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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88화 (388/483)

388.

영웅의 시대가 시작되고 오러를 다루는 기사와 전사들, 마법사들은 진보했다.

소환사들 역시 마찬가지.

히어로 레코드의 영향으로 신의 시대보다 더 많은 강자가 탄생했다.

‘과거와 비교해서 지금의 시대는 확실히 쉽게 오러를 익히고 쉽게 마법을 접하며 쉽게 소환수를 소환할 할 수 있어.’

세계는 확실히 진보했다.

그러나 소환사는 어떤 의미에서 퇴보를 했다.

‘3대 환수의 지도자가 둘이나 사라진 이후 그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으니까.’

염제와 순백의 왕.

에레보스와의 사투에서 리시나스와 카일은 맹약자였던 카타리우와 알부스를 잃었다.

카타리우, 알부스 둘 모두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고 그 결과 지금 시대에 이르러서 환수왕은 요정왕만 남게 되었다.

‘그조차도 실로드가 5000년 동안 누구와도 계약을 맺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유명무실해진 상태지.’

세이룬이 실로드를 소환에 성공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실로드에게는 페어리 랜드를 비울 수 없었기에 공식적으로 소환이 알려지지 않았다.

환수술사가 소환할 수 있는 최강의 환수가 셋이나 소멸한 상황.

말 그대로 퇴보였다.

레오는 가드스론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카일님!”

누군가 카일을 부르며 다가왔다.

“밤에는 잘 주무셨나요?”

“그럭저럭. 넌 잘 곳은 구했냐? 이 시기의 가드스론은 숙소 구하기가 까다로울 텐데.”

“그 정도야 쉽죠. 제가 이 세계를 공략을 몇 번이나 시도했는지 아세요?”

로디아의 말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리시나스님과 함께 움직이실 줄 알았는데 따로 움직이시네요?”

공략 시도를 몇 번이나 했던 로디아는 리시나스가 여정에 함께 할 조력자들에게 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 난 이때 리시나스와 같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전 리시나스님을 도와 늘 함께 움직였죠.”

로디아가 팔짱을 끼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시나스님은 별로 안 좋아하셨지만요.”

“녀석의 성격상 도와줬으면 좋아하면 좋아했지 절대 싫어하지는 않았을 텐데?”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설마 내 모습으로 리시나스 앞에서 이상한 짓거리를 한 건 아니지?”

“…….”

그 물음에 로디아가 침묵했다.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에 레오가 뚜둑- 손가락 관절을 풀자 로디아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 그렇지만요! 리시나스님인 걸요! 지혜의 왕 리시나스님이라고요! 카일님께서도 드래곤들에게 리시나스님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아시잖아요!”

“알 바냐? 그딴 이유로 내 몸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한 걸 용서받을 것 같아?”

“이상한 짓 안 했어요! 그냥.”

“그냥?”

“몸을 좀 배배 꼬고 친근하게 다가가고 적극적으로 말을 건 게 전부였어요.”

레오의 얼굴이 살벌하게 변했다.

그걸 본 로디아가 덧붙였다.

“그래서 리시나스님께 많이 혼났어요!”

“어떻게 혼났는데?”

“때리시던데요?”

로디아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지혜의 왕을 만난 기쁨을 표현한 것뿐이지만.

리시나스 입장에서는 어제까지만 해도 삐딱하게 굴던 녀석이 태도를 돌변해 달라붙으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얼굴을 붉히며 바라볼 때 가장 심하게 때리셨어요.”

“심하게 맞아도 싸네.”

가차 없이 말하는 레오를 보며 로디아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다 카일님 때문이에요.”

“왜 내 탓을 하는 건데?”

“카일님이 야속하게 리시나스님의 마음을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하셨잖아요! 리시나스님이 너무 가여워서 그만…….”

“……이제 막 동료가 된 시점인데 리시나스가 나한테 그런 감정을 가질 리가 있겠냐? 그리고.”

레오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리시나스의 마음, 난 알고 있었어.”

“네?”

“하지만 이때는 세계를 구하는 게 먼저였어. 그걸 알기에 리시나스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리지 않았던 거야. 나 역시 알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었지.”

“카일님…….”

씁쓸한 미소를 짓는 레오를 보며 로디아의 얼굴을 팍 구겨졌다.

“되지도 않는 구라치지 마세요.”

“이 빌어먹을 도마뱀이 아주 못하는 말이 없네?”

“전 분명 카일님을 존경하지만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은 리시나스님이에요.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 카일님에게는 얼마든지 불경을 저지를 수 있어요.”

“아, 그래? 그래서 나보고 병신이라고 했냐?”

“아무리 그래도 제가 그렇게까지 무례한 말을 할 드래곤으로 보이세요?”

“충분히 보인다, 이 망할 도마뱀아.”

사납게 으르렁거린 레오가 로디아를 붙잡은 후 계속해서 머리를 쥐어박았다.

재앙의 시대를 끝낸 대영웅과 재앙의 재림을 막아낸 개벽의 영웅들.

세계의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당연히 전 세계의 수많은 영웅학자와 역사학자가 종족을 불문하고 연구에 매진하는 대상이다.

필연적으로 다른 시대를 살아야 했기에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그들의 만남.

하지만 개벽의 영웅들은 히어로 레코드를 통해 시대라는 벽을 뛰어넘어 대영웅의 후계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수많은 학자가 한번쯤 상상을 해보곤 한다.

영웅의 세계에서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대영웅과 개벽의 영웅이 만난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

하지만 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분명 눈물을 흘릴 것이다.

꽈아아악-!

“하, 항복! 항복!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레오에게 헤드락을 당하며 로디아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다급히 소리쳤다.

“애초에 잘못할 짓을 왜 해?”

레오가 더욱 힘을 주었다.

참다못한 로디아가 레오의 손등을 마구 꼬집었다.

학자들은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면.

아마 이 장면을 본다면 다른 의미에서 오열했을 게 분명했다.

***

“그래서? 어딜 가고 계셨던 거예요?”

“알부스를 찾아가고 있어.”

“알부스라면 마지막 페가수스의 왕이요?”

로디아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맞아. 녀석과 맹약을 맺으러 가고 있어.”

“카일님이 알부스와 계약을 맺은 건 드웨노님까지 합류한 이후잖아요?”

“맞아. 내가 알부스와 계약을 맺게 된 계기는 리시나스로부터 내 마나 특성에 대해 들은 이후부터지.”

“……순수.”

로디아가 나직이 레오의 마나 특성을 입에 담았다.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마나.

절대적인 순수함을 유지하는 마나는 오러로 각성해도 마나의 특성을 잃지 않고 마력으로 변환되어도 마나의 특성을 잃지 않는다.

영력으로 승화해도 다시 순수한 마나로 돌아온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마나.

그렇기에 불멸의 불꽃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마나 특성.

시작의 영웅 카일이, 레오 플로브가 태초의 악의 천적인 이유.

‘우리가…… 에레보스를 토벌하는데 실패한 이유.’

로디아의 눈이 가라앉았다.

레오는 그런 로디아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

“자책하지 마. 너희는 대단한 위업을 이뤘어. 내가 인정해.”

“너무도 영광스러운 말이네요.”

황송하다는 표정을 짓던 로디아가 말했다.

“그래서, 가드스론 내에 페가수스 왕이 있나요?”

“그래. 녀석을 필두로 페가수스들이 가드스론 내에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었어.”

“전혀 몰랐어요.”

“나도 리시나스에게 듣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어.”

‘사실 굳이 알부스를 찾아가는 번거로운 짓을 하지 않고 지금 당장 소환이 가능하지만.’

레오는 자신의 왼손등을 쓸어 보았다.

그곳에는 계약의 증표가 새겨져 있었다.

레오 플로브가 아닌 카일이 맺은 맹약.

육체가 아닌 영혼으로 이뤄진 맹약은 과거에 온 지금 되살아난 상태였다.

하지만 레오는 알부스를 소환하지 않았다.

알부스 입장에서는 맺지도 않은 계약이다.

그런 계약을 강제로 이행하게 한다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요르문간드를 토벌하기 위해서는 알부스의 힘이 꼭 필요해.’

전생에도 간신히 쓰러트렸던 상대다.

‘아직 난 이 시절의 힘까지 되찾지 못했어.’

물론 로디아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때의 나에게는 없고 지금의 나에게는 있는 것.’

그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안다는 것과 압도적인 경험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과거의 나에게 조금이라도 다가서야 해.’

“카일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리시나스님은 역사상 최강의 소환사셨잖아요?”

“그래.”

“그런데 왜 페가수스와는 계약을 맺지 않았나요?”

의아한 얼굴로 묻는 로디아를 보며 레오가 대답했다.

“리시나스가 말하길 페가수스들은 자신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다고 했어.”

“어째서요?”

“자세 한 건 나도 잘 몰라. 나라고 리시나스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니까.”

자신이 친구에게 숨긴 과거가 있듯.

리시나스 역시 자신에게 숨긴 과거가 있는 게 분명했다.

레오는 그것까지 굳이 파헤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짐작 가는 부분은 있지.’

거기까지 생각한 레오가 무언가를 떠올리고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너. 네가 태어난 땅에 보물고를 남겨뒀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제가 카일님을 흉봤다는 사실은 라르엘이 말한 모양이네요.”

“그래. 계약까지 했지. 갑작스럽게 영웅의 세계 안에 들어오게 된 탓에 데려오지는 못했지만.”

원래는 단순히 정찰만 하고 빠지려 했기에 레오는 소환수를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다.

데리고 다니면 쫑알쫑알 시끄럽기에 숙소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라르엘, 그 아이는 마음이 여리고 너무 착해서 그렇지 해야 할 땐 하는 굳센 마음을 가진 아이예요.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마음이 여려?”

“예. 세상은 참 아름답다며 이야기할 때는 정말 귀엽답니다.”

레오는 삐뚤어진 미소를 지으며 시도 때도 없이 ‘세상은 썩었어요.’라고 중얼거리던 라르엘을 떠올렸다.

레오와 계약을 맺고 엘시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세상이 썩었다’라는 그녀의 주장은 변치 않고 있었다.

음침한 기운을 내뿜는 라르엘을 보며 키르안이 기겁했을 정도고 아티는 라르엘의 말을 못 듣게 피오라의 귀를 막았을 정도다.

‘엘시랑 같이 놓고 보면 누가 어둠의 정령이고 누가 빛의 정령인지 헷갈리는 수준인데 말이야.’

레오는 혀를 찼다.

‘내 소환수들은 왜 하나같이 성격들이 이상하지?’

고개를 저으며 레오는 로디아에게 라르엘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지 않기로 했다.

“그 보물고에는 대체 뭘 남긴 거야?”

레오의 물음에 로디아가 살짝 굳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리시나스님의 힘을 봉인해 뒀어요.”

“리시나스의 고유 마법과 관련된 건가?”

“네.”

로디아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힘은 너무도 어두웠어요. 분명 리시나스님의 힘이었지만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깊은 어둠에 잠식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저와 세이룬은 물론이고 루메른과 아조니아, 데미안조차 다루지 못했죠. 함부로 다루기에 위험하다고 판단되었기에 보물고에 봉인하고 라르엘에게 자격이 있는 이에게 위치를 알려주라고 했어요.”

로디아의 말을 들은 레오가 혀를 찼다.

‘나도 모르는 리시나스의 힘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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