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82화 (382/483)

382.

레오의 말에 아르는 얼굴을 감싸 쥐었고 네 수인의 안색은 돌변했다.

“지금…… 우리를…… 아르온님을 겁쟁이라고 한 거냐?”

디온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수인은 아르온의 용기가 세계의 운명을 바꿨다는 강한 믿음을 가진 종족이었다.

수인은 그런 아르온을 5000년 동안 존경해 왔고 그와 같은 수인이라는 것을 종족의 자랑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의 용기를 이어받기 위해 수천 년 동안 노력해왔다.

용기는 수인에게 있어 그야말로 긍지이자 추구해야 하는 덕목이었다.

그런 수인에게 있어 ‘겁쟁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큰 모욕이었다.

“……우리가 겁쟁이처럼 보인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디온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지금 우리는 치부를 들키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으니까. 아르에게 꼬리를 내린 것도 사실이다. 네가 보기에 충분히 겁쟁이처럼 느껴지겠지.”

디온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아르온님이 겁쟁이라는 말은 취소해라, 레오 플로브.”

“미안하지만 아르온은 겁쟁이가 맞아.”

화악-!

디온의 주먹이 레오에게 날아들었다.

진심이 담긴 주먹.

하지만 그 주먹보다 아르가 맞받아치는 게 빨랐다.

레오를 보호하는 소꿉친구를 보며 디온이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아르!”

“진정해, 디온.”

“진정하게 생겼어! 녀석이 아르온님을 모욕했어!”

그 말에 아르는 한숨을 쉬었다.

“검은 토끼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야.”

“뭐?”

“영웅의 세계에서 본 아르온님은 무척 겁이 많으셨어.”

그 충격적인 말에 네 수인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인정할 수 없다! 아르온님이 겁이 많으셨다니!”

보르만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런 보르만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용자를 직접 본 적 있어?”

“…….”

레오의 말에 보르만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3000년 전 개벽의 영웅 중 하나인 대전사 아조니아 이후로 온전한 아르온의 히어로 레코드를 공략한 이는 없었다.

용자의 세계를 공략한 대부분의 사람은 훼손된 히어로 레코드를 공략했다.

남은 아르온의 기록은 모두 압도적인 무위로 전투를 승리를 이끄는 기록뿐.

그 모습만이 전승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 덕분에 일상에서 아르온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럴 수가.”

“용자가…… 겁쟁이었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충격에 빠져 현실을 부정하는 동기들을 보며 아르가 힐난 어린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 사실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

“우리 학교 애들도 그렇고 다른 학교 애들도 마찬가지지만. 너희는 대영웅들을 너무 숭배하는 경향이 있어.”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너도 봤겠지만, 대영웅들은 겁쟁이에 변태에 왈가닥이라고.”

“……겁쟁이랑 변태는 누군지 알겠는데 왈가닥은 누구야?”

“성운의 시조.”

그 말을 듣고 레오가 루나의 세계 공략자라는 사실을 떠올린 아르가 중얼거렸다.

“충격적인 진실이네.”

“현실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거야. 빨리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깨닫고 어른이 되도록 해.”

“아니야! 시작의 영웅과 지혜의 왕이 남았어!”

아르는 머리에 손을 올려 귀를 막은 다음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대영웅들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리시나스의 세계까지 공략했으면 녀석이 악덕 사기꾼이라는 것도 알려줬을 텐데.’

레오가 혀를 찼다.

리시나스는 말로 상대를 홀려 뒤통수를 치는 달인이었다.

‘이렇게 보면 제대로 된 게 나밖에 없냐.’

물론 동료들이 봤다면 카일 역시 만만찮게 문제가 있다고 욕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충격에 빠져 있는 아조니아 학생들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언제까지 충격에 빠져 있을 거야? 아르온이 겁쟁이었다는 게 그렇게 문제야?”

“뭐?”

“아르온은 분명 겁쟁이었어. 하지만 그 사실이 아르온이 용자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아.”

네 아조니아 학생이 레오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겁에 질려 있고 기가 죽어 있었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그 모든 걸 이겨내고 가장 먼저 달려 나갔어.”

“맞아! 그래서 아르온님이 진정한 용자인 거야!”

레오의 말에 아르가 가슴을 쫙 펴며 맞장구쳤다.

그에 디온이 쓰게 웃었다.

“아르온님은 특별하니까.”

“재미있네.”

“뭐?”

“그 아르온님이 나한테 똑같은 말을 했었거든. 자신은 특별하지 않다고.”

“뭐? 아르온님이 그런 말을 했다고? 언제!”

“너 없을 때.”

“우우우! 아르온님과 그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다니! 검은 토끼! 이 부러운 녀석!”

아르가 진심으로 부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오를 마구 흔들었다.

그에 레오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난 특별하지 않아. 리시나스처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도 못하고…… 루나처럼 빛나는 존재도 아니야. 드웨노처럼 무구를 만들 수 있지도 않고, 카일 너처럼 에레보스의 천적도 아니야. 난 너희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그 말을 듣고 카일은 아르온을 걷어찼다.

‘최전방에서 맞서 싸워주는 네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거거든!’

“스스로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던 용자의 용기는 세계를 구했어.”

레오는 아조니아 대표들을 바라보았다.

“아조니아 학생들이 투쟁을 하는 이유는 불안해 떠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며.”

아조니아는 입학식부터 투쟁이다.

그 투쟁을 많은 사람에게 알린다.

그 입학식의 의식이 말하는 건 단 하나.

“우리가 왔다고.”

용기를 주는 존재들.

두려움을 물리치는 존재들.

용기의 심볼.

“어쩌면 그건 용자가 가장 되고 싶었던 모습일 거야.”

많은 사람이 아르온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맞설 용기를 얻는다.

스스로를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던 겁쟁이는 용기 그 자체가 되었다.

“특별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잔뜩 겁먹어도 괜찮아. 주눅 들어도 되고 스스로 비관해도 돼. 하지만 너희가 진짜 용자의 뒤를 따르고 싶다면.”

레오가 친구를 떠올리며 웃었다.

“꺾이지는 마. 가장 힘들 때 나아갈 수 있는 게 진짜 특별한 거라고 난 생각해.”

모두가 절망한 순간.

의연하게 달려 나가던 친구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레오의 말을 듣고 디온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루메른의 학생에게 용자와 용기에 대한 가르침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군.”

“전혀 아조니아 학생답지 못했어.”

“그래! 너무 바보 같았다고! 괜히 쫄아서 주눅 들다니!”

“당신은 바보 맞잖아요. 바보 호랑이.”

기운을 차린 디온, 타본, 보르만을 보며 르웬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힐끗 레오를 보았다.

“말솜씨가 훌륭하네요. 과연 루메른의 학생회장다워요.”

“어떤 악덕 사기꾼에게 배웠거든.”

피식 웃은 레오를 보며 아르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아르온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그 망할 짐승들을 잡아다 찢어 죽이는 거야! 치부가 드러날 걸 걱정해서 놈들을 방치하는 거야말로 아르온님에 대한 모독이라고!”

“그래! 아르의 말이 맞아!”

보르만이 맞장구를 쳤다.

그 모습을 보며 디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루메른과 협력을 하는 게 옳겠군.”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턱을 괴었다.

‘나도 그 개자식들을 잡아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

히어로 헌터.

세계를 등진 배신자들이 아르온의 힘을 사용한는 사실에 수인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레오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걸 바로 잡는 건 되도록 아르온의 후예를 자처하는 아조니아 학생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러는 편이 아르온 녀석이 더 기뻐했을 테니까.’

레오는 전의를 불태우는 아조니아 학생들을 보며 웃었다.

‘네가 보여준 뒷모습은 50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어.’

자신에게 헛소리를 하던 친구를 떠올렸다.

‘뭐가 특별하지 않다는 거야, 넌 누구보다 특별해. 아르온.’

***

레오가 아조니아 학생들을 데리고 영주성에 도착했다.

그리고 회의실 앞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1학년들을 발견했다.

“너희 앞에서 뭐 해?”

레오의 물음에 샤샤가 말했다.

저희도 회의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듀란 선배님이 쫓아냈어요.”

‘너희가 이 회의에 참여해서 발언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건방지군.’

‘야. 1학년 애들도 대단하다고. 나도 회의에 참석하는데 애들도 같이…….’

‘주제 파악을 해라, 칼 토마스. 너와 1학년 애송이들이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나?’

“듀란답네.”

“레오 선배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샤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물었다.

어떻게 본다면 고작 1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영웅 사관 학교에서 저학년 때의 1년은 말 그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특히나 1학년 1학기의 1학년들은 2학년들 입장에서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한 수준이다.

“1학년 2학기만 되었어도 듀란의 생각이 달라졌겠지.”

레오의 말에 샤샤가 한숨을 쉬었다.

“루메른 1학년들?”

“귀엽네요. 우리도 어서 후배를 받고 싶어요.”

레오 뒤를 따라온 아조니아 학생들이 루메른의 1학년들을 보며 감탄했다.

“루크는?”

“루크는 연무장에서 수련하고 있어요, 도련님.”

마르티나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열심히네.”

피식 웃은 레오가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쥬엔이 말했다.

“에잇! 진짜! 이번 임무 실습에서 내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 줄 거야!”

쥬엔의 말에 샤샤가 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에요.”

뚜벅- 뚜벅-

“어딜 가지? 아이나.”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아이나가 갑자기 움직이자 하비든이 물었다.

“수련하러.”

짤막한 말을 남기고 아이나는 자리를 떠났다.

그 말에 1학년들도 서로 눈치를 보더니 각자 수련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듀란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사실에 더더욱 자존심이 상했다.

‘멘토들에게 확실하게 우리 실력을 보여주겠어.’

***

다음 날 아침.

레오는 마물의 숲으로 향했다.

그런 레오의 뒤로 루크가 따르고 있었다.

“마물의 숲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웅 던전의 문제를 아조니아와 함께 해결하고 이후 이 나라에 있는 히어로 헌터를 함께 추격하기로 했다는 거죠?”

“그래.”

“레오 선배는 혼자서 깊숙이 들어가시는 거고요.”

“맞아.”

어제 회의에서 루메른과 아조니아는 협력하기로 결론지었다.

그 와중에 레오는 단신으로 마물의 숲 최중심부를 탐색하고 온다고 했다.

처음에는 몇몇 학생이 함께 움직일 것을 제의했지만 레오가 말했다.

‘나 혼자서도 충분해.’

만용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말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학생은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2학년 중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레오다.

단 하루만 정찰 목적으로 탐색을 한다는 레오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걔가 검은 토끼의 멘티야?”

레오는 숲의 초입 부분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르와 합류했다.

“안녕하세요, 루크 엘다라고 합니다.”

“반가워, 아르 튠이야.”

아르는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루만 조금 부탁해.”

“맡겨 둬!”

아르가 가슴을 탁! 치며 말했다.

루크를 맡긴 레오는 곧바로 숲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걷던 레오가 울창한 숲을 바라보았다.

입학시험의 무대가 된 곳.

하지만 이렇게 직접 와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루나와 처음 만난 곳.’

이곳은 루나의 고향 땅 이었다.

리시나스와 함께 루나를 토벌대에 영입하기 위해 왔을 당시 루나는 엘프들과 함께 마물 여왕에게서 고향 숲을 탈환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이 숲에는 입학시험 외에도 또 다른 추억이 있었다.

잠시 숲을 바라보던 레오가 검을 뽑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숲에 깊숙하게 들어설수록 수많은 몬스터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마물의 숲에 존재하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애초에 마물 여왕이 토벌된 시점에서 이 땅의 저주도 사라졌을 텐데?’

그런데 새로운 몬스터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몬스터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현실을 잠식하기 시작한 영웅 던전일 확률이 높아.’

미리 마물의 숲에 와 있던 동기들이 어렵지 않게 도달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마물 여왕의 죽음으로 이 숲에 저주가 폭주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많은 몬스터를 베어 넘기며 이동하던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숲의 최중심부.

눈을 가늘게 뜬 레오가 손을 뻗었다.

우웅-!

강력한 흑마력이 느껴졌다.

이미 주인이 사라졌음에도 은밀하게 그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흑마력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물 여왕이 남긴 잔존 마법이었다.

화악-!

레오는 순식간에 마법을 해제했다.

마법이 해체되자 흉측스러운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잔존 흑마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탑에 걸려 있던 힘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역시 저주는 풀렸어.’

혹시나 하고 저주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다.

하지만 저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물의 숲에 영웅 던전의 존재를 확신하며 물러서려던 레오가 멈칫했다.

흉물스러운 탑 중간에 ‘종잇조각’이 보였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힘은 레오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신력?’

레오가 놀라며 마법으로 몸을 띄웠다.

‘히어로 레코드 조각.’

찢어진 히어로 레코드의 조각을 보며 레오가 놀란 얼굴로 손을 뻗었다.

[개벽의 용, 로디아의 세계를 여시겠습니까?]

느닷없이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레오가 눈을 크게 떴다.

‘로디아의 세계라고?’

일순간 당황했다.

이 찢어진 조각이 영웅던전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폭주하지는 않았군.’

영웅 던전화가 아닌 안정화 된 히어로 레코드 조각이었다.

메시지가 떠오른 건 레오이기 때문이었다.

히어로 레코드의 주인인 레오는 열쇠가 존재하지 않아도 자유자재로 히어로 레코드를 열고 닫는 것이 가능했다.

잠시 메시지를 바라보던 레오가 말했다.

“열어.”

[히어로 레코드 오픈. 로디아의 세계. 챕터: 서장-개벽.]

화악-!

익숙한 감각이 레오를 감쌌다.

환한 빛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누구?”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레오는 눈앞의 용족 소녀를 바라보았다.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개벽의 용, 로디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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