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채앵-!
예상밖의 인물의 등장등장에 클로에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둠의 칼날을 막아낸 건 다름 아닌 루크였다.
루크의 몸에는 마법진이 떠올라 있었다.
레오의 마법으로 인해 억눌러져 있던 마나가 꿈틀거렸다.
‘검을 휘둘러.’
루크가 검을 휘둘렀다.
이곳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무대일 것이다.
자신은 루메른에서 가장 약한 학생.
자칫 잘못한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꺾이지 마! 감정을 끌어 올려!’
루크는 감정의 떨림에 의해 마나가 증폭한다.
같은 무대에 설 순 없다.
하지만 최소한 도움은 될 수 있다.
루크의 몸에 그려진 마법진이 더욱 환한 빛을 내뿜었다.
“이건 쓸 만하겠는데?”
“나도 레오 오빠 말에 동의해.”
자신의 마법을 보고 레오와 첼시가 내린 평가.
루크는 마법 술식을 짜는 마법사로서의 재능은 없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마법을 생각했다.
그건 육체의 강화.
단순하지만 자신의 마나 특성을 참고해 마법 술식을 짜냈다.
그리고 완성된 것이 바로 한계 이상의 힘을 끌어내는 마법이었다.
힘, 속도, 반응, 심지어 동체시력까지.
모든 걸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물론 만능은 아니다.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도 있다.
육체를 한계 이상까지 쥐어 짜낸 여파로 오는 오버 히트.
게다가 루크가 만든 마법은 루크의 감정이 격해지면 격해질수록 더욱 강해진다.
감정이 격해져 컨트롤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힘이 폭주해 몸이 망가질 수도 있다.
***
“그런데도 이런 마법을 만들었다는 건 그걸 각오했다는 소리겠지?”
“네. 이게 제가 영웅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이렇게까지 해서 영웅이 되려는 이유가 뭐야?”
마법을 레오에게 보여준 날.
레오가 물었다.
“네가 영웅이 되고 싶은 건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서지?”
“네.”
“영웅이 되지 않아도 다른 이를 돕는 건 할 수 있을 텐데?”
“영웅이 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잖아요.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요.”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동화책의 영웅들은 사람들을 구해줄 때면 행복해 보였거든요. 그분들이 존경스러웠고 그렇게 되고 싶다고 했어요.”
“동화는 동화책일 뿐이야.”
“네, 알아요.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세상을 구한 분들도 계시잖아요. 물론 대영웅님들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루크는 빙긋 웃었다.
“그분들이 물려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후대에 물려줄 수 있다면, 참 보람 있을 것 같아요.”
그 말대로였다.
리시나스가, 루나가, 아르온이, 드웨노가.
대가를 바라고 세상을 구한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사랑했던 세상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구한 것이다.
루크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래, 네가 바라는 게 그거라면. 그 마법을 쓸 때면 항상 네가 하고 싶은 걸 떠올려. 네가 되고 싶은 모습을 떠올려. 그렇다면 그 마법은 널.”
레오가 웃었다.
“네가 이상으로 여기는 모습에 한 발자국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줄 거다.”
***
‘고유 마법, 초월.’
화악-!
루크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채재재재재재재재쟁!
은빛 섬광이 어둠의 칼날을 막아냈다.
1학년 최약체의 놀라운 모습에 모든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이나는 눈을 부릅뜨고 루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
루크의 검격은 아이나를 넘어섰다.
“훌륭해.”
클로에가 웃었다.
마법이 완성되었다.
“핌불레이트.”
그녀의 고유 마법.
절대의 빙결이 어둠을 덮쳤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어둠이 얼음 속에 갇혀 얼어붙었다.
콰득! 후두둑! 후두두두둑!
이내 어둠이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
화악-!
본체는 바닥으로 꺼지듯 모습을 감추었다.
***
“젠장! 젠장! 아직 애송이들 주제에!”
델레안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림자 군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쉐도우 지하 미궁에 침입하여 그곳에 있는 힘을 찬탈하는 데 성공했다.
압도적인 용족의 마력을 손에 넣었지만. 그 힘이 어둠의 힘이라는데 분노했다.
이내 곧 이 힘이 리시나스의 힘이란 걸 깨달았을 때는 희열을 느꼈다.
자신은 지혜의 왕의 힘을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곧 도벨라에 이상 사태가 발생했다는 전보를 받고 이곳으로 왔다.
아직 날뛰는 리시나스의 마력을 갈무리하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이 힘으로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을 모두 처리한 후 시간을 들여 힘을 제어하면 되니까.
그리고 이 힘으로 자신과 거래한 타르타로스의 마족들을 처단하면.
자신은 공식적으로 대영웅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오랜 세월 루메른 및 영웅 사관 학교 중심으로 흘러가던 세계의 질서를 자신의 중심으로 흘러가게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야망을 꿈꾸었는데.
고작 2학년들에게 당했다.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없어서다!’
델레안이 악을 쓰듯 속으로 소리쳤다.
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굴욕이었다.
루메른의 졸업생인 그가.
이미 졸업을 하고 수년 동안 힘을 키워온 그가. 고학년들도 아니고 고작 1, 2학년들을 제압하지 못하고 물러섰다.
심지어 그는 리시나스의 힘까지 손에 넣었다.
그런데도 패배했다.
‘아니! 패배한게 아니야! 작전상 후퇴일 뿐이다!’
절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루메른은 틀렸어! 옳지 않아! 그런 방식으로 성장한 애송이들에게 내가 진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지금에 상황을 부정했다.
‘그래! 이 힘만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도망치는 꼴하고는.”
멈칫-!
도벨라의 골목을 이동하던 델레안은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멈칫했다.
뚜벅- 뚜벅-
모퉁이에서 레오가 걸어 나왔다.
그런 레오를 보며 델레안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런, 이런. 루메른 최연소 학생회장이신 대단한 후배님이 아니 신가. 아니. 후배가 아닌가?”
델레안의 눈에 혐오감이 깃들었다.
“영웅 흉내를 내는 지저분한 그림자일 뿐이지.”
델레안의 말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최소한 타르타로스에 붙어 먹은 더러운 변절자가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훗, 나는 그저 그 멍청하기 짝이 없는 타르타로스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그 말에 레오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 시답지 않은 변명도 지긋지긋하군.”
“마치 많이 들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그래, 5000년 전부터 짜증날 정도로 들은 말이야.”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르다.”
델레안이 눈을 번뜩였다.
“이 나는! 원래 영웅이 되었어야 할 몸이다! 루메른을 졸업하고! 많은 영웅의 세계를 공략해서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렸어야 할 몸이란 말이다!”
델레안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루메른에서는 내게 영웅의 세계를 공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루메른은 졸업생에게도 히어로 레코드를 공략할 기회를 줄 텐데.”
“그따위 저급한 영웅들의 기록에는 관심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최상위 영웅의 기록이다!”
그 말에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주제 파악을 못하는군.”
“뭐라고?”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고 영웅의 힘을 계승한다고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건 아니야.”
터벅- 터벅-
레오가 델레안에게 다가갔다.
“강대한 영웅의 힘을 계승한다고 네가 그 영웅들 만큼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
레오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넌 그냥 스스로가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뿐이야. 그걸 남의 탓을 하는 낙오자일 뿐이라고.”
레오의 눈이 싸늘해졌다.
“네가 뭔데 신들이 인정한 위업을 이룬 영웅을 모욕하는 거지?”
“닥쳐라! 너 같은 더러운 그림자도 대영웅의 세계를 공략하는 영광을 누리지 않았나! 뭐가 최연소 학생회장이라는 거냐? 뭐가 위대한 영웅이라는 거냐! 그저 운이 좋아서 대영웅들의 세계를 공략했을 뿐인 주제에!”
화악-!
델레안의 몸에서 어둠의 칼날이 뿜어져 나왔다.
그건 리시나스가 봉인한 흑룡의 고유 마법이었다.
흉포하고 잔악한 마법.
그렇기에 후대에 전하지 않은 마법.
로디아 조차도 이 마법을 접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해 봉인하는 것을 선택했다.
푸욱-!
어둠의 칼날이 레오의 몸을 파고 들었다.
그걸 보고 델레안이 코웃음을 쳤다.
“건방을 떠니 일찍 목숨을 잃는 거다. 주제 파악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게 말이야.”
“……!”
델레안의 눈이 부릅 떠졌다.
어둠의 칼날에 찔린 레오가 터덜터덜 델레안을 향해 걸어왔다.
“주제 파악을 했으면 험한 꼴을 당하진 않았겠지.”
스르르르륵-!
어둠의 칼날이 레오의 몸으로 스며 들어갔다.
그걸 보며 델레안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막아 낸 거지!”
콰가가가가가각-!
다시 한 번 칼날이 레오를 덮쳤다.
푹! 푹! 푸부북!
사방에서 칼날이 레오를 찔렀다.
하지만 레오에게는 생체기 하나 조차 나지 않았다.
스르륵-
그저 레오에게 빨려들어가 흡수될 뿐이었다.
“무슨 술수를 부린 거냐!”
“리시나스의 힘으로 날 해할 수는 없어.”
리시나스의 힘은 리시나스의 것.
그리고 리시나스가 존재하지 않은한 그 힘은 그녀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던 레오의 힘이었다.
리시나스의 힘을 이용해 레오를 죽이려는 건 레오의 힘으로 레오를 죽이려는 행위와 똑같았다.
“그래서? 다른 건 없나?”
“이익!”
델레안이 마나를 끌어내려고 손을 뻗는 순간.
콱-! 철퍽-!
“끄아아아아아악!”
델레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어둠의 칼날이 그의 손목을 날려버렸다.
손목이 바닥에 떨어지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손목을 움켜쥐고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던 델레안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레오를 보며 다급히 뒤돌아서서 달려 나갔다.
여기 있으면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델레안이 달려나가려는 순간.
콰득-!
“크아악!”
델레안이 통제한다고 생각했던 리시나스의 힘이 그의 다리를 으스러트렸다.
쿵-!
바닥에 쓰러져 발버둥치는 델레안에게 레오가 천천히 다가갔다.
스르륵-!
레오가 델레안의 힘에 깃든 리시나스의 마법에 의지를 행사했다.
그의 몸이 강제로 일으켜 세워졌다.
“사, 살려줘! 제발!”
델레안의 얼굴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그런 델레안을 보며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추하게 발버둥치지 말고 죽어.”
“난 네 선배라고! 영웅 사관 학교의 선배! 그런 선배를 무참하게 죽인다고! 그러고도 네가 영웅을 꿈꾸는 영웅 후보생이냐!”
델레안이 악을 썼다.
그런 델레안을 보며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한데.”
레오가 손을 까딱거렸다.
델레안을 감싼 어둠이 슬금슬금 그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네가 조금 전에 나보고 그림자라면서.”
“웁! 웁웁!”
꽈와악! 콰득-!
그림자가 델레안의 입을 틀어막고 더더욱 강하게 조여들어갔다.
“그림자는 배신자를 죽이는 게 일이야.”
태연하게 웃은 레오가 뒤돌아 섰다.
“그리고 너 같은 선배 둔 적 없어.”
“우우웁!”
퍼억-!
몸이 으스러지더니 이내 터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후두두둑-
뼈와 살점, 그리고 피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델레안이 손에 넣었다고 착각했던 리시나스의 마법이 레오의 그림자로 빨려 들어갔다.
레오는 도벨라 전체가 내려다 보일 정도의 높이로 도약했다.
위험에 맞서 물러서지 않는 영웅 후보생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레오가 웃었다.
‘이 애들이야 말로 세계의 미래야.’
과거 리시나스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세상에서 빛나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마, 리시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