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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398화 (398/483)

398.

번쩍-!

빛의 기둥이 치솟았다.

모든 이들이 그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유일하게 레오만은 놀라지 않았다.

“늦었잖아, 망할 도마뱀.”

리시나스의 마력을 느끼며 레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치 리시나스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레오는 태연하게 요르문간드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어냐!

요르문간드는 치가 떨린다는 듯 소리쳤다.

쓰러트려도 쓰러지지 않는다.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칼끝을 들이민다.

세계에 공포를 뿌리고 다니던 요르문간드가 도리어 공포에 잠식되어갔다.

-네놈들은 불사신이냐!

“불사신이었다면 이런 개고생도 하지 않았겠지.”

요르문간드의 말에 레오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저 운명이라고 생각해.”

-뭐라고?

“네놈이 우리 손에 뒈질 운명이라고.”

-이 자식이이이이이!

눈이 뒤집힌 요르문간드의 몸에서 재앙의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다.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바쳐 일으킨 재앙의 불꽃은 요르문간드에게 기간적 불멸성을 부여했다.

-아무리 발악해도 소용없다! 너희의 최후는 정해져 있어! 내가 위대한 신의 권능, 불멸의 힘을 손에 넣은 이상! 네놈들의 파멸은 정해졌다!

“그 권능이라는 거 말이야.”

레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빌려온 힘이라면, 애석하게도 나한테는 통하지 않아.”

-뭐라고?!

“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대영웅이 선택한.”

레오가 마법을 개방했다.

“에레보스의 유일한 천적이거든.”

번쩍-!

해방된 이노센트의 빛이 요르문간드를 덮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요르문간드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엮어낸 순수의 빛은 꺼지지 않는 재앙의 불꽃을 날려 버렸다.

화악-!

-이런 말도 안 되는……!

요르문간드는 에레보스의 가호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울 때까지 꺼지지 않아야 하는 검은 불꽃이.

모든 걸 바쳐 손에 넣은 불멸의 힘이 사라졌다.

-아직이다! 신의 가호는 네놈의 술수에 사라졌지만 내 힘은 아직 건재하다!

고오오오오오오-!

흑마력을 내뿜는 요르문간드를 보며 레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끝났어, 빌어먹을 지렁이.”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리시나스의 몸이 흑룡으로 변했다.

고오오오오오-!

리시나스의 입에서 거대한 마나의 파동이 일렁였다.

드래곤이 가진 최강의 공격 기술.

번쩍-!

리시나스가 브레스를 내뿜었다.

회색빛의 섬광.

빛과 어둠의 힘이 합쳐져 만들어낸 카오스 브레스.

빈사 상태에서 에레보스의 힘으로 부활했던 요르문간드가 비명을 내질렀다.

-에레보스시여어어어어어어어!

브레스에 직격당한 요르문간드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리시나스의 세계: 서장- 시작이 공략되었습니다.]

***

“이겼다……!”

“정말로 이겼어!”

“하하. 한 명도 죽지 않았어!”

원정대에서 기쁨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정대 중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휘오오오오오-!

힘이 다한 레오의 몸이 하늘에서 추락했다.

화악-!

알부스가 다급히 날아가 레오의 몸을 받아주었다.

-카일! 괜찮나요.

“죽지는 않을 것 같아.”

레오는 알부스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며 쓰게 웃었다.

바닥에 착지한 후 알부스는 레오를 원정대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폴리모프한 알부스가 레오를 부축했다.

“고생했어, 알부스.”

레오가 그런 알부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에 알부스가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해냈네요.”

요르문간드를 토벌할 거라던 레오의 모습을 떠올리며 알부스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

레오가 웃었다.

“이건…… 분명 미래로 향하는 큰 도약이 될 거야.”

그러는 사이 엘시와 실로드도 레오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굉장해요! 굉장해!

-탐식왕을 토벌하다니요!

머리가 울릴 정도로 조잘대는 정령과 요정을 보며 알부스가 말했다.

“지금 카일은 안식을 취해야 해요. 조용히 해주세요.”

알부스의 엄포에도 두 사람의 조잘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보다 못한 알부스가 두 사람의 입을 움켜쥐어 틀어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쓰게 웃었다.

엘시와 실로드라면 모르겠지만.

알부스의 경우에는 현실에서 다시 볼 수 없다.

레오에게는 과거의 소중한 파트너인 셈이었다.

“어때, 알부스. 맹약자로서 나는?”

레오의 물음에 두 사람을 꾹 움켜쥐고 있던 알부스가 환하게 웃었다.

“최고예요. 당신을 따라와서 다행이에요.”

‘최고였어요, 당신을 따라온 것에 후회는 없어요.’

마지막과 같은 환한 미소를 지어주는 알부스를 보며 레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로디아를 옮겨!”

“세상에…… 마나 고갈 증세야!”

“이렇게 될 때까지 마나를 쥐어짜다니!”

“카일! 너도 어서 치료를…….”

“난 됐으니까 저 녀석부터 챙겨줘.”

원정대 사람들이 레오 주변으로 몰려들자 레오는 숨을 몰아쉬고 있는 로디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레오 역시 만만치 않게 참혹한 모습이었지만 심각성으로 따지자면 로디아가 급했다.

레오가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이 로디아가 조금 안정된 표정을 지었다.

쩌저저적-

세계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끝인가.’

세계가 공략되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

레오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 사이 원정대가 레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기적과도 같은 승리야.”

“……이 승리는 분명 거대한 변화를 불러오겠지.”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는 그들을 보며 카일이 말을 하려는 순간.

[영웅의 이야기를 기록하시겠습니까?]

순간 레오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일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기록.’

레오가 기록을 선택한 순간.

파라라라락-!

주변에 히어로 레코드의 페이지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원정대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러는 사이.

원정대에 함께 한 영웅들의 손에 페이지가 한 장씩 쥐어졌다.

“이건…… 내 이름이잖아?”

“신력이 느껴지는군. 분명 신들은 오래전에 세계에서 자취를 감췄을 텐데?”

“……우리의 이야기가 쓰여 있어요.”

알록스와 페리크, 알레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파라락-

영웅들이 들고 있던 페이지가 레오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레오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페이지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의 이야기는 내가 확실하게 미래로 가져갈게.”

“뭐라고?”

영웅의 세계에서 결과를 바꿨더라도 역사가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이들이 있었다는 증거는 미래로 전할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가, 이들의 위업이, 이들의 희생이.

세계의 평화에 초석이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알릴 수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니까.”

레오가 쓰게 웃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모두.”

레오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알부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레오의 앞으로 리시나스가 걸어왔다.

“늦어서 미안해.”

리시나스가 눈을 뇌리 깔며 말했다.

“……혼자 만족하고 떠넘겨서 미안해.”

그 말에 레오가 웃었다.

“떠안는 건 익숙해서 괜찮아. 그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

손을 뻗어 어리석은 자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누구보다 힘들겠지만…… 우린 분명 세상을 구할 거니까. 네 어리석은 비원은…… 진실이 될 테니까.”

리시나스는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레오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런 리시나스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힘내.”

전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다.

쩌저적-

세계의 금이 더욱 커졌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어느새 카일의 모습은 사라지고 하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만이 남아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랄 법도 했지만 리시나스는 덤덤했다.

“사실…… 나 혼자서는 눈을 뜰 수 없었어. 날 깨워줬어.”

“깨워줘? 누가?”

“지혜의 왕이.”

리시나스의 대답에 레오가 눈을 크게 떴다.

“네 마나에 깃든 미래의 나와 만날 수 있었어.”

레오의 눈이 흔들렸다.

그런 레오를 보며 과거의 리시나스가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보답은 이것 하나뿐인 것 같네.”

쩌저적-!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그 순간, 리시나스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파칭-!

그와 동시에 세계가 사라졌다.

어둠뿐인 공간.

그곳에는 레오와 리시나스만이 남아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리시나스가 눈을 떴다.

어딘지 모르게 더욱 깊어진 눈으로.

리시나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이야, 카일.”

그리움이 듬뿍 깃든 목소리.

레오는 목이 메는 걸 느꼈다.

“리시나스.”

머나먼 과거 오래전 헤어졌던 친구.

지혜의 왕 리시나스였다.

물론 진짜 그녀는 아니다.

레오도 리시나스도 알고 있다.

강령술.

영혼을 불러온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죽은 자를 온전한 상태로 불러오는 건 아니다.

마나에 깃든 영혼의 기억은 아주 작은 조각일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야기를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처음이네.”

리시나스가 손을 뻗어 레오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네가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카일은 동료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았다.

숨이 끊어지는 동료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그들이 마지막 가는 순간만이라도 불안해하지 않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울지 않았다.

“신기하냐, 이 망할 도마뱀아.”

레오가 사납게 대답했다.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런 레오를 보며 리시나스가 말했다.

“미안할 따름이야. 동료의 죽음 앞에서 편히 울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고마워.”

리시나스가 눈을 내리깔았다.

“세계를 구해줘서.”

“……나 혼자 구한 게 아니야. 함께였으니 가능했던 거지, 그리고.”

레오가 손을 뻗어 리시나스의 턱을 거칠게 잡았다.

“웁?”

“고마우면 얼굴을 보면서 당당하게 말해야 할 거 아니야? 왜 청승맞게 고개 숙이고 있어?”

원래라면 레오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바로 발길질을 했을 리시나스다.

하지만 리시나스는 눈을 감히 마주치지 못했다.

“……약속, 못 지켰잖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

리시나스는 결국 지키지 못했다.

카일은 또다시 살아남는 영웅이 되었다.

그런 리시나스의 말에 레오가 말했다.

“신경 쓰지 마.”

레오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네가 악독한 사기꾼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위로해줄 거면 더 좋은 말로 해주면 덧나니?”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리시나스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미래는 어때?”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야. 봉인하는데 그쳤던 에레보스도 완전히 처리해야 하고. 그러려면 함께 싸울 동료들도 키워야 하고.”

레오가 정신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리시나스가 팔짱을 끼며 피식 웃었다.

“이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네.”

“그래. 그래. 너 잘났다.”

레오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런 레오를 보며 리시나스가 빙긋 웃었다.

그런 리시나스에게 레오가 말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응?”

“우리가 모든 걸 걸고 지켜낸 세계가 다시 재앙의 불꽃에 휩싸이는 일은 없을 테니까.”

레오는 리시나스를 보며 웃었다.

리시나스는 눈을 크게 떴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웃음을 닮았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지었던 웃음.

‘하지만 나와는 달라.’

자신이 거짓 웃음을 지어내어 사람들에게 믿음을 줬다면.

저 웃음은 다르다.

“아르온이 가르쳐 준 용기, 드웨노가 알려 준 의지, 루나가 건네준 빛. 네가 보여준 희망.”

정말로 희망을 주는 웃음이다.

“그 모든 걸 후대에 전할 테니까.”

‘어느새 카일은.’

리시나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야말로 끝낼게.”

‘진짜 세계를 구할 영웅이 되었구나.’

레오를 바라보며 리시나스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리시나스의 몸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카일이 이렇게 됐다니. 신기한 걸.”

“네가 떠넘겼기 때문이잖아, 이 망할 도마뱀아.”

레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레오를 보며 리시나스가 손을 뻗었다.

콱-!

레오의 멱살을 거칠게 쥔다.

드디어 못 참고 한 대 치려나 보다.

……라고 생각한 순간.

화악-!

리시나스가 레오의 멱살을 잡아 끌었다.

레오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느닷없이 포개진 입술.

한참을 입 맞춘 리시나스가 태연하게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레오를 싱글벙글 바라보며 웃었다.

‘분명 당황했겠지.’

이 둔해 빠진 녀석은 자신의 마음을 몰랐을 테니까.

리시나스는 어지간한 일에는 당황하지 않는 친구의 당황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사이.

“더럽게 못 하네.”

레오가 퉁명스럽게 입을 슥 닦았다.

그 모습에 리시나스의 얼굴이 우지직- 굳었다.

레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리시나스를 바라보았다.

“난 또 뭐라고. 기왕 할 거 연습 좀 하지 그랬어?”

리시나스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렸다.

기껏 용기를 냈는데 태연자약한 레오의 모습에 분노가 절로 치밀었다.

“네 수기 봤거든? 생각하니까 억울해지네? 야, 티를 냈어야 할 거 아니야. 너 때문에 괜히 새파랗게 어린 꼬마한테 병신이란 소리 듣고. 책임져.”

“죽어! 죽어 버려!”

눈이 돌아간 리시나스가 레오에게 달려들어 목을 졸랐다.

“이대로 뒈져 버려! 네가 병신이라서 못 알아 처먹은 거 맞잖아! 이 망할 인간아!”

격노한 리시나스는 그녀답지 않은 거친 말을 퍼부으며 레오의 목을 졸랐다.

한바탕 소란이 있은 후 리시나스가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런 리시나스를 보며 킥킥 웃던 레오가 입을 열었다.

“리시나스.”

“왜!”

날카로워진 리시나스의 반응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그날…… 내게 손을 내밀어 줘서 고마워.”

리시나스이 멈칫했다.

그러더니 이내 입을 꾹 다물고 울음을 참더니 자신도 모르게 레오를 껴안았다.

그리고 목이 멘 듯.

감사를 전했다.

“나야말로 고마워. 내 손을 잡아 줘서.”

울먹이며 말하는 리시나스를 보며 레오가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화악-!

이내 리시나스는 빛이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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