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아이나는 오러로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진짜를 구분할 수 없어.’
쥬엔이 융합한 네 가지 마법은 은신, 얼음 분신, 폭발, 마력 분배.
은신은 계속해서 감각을 예민하게 가다듬게 만들어 피로를 누적시킨다.
얼음분신들 속에 몸을 숨기고 폭발마법을 통해 진짜를 찾기 위해 아이나가 닥치는 대로 분신을 공격하는 걸 차단했고 마력 분배로 마력 감지를 통해 진짜를 찾을 수 없게 했다.
말 그대로 완벽한 견제.
아이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법사의 위치를 찾을 수 없어, 하지만.’
지잉-! 번쩍!
강력한 마력이 휘몰아침과 동시에 쥬엔의 마탄 마법이 아이나를 노렸다.
아이나의 황금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콱-!
오러 스텝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마탄을 피했다.
‘공격을 하는 순간 위치는 발각돼.’
아무리 완벽하게 본체를 숨겼다고 해도 공격을 하는 순간은 위치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화악-!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마법이 날아온 곳을 향해 질주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한다면 다시 분신들 사이로 모습을 감출 것이다.
아이나는 그러한 틈도 주지 않고 속전속결로 대련을 마무리하려 했다.
순식간에 쥬엔과 거리를 좁힌 아이나가 망설이지 않고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컥?”
어깨를 관통당한 쥬엔이 단말마를 내뱉었다.
화악-!
은신이 풀렸다.
“끝이야.”
고개를 숙인 채 부들부들 몸을 떠는 쥬엔에게 아이나가 덤덤히 말했다.
그 말에 쥬엔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고 생긋 웃었다.
“응, 아니야.”
“……!”
번쩍! 콰아아앙-!
다시 한번 얼음 분신이 폭발했다.
오러 아머로 몸을 보호한 아이나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어떻게……!’
아이나가 당황하는 순간.
번쩍-!
또다시 쥬엔의 공격이 아이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큭!”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아이나가 다시 한번 쥬엔을 향해 돌격했다.
***
-오오오! 쥬엔 선수! 아이나 선수를 상대로 주도권을 잡고 완전히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룬바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오오! 전혀 예상 밖인데?”
팝콘을 먹으며 시합을 구경하고 있던 일리아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이나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쥬엔이 완벽하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때 일리아나가 옆을 지나가는 칼에게 말했다.
“칼! 나 팝콘 하나 더! 카라멜 뿌린 걸로!”
“오우! 나야 고맙지! 그런데 너 벌써 세 통째인데 그러다 돼지 된다?”
“이게 누구더러 돼지래?”
발끈한 일리아나가 칼에게 발길질을 했지만, 칼은 얄밉게 그걸 피했다.
“레오, 넌 어떻게 생각해?”
칼이 레오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대로 주도권을 유지한다면 쥬엔이 이길 거야.”
레오는 시합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나가 이 시합의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건 쉽지 않겠지.”
쥬엔 토르비나.
남부 마탑주의 딸로서 넘치는 재능을 가졌다.
보기 드물게 모든 속성의 마법을 다룰 수 있으며 각 속성 마법의 이해도 역시 굉장히 뛰어나다.
거기에 강력한 마력과 마법 시전 속도를 가지고 있다.
‘압도적인 화력을 내뿜는 마법사는 아니지만 정통형 마법사면서도 굉장히 밸런스가 좋지.’
상당한 위력의 마법 공격을 계속해서 날릴 수 있다는 것이 쥬엔의 가장 큰 장점이다.
거기에 다양한 마법을 다루는 만큼 온갖 상황에 대한 대응도 능하다.
이런 마법사를 상대로는 한 번 주도권을 빼앗긴 이상 되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거야.”
지금도 아이나는 쥬엔의 분신들을 빠르게 베어가고 있었다.
얼음 분신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계속해서 아이나에게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아이나에게 큰 데미지를 주진 못했다.
쥬엔의 마법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마법은 충분히 위력적이다.
“쥬엔 같은 다재다능한 마법사를 상대로는 잔재주는 잘 통하지 않지.”
마법사가 가장 강하고 위협적인 순간은 거점에서의 전투.
그렇기에 마법사에게 있어 주도권을 잡는다는 건 주변 일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아 요새화시켰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돌파하면 그대로 자멸하지만.”
레오가 자세를 낮추는 아이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나는 쥬엔을 상대로 정면 돌파를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으음!”
팔짱을 낀 칼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뭐, 본인 자체가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싸우는 경향이 강하지만.”
좋게 말하면 정면으로 우직하게 부딪치는 타입이고 나쁘게 말하면 단순 무식하게 들이박고 보는 타입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적이 가장 무섭지.’
아이나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
‘진짜 얘는!’
은신으로 모습을 감춘 상태에서 쥬엔은 속으로 소리쳤다.
아이나는 묵묵히 쥬엔의 분신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폭발에 휘말려서 타격을 입고 있었지만 움직임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단순 무식한 것도 정도껏 해야지! 진짜!’
얼음 분신 하나가 아이나에게 입힐 수 있는 타격은 아이나 입장에서 미미한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미미한 데미지일지라도 누적되면 큰 타격이 된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면 멈칫하기라도 할법한데 아이나에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돌격한다.
가로막는 모든 건 일단 쳐부술 기세.
‘이걸로 아이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이렇게 빨리 은신 마법을 파훼할 줄이야.’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쥬엔이 지팡이를 붙잡았다.
‘시간을 벌어야 해.’
어차피 정면 승부에서는 승산이 없다.
쥬엔이 아이나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하다.
쥬엔의 마법은 강력한 위력에 엄청난 연사 속도를 가지고 있다.
어지간한 기사학과 학생이라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지만 아이나는 격이 다른 상대이다.
게다가 아이나의 검은 쥬엔의 마법보다 빨랐다.
‘아이나는 검격으로 얼마든지 내 공격을 상쇄시킬 수 있어.’
쥬엔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공격이 적중한다고 해도 오러 아머에 막혀서 큰 데미지를 줄 수 없어.’
그렇게 된다면 아이나의 반격을 당하게 된다.
쥬엔의 공격을 몇 번이나 버틸 수 있는 방어력을 지닌 아이나와 달리 쥬엔은 단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면 끝난다.
‘어차피 한 번에 쓰러트리지 못하면 내 패배.’
그래서 강력한 한방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쥬엔이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아이나가 쥬엔의 마지막 분신을 베려는 순간.
번쩍-!
지팡이를 아이나에게 겨눈 쥬엔이 단번에 마력을 개방했다.
지이잉-! 번쩍-!
강력한 마력의 탄환이 아이나를 향해 질주했다.
그 순간 아이나의 황금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번쩍-! 콰가가가강-!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베자 황금빛 섬광이 번쩍였다.
마법을 정확하게 양단한 아이나가 은신 마법을 풀고 모습을 드러낸 쥬엔을 바라보았다.
“찾았다.”
아이나가 곧바로 쥬엔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아이나를 보며 쥬엔이 일제히 마법을 개방했다.
허공에 생성된 마법진에서 마법이 쏟아졌다.
아이나가 황금색 눈을 번쩍이더니 검을 고쳐 쥐고 허공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후왕! 콰가가가가가가가강-!
허공에서 무수히 마법들이 폭발을 일으켰다.
“다시 한번 더!”
쥬엔이 마력을 끌어올려 또다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아! 쥬엔 선수! 너무 비효율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저만한 규모의 마법을 계속 사용하면 아무리 마력이 방대하더라도 금방 탈진하고 말 텐데요!
룬바가 다급히 소리쳤다.
“은신 마법까지는 좋았는데.”
“쥬엔 토르비나에게 너무 불리해. 아마 시가전이나 숲 같이 엄폐물이 있는 전장이었다면 더욱 대등한 싸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백병전에 특화된 기사 클래스와 마법사의 전투니 어쩔 수 없었겠지.”
고학년들 사이에서 아쉽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황금색 검격과 동시에 또다시 쥬엔의 마법이 저지당했다.
“허억- 허억-”
무리한 마법 사용으로 쥬엔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리한 마법 운용으로 인해 쥬엔의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한계.
쥬엔은 그 사실을 직감했다.
그에 반해 아이나는 비교적 멀쩡해보였다.
마법에 몇 번이고 직격당한 상태였지만 한계에 다다른 쥬엔과는 달랐다.
“단순히 숫자만 앞세운 공격으로는 날 이길 수 없어.”
아이나가 검을 늘어트리며 말했다.
“이건 시간 끌기에 불과해. 그러니 패배를 인정해.”
“항상 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시하는 녀석에게는 순순히 패배 를 인정할 순 없지.”
“난 남을 무시한 적 없어.”
아이나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이뤄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에만 집중할 뿐이야.”
“그게 남을 무시한다는 거야.”
쥬엔이 이를 갈았다.
처음 아이나가 학년 대표가 되었을 때 쥬엔은 내심 분했지만, 아이나를 인정했다.
입학 시험에서 보여준 아이나의 실력은 자신보다 한 수 위였으니까.
지금으로서는 아이나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하비든과 샤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년 대표 자리를 노리고, 아이나를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나 베이드나! 기다려, 곧 학년 대표 자리를 가져갈 테니까!’
호기롭게 선전포고하자 아이나는 무신경하게 말했다.
‘학년 대표 자리에는 관심 없어.’
‘뭐? 그럼 뭐 때문에 1등을 하는 거야?’
‘레오 선배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네가 학년 대표해. 난 관심 없으니까.’
‘잠깐. 그딴 식으로 학년 대표가 될 생각은 없거든? 널 쓰러트리고 학년 대표 자리를 가져가야겠어!’
‘그럼 네가 이긴 걸로 해.’
‘뭐?’
“난 널 쓰러트릴 거야.”
“그런 상태로는 불가능해. 넌 이미 한계야.”
쥬엔의 말에 아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아이나를 보며 쥬엔이 빙긋 웃었다.
“한계를 넘어서라, 그게 우리 학교 교훈이잖아?”
“…….”
“그리고 그렇게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니까.”
“……?”
“그렇게 걸리는 거야.”
“……!”
손가락으로 밑을 가리키는 쥬엔을 보며 아이나가 눈을 크게 뜨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뭐지?’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실?’
마치 거미줄처럼 마력의 실이 아이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철컥-!
쥬엔이 지팡이를 아이나에게 겨누었다.
“앞에 마법은 눈속임! 진짜는 너를 묶어 두기 위해 함정을 까는 거였어!”
‘어느 틈에.’
쥬엔의 고유 마법 아라크네.
거미집같이 마력의 실로 상대의 발을 묶는 마법.
그리고 이 마법에 걸리게 된 이상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거미줄에 얽매이게 된다.
물론 아이나라면 조금의 시간만 있으면 이 마법을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면 충분해!”
쥬엔의 마력이 넘실거렸다.
이때까지와는 확실히 달랐다.
“화력 최대로!”
콰앙-!
마치 포격이라도 일어난 듯.
주변의 공기가 떨렸다.
자신의 코앞까지 날아든 마법에 아이나의 눈이 흔들렸다.
쿠웅! 콰가가가가가강-!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경기장 자체가 자취를 감추었다.
쥬엔이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를 바라보았다.
화악-!
그 순간 흙먼지를 뚫고 아이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너덜너덜한 상태였지만 아이나는 아직도 황금색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기어이 쥬엔의 회심의 일격도 뚫어내고 쥬엔의 앞에 도달했다.
“너라면 이 정도로 쓰러지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
“뭐?”
쥬엔의 외침에 아이나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손가락으로 아이나를 겨눈 쥬엔이 마력을 개방했다.
피를 토하면서도 마탄을 쏘아 보냈다.
펑-!
“컥?”
마탄에 직격당한 아이나가 처참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이제……. 한계야…….’
아이나가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쥬엔이 손가락을 겨눈 채 다가왔다.
저벅- 저벅-
그에 아이나가 포기한 듯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마법 공격이 없자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떨리는 손을 아이나에게 겨눈 쥬엔이 서 있었다.
그 순간.
털썩-
쥬엔이 쓰러졌다.
멜이 다가와 정신을 잃은 쥬엔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선언했다.
“승자, 아이나 베이드나.”
“오오오오오오!”
“막판에 아슬아슬 했잖아?”
“와! 아이나 베이드나에게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다면 이겼겠는데?”
흥분된 목소리가 쏟아졌다.
아이나는 기절한 쥬엔을 바라보았다.
이미 쥬엔은 진즉에 한계였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아이나를 몰아붙였다.
아이나가 이를 악물었다.
한계를 맞이하자마자 그대로 포기해버린 자신과 끝까지 자신을 쓰러트리기 위해 덤벼온 쥬엔.
만약 쥬엔이 조금이라도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면.
‘내가 졌어.’
마음이 술렁인다.
이렇게까지 고전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다.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서 레오에게 인정 받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꼴사나워.’
터덜터덜-
환호성을 받으면서도 아이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한계를 넘어서 덤벼오던 쥬엔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나 한계에서 아등바등하던 루크의 모습도 떠올랐다.
자신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아이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레오에게 인정을 받고 검성의 유산을 이어받아 타르타로스에게 복수한다.
그것이 아이나의 생각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나는 자신이 강해지면 얼마든지 레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나……. 이대로 레오 선배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