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81화 (381/483)

381.

도벨라의 거리.

전 세계, 수많은 종족의 용병들이 모여드는 곳인 만큼 싸움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도벨라의 거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뭐랄까, 소문으로는 더 험악하고 더러운 동네라고 들었는데.”

“험악하고 더럽긴 커녕 거리가 엄청나게 깔끔한데?”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칼의 말에 첼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래라면 술병이라던가 술에 곯아떨어진 취객, 온갖 오물들로 가득해야 할 거리는 깔끔하다 못해 삭막할 정도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흔한 취객은커녕 술 먹고 술집 내에서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 때문에 그런지 알겠네.”

거리 풍경을 살피던 클로에가 작게 중얼거렸다.

“왜 그런 건가요?”

클로에의 멘티, 베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녀는 클로에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고 자신의 멘토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어 했다.

베티의 물음에 클로에는 손가락으로 특정 건물들을 가리켰다.

번갯불로 그을린 듯한 흔적이 보였다.

그 외에도 자세히 살펴보니 건물 벽과 바닥에 비슷한 흔적이 가득했다.

“왕자님 짓이군.”

“확실히 듀란 성격이라면 이 거리를 보자마자 깔끔하게 청소를 하고도 남지.”

칼과 레오의 말에 쥬엔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듀란 선배님이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건가요?”

그 물음에 레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칼을 보았다.

어느새 칼은 무표정을 지으며 입가를 살짝 일그러트렸다.

그걸 본 쥬엔이 얼굴을 구기며 물러섰다.

“뭐예요, 그 이상한 표정은?”

“알겠다, 누군가의 오만적이고 독선적인 표정이네.”

첼시가 키득거리며 말하자 칼이 듀란의 말투를 흉내 냈다.

“지저분한 거리로군. 당장 내 눈앞에서 더러운 것들을 치우는 게 좋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파지지지직-!”

입으로 듀란이 뇌전의 오러를 내뿜는 효과음까지 내며 양손으로 번개 효과까지 내는 칼을 보며 1학년들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가렸다.

일리아나와 첼시는 대놓고 배를 부여잡고 깔깔 웃었으며 클로에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그 우스꽝스러운 듀란 흉내 내지 말라고 했지?”

“왜, 내가 우리나라 왕자님의 모습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조사해서 만들어낸 개인기인데.”

“듀란 선배님을 왜 철저하게 분석하고 조사한 거예요?”

“우리가 1학년 때 듀란이 소속되어 있던 1반이랑 라이벌이었거든.”

첼시가 킥킥거렸다.

“어느 날 칼이 1반 요주의 인물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면 걔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측할 수 있을 거라며 저러고 다녔어. 셀리아 제르딩거 버전도 엄청 웃겨.”

첼시의 말에 칼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더니 셀리아 특유의 머리 쓸어 넘기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듀란, 시답지 않은 이유로 거리에 피해를 주지 마.”

“흥. 내게 명령하지 마라. 셀리아 제르딩거.”

이제는 아예 1인 2역을 하기 시작한 칼을 보며 1학년들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칼의 성대모사는 묘하게 리얼리티가 있어 닮은 것 같으면서도 엄청난 괴리감을 주어 웃음을 터트리게 하기 충분했다.

칼은 클로에 역까지 1인 3역을 할 수 있었지만 전에 클로에 앞에서 했다가 얼음에 갇힌 적이 있기에 참았다.

제르딩거 가문 소속이자 기사학과인 오스틴은 쓴 미소를 지었고 모든 선배를 하늘같이 생각하는 루크의 경우에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진짜 웃겨! 아하하하!”

“저게 웃기나, 일리아나 라덴.”

“당연하…… 히익?!”

일리아나는 뒤에서 들린 싸늘한 목소리에 기겁했다.

폭소를 터트리고 있던 다른 학생들도 입을 다물었다.

유일하게 첼시만이 배를 부여잡고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흐응? 마법학과 1학년들은 기사학과 선배들이 만만하게 보이나 보네.”

듀란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셀리아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미소 지었다.

그에 쥬엔과 베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학과는 달라도 선배는 선배.

게다가 셀리아와 듀란은 2학년 기사학과 TOP3의 학생들이다.

찍힌다면 학교생활이 제대로 꼬일 수도 있었다.

“엄…… 그러니까, 이건. 엄…….”

지은 죄가 있는 칼은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의 말을 찾으려 할 때였다.

“후훗. 너그럽게 봐줘요.”

레오 곁에 있던 첸 시아가 입가를 가리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에 셀리아와 듀란이 첸 시아를 바라보았다.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칼군이 장난친 거잖아요? 셀리아 양과 듀란 군이 그것도 못 넘어가 줄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요?”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셀리아와 듀란을 진정시켰다.

“그래. 선배잖아. 너그럽게 넘어가 줘.”

레오도 거들자 셀리아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레오, 너까지 그렇게 말한다면야.”

듀란은 서늘한 시선으로 칼을 힐끗 본 다음 코웃음을 쳤다.

“사, 살았다…….”

“그러니까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

안도하는 칼을 보며 클로에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레오가 셀리아와 듀란에게 다가갔다.

“마물의 숲에서 이상 사태가 있다고 들었는데.”

“흥, 정보가 빠르군.”

듀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셀리아가 말했다.

“마침 잘됐네. 학년 탑들에게 도벨라로 와 달라고 요청하려고 했었는데.”

“셀리아. 정말로 마물의 숲에서 영웅 던전의 흔적을 찾은 거야?”

클로에의 물음에 셀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아직 단언할 순 없지만, 영웅 던전이 하나가 아닌 것 같아.”

“뭐?”

“일단 우리가 잡은 거점으로 가자. 우리가 알아낸 정보를 공유해줄게.”

***

“영주성을 거점으로 잡다니, 대체 누구 생각이야?”

“내 생각이다.”

“역시.”

“불만 있나? 칼 토마스.”

“아니, 딱히 없어.”

듀란의 말에 깍지를 낀 손을 머리 뒤에 바치며 칼이 대답했다.

그런 칼을 보며 코웃음을 친 듀란이 턱짓하며 말했다.

“칼 토마스. 클로에와 레오 플로브, 첸 시아와 첼시 르왈린을 데리고 회의실로 와라.”

“예이, 예이. 말씀에 따릅죠. 일리아나는?”

“흥, 일리아나 라덴도 자격은 있겠군.”

그 말을 남기고 듀란은 획 떠나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쥬엔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칼 선배. 듀란 선배가 완전 하인 부리듯 하는데 수긍하시면 어쩌자는 거예요?”

“저 녀석 성격이 저런 걸 어쩌겠어? 쟨 나 말고도 모든 애들한테 저런 태도를 취하거든? 왕자님이라 어쩔 수 없어.”

“그래도! 칼 선배는 드웨노님의 히어로 레코드 공략자잖아요. 좀 더 존중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뚱한 표정을 짓는 쥬엔을 향해 곁을 지나던 듀란의 멘티, 하비든이 말했다.

“아무리 칼 선배님이라도 듀란 선배님에게는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

“뭐가 한 수 접어줘!”

“틀린 말은 아니네.”

칼이 하비든의 말에 긍정하자 쥬엔이 발끈했다.

“용납 못해요!”

1학년 마법학과 1등 쥬엔과 1학년 기사학과 2등 하비든은 만날 때마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전통적인 학과 사이의 라이벌이며 둘 다 1학년 전체 2등을 다투는 실력자이기도 한 만큼 두 사람은 작은 신경전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또 저러네. 오스틴. 저 둘 모두와 친분이 있잖아. 좀 말려 봐.”

마르티나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같은 레오의 기사단이 오스틴에게 말했다.

“소용없어.”

오스틴이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본 칼이 과거를 추억하는 늙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젊군. 청춘이네. 청춘이야.”

“우리나 얘들이나 얼마나 차이 난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따라 한 건데.”

영주성에서 머물 방에서 문을 열고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묻자 칼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마침 잘됐네. 듀란이 애들이랑 모여서 회의실로 오라고 하던데?”

“알았어, 너희 먼저 가 있어.”

“넌?”

“아르가 아조니아 학생들과 함께 곧 이곳으로 온다고 했거든.”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이번 일은 아조니아 학생들의 협력이 필요할 거야.”

***

영주성을 나선 레오가 아조니아 학생들과 만난 건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워프 게이트 앞에서 상황을 설명한 레오의 말에 도벨라에 온 아조니아 대표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 플로브, 당신 말은 영웅 던전이 여러 개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죠?”

아조니아 2학년 서열 3위, 여우 수인 르웬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래.”

“거대한 전투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가슴이 두근거리는군!”

“당신 그저 날뛸 생각밖에 없죠? 멍청이.”

“이 망할 여우가……!”

르웬이 앙숙인 서열 5위 보르만에게 입꼬리를 말아 올릴 때였다.

“싸움은 나중에 해라.”

서열 2위인 늑대 수인 디온이 싸늘하게 말했다.

르웬과 보르만이 코웃음을 칠 때였다.

“하지만 걱정이군. 아조니아의 치부를 루메른에 알려야 한다니.”

타본의 말에 르웬과 보르만이 멈칫했다.

디온 역시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네 사람을 보며 아르가 말했다.

“말했지만 검은 토끼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어.”

타본이 말한 아조니아의 치부.

그건 다름 아닌 이번에 아조니아 학생들이 엘레헴에 온 것과 연관이 깊었다.

아조니아의 2학년들이 엘레헴에 온 궁극적인 목적.

그건 다름 아닌 엘레헴에서 발견된 히어로 헌터들을 추격하기 위해서였다.

아조니아는 올해부터 대대적으로 히어로 헌터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루메른과 같이 세계의 거대한 기둥 중 한 곳인 아조니아가 총력을 기울여 추격한 것은 바로 ‘수화’ 능력을 가진 히어로 헌터였다.

그들은 아조니아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서 존재 자체를 지우고 싶은 치부였다.

영웅의 시대가 시작되고 5000년.

수인들이 위대한 용자 아르온을 존경하고 그의 후예를 자청해 왔다.

하지만 그 기나긴 역사 동안 아르온과 같이 보름달이 뜨지 않은 상황에서 자유자재로 ‘수화’ 가 가능했던 수인은 아르를 제외하고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아조니아를 설립한 ‘아조니아’ 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히어로 헌터’들이 보름달이 뜨지 않았는데도 자유자재로 수화를 할 수 있다니.

아조니아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감추고 싶은 사실이었다.

여기 있는 네 학생도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루메른과 협력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 사실이 알려질 수밖에 없다.

“소수만 아는 것과 다수가 아는 것의 차이는 커요.”

르웬이 가라앉은 눈으로 말했다.

“이번 일…… 우리 선에서 마무리하는 게 아조니아의 영광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협력을 화면 확실하게 녀석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

“아르, 당신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뭐?”

르웬이 아르의 푸른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르온님처럼 수화할 수 있는 당신은 절대 우리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걸요?”

아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는 그런 아조니아 학생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르를 제외한 다른 아조니아 학생들은 모두 기가 죽어 있었다.

평소 레오가 알고 있는 아조니아 학생들의 모습과는 달랐다.

평소 아조니아 학생들은 모두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아르온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상의 아르온처럼 되기 위해 언제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아르에게 벽을 느낀 모양이네.’

그래서 기가 죽었다.

‘아니, 기가 죽다 못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것 같은데.’

일전에 봤을 때만 해도 아르를 꺾겠다고 난리를 치던 아조니아 학생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의지가 꺾인 것이 느껴졌다.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웃기지? 레오 플로브.”

타본이 미간을 좁히며 묻자 레오가 대답했다.

“아니, 너희가 닮아서 말이야.”

“닮다니? 누구랑?”

“누구긴 누구야.”

느닷없는 말에 아조니아 대표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르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거, 검은 토끼! 잠깐!”

“겁쟁이처럼 기가 죽은 게 아르온과 완전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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