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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86화 (386/483)

386.

“좋아, 그러면 우선 엘프의 숲으로 가서 루나를 만나자. 거기가 가드스론과 가장 가까우니까.”

리시나스가 말했다.

“그래. 그다음은 레이사르로 가서 아곤과 만나면 되는 건가?”

“그래.”

레오의 말에 리시나스가 지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드웨노를 만나러 가면 될 것 같아.”

동료들을 만날 순서와 동선을 짰다.

“자, 그럼. 이야기도 다 나눴으니 오늘은 이만 쉴까?”

리시나스는 지도를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일, 넌 더 마실 생각이야?”

“나도 오늘은 쉬어야지.”

레오와 리시나스가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복도에서 헤어져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리시나스는 레오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카일.”

그 말을 전하고 리시나스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리시나스.”

“응?”

레오가 리시나스를 불러세웠다.

의아한 얼굴로 방에서 고개를 내민 리시나스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넌 어리석은 자가 아니야.”

느닷없는 말에 리시나스가 눈을 크게 떴다.

리시나스는 이 당시 어리석은 자라며 조롱받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희망을 좇고 이룰 수 없는 이상이나 떠벌리는 어리석은 도마뱀.

이 시기의 카일 역시 마찬가지로 평가했다.

그런데도 리시나스는 끈질기게 카일을 파티에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둠에 마음이 잠식된 카일을 어둠 속에서 끌고 나왔다.

자신이 리시나스의 손을 잡은 건.

세계의 구원하는 길의 시작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구원받는 길의 시작이기도 했다.

‘녀석이 아니었으면 평생 그렇게 썩었을 거야.’

아무런 희망도 없이 세계의 멸망을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안다.

진심으로 세계를 구하려던 지혜로운 왕이.

어리석은 자라고 조롱받았던 시절을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넌 누구보다 지혜로운 사람이야.”

“같은 파티가 되었다고 갑자기 띄워주네?”

리시나스가 빙긋 웃었다.

“뭐, 좋은 태도야. 어제와 달리 오늘의 네 눈은 분명 희망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지혜로운 드래곤은 레오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건 분명 긍정적인 신호겠지.”

빙긋 웃으며 리시나스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방안으로 들어온 레오는 씁쓸하게 웃었다.

‘잘 부탁한다라…….’

터덜터덜- 침대에 다가가 털썩 주저앉은 레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그런 말로는 부족하지.’

서로 함께 끝도 없는 사선을 이겨 나갔던 사이.

레오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대영웅은 서로가 서로에게 은인이다.

수도 없이 목숨을 구했으며 또 구해졌다.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절대 해낼 수 없었을 거야.’

아르온도 만났고 루나와 드웨노도 만났다.

이제는 함께할 수 없는 동료들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도 않군.’

오래전 어둠 속에 있던 자신을 꺼내준 그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단 사실에 한없이 기쁨을 느끼는 한편.

이제는 결코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짓눌렀다.

문득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장 처음.

시작점으로 돌아왔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먼저 떠난 동료들이 더더욱 보고 싶어졌다.

루나, 아르온, 드웨노를 떠올리던 레오가 뺨을 쳤다.

그리고 레오가 심호흡했다.

‘지금은 상념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야. 상황 파악이 우선이야.’

현재 상황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나는 분명 로디아의 세계에 들어왔어.’

로디아의 세계는 영웅 던전이 아닌 정식으로 열린 세계.

심지어 레오가 원할 때 언제든지 나갈 수도 있는 세계였다.

그런데 현재 레오가 있는 건 리시나스의 세계였다.

‘대체 뭐지?’

레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영웅의 세계를 닫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런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 현상에 대해 레오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영웅 던전.’

영웅의 세계 안에서 히어로 레코드가 폭주한 상황.

레오가 미간을 좁힐 때였다.

톡- 톡-

창가에서 창문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로디아가 있었다.

레오가 다가가 창문을 열자 로디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래의…… 카일님이 맞으시죠?”

“그래.”

레오의 대답에 로디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깜짝 놀랐어요. 이 세계는 분명 빙의형 세계인데 원래 모습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카일님도 그러신 줄 알았어요.”

로디아의 말을 듣고 레오가 말했다.

“영웅 던전에서는 가끔 이런 오류가 일어나곤 한다고 들었어.”

영웅의 세계는 원래 입장할 수 있는 정원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영웅 던전의 경우에는 인원 제한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영웅 던전 자체가 폭주로 인해 생성 되는 곳이니.’

“영웅 던전?”

낯선 단어에 로디아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로디아를 보며 멈칫한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모르겠군.”

개벽의 영웅들은 에레보스를 히어로 레코드 속에 봉인하고 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기 위해 히어로 레코드를 나눈 후 자신들의 세계로 진입했다.

그런 만큼 히어로 레코드가 나뉘면서 생긴 부작용인 ‘영웅 던전’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개벽의 영웅의 세계에 도전하여 그들을 만난 이들은 있었지만, 현세에 생겨난 여러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레오에게 영웅 던전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들은 로디아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네요.”

“후대의 영웅들이 잘 공략하고 있으니 그 문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예.”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왜 너와 내가 여기 있냐는 걸까? 난 현세에서 리시나스의 히어로 레코드를 본 적조차 없어. 그래서 든 의문인데.”

레오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히어로 레코드가 온전했던 시절에는 영웅의 세계 안에서 레코드를 여는 게 가능했어?”

“아뇨. 그렇지 않아요.”

로디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히어로 레코드를 통해 영웅의 세계라는…… 과거의 영웅이 겪은 시련을 이겨내고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세계에 내로라 하는 마법사들과 학자들이 히어로 레코드의 가능성을 시험했어요. 그 과정에서 강인한 전사들과 우수한 소환사들이 동원되었죠.”

그 사실은 레오도 루메른에서 역사 수업 시간에 배웠다.

“영웅의 세계에서 히어로 레코드를 연다. 그건 또 다른 무한한 가능성의 시작이죠. 그렇기에 그와 관련된 실험은 수도 없이 진행되었지만 단 한 번도 영웅의 세계 내에서 히어로 레코드가 오픈된 적은 없어요.”

그 말에 레오가 생각에 잠겼다.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은 히어로 레코드의 상태와 히어로 레코드의 주인인 내가 있느냐 없느냐로군.”

레오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나로 인해 불가능한 일이 발생한 거야.’

히어로 레코드는 불안정한 상태다.

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그 안에 신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태초의 악을 가두었다.

그리고 히어로 레코드를 파괴하고 그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 흩어진 페이지를 다시 모아 만든 게 지금의 히어로 레코드다.

“그런 만큼 기능은 작동을 하지만, 정상적인 작동은 불가능한 셈이지. 그런 와중에 히어로 레코드의 주인인 내가 현세에 환생했어.”

“카일님이라는 특이점으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말이군요.”

“그래.”

“골치가 아프게 됐네요.”

로디아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 로디아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아니,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어.”

“예?”

“로디아. 넌 아까 분명 우리가 지금 있는 리시나스의 기록이 첫 영웅의 세계라고 했지?”

“네.”

“내가 역사책에서 봤을 때 넌 첫 영웅의 세계의 공략에 실패했어.”

“네. 이후에도 몇 번이고 이 페이지를 공략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어요.”

“그래. 그리고 에레보스의 조각을 막기 위해 너희의 최종장으로 진입했지. 원래라면 넌 더 이상 영웅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몸이야.”

“그렇…… 잠깐.”

대답을 하던 로디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런 로디아를 보며 레오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맞아, 로디아. 넌 지금 ‘영웅의 세계’ 안에 와 있어. 그게 뭘 뜻하는지 이제 알겠어?”

“……공략을 해낸다면…… 리시나스님의 힘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요. 그건 곧.”

“맞아,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정체되어 있던 네 힘이 진보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해.”

루프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에레보스의 불꽃은 더더욱 강해졌다.

그에 반해 개벽의 영웅들은 같은 자리에 멈춰 서 있다.

3000년을 버텨낸 개벽의 영웅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로디아가 리시나스의 세계를 공략하여 공략 보상을 얻게 된다면 로디아는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었다.

“물론 공략이 쉽지만은 않겠지.”

레오와 로디아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공략 목표: -]

영웅 던전은 공략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퍼즐을 맞추어가듯.

공략 목표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공략 목표를 인지한 순간 메시지가 새롭게 뜬다.

하지만 레오와 로디아는 목표를 찾아낼 필요가 없다.

로디아는 이미 수차례나 이 기록에 도전했다.

그리고 레오는 이 기록의 위업을 이룬 당사자.

로디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탐식왕…… 요르문간드.”

[공략 목표: 탐식왕을 토벌하십시오.]

공략 목표가 갱신되었다.

리시나스와 카일.

두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페이지에 이룩한 최초의 위업.

그리고 에레보스를 토벌한 지금에 이르러서도 레오는 말할 수 있었다.

탐식왕 요르문간드와의 전투는 그 수많은 위업과 시련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는 것을.

가장 처절했던 싸움 중 하나다.

로디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레오는 공략 목표를 빤히 노려보았다.

탐식왕 요르문간드.

사령왕 헬 카이저는 타르타로스의 총사령관이다.

다른 군단장들과는 격이 다른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마물 여왕 실라투나, 거인왕 기아스와 같이 삼대 군단장으로 묶이긴 했으나, 그것은 재앙의 시대 이후 살아남은 군단장이 그들뿐이기 때문에 한데 묶였을 뿐이다.

힘으로만 본다면 마물 여왕 실라투나, 거인왕 기아스는 사령왕 헬카이저에게 한 수 접어둔다는 평가를 받았다.

말 그대로 전율스러운 타르타로스의 지배자.

죽음을 다스리고 그 누구보다 음험하며 끝도 없는 군단을 부리는 최흉의 위협.

하지만 탐식왕 요르문간드는 다른 의미에서 헬 카이저보다 위험하다.

“군단장의 진정한 공포는 그들이 이끄는 군단이지.”

군단장이 이끄는 마족의 군세는 어마무시하다.

“하지만 요르문간드는 달라.”

레오가 요르문간드를 떠올렸다.

“놈은 군단을 이끌지 않아.”

군단장의 칭호를 가진 마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자신의 군단조차 집어삼켰다.

“타르타로스에 수많은 이형의 괴물이 존재했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전율스러운 괴물은 놈이었어.”

요르문간드가 탐식왕이라 불리는 이유.

그는 모든 걸 집어삼킨다.

마치 허기진 걸신처럼.

보이는 모든 걸 먹어 치우는 괴물이다.

모든 걸 집어삼키고 어둠을 흩뿌리는 괴물.

“군단장임에도 군단조차 필요 없는 괴물. 아니, 혼자서 군단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괴물이죠.”

로디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끝없는 실패를 거듭한 이유.

그건 탐식왕 요르문간드가 ‘최강’ 의 마족이기 때문이었다.

그 전율스러운 힘 앞에 몇 번이고 공략에 실패한 걸 떠올리며 로디아가 말했다.

“할 수 있을까요?”

“해야지.”

레오가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게 유일한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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