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이 자식이……!”
루크의 말에 레멘트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어디서 그딴 건방진 소리를 지껄여!”
상대는 루메른 1학년 낙제생.
원래라면 학교에 붙어 있지도 못하고 쫓겨났어야 할 변변찮은 놈이다.
그런 루크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고 바닥을 나뒹군 것만으로도 속에서 천불이 날 것만 같았다.
거기에 더해 마치 지금부터 반격이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루크를 보니 반쯤 이성은 끊길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쿠구구구궁-!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루크가 검을 고쳐 쥐었다.
콰가가가가가가각-!
대지의 파도가 마치 거대한 해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루크를 덮쳤다.
지금까지 레멘트가 사용했던 마법들과는 위력과 규모가 달랐다.
루크가 자세를 낮추고 검을 고쳐 쥐었다.
‘피할 틈이 없어!’
지금까지의 공격과는 명백히 달랐다.
확실하게 자신을 말살시키기 위한 공격.
루크가 검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틈이 없다면 만들어야 해!’
오러를 검 끝 한 점에 집중시켰다.
번쩍-!
슈과가가각-!
검을 휘두르자 은빛 섬광이 번쩍였다.
콰가가가가가강-!
그와 함께 대지의 해일이 루크를 집어삼켰다.
“별것도 아닌 게.”
레멘트가 얼굴을 구길 때였다.
화악-!
“뭣?”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를 뚫고 루크가 레멘트를 향해 돌격했다.
쩌엉! 파지지직-!
은색의 오러로 무장한 루크의 공격이 레멘트의 실드 마법을 때렸다.
터엉-!
루크가 튕겨 나갔다.
“이 자식! 무슨 술수를 쓴 거냐!”
레멘트가 흥분해서 소리치며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쾅! 콰가가가가강!
***
“말도 안 돼.”
“저 녀석이 저런 오러를 쓸 수 있다고?”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항상 깔보고 있던 루크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1학년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와, 저런 걸 숨기고 있었어?”
“흐응. 역시나 비장의 수가 있었군요.”
쥬엔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샤샤는 섭선으로 입가를 가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팔짱을 끼고 있던 하비든은 코웃음을 쳤다.
“저 정도는 당연한 거지.”
아이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루크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와, 반장이니만큼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설마하니 저런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었다니.”
2학년 관중석에서 일리아나가 팝콘을 먹으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런데 힘을 쓰는 게 영 어설프네.”
“힘 조절이 아직 서투를 수밖에. 저만한 힘을 쓰는 건 처음이니까.”
“오! 반장!”
일리아나는 뒤에서 들려 온 대답에 손을 흔들었다.
레오는 일리아나의 팝콘에 손을 댔다.
갑작스러운 약탈에 일리아나가 필사적으로 방어했지만, 레오에게 한 움큼 팝콘을 빼앗기고 울상을 지었다.
레오가 자리에 앉자 클로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만한 힘이 있었다면 굳이 낙제생 꼬리표를 달게 할 필요가 있었어?”
“수련법의 특수성 때문에 힘을 오래 억누를 필요가 있었거든.”
강탈한 팝콘을 입에 가져다 대며 레오가 말했다.
“루크의 성장 배경은 다른 영웅 후보생들과 비교하면 특이해. 모든 걸 독학으로 익혔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레오 도령과 조금 닮았군요.”
‘나와는 완전히 다르지.’
레오는 태어날 때부터 그릇 이외에는 모든 것이 완성된 상태였다.
하지만 루크는 다르다.
말 그대로 순백.
그릇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제대로 된 오러 심법을 익힌 것도 루메른에 온 후부터였다.
아무리 루크가 특별한 마나 특성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릇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다른 루메른 학생들과 출발선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훈련을 했다고 해도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줬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지는 못했겠지.’
그렇기에 레오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루크의 그릇을 만들어 주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 방법은 루크 본인에게 있어 굉장히 어려운 길임이 분명했다.
‘가뜩이나 출발선이 훨씬 뒤처진 상태에서 주변 학생들은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데 자기만 제자리걸음이라면…… 절망스러울 법도 하니까.’
물론 루크가 원했다면 얼마든지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쉬운 길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길을 끝까지 걸어간 건 루크 본인이었다.
“이제 그릇을 갖춘 것에 불과하지만.”
레오가 루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지금 1학년 최강자들도 얕보면 당할걸?”
‘원래부터 눈은 좋았어. 관찰력도 좋았지. 거기다 전투 센스도 있었고.’
레오는 크고 하얀 도화지를 만들어 준 것에 불과하다.
이제 그 하얀 도화지를 어떻게 채울지는 루크의 몫이었다.
***
쾅! 쾅! 콰가가가가강!
“끝장을 내주마!”
눈에 핏발이 선 레멘트가 일갈했다.
반쯤 이성을 상실한 레멘트가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수히 쏟아지는 마법에도 불구하고 한 발도 루크에게 적중하지 않았다.
루크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마법의 궤적을 쫓았다.
‘몸이 가벼워. 그리고 지치지 않아.’
레오가 봉인한 건 마나뿐만이 아니었다.
루크의 신체 능력 역시 봉인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매일매일 극한까지 육체를 몰아붙이는 단련을 해왔다.
매일매일을 미친 듯이 달려왔지만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다.
조금의 진보도 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던 나날.
하지만 그러한 정체가 마치 이 순간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듯.
루크의 육체는 지금 움직이는 와중에도 진보를 멈추지 않았다.
마치 지난 나날의 고난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한 것처럼.
하루도 멈추지 않고 성실하게 훈련한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순간 보상받고 있었다.
콱-!
루크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거대한 바위 창을 밟으며 도약했다.
핑그르르르- 회전하며 하늘에서 날아드는 바위의 화살을 쳐냈다.
채재재쟁-
레멘트의 공격은 쉴 틈이 없었다.
모든 공격을 회피하고 막아내는 루크의 모습에 레멘트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하! 지금 나랑 장기전을 해보겠다는 거냐?! 그 전에 네가 지치거나 혹은 마법에 적중당할 거다!”
그 말대로였다.
아무리 지치지 않고 또, 루크가 마법의 궤적을 읽는다해도.
레멘트라고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루크가 레멘트의 마법의 궤적을 읽고 움직이는 만큼 레멘트도 루크의 움직임과 동선을 파악하고 더더욱 복잡한 패턴의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레멘트 모르락.
그는 마법 명문 출신으로 1학년 마법학과 3등이다.
기본적으로 다른 학생에 비해 압도적인 마력량의 소유자다.
‘장기전으로 가면 내가 불리해.’
봉인을 풀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나를 손에 넣었지만 그렇다고 루크의 마나량이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다.
기사에게 있어 오러는 연소시키는 연료.
마나를 모두 소모하는 순간 육체적 능력은 급감한다.
‘레멘트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도 쉽지는 않아.’
거리를 좁히려고 몇 번 시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레멘트는 무수히 많은 보호 마법으로 접근을 막고 있었다.
레멘트 역시 날고 기는 재능들이 모이는 루메른 마법학과 3등의 자리를 노름으로 차지한 건 아니었다.
마법 실력은 물론이고 전투 경험까지 풍부했다.
오러를 다루는 기사와의 전투는 이미 이골이 났다.
‘공격에 조금이라도 스치거나 지치면 내 패배야.’
루크의 은색 눈동자가 레멘트에게 향했다.
루크의 눈이 은빛으로 빛났다.
화악-!
느닷없이 방향을 바꾸어 자신에게 돌격하는 루크를 보며 레멘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멍청한 놈!’
갑작스럽게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루크를 보며 일순간 당황했다.
일순간이지만 자신에게 공격을 적중시킨 것에도 분노했다.
하지만 레멘트는 빠르게 냉정함을 되찾고 있었다.
‘내가 루크 엘다에게 질 요소는 어디에도 없다!’
레멘트의 공격은 루크를 압도하고 있었다.
‘제법 빠르다만 그뿐!’
레멘트 역시 학년 대표 자리를 노리고 있다.
전통형 마법사인 그에게 가장 까다로운 적은 기사학과의 하비든과 아이나.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상대를 압도하는 기사들이다.
그런 그들과의 전투를 예상했던 레멘트다.
그가 주력으로 다루는 속성의 마법은 땅.
그리고 땅속성 마법사의 주특기는 방어다.
‘내 영역으로 들어선 순간 네놈은 끝이다.’
레멘트의 눈이 번뜩였다.
콱-!
그 순간 무수한 방어 마법을 뚫고 루크가 레멘트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콰가가가강-!
레멘트의 마법이 발동되며 루크를 노렸다.
확-!
그 순간 루크가 빠르게 레멘트와 거리를 벌렸다.
채재재재재쟁-!
땅에서 솟아난 마법들이 루크를 노렸지만 루크는 검을 휘둘러 마법을 모조리 쳐냈다.
콱-!
땅을 박찬 루크가 순식간에 레멘트의 뒤로 돌아갔다.
화악-!
그리고 시야가 닿지 않은 곳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소용없다! 이 마법엔 사각 따윈 없어!”
레멘트의 일갈이 무섭게 또다시 발동된 마법이 루크를 노렸다.
루크는 또다시 레멘트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공격은 불가능하고 회피 방어만 해야 하는 상황.
마치 늪에라도 빠진 듯했다.
레멘트가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였다.
우뚝-!
루크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갑작스럽게 멈춘 루크를 보며 마법을 난사하던 레멘트가 일순간 멈칫했다.
그러더니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포기한 거냐? 미안하지만 내게 굴욕을 준 네놈을 순순히 끝내줄 생각은…….”
“간다.”
심호흡을 하며 루크가 검을 고쳐 쥐고 자세를 낮추었다.
“뭐?”
레멘트가 얼굴을 찡그리는 순간.
콱-!
‘사라졌다?’
레멘트가 경악하는 순간.
그의 탐지 마법에 루크의 움직임이 포착했다.
‘아니, 더 빠르게 움직이는 거야!’
레멘트가 방어 마법에 마력을 집중시키며 자신의 영역을 더욱 넓혔다.
지잉-!
루크가 레멘트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마력이 반응했다.
쿠구구구구구궁!
바닥에서 솟아난 온갖 땅의 마법이 루크를 덮쳤다.
그 마법을 모두 쳐내고 회피하면서 루크는 빠르게 레멘트와 거리를 좁혔다.
“어리석은 놈! 스피드를 좀 더 올렸다고 나한테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레멘트가 비웃음을 날렸다.
그 순간.
화악-!
루크가 레멘트의 1차 방어선을 돌파했다.
그걸 본 레멘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아니, 놈은 나에게 닿지 못해.’
레멘트는 더욱 마력을 끌어올렸다.
쿠구구구궁-!
솟아난 땅이 루크를 붙잡으려 했다.
그 순간.
번쩍-!
루크의 은색 눈동자가 번뜩이더니 은빛 섬광이 난무했다.
콰가각-!
날카로운 검기가 마법을 양단했다.
레멘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루크는 지난 1학기 동안 거의 없다시피한 마나를 최대한으로 활용을 해왔다.
그 덕에 섬세한 마나 컨트롤 능력을 손에 넣었으며 그 컨트롤 능력은 마나의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적은 양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습했다.
2차 방어선까지 돌파한 루크를 보며 레멘트가 온 마력을 쥐어 짜냈다.
“아직이다!”
우웅-!
그의 주변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마법이 구현되며 루크를 노렸다.
그 순간.
화악-!
‘더…… 빨라진다고?!’
은빛 섬광이 레멘트의 코앞까지 다다랐다.
콱-!
루크가 왼발로 바닥을 박찼다.
“잠…….”
왼발을 지지대 삼아 루크가 오른발로 레멘트의 복부를 걷어찼다.
“까…….”
콰악-!
“커헉?”
루크의 발끝에 집중된 오러가 일순간 레멘트의 실드 마법을 모조리 꿰뚫었다.
쾅-!
루크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은 레멘트가 날아가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후두두둑-! 털썩-!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레멘트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후우.”
루크가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섰다.
“승리, 루크 엘다.”
멜은 빙긋 웃으며 루크의 승리를 선언했다.
“오오오오오!”
고학년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공격 궤적을 읽고 회피하는 게 거의 예술인데?”
“눈이 굉장히 좋네. 마음에 들어.”
전혀 예상치 못한 승리.
거기에 루크가 레멘트를 공략하는 과정은 굉장한 구경거리였다.
고학년들 사이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에 반해 1학년 대부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루크를 바라보았다.
“마, 말도 안 돼.”
“저 낙제생이…….”
“잠깐. 레멘트를 쓰러트렸다는 건 1학년 중 손에 꼽히는 강자라는 거잖아?”
“나 이때까지 대놓고 무시하고 비웃었는데…… 어떻게?!”
그중 몇몇 1학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쟤 저게 끝이 아니야.”
“그렇죠. ‘마법’ 은 사용하지 않았으니까요.”
쥬엔의 말에 샤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에 쥬엔이 몸을 일으켰다.
“잘해봐요, 마법학과 1등.”
“이기고 올 거야.”
쥬엔이 코웃음을 치고 대기실로 향했다.
한편 아이나 역시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 있던 하비든이 말했다.
“루크 엘다가 신경 쓰이나 보지?”
아이나는 아직까지 루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전혀.”
짧게 대답한 아이나가 대기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친 하비든이 루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쓰러트릴 가치가 생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