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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80화 (380/483)

380.

도벨라.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 엘레헴에서 유일하게 초목이 우거진 도시.

원래라면 엘레헴 안에서도 가장 발전된 도시여야 할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도벨라는 이 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이었다.

도벨라의 지형적 위치 때문이었다.

아무리 초목이 우거졌다 한들 그 초목이 마물의 숲의 것이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숲에서는 몬스터의 습격이 잇따른다.

마물의 습격을 저지하지 않으면 도벨라 뿐만이 아닌 나라 자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었다.

엘레헴의 중앙 정부에서는 도벨라라는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금전적 원조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중앙 정부의 지원은 그뿐이었다.

나라 전체가 도탄에 빠져도 신경 쓰지 않는 엘레헴 왕실이다.

그들 입장에서 도벨라는 애물단지에 불과했으며 그저 최소한의 비용으로 도벨라가 무너지지 않는 금전적인 원조만 할 뿐.

그 이상의 관리는 하지 않았다.

도벨라는 자연스럽게 용병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목숨이 오가는 마물과의 전투에 임하는 용병들의 삶은 한탕주의가 강했다.

그런 용병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방치된 도시의 치안은 하락했다.

막장으로 치달은 엘레헴에서도 도벨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도벨라의 성벽 바깥.

우지지지직! 쿵-!

거목이 쓰러졌다.

그워어어어어어!

“오, 오우거?!”

상위 몬스터인 오우거 무리의 등장에 용병들이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마물의 숲에서 먹이 사슬 최상위에 위치해 있는 몬스터는 트톨이다.

트롤 역시 무시무시한 몬스터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숙련된 용병들이라면 간단하게 토벌이 가능한 몬스터.

하지만 오우거는 트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괴물이다.

일반적인 강철 검으로는 피부조차 뚫을 수 없을 정도로 질겼으며 힘은 거대한 바위를 간단하게 집어 던질 정도로 강력하다.

압도적인 내구성과 힘.

평범한 용병들에게 있어서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원래는 마물의 숲에 존재하지 않은 괴물의 등장에 수많은 용병이 패닉에 빠져 후퇴했다.

저벅-

“다들 자신들만 믿으라고 잘난 척들을 하더니.”

뒤로 도망치는 용병들 사이로 한숨을 쉰 소녀가 오우거들 앞으로 나섰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들과 다른 아름다운 소녀가 스릉- 검을 뽑았다.

화륵-!

그녀의 몸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화악-!

소녀, 마르티나를 향해 돌격하던 오우거 한 마리를 불꽃의 오러가 양단시켰다.

쿠웅-!

반으로 갈라져 죽은 오우거가 그대로 쓰러졌다.

“오오오오!”

그걸 본 용병들이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때 금빛 섬광이 번뜩였다.

콰가가각-!

엄청난 속도로 오우거 사이를 누빈 금발의 소녀는 바닥에 착지하고 빙글 돌아섰다.

“우오오오오오!”

용병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런 용병들의 환호성도 오래가지 못했다.

“둘 다 제법이네.”

레이피어를 쥔 소녀, 셀리아가 빙긋 웃으며 오우거들에게 다가갔다.

우아하게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셀리아가 레이피어를 고쳐 쥐었다.

탁-!

“마무리는 내가 해 볼까?”

화르륵-!

그녀의 몸에서 마르티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온의 불꽃이 아른거렸다.

루메른 2학년 기사학과 최강자 중 한 사람의 등장에 용병들이 절규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셀리아 아가씨!”

“제발 나서지 말아 주세요!”

“으아아아아악! 모든 걸 잿더미로 만드는 재앙이다!”

호들갑을 떠는 용병들을 보며 셀리아의 얼굴이 구겨졌다.

“셀리아 선배님까지 나설 필요는 없으세요. 마르티나. 너도 마찬가지야.”

고오오오-!

금빛 오러가 아이나의 몸을 휘감았다.

“여기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

콱-!

아이나의 발이 땅을 움푹 파고들었다.

무릎을 굽힘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오우거를 향해 돌격했다.

아이나의 검이 번뜩이자 오우거들의 목이 날아갔다.

“여, 역시 검성의 혈통은 다르군.”

“저 어린 나이에 오우거들의 목을 두부 자르듯 숭덩숭덩 자르다니.”

“몬스터 보다 더 무서울 정도야.”

수군거리는 용병들을 보며 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이나는 단 하루 만에 용병들 사이에서 두려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건 단순히 그녀가 압도적인 힘으로 몬스터들을 토벌했기 때문이 아니다.

제르딩거의 불꽃은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훨씬 알맞은 힘.

몬스터를 토벌한 숫자로 본다면, 셀리아 쪽이 더 위다.

그런데도 아이나가 두려움의 대상이 된 항상 몸에 살기를 내뿜기 때문이었다.

몸에 피가 묻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아무리 영웅 후보생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린 소녀가 피를 뒤집어쓴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도살자처럼 몬스터의 목을 베어내는 모습은 섬뜩함 주기 충분했다.

순식간에 오우거 무리를 전멸시킨 아이나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검집에 검을 꽂았다.

터벅- 터벅-

피범벅이 된 채 다가오는 아이나를 보며 셀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용병들은 그런 아이나의 눈을 슬금슬금 피했다.

“아이나, 넌 너무 조급해.”

“…….”

“대체 왜 그런 거니? 1학년 중 넌 최고야.”

“레오 선배님께 인정받지 못한 이상 그런 건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이나가 필요 이상으로 레오에게 인정받는데 집착한다는 걸 셀리아도 알고 있다.

‘레오와 상담을 해봐야겠네.’

셀리아가 한숨을 쉴 때였다.

“아가씨들! 정말 감사합니다!”

용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가씨들 덕분에 우리 용병단은 하루 만에 한 달 치 보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 예.”

셀리아는 멘티인 아이나와 마르티나를 데리고 마물의 숲을 탐색하기 위해 도벨라에 왔다.

그리고 셀리아는 도벨라에서 오래 활동하고 그나마 평판이 괜찮은 용병단을 찾아 계약을 했다.

도벨라에서 오래 활동했던 만큼 체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마물의 숲 지리에도 훤했기 때문에 탐색이 도움이 되었다.

보수는 토벌된 몬스터의 사체였다.

도벨라의 용병들은 토벌한 사체를 증거로 보수를 받는다.

셀리아가 나서려 하자 용병들이 절규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셀리아의 불꽃은 몬스터를 깡그리 불살라 버리기에 사체를 얻을 수 없었다.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영웅 후보생들의 길 안내를 하는 것만으로도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용병단은 세 사람을 열렬하게 환영했다.

“오우거는 오늘 처음 봤다는 말이죠?”

“그렇습죠! 도벨라에서 용병생활을 5년이나 했지만! 오우거는 처음 봤습니다!”

‘역시. 이상 사태가 분명해.’

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뜰 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궁-!

지축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 뭐지?”

“대규모로 몬스터들이 움직이고 있어요.”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은 셀리아가 말했다.

“돈이 절로 들어오는군요!”

용병단 단장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글쎄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예?”

용병단 단장이 당황할 때였다.

화악-!

“안녕, 셀리아.”

“흥. 셀리아인가.”

풀숲을 헤치고 아바드와 듀란이 등장했다.

그 뒤에는 두 사람의 멘티인 프리츠와 하비든, 그리고 용병단 이었다.

“어머! 셀리아 선배. 여기 있었네?”

허공에서는 거대한 독수리 형태의 상급 환수에 탄 1학년 소환학과 탑, 샤샤가 등장했다.

그 옆에는 그녀의 멘토인 워레든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아바드, 듀란은 셀리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용병단을 고용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몬스터 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좋은 장소를 찾다가 셀리아가 있는 쪽으로 온 것이다.

셀리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불꽃 속성인 자신과 다르게 다른 동기들은 몬스터 사체를 남길 수 있기에 얼마든지 싸울 수 있다.

“또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네요.”

셀리아가 새침하게 용병단 단장에게 말했다.

그러자 용병단 단장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셀리아 아가씨께서 나설 차례입니다!”

“예?”

“용병끼리의 규칙. 사냥감은 아무리 함께 잡는다고 해도 먼저 발견한 쪽이 보수를 독차지합니다. 우리가 돕는다고 해도 결국에는 우리에게는 땡전 한 푼도 떨어지지 않죠. 그렇다고 싸움을 피하면 욕만 얻어먹습니다.”

“그래서요.”

“가질 수 없다면 태워야죠!”

“…….”

결국 고생해서 남 좋은 일 시키느니 모든 걸 불태우겠다는 소리였다.

한숨을 쉰 셀리아가 검을 고쳐 쥐었다.

“모조리 불태워 주십시오!”

뒤에서 들린 외침에 셀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

그날 저녁.

셀리아는 도벨라의 중심에 있는 주점에 앉았다.

그 앞에는 낮에 마물의 숲에서 조우했던 아바드, 듀란, 워레든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

팔짱을 낀 듀란이 삐딱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를 불러 모은 이유가 뭐냐, 워레든 타이든.”

이 모임을 주관한 건 다름 아닌 워레든이었다.

“정보 교류가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흥. 별일이군. 네놈이 협력을 요청하다니 말이야.”

“이번 임무 실습은 경쟁이 아니니까.”

아바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협력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건 특이사항을 발견했다는 소리야?”

셀리아의 물음에 워레든이 품에서 검붉은색의 구슬을 꺼냈다.

그걸 본 아바드가 턱을 쓰다듬었다.

“골렘의 핵이군.”

“오늘 마물의 숲에서 골렘 하나가 돌아다니더군. 그걸 처리하고 얻어낸 물건이다. 아바드 르왈린. 너라면 어느 연대의 물건인지 알 수 있겠지?”

워레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아바드가 마력 핵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는 사이 워레든은 셀리아와 듀란을 보며 말했다.

“나는 내 멘티와 함께 오늘 하루 동안 마물의 숲 상공을 정탐했다.”

워레든은 용병단을 따로 고용하지 않고 샤샤와 함께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그 말을 듣고 셀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물의 숲 상공은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어서 비행으로 접근하기 힘든 거 아니었어? 저 버터도 번거롭다며 포기한 걸로 알고 있는데.”

“정령사와 마법사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바람의 마법사가 주변의 대기를 통제한다면 정령사는 주변 대기를 지배할 수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마물의 숲을 정탐하자마자 숲에 이상 사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마물의 숲에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들이 다수 등장했다. 이건 너희도 아는 사실일 거다.”

“그래.”

“그리고 그 몬스터들 모두가 대륙 남부지방 몬스터의 특성을 보였지.”

같은 오우거라도 북부 지방의 오우거와 남부 지방의 오우거는 다른 특색을 보인다.

“남부 지방의 영웅의 세계라는 거야?”

셀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워레든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럼 뭐야?”

“출현한 몬스터들 각각 다른 시대의 특성을 띠고 있었다.”

몬스터는 지능을 가진 괴물이다.

그중에는 높은 지능을 가진 몬스터도 존재한다.

각자의 문화가 있으며 그 문화는 몬스터의 무장 상태를 통해 드러난다.

그렇기에 시대 별로 몬스터의 무장 상태가 미묘하게 달라지곤 했다.

한 곳에 각양각색의 특성을 지닌 몬스터가 등장한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영웅 던전이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리인가?”

듀란의 말에 워레든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이 골렘의 핵이 어느 시대의 물건인지 알아냈어.”

그때 아바드가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느 시대의 물건인데?”

“핵을 구성하고 있는 기초 술식을 해석해 봤을 때, 영웅의 시대 이전의 물건이야.”

“뭐?!”

아바드의 말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재앙의 시대의 물건이란 거야?”

셀리아가 다급히 물었다.

“재앙의 시대 물건은 맞아. 그런데 이 핵이 5000년 전의 시대에서 온 거라고는 장담 못 하겠어.”

“그게 무슨…….”

“이 핵의 마력을 구동시키는 구동 술식은 3000년 전의 거야. 이런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자세한 건 알아봐야겠지만 마법 학계가 뒤집힐만한 대발견이야.”

***

화악-!

밝은 빛과 함께 소녀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드래고니아의 한복판.

소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눈앞에 발견한 [공략 실패]라는 문구를 발견하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곳이구나.”

소녀, 로디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인지했다.

유년기 시절.

아마 자신의 히어로 레코드 가장 첫 번째 페이지일 것이다.

히어로 레코드의 무한한 가능성을 처음으로 확인했던 날.

로디아는 손을 뻗어 나뉘어지지 않은, 온전한 형태의 히어로 레코드로 손을 뻗었다.

위대한 지혜의 왕, 리시나스의 페이지가 펼쳐져 있었다.

로디아가 가장 좋아하는 리시나스의 영웅담.

그렇기에 몇 번이고 공략을 시도했던 페이지.

하지만 끝내 공략하지 못했던 페이지.

로디아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단 한 사람의 부제 때문이다.

“카일님. 그분만이 이 세계를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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