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
대강의실에서 1학년들이 잔뜩 들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끼익-
대강의실 앞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웅성거리던 1학년들이 입을 일제히 다물었다.
뚜벅- 뚜벅-
강의실 문이 열리고 들어 온 것은 멜이었다.
멜의 등장에 1학년들이 다시 입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과제가 대체 뭘까?”
“작년 선배들처럼 생존과 관련된 게 아닐까?”
“어쩌면 학과대항전일수도 있어.”
“호오? 그럼 나랑 넌 적이 되는 거겠네?”
“기대해도 좋아. 가차 없이 쓰러트려 줄 테니까.”
“그건 내가 할 소린데?”
과제 예상으로 열띤 토론을 나누기 바빴다.
대강의실 문이 열렸을 때 1학년 전체가 떠드는 걸 멈춘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1학년 최고의 공포의 교수, 할린드와 아르티안이 들어오는 줄 알고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할린드는 당연하게도 전 학년이 두려워하는 통곡의 벽이고 아르티안은 그냥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딴짓하면 다른 영령에 의해 응징당한다.
그런 두 교수에 비교한다면 멜은 온화하고 자애로운 교수.
즉, 좋게 말하면 1학년들 사이에서는 편한 교수고 나쁘게 말하면 만만한 교수라는 의미였다.
보통은 그런 태도에 기분이 상할 법도 했지만 멜은 그저 빙긋 미소 지을 뿐이었다.
드래곤 로드씩이나 되는 그녀가 고작 그런 이유때문에 아직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화를 내는 것도 이상했다.
“모두 주목해주세요.”
멜의 말에 학생들이 멜을 보았다.
특히나 마법학과 학생들은 모두 멜을 주목했다.
모든 걸 떠나 1학년 마법학과생들 입장에서 멜은 최고의 마법학 교수.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기사학과나 소환학과 학생들은 조금 완전히 집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1학년들의 잡담도 얼마 가지 않았다.
“아앙? 떠드는 것들은 대체 뭐야? 멜 교수님의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거냐?”
갑자기 나타난 아르티안이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등장부터 다른 영령이 몸에 깃든 상태.
즉, 광폭 모드로 등장했다.
‘끼야아아아아아악!’
떠들던 학생 전원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르티안의 흉흉하고 살벌한 눈빛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1학년들이 눈을 피했다.
“후훗, 전 괜찮아요. 아르티안 교수님.”
멜이 온화하게 웃으며 그런 아르티안을 만류하자 아르티안이 으르렁거렸다.
“너희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렇게 모든 1학년이 조용히 하자 그 뒤로 할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멜 교수의 말을 무시하고 떠든 녀석들은 감점 10점이다.”
그 말에 감점당한 1학년들은 찍소리도 못했다.
“한심하네요.”
샤샤가 작게 혀를 찼다.
그런 와중에 할린드가 단상 위로 올랐다.
“오늘 너희를 모은 건 다름이 아니라 기말고사 과제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 말에 의기소침해 있던 1학년들이 눈을 반짝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말고사 과제 발표.
그런 1학년들을 보며 할린드가 말했다.
“아무래도 쓸데없는 기대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군.”
할린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냉소적인 미소를 지은 할린드가 말했다.
“세계 정상회의와 기말고사가 겹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녀석들이 있는 모양인데.”
할린드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잘 들어라. 원래라면 너희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기말고사를 치기도 전에 퇴학 조치당했을 거다.”
갑작스러운 할린드의 말에 1학년들의 얼굴이 굳었다.
“올해 운 좋게 학교 운영 방침이 바뀌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녀석이 많다는 뜻이지. 설마하니 ‘실력’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있는 건 아니겠지?”
할린드의 잔인한 말에 많은 학생이 울먹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몇몇 어쭙잖게 실력을 갖춘 녀석들.”
하지만 할린드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 정상회의에서 수많은 권력자와 영웅들이 루메른을 방문하는 건 사실이다. 그 방문객들 앞에서 너희 1학년들이 기말고사를 통해 한 해 동안의 성과를 발표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억해둬라.”
할린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관중들은 순수하게 너희 실력을 평가하기보다는 너희의 멘토, 즉 너희의 1년 선배인 2학년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거다.”
1학년들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2학년들은 작년 1학기 기말고사 때 말 그대로 위업에 가까운 성과를 거두었다. 바깥과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서 일어난 마물과 몬스터 부대의 대침공.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는 1학년이었음에도 그 대위기를 이겨냈지. 거기에 더해 기간테스까지 토벌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2학년들이 황금세대라 불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지.”
1학년들을 슥 둘러 본 할린드가 말했다.
“너희가 2학년의 멘티라는 건 전 세계가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2학년과 비교되어 너희의 가치를 알릴 수 있을까? 멘토 시스템은 분명 너희에게 큰 기회를 제공했지만 반대로 너희와 2학년을 같은 잣대에서 비교하게 되는 부작용도 생겼다. 과연 외부인들이 ‘1학년은 대단하군.’ 이라는 평가를 내릴까? ‘2학년들은 대단한데 1학년들은 이것밖에 안 된다’ 라는 평가를 내릴까?”
할린드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평생 조롱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잘도 꿈에 부풀어 있군. 심지어 너희들 중 절반 이상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퇴학당할 거다. 그 사실도 잊은 거냐?”
할린드의 말이 끝나고 1학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간과하고 있었다.
올해 자신들의 기수가 조금 특별하다는 사실을.
그저 향상된 실력에만 도취 되어 있었다.
그런데 비교 대상이 황금 세대라 불리는 2학년 선배들이 된다고 하니 절로 기가 죽었다.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는 1학년들을 보고 원래 인격으로 돌아온 아르티안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렇게까지 1학년들 기를 죽일 필요가 있을까요?”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1학년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결여된 것도 사실이니까요.”
멜이 빙긋 웃었다.
실제로 1학년들의 분위기는 돌변했다.
‘2학년 선배들이랑 비교된다고?’
‘자칫 실수하면 퇴학이라니.’
‘으. 갑자기 위가 쓰려.’
‘대체 어떤 과제일까?’
좋은 것들만 보고 있던 1학년들은 좋지 않은 것들도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분명 이 중 영광을 누리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소수다.
그보다는 고배를 마시는 학생들이 더욱 많다.
거기에 더해 학교에서 퇴학 조치 될 수 있다는 압박감까지.
기말고사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돌변했다.
그렇게 느슨하던 분위기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할린드는 그런 1학년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기말고사 실습 시험 과제를 발표하겠다.”
그 말에 1학년들이 긴장된 얼굴로 칠판을 주목했다.
탁탁- 타닥-
분필을 들고 칠판에 커다랗게 시험 과제를 썼다.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툭-
분필을 내려놓은 할린드가 학생들을 보았다.
“올해 너희 기말고사 실습 시험은 1:1 토너먼트 대전이다.”
***
“1:1 토너먼트? 와, 잔인한데?”
1학년의 실습 시험 발표 후 도서관 개인 공간에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칼이 혀를 내둘렀다.
그런 칼의 말에 이야기를 전하러 온 쥬엔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요?”
“말 그대로 순수하게 실력만을 보겠다는 거야. 묻어갈 수도 없고 요행 같은 것에 기대지도 못하니까.”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나는 학교생활 내내 묻어가는 걸로 버텼다고.”
칼이 혀를 찼다.
“노하우를 파는 건 글러 먹었군.”
“……. 그런 걸 팔 생각이었어요?”
“물론이지.”
어깨를 으쓱거리는 칼을 보며 쥬엔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가운데 칼이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뭐가요?”
“자료 분석.”
칼이 아이템을 이용해 아공간을 열었다.
그와 함께 엄청난 양의 종이 뭉치들이 튀어나왔다.
쿵-!
쥬엔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내가 왜 굳이 어렵게 개인실을 빌린 것 같냐?”
칼이 씩- 웃었다.
“이 기밀 자료들 때문이지.”
칼의 말에 쥬엔이 손을 뻗어 칼이 준비한 자료를 확인했다.
거기에 적힌 건 다름 아닌 아이나 베이드나의 자료였다.
자료를 천천히 읽어 나갔다.
거기에 더해 마법으로 영상을 찍은 구슬까지 있었다.
“이런 걸 다 어디서 구한 거예요?”
“내가 교직원분들이랑 조금 친하걸랑?”
칼이 킬킬 웃었다.
학생들은 가르치는 교수들을 제외하고 학교 환경미화원이나 학교 내부를 수리하는 많은 직원들.
넉살 좋고 붙임성 좋은 칼은 1학년 당시부터 그들과 절친하게 지냈다.
“그분들께 부탁해서 다른 1학년들이 수련하는 걸 촬영 했지.”
칼의 가장 특출난 능력이 바로 정보 수집 능력.
그 능력을 이번 1학년 기말고사를 앞둔 상황에서 백분 발휘한 것이다.
“마법사는 기사나 소환사에 비해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져.”
칼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첼시 같은 경우에는 뭐. 그런 쪽으로 특화된 지라 약점을 보이지 않지만. 아바드나 클로에조차도 다른 학과 탑들에 비하면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부족해.”
그건 어쩔 수 없는 마법사의 특성이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기동성이 떨어진다.
강력한 위력을 내기 위해서는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정신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런 만큼 전장에서 엄청난 변수를 일으킬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장점 때문에 마법사 본인은 돌발상황이나 변수에 굉장히 취약했다.
칼이 쥬엔에게 보완해주고자 한 점은 요주의 인물들의 자료를 철저하게 분석해서 최대한 돌발상황을 배제하는 것이다.
“언제 이 많은 자료를 준비한 거예요? 토너먼트가 아니라면 크게 필요 없는 자료인데.”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쥬엔을 보며 칼이 씩- 웃었다.
“쥬엔, 넌 굉장한 마법사야. 솔직히 어지간한 시험 과제라도 학년 대표를 노릴 수 있지. 하지만 단 하나 네가 불리한 과제라면 1:1 대결이라고 생각했어. 1:1 대결에서 기동성이 중요한데 넌 아이나와 하비든, 샤샤와 비교한다면 확실히 기동성이 부족 하니까. 그 기동성을 은신 마법으로 대처할 수 있긴 하지만 1:1 토너먼트 대련이라면 그 은신 마법도 활용하기 까다롭지.”
칼이 팔짱을 꼈다.
“그래서 네가 가장 불리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이 자료를 만들어 온 거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어요?”
“난 멘토로서 너한테 큰 도움이 안 되잖아.”
냉정하게 말하면 마력은 물론이고 마법 술식을 다루는 능력도 칼은 쥬엔 보다 뒤처진다.
쥬엔 역시 천재라 불려도 손색없는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다.
그런 쥬엔과 비교해본다면 칼은 평범한 수준이다.
“그래도 넌 나한테 배울 점이 있다고 날 멘토로 선택했지.”
칼이 진지한 얼굴로 쥬엔을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한 이상, 난 네가 학년 대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거야. 일명 킹 메이커가 되는 거지.”
“칼 선배…….”
쥬엔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칼 선배는 진짜 최고의 멘토에요!”
환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달려와 안기는 쥬엔을 보며 칼이 말했다.
“그래. 최고의 멘토 칼 선배라고 홍보 많이 해줘. 2학기에도 내가 학교 다니면 내 물건 많이 애용해주고.”
그렇게 말한 칼이 말했다.
“자, 그럼 요주의 대상들을 체크해 볼까? 앞서 말해주겠는데. 아바드의 멘티인 프리츠와 첸 시아의 멘티인 제인은 아이나, 하비든, 샤샤만큼 요주의 대상들이야.”
학교 성적은 학년 탑들에 비교한다면 부족하지만, 전투력은 심상치 않다.
심지어 두 사람은 자료도 부족하다.
‘이 녀석들은 그림자 후보생이겠지.’
칼도 올해 1학년 중 그림자 후보생들이 있다는 걸 레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림자 후보생.
솔직히 말하면 칼에게 있어서도 미지의 대상이었다.
“그 두 사람이 껄끄러운 건 사실이지만. 일단 그 둘은 후 순위로 둬도 괜찮아요.”
“응? 왜?”
“이미 1차전 상대는 정해졌으니까요.”
“정해졌다고?”
“네. 발표 때 제비뽑기를 했어요.”
“1차전 상대가 누군데?”
칼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칼의 물음에 심호흡을 한 쥬엔은 자신이 들고 있던 자료의 주인공을 보여주었다.
“설마 ……. 아이나 베이드나?”
뜨악한 표정을 짓는 칼을 보며 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