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
뚜벅- 뚜벅-
옷을 차려입고서야 지하 카지노, 쉐도우에 입장하게 된 일행은 계단 위에 섰다.
우웅-!
마석에 의해 자동으로 아래로 움직이는 계단을 보며 첼시가 흐응- 거리며 중얼거렸다.
“돈이 어지간히 많은가 보네. 출입 계단부터)이렇게 만들어 놓은 걸 보면.”
“그러게나 말이다. 천장을 좀 봐.”
칼이 천장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황금을 발라놓은 듯 번쩍거리는 천장엔 값비싸 보이는 보석이 별처럼 박혀 있었다.
보석들 사이에 환한 빛을 내뿜는 마석등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너무 노골적으로 돈 있는 티를 내서 오히려 천박해 보일 지경이네요.”
“동감이야.”
베티의 말에 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클로에는 선두에 선 채 생각에 잠긴 레오에게 물었다.
“이 지하 카지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정확하게는 이곳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로디아의 보물고였다.
라르엘의 말에 의하면 로디아의 보물고로 가는 길에는 미궁이 있다고 했다.
‘이 카지노는 그 미궁 위에 만들진 거라고 했어.’
보물고 내부에는 무엇이 있냐는 레오의 질문에 라르엘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로디아가 그곳에 무엇을 남겼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어요. 다만 세이룬의 코메테스처럼 영웅의 세계에서 얻었던 공략 보상이라는 건 알아요.’
레오는 자신의 아공간 속에 잠들어있는 코메테스를 떠올렸다.
루나와 세이룬의 마력을 동시에 품은 현존하는 최강의 마도 지팡이.
개벽의 영웅들의 리더라 할 수 있는 로디아가 남긴 물건인 만큼 그 코메테스에 버금가는 물건일지 몰랐다.
‘일단 미궁으로 가려면 이 카지노를 지날 필요가 있다는 건데.’
덜컹-!
뚜벅- 뚜벅- 뚜벅-
계단이 멈추었다.
레오 일행 복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화려했던 입구와는 달리 마석등 하나 보이지 않았으며 복도 끝 빛이 새어 나오는 문만이 보일 뿐이었다.
“쉐도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문을 지키고 있던 이들이 일행에게 인사를 하며 문을 열었다.
화악-!
밝은 빛에 모두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안에서 펼쳐진 광경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문 너머의 인테리어는 마치 사교 장의 로비를 연상시켰다.
로비 너머의 홀에서는 악단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급사들이 우아한 걸음걸이로 오갔다.
“생각했던 거랑 분위기가 다르네.”
클로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법 카지노라는 말에 내심 긴장했던 이들은 맥이 풀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오는 로비의 카운트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카운트에 서 있던 정장을 입은 여성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객님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 있으시다면 카운트에 올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안내 직원의 말에 일행은 품에서 루메른 학생증을 꺼냈다.
학생증을 받은 안내 직원은 학생증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고는 데스크 밑으로 손을 가지고 가더니 아홉 개의 작은 함을 카운트 위에 올려 두었다.
“차례대로 루크님, 오스틴님, 베티님, 쥬엔님, 일리아나님, 칼님, 첼시님, 클로에님. 그리고 레오님의 것입니다.”
상자 위에 각각의 학생증을 올려놓은 안내 직원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일행은 의아해하며 상자를 집어 든 다음 학생증을 갈무리하고 상자를 열었다.
딸칵-
“카드?”
“백금 같은데요?”
“와, 여기 박혀 있는 거 다이아몬드야?”
“반장 것만 색깔이 다르네. 반장 건 블랙이야.”
“저희 매장의 회원 카드입니다. 아홉 분 모두 루메른 학생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루크님, 오스틴님, 베티님, 쥬엔님, 일리아나님은 플래티넘 등급이시며 칼님, 첼시님, 클로에님은 다이아 등급이십니다.”
그 말에 모두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VIP 등급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오스틴의 물음에 안내 직원은 웃는 얼굴로 말을 일었다.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 등급이 있습니다.”
그 설명을 들은 일리아나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질문이요. 반장은 왜 등급에 없죠? 그리고 난 플래티넘인데 왜 얘들은 다이아인 거예요?”
“영웅 사관 학생분들은 기본적으로 플래티넘 등급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명성과 학교 성적에 의해 더 높은 등급으로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그럼 얜 왜 다이아인 거예요?”
일리아나가 가리킨 건 칼이었다.
“칼 토마스님께서는 신의 대장장이의 세계를 공략한 이력이 있어 다이아 등급을 드렸습니다.”
“풉…… 일리아나. 2학년 중에는 너만 1학년들이랑 동급이네.”
“이익! 칼 주제에!”
“어허! 어딜 감히! 플래티넘이 다이아님께 그런 말을 함부로 쓰느냐!”
“너! 거기서!”
자신을 약 올리는 칼을 보며 발끈한 일리아나가 덤벼들었다.
칼은 그런 일리아나를 피해 달아나며 얄밉게 약 올렸다.
“받아랏!”
그에 일리아나가 신고 있던 힐을 벗어 던졌다.
부메랑처럼 날아간 힐이 정확하게 칼의 관자놀이에 꽂혔다.
“레오 플로브님께서 VIP 등급에 없는 이유는 저희가 감히 등급을 매길 수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런 분들을 가리켜 ‘킹’ 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킹 등급을 받나요?”
쥬엔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묻자 잠시 고민하던 안내 직원이 밝게 웃었다.
“일국의 왕에 버금가는 신분과 위상을 지닌 분들께 킹 등급이 부여되십니다.”
모두가 입을 뻐끔거렸지만, 첼시와 클로에는 납득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루메른 학생회장이니까.”
“대외적인 위상은 어지간한 영웅 명가의 가주나 왕에 버금가잖아.”
어깨를 으쓱하는 두 사람을 뒤로한 채 레오가 물었다.
“그래서, 높은 등급을 받아서 좋을 게 뭐죠?”
레오가 카드를 흔들며 묻자 안내 직원이 빙긋 웃었다.
“VIP 등급별로 저희 매장에 출입할 수 있는 구역이 있습니다. 킹 등급의 경우에는 출입 불가 지역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요? 그러면 지하에도 갈 수 있습니까?”
“지하……? 이곳이 지하입니다만?”
“여기 보다 더 지하를 말하는 건데요.”
레오는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안내 직원이 이내 빙긋 웃었다.
“해당 문의 사항에 대해서는 제 선에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저희 매장 마스터와 면담을 가지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면담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저희 매장에서 이용되는 포인트로 1억 포인트를 일시불로 지불하시면 됩니다.”
“실링을 포인트로 환전하는 것도 가능하나요?”
“예. 가능합니다. 1포인트에 1실링입니다.”
“커헉?”
“흡?!”
“그럼…… 1000만 골링?!”
천문학적인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칼이 판매하는 피로회복포션이 한 병당 5실링.
그리고 1골링에 10실링이다.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방법은?”
“저희 매장에서 일어나는 이벤트에 참여해서 포인트를 버는 방법도 있습니다.”
“도박을 하라는 건가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저희 매장에는 도박 이외에 포인트를 벌 수 있는 수단이 무궁무진하게 있습니다. 이곳은…… 세계의 그림자 속이니까요.”
위험해 보이는 미소에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칼이 팔짱을 꼈다.
“우리가 지원금으로 받은 금액이 1인당 2000골링이니까…… 진짜 택도 없네.”
거기까지 말한 칼이 슥- 첼시와 쥬엔을 바라보았다.
“뭘 봐?”
“부잣집 아가씨들 재력을 빌리면 안 될까?”
“넌 1000만 골링이 누구 집 개 이름인 줄 알아?”
첼시의 말에 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긴.”
모두가 고민할 때였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즐기시죠. VIP 고객에게는 플래티넘 등급에 1만 포인트, 다이아 등급에 2만 포인트, 킹 등급에 5만 포인가 지불 됩니다.”
그 말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돈, 환전해서 나가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쾌활하게 대답하는 안내 직원을 보며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이곳에 입장한 것만으로도 일반인들은 함부로 만질 수 없는 돈을 손쉽게 얻었다.
“다른 학생분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방법 아닐까요?”
“그것도 그렇기는 한데…… 과연 인정을 해 줄지는 의문이네. 이곳에서는 이곳의 마스터가 곧 법일 테니까.”
루크의 말에 베티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들어가서 생각하자. 나 아침도 안 먹어서 배고파.”
일리아나는 홀에 차려진 뷔페를 보며 말했다.
“그래, 일단 먹고 생각 해보자!”
***
홀에 마련된 뷔페에는 온갖 고급 음식이 한가득이었다.
급사들은 분주히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고급 와인과 샴페인을 권했다.
일리아나가 그걸 받으려 하자 클로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린 학생이야. 술은 안 돼.”
“에이! 기왕 이런 데 왔잖아! 쩨쩨해!”
일리아나가 항의하자 클로에가 더욱 강경하게 말했다.
“더 안 돼. 우린 임무 때문에 이곳에 온 거라고.”
그 말에 일리아나는 어쩔 수 없이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쥬엔.”
“쳇, 범생이 같으니라고.”
쥬엔은 몰래 샴페인 한잔을 마시려다가 동급생 베티에게 걸렸다.
그런 가운데 카지노를 갔다 온 레오와 칼이 돌아왔다.
“와, 여기 도박장은 도박장이다.”
“무슨 소리야?”
“봐. 홀에 아무도 없잖아.”
귀족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홀에는 누구도 없었다.
“전부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고 있어.”
칼이 혀를 내둘렀다.
“보아하니 다들 신분들이 꽤 높은 것 같은데…… 눈이 맛이 갔어. 너희들, 카드 절대 보여주지 마. 돈 좀 빌려 달라고 하니까.”
칼은 자신에게 구걸하던 노신사를 떠올리며 얼굴을 구겼다.
기분이 굉장히 찝찝해지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포인트를 벌 방법은 알아 왔어?”
“응.”
칼이 팔짱을 꼈다.
“뭔데?”
“투기장.”
“뭐?”
“이 카지노에는 투기장이 있데. 힘 좀 쓰는 녀석들은 거기서 돈을 번대.”
“뭐야? 간단하네. 우린 루메른 학생이니까.”
일리아나가 잘됐다는 듯 말했다.
“아니, 전혀.”
“뭐?”
“이 카지노 투기장에는 ‘규칙’ 이 있어. 기본적으로 ‘마나 사용 금지’ 야. 마나 구속구를 달아.”
그 말에 일리아나가 멈칫했다.
“상대 역시 알 수 없어. 같은 손님끼리 싸울 수도 있고 혹은 마물이나 몬스터와 싸우기도 해. 그리고 심심치 않게 죽는데.”
그 말에 모두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것 말고는?”
“미궁 탈출 릴레이도 있고 체스도 있어.”
“체스라면 클로에가 있잖아.”
첼시가 클로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루메른의 체스 챔피언이다.
“지하 세계인 이상 위험한 무언가가 있겠지.”
레오가 팔짱을 꼈다.
“일단 이 카지노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정 안 된다면 포기하는 법도 방법이지.”
‘다음에 나 혼자 침입을 해도 되고.’
루메른 학생으로서 영웅 던전을 탐색하러 왔다.
그리고 이곳에는 영웅 던전이 없다.
그런 이상 깔끔하게 손을 떼고 의심스러운 마물의 숲으로 가면 된다.
레오에게 있어 로디아의 보물고는 당장 급한 건 아니었다.
레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 뒤에, 홀에서 다시 모이자.”
레오의 말에 루크가 손을 들었다.
“선배님, 포인트는 어떻게 할까요?”
“정보 수집에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니면…….”
레오가 힐끗 카지노 내부를 보았다.
“게임을 해보던가.”
“야, 레오! 도박을 하라니.”
의외의 말에 학생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기왕 이곳에 왔으니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우와, 뭔가 못된 아저씨 같은 말이다.”
첼시가 살짝 야유를 날렸다.
피식 웃은 레오가 첼시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영웅으로서 세상의 어둠을 알아보는 것도 공부라고 나는 생각해.”
***
일행과 헤어진 레오는 카지노 내부를 걸어 다녔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온갖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환호성을 내지르거나 절규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곳은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옅볼 수 있는 심연이었다.
뚜벅- 뚜벅-
걸음을 옮기던 레오가 슥- 고개를 들었다.
‘날 지켜보는 것 같은데?’
천장 곳곳에 박힌 마석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 ‘감시용’ 마석일 것이다.
그 마석을 통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보통은 마법을 통한 시선은 느끼기 거의 힘들다.
하지만 레오의 감각은 남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예리했다.
걸음을 옮기던 레오는 어떤 방 앞에 멈춰 섰다.
검은색 문에 황금색 왕관 모양이 박혀 있었다.
문지기로 보이는 수인들이 그런 레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곳은 ‘킹’ 만 입장 가능한 공간입니다.”
그 말에 레오는 품에서 카드를 꺼냈다.
그걸 확인한 문지기들이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선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희미한 조명 아래 언뜻언뜻 실루엣이 보였다.
인기척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환영합니다. 손님.”
그때 옆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는…….’
목소리에는 미묘한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검은 토끼 귀 머리띠를 한 소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는 이곳에서 손님을 모시게 된 래빗 입니…….”
고개를 든 소녀의 복장은 묘했다.
호수를 연상시키는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순백의 머리카락.
그 덕에 검은 토끼 귀 머리띠가 더욱 부각 되었다.
하지만 더욱 부각 되는 건 머리띠를 걸고 있는 ‘고양이 귀’ 였다.
검은 토끼 복장을 한 소녀는 레오를 보며 우지직 굳었다.
고장 난 고양이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소녀를 향해 레오가 물었다.
“너 여기서 뭐 해?”
그 물음에 소녀, 아르는 망설임 없이 도망치려했다.
레오는 손을 뻗어 그런 아르의 꼬리를 붙잡았다.
“숙녀의 꼬리를 함부로 잡는 거 아니라니까아아아아!”
털을 거꾸로 세운 아르가 하악질을 하듯 레오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여기서 뭘 하냐고.”
자신이 검은 토끼가 된 아르는 자신의 꼬리를 품에 안은 채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내 가슴을 쫙 펴고 말했다.
“일하고 있어!”
“왜?”
“빚 갚으려고!”
“…….”
레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서 빚이라면 하나뿐이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도박 빚이야?”
“응!”
너무도 당당한 아르를 보며 레오가 중얼거렸다.
‘우리 학교 애들은 얘처럼 바보가 아니어야 할 텐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