진 레오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있었다.

가운 사이로 가슴팍의 탄탄한 근육이 보였다.

겉모습은 여리여리해 보이는 미소년이지만 실전과 훈련으로 다듬어진 레오의 몸은 남성미가 있었다.

“확실히 오라버니와는 다르네.”

첼시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남매인 만큼 남들은 볼 수 없는 아바드의 풀어진 모습을 자주 접했던 첼시다.

레오가 풍기는 분위기는 아바드와는 확연히 달랐다.

호오- 호오- 감탄사를 터트리는 첼시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해?”

“아니, 늘 마법 공부를 같이해서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럴 때 보면 레오 오빠가 기사로서 굉장한 단련을 했다는 게 느껴져서.”

레오에게 다가간 첼시가 말했다.

“근육 만져 봐도 돼?”

순수한 호기심 어린 질문에 레오는 헛웃음을 터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콕콕-

“와,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네. 남자는 이런 느낌이구나.”

레오의 팔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탄성을 내지르던 첼시의 시선이 레오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왜인지 모르게 만져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휩쓸렸다.

‘근육 만져 봐도 된다고 했으니까 살짝 만져 봐도 괜찮겠지?’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레오의 가슴 근육에 손을 올려보았다.

팔과는 또 다른 느낌에 신기해하던 첼시는 문득 이 상황이 남이 보면 꽤 민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티 내면 분위기만 이상해질 것 같아.’

첼시는 붉어지려는 얼굴을 숨기며 태연한 척 레오에게서 손을 떼고 할 때였다.

“레오! 나왔다!”

벌컥-!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칼이 방 안의 풍경을 보고는 굳어버렸다.

방 안의 분위기는 묘했다.

머리카락이 젖은 채 가운을 입고 있는 친구.

그리고 그런 친구의 팔과 가슴팍을 만지고 있는 또 다른 친구.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칼이 고개를 숙였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끼익-!

칼이 문을 닫으려 할 때였다.

화악-!

돌풍이 불어닥쳤다.

나가려던 칼은 첼시의 마법에 의해 방 안으로 강제로 끌려 들어왔다.

“그런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하던 거 마저 하시면…….”

“그런 거 아니라고. 그냥 궁금해서 만져 본 것뿐이야.”

첼시는 냉정함을 유지한 채 오해를 풀기 위해 상황을 설명했다.

“변명 안 해도 돼. 비밀은 지킬 테니까. 어두운 방에서 같이 있었다는 건 죽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안 할게.”

“그러니까 네가 오해한 거야.”

“네가 젖은 레오의 몸을 더듬고 있는 장면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뭐가 오해란 거야? 조금 섭섭해지려고 하네. 우리 셋은 절친이잖아? 나한테까지 비밀로 할 필요는 없어.”

“나랑 레오 오빠가 서로 땀에 젖은 모습을 보는 게 어디 한두 번인 줄 알아?

“헉! 너희 대체 언제부터…….”

“그러니까 훈련 얘기라고! 저질스러운 생각 하지 마!”

침착함을 애써 유지하던 첼시가 결국 폭발했다.

“요즘 애들은 조숙하네.”

레오가 머리를 마저 말리며 중얼거리자 엘시가 한숨을 쉬었다.

-레오가 너무 무방비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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