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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84화 (384/483)

384.

“마물의 숲에 숨겨둔 영웅 던전의 연쇄 폭주. 주제넘게 이곳을 지키는 더러운 그림자를 유인하기 충분했던 모양이군.”

지하 카지노 쉐도우에 침입한 델레안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 가자.”

부하들을 이끌며 그는 미궁 입구로 들어서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곳에 있는 개벽의 용의 유산은…… 내 것이다.”

***

도벨라의 북쪽 성문.

“으아아아아악!”

“대피! 모두 대피해!”

도벨라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마물의 숲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상 사태는 마치 재앙과도 같았다.

“싸워라! 용병들! 너희는 돈을 받고 우리에게 고용되었잖느냐! 저 괴물들을 막아!”

도벨라에 주둔한 엘레헴의 기사들이 악을 쓰며 용병들을 재촉했다.

“우린 용병이야! 저런 걸 막을 수 있을 리 없잖아!”

“맞아! 댁들은 기사잖아! 평소에 우리 같은 건 댁들 발끝에도 못 미친다고 으스댔잖아!”

“선봉에 서서 실력을 보여 줘! 그럼 따르겠어!”

“이익! 이 무례한 것들이……!”

도벨라의 성벽을 지키는 엘레헴의 기사들과 용병들 사이에서 마찰이 일어났다.

뒤로 물러선 채 용병들에게 선봉에 서서 맞서 싸울 것을 강요하는 기사들과 그런 기사들에게 반발하는 용병들.

두 집단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때였다.

쿵-! 쿵-!

성벽 위로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흠. 이런 훌륭한 성벽을 두고도 두려움에 빠져 전장에 서려 하지 않다니! 기골이 없는 자들이로군.”

모두의 시선이 거대한 호랑이 수인으로 향했다.

“두려움을 느끼는 건 생물이 가진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야. 두려움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만용이겠지.”

또각- 또각-

그런 호랑이 수인 옆으로 지팡이를 쥔 백금발의 소녀가 함께 걷고 있었다.

“훗- 그렇지. 그렇다면 이들은 어떨까?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을까?”

보르만이 씩 웃으며 선봉에 섰다.

“루메른과 아조니아의 학생……!”

“하지만 단둘만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엘레헴의 기사들이 불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용병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클로에가 용병들을 돌아보았다.

“무수히 많은 싸움터를 전전한 여러분은 알고 있죠? 도망치는 것보다는 맞서 싸우는 쪽이 그나마 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당장 눈앞에 직면한 죽음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싸우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만한 몬스터 대군이 침공한 상황에서 뭉치지 않고 흩어지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건 용병들도 잘 알고 있었다.

절망 어린 표정을 짓는 용병들을 보며 클로에가 말했다.

“그러니 싸우는 게 어때요? 선봉은 우리가 맡을 테니까요.”

그 말에 용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선봉을 맡는다고?”

“영웅 사관 학교 학생이야!”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워프 게이트로 전장에서 이탈할 수 있잖아?”

불신 어린 목소리.

그때 그 사이에서 한 용병이 중얼거렸다.

“아니. 믿을 수 있다. 원하는 때에 워프 게이트를 탈 수 있다는 건 지금도 이 도시를 탈출할 수 있다는 소리야. 그런데도 이곳에 왔다.”

그는 클로에를 보며 물었다.

“어째서?”

그 물음에 클로에는 빙긋 웃었다.

“우리는 영웅을 꿈꾸는 사람이니까요.”

용병들은 멍하니 클로에를 바라보았다.

뚜벅- 뚜벅-

클로에가 가벼운 걸음걸이로 성벽 위에 올라섰다.

우웅-!

손을 뻗자 아공간에서 지팡이가 소환되었다.

무수히 많은 몬스터의 군대가 성벽으로 몰려오는 게 보였다.

“도울까?”

클로에 옆으로 온 보르만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괜찮아, 이건 마법사가 할 일이야.”

클로에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걸 본 보르만이 팔짱을 낀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뭐냐, 이 터무니없는 마나의 요동은.’

주문을 외우며 클로에는 몬스터 대군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해. 나도 두려우니까.’

영창을 외우는 걸 멈추지 않으며 클로에가 지팡이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 두려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게 마법사의 역할이라고 배웠어.’

멀리 앞서가는 친구를 떠올리며 클로에는 웃었다.

‘나아가자.’

“후우.”

영창을 마친 클로에가 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몸에서 강력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얼음 세계.”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적-!

일순간 성벽 앞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공포를 몰고 오던 몬스터 군단이 모조리 얼어붙었다.

“대단해.”

보르만이 입을 떡 벌리며 중얼거렸다.

클로에가 용병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함께, 싸워요.”

“우오오오오오오!”

“싸우자!”

클로에의 마법에 용기를 얻은 용병들이 전의를 불태웠다.

***

동쪽 성문에서 칼은 사이클롭스에게 돌격하는 듀란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재수 없는 자식인 건 분명하지만, 듀란. 저 녀석은 분명 영웅이 될 거야.’

듀란 뿐만 아니다.

학교에서 절친하게 지내던 많은 친구가 이미 뒷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찍이 앞서갔다.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

루메른에 입학 확정을 받은 그 순간부터 영웅 같은 건 꿈꾼 적 없다.

‘그저 살아남는 게 최선이거든.’

지금도 마찬가지다.

칼은 마법사.

원래라면 듀란의 뒤를 엄호해야 한다.

하지만 칼도 알고 있다.

자신의 마력을 더한다고 듀란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목이나 안 잡으면 다행이지.’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듀란의 오러에도 못 미치는 화력.

‘이러니 영웅 같은 건 꿈도 못 꾸지.’

칼이 피식 웃었다.

‘그저 루메른에서 최대한 오래 붙어 있는 게 목표였어. 운 좋게 영웅의 서포터라도 되면 최고고 말이야.’

머리 회전이 빠른 칼다운 선택이었다.

그게 틀린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 또한 세계를 위한 길.

‘하지만, 최근에는 좀 더 말도 안 되는 목표가 생겼어.’

“에잇!”

후방에서 쥬엔이 저격 마법으로 다른 사이클롭스를 공격하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사이클롭스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듀란이 도륙하고 있는 사이클롭스를 제외하고도 또 다른 무리의 사이클롭스들이 날뛰고 있었다.

지이이이이! 번쩍! 콰아앙-!

쥬엔의 막강한 마력이 담긴 마력 탄환이 사이클롭스에 명중했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몸이 관통당한 사이클롭스가 피를 내뿜으며 몸이 휘청였다.

하지만 이내 중심을 잡은 사이클롭스가 포효를 내질렀다.

“그워어어어어어!”

그런 사이클롭스를 향해 돌격하던 아이나가 황금빛 섬광이 되었다.

번쩍! 푸화아악-!

아이나의 검이 사이클롭스의 살점을 꿰뚫었다.

우워어어어어어!

“크윽!”

하지만 쓰러트리지 못했다.

분노한 사이클롭스의 눈이 자신을 공격한 아이나에게 향했다.

눈을 번뜩인 사이클롭스가 아이나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늦었어!’

아이나가 온몸에 오러 아머를 두르고 충격에 대비할 때였다.

후웅-!

강력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서걱-!

“우어어어어어!”

하비든이 창을 휘둘러 바람의 참격을 만들어내어 사이클롭스의 팔을 베어냈다.

아이나와 하비든의 눈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하비든이 바람을 일으켰다.

아이나는 하비든이 일으킨 바람을 딛고 빠르게 도약하여 사이클롭스의 목을 향해 돌격했다.

황금색 오러가 치솟았다.

“하아아아아압!”

기합성을 내지름과 동시에 황금색 오러가 사이클롭스의 목을 베었다.

“키어어어어어어!”

목을 움켜쥔 사이클롭스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목이 날아간 사이클롭스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쥬엔이 질렸다는 듯 소리쳤다.

“목을 베었는데도 날뛰잖아!”

“당연하지, 저게 괜히 상급 마수겠어? 징그러울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괴물이야.”

칼이 저격을 하고 있는 쥬엔에게 다가갔다.

“뭐, 너희 셋도 만만치 않은 괴물 같지만.”

“지금 농담할 때예요?!”

“칭찬이야. 무서우리만큼 대단한 후배들을 보는 건 마음이 아프네. 순식간에 강해져서 선배를 추월하겠지.”

칼이 씩 웃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선배로서 도와줄 수 있지.”

쿵-!

칼이 쥬엔 앞에 쇠로 된 상자를 꺼냈다.

“이게 뭐예요?”

“이 선배가 만든 특제 마력 탄환이야.”

칼이 상자에서 마력 탄환을 꺼냈다.

“쥬엔, 넌 방대한 마력량을 가지고 있지만, 마력 출력은 마력량에 비교하면 낮은 편이라 지금 당장은 ‘압도적인 한방’ 이 부족해. 그래서 저런 압도적인 생명력을 지닌 괴물에게는 고전하는 거야. 하지만 원래 마무리는 마법사의 역할이거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전 후방에서 활약하는 정통형 마법사긴 해도 압도적인 화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타입의 마법사는 아니라고요!”

“알고 있어. 그러니 이걸 한 번 써 봐.”

칼이 탄환을 꺼냈다.

“마력 탄환이라고 해도 마법 위력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

“이건 내가 만든 특제 마탄이야. 사용자의 마력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물건이지. 나야 뭐 마력이 워낙 미비해서 큰 효과가 없지만, 쥬엔 넌 마법 위력이 확 달라질걸?”

자신만만하게 웃는 멘토를 보며 쥬엔이 마력 탄환을 받아 저격 마법용으로 만들어진 지팡이에 장착했다.

‘호환이 완벽해.’

원래도 칼은 쥬엔에게 마력 탄환을 만들어주고 있었던 만큼 이질감은 없었다.

하지만 탄환에서 휘몰아치는 마력과 마법 술식은 마법학과 1학년 최고 우등생인 쥬엔으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지이잉-!

마력 탄환이 쥬엔의 마력에 반응한다.

쥬엔이 사이클롭스를 겨누었다.

쥬엔에게서 느껴지는 마력 반응에 아이나와 하비든이 사이클롭스에서 거리를 벌렸다.

번쩍! 꽈앙-!

마치 대포를 쏘는 듯한 폭음과 함께 사이클롭스의 상체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후두두두둑!

사이클롭스의 살점과 뼛조각이 흘러내렸다.

상체 자체가 날아간 사이클롭스가 쓰러졌다.

쿵-!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 위력에 쥬엔이 입을 뻐끔거렸다.

‘내가 영웅들을 쫓아가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녀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까지는 가고 싶어.’

함께 걸을 수는 없다.

뒤를 따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보이는 곳에서 위대한 영웅들이 시련을 마주했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칼이 새로 잡은 ‘목표’ 였다.

“흥.”

첫 번째 사이클롭스를 도륙 내고 두 번째 사이클롭스의 목을 날리며 듀란이 코웃음을 치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제법이군, 칼 토마스.”

***

서쪽 성문.

성벽 위에 선 아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돌격 해오는 거대한 기간테스를 보았다.

성벽에 선 아르가 콱- 바닥을 단단하게 디뎠다.

그와 동시에 기간테스를 향해 돌격했다.

“하아아아압!”

강력한 기합성과 함께 그녀의 몸에 황금색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수화를 한 아르가 눈을 번뜩이며 기간테스의 머리를 걷어찼다.

콰아아아앙-!

기간테스의 휘청거리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쿠우우웅-!

지축이 흔들리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온몸에 푸른색 오러를 휘감은 아르가 그대로 오러 스텝을 이용해 허공을 박차더니 그대로 지상으로 돌격했다.

꽈아아아아아앙-!

기간테스의 복부를 걷어찬 아르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첼시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 괴물 같은 고양이네.”

“첼시 양, 그런 말을 하면 못써요.”

첸 시아가 나무라자 같은 아조니아 학생인 르웬이 말했다.

“괴물 고양이 맞죠. 틀린 말이 아닌데요, 뭐.”

그 대답에 쿡쿡 웃던 첸 시아가 성안 내부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만 다녀올게요.”

“응? 어디가?”

첼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첸 시아가 빙긋 웃었다.

“할 일이 생겨서요.”

그렇게 말한 첸 시아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어리석은 영웅 후보생들. 바깥의 몬스터와 마물에게 정신 팔려있는 꼴이라니.”

“흥, 애송이들이라 그래. 내부에서 일어나는 혼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겠지.”

“그런데 갑작스러운 폭주라니. 이곳에서의 임무도 끝나는 건가?”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콰득-!

그때 한 사람의 목이 꺾였다.

털썩-

갑작스러운 상황에 검은 두건의 이들이 경악하며 검을 뽑으려 할 때였다.

콰직-!

“끄아아악!”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작고 아름다운 손이 그 팔목을 뒤틀어버렸다.

“히어로 헌터 여러분. 그 임무와 관련된 이야기.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첸 시아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림자인가!”

“고작 한 명일 뿐이야!”

“겁대가리를 상실했군!”

히어로 헌터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뽑는 순간.

콰앙-!

또 한 사람의 히어로 헌터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벽에 처박혔다.

“공주님. 이제는 완전히 이런 일에서 손을 뗀 거 아니었나요?”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키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에 첸 시아가 덤덤히 대답했다.

“영웅이 해야 할 일, 그림자가 해야 할 일 같은 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배웠거든요.”

첸 시아가 물의 오러를 내뿜었다.

“추구하는 길이 하나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고 그 사람이 가르쳐줬어요.”

“공주님은 예전보다 더 무서워진 것 같네요.”

“어째서죠?”

“이제 공주님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으니까요.”

그림자 군주, 키린은 손가락을 풀며 말했다.

“냄새를 맡아 보니 수인이군. 너희 중에 ‘수화’를 할 수 있는 녀석들도 있지? 내 마지막 배려야.”

키린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배신자 주제에 시답지 않게 위대한 그분의 흉내를 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런 짓을 했다가는.”

그녀의 몸에서 진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죽여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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