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417화 (417/483)

417.

루니아와 아르, 드리아나가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셋 모두 영웅 사관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이다.

아직 2학년이었지만 영웅 후보생으로 수많은 위기를 넘어왔고 그에 걸맞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유의 성격 덕분에 어지간한 일에는 긴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존재인 드래곤 로드 앞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멜리나는 자신들에게 ‘시대가 선택한 영웅’ 이라고 했다.

영웅은 누구나 특별한 존재다.

모두가 그 시대를 풍미하는 존재들.

말 그대로 선택받은 자들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 시대를 짊어졌다고 평가받는 영웅은 매우 드물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검성.

검성 이전에는 멜리나를 필두로 한 개벽의 공략자들이 시대를 짊어진 영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지금 그 사실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

“로드님께서 말씀하신 그분이란 대체 누구인가요?”

루니아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5000년 전.

영웅의 시대가 시작되고 지혜의 왕의 유지를 계승해 대대로 영웅을 선별해 왔던 것이 드래곤 로드다.

그만한 지혜와 힘을 갖춘 드래곤만이 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드래곤 로드의 자리다.

그렇기에 드래곤 로드는 어느 시대나 최강의 존재로 군림한다.

그런 드래곤 로드가 ‘그분’ 이라고 칭하는 자가 있다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루니아의 물음에 멜은 면사포 아래로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마치 수수께끼를 내는 듯한 어른의 모습에 루니아는 더더욱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설마 드래고니아에 로드님 보다 더 지위가 높으신 분이 있으신 겁니까?”

드리아나도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분에 대해 궁금한 모양이네요.”

후훗- 하고 입가를 가린 멜리나가 말했다.

“아직 여러분이 그분이 누구인지 알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돼요. 다만 그분이 여러분께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건 확실해요. 저 역시 그렇고요.”

멜리나의 말에 루니아와 드리아나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건 여러분이 처음이니 비밀로 해주세요.”

검지를 입가로 가져다 대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멜리나를 보며 루니아는 뭔가 엄청난 비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그 순간.

지금까지 팔짱을 낀 채 멜리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음-! 하며 고민하던 아르가 눈을 번쩍 떴다.

꼬리까지 빳빳하게 세운 아르는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알겠다! 로드님께서 말씀하신 그분이란 대영웅님! 혹은 개벽의 영웅님인 게 분명해!”

멜리나와 루니아, 드리아나의 시선이 아르에게 향했다.

“생각해봐! 로드님 보다 높은 지위! 게다가 우리를 선택했다고 했잖아! 너희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난 아르온님께 선택받았어. 그렇다면 하나밖에 더 있어?”

우쭐한 표정을 지은 아르가 콧방귀를 흥! 하고 내뱉었다.

“이미 루나님이나 세이룬님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신 적이 있으니까! 틀림없어!”

“무슨 헛소리야, 바보 고양이.”

“바보 같은 소리도 정도껏 하게.”

“그리고 네가 왜 아르온님의 선택을 받아?”

“여기 성질 나쁜 귀쟁이 말이 맞네. 아르온님은 자네만 보면 기겁하며 도망가지 않았나?”

“그건 아르온님이 쑥스러워서 그러신 거야.”

“퍽이나!”

“게다가 루나님과 세이룬님께서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신 건 히어로 레코드가 일으킨 기적이지 않은가?”

“영구적으로 대영웅님이나 개벽의 영웅님이 현세에 머무르시는 게 가능할 것 같아? 가능하다면 숨길 이유도 없지. 그분들이 있으시면 타르타로스와의 전쟁은 바로 끝날 테니까!”

“우윽?!”

논리적인 두 사람의 말에 아르가 움찔하며 물러섰다.

“단순한 것도 정도껏이지. 너 바보야?”

“야생의 짐승 아닌가. 겉모습이 아름다운 것 빼고는 쓸모가 없어.”

“이것들이!”

눈을 치켜뜬 아르가 덤벼들었지만, 순순히 당해줄 두 사람이 아니었다.

한편, 면사포 내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멜리나가 빙긋 웃었다.

‘굉장히 날카롭네. 저게 야성의 감이란 건가?’

단순히 찍은 건지, 아니면 좋을 대로 생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르의 예상 정확했다.

그렇게 왁왁거리는 세 소녀를 보며 멜리나가 헛기침했다.

셋은 엉망이 된 옷과 머리를 다급히 가다듬은 후 똑바로 섰다.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네요.”

세 사람에게 한 번 웃어준 멜리나가 말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어떤 영웅이 되고 싶나요?”

“루나님처럼 자유롭고 싶어요.”

“아르온님 같은 용기를 가지고 싶어요!”

“드웨노님의 뒤를 잇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영웅이 되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나요?”

멜리나의 물음에 세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더니 루니아가 대표로 대답했다.

“대영웅님들의 유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숙한 그 대답에 멜리나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심호흡했다.

“훌륭해요.”

대영웅의 유지를 잇는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에레보스의 완전한 토벌.

5000년의 역사 속에서 감히 그 누구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었던 일.

“시대가 선택한 영웅답네요.”

멜리나의 말에 아르가 물었다.

“시대가 선택을 했다는 건 우리가 차세대를 짊어질 영웅이라는 소린가요?”

“아니요. 세대를 짊어지는 것과 비교도 하기 힘든 험난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에요.”

멜리나의 말에 세 사람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오늘 모습을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멜리나가 빙긋- 웃어주었다.

“하지만 지금으로는 부족해요. 지금 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거예요.”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드래곤 로드의 말.

부족하다는 말이 실감이 갔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여러분이 어엿한 영웅이 되는 날을. 하루빨리 같은 무대에 오를 날을요.”

그 말을 남긴 후 멜리나는 눈 깜짝할 사이 모습을 감추었다.

“로드께서 방금 하신 말씀 무슨 뜻일까?”

멜리나가 사라진 후 루니아는 멜리나가 남긴 말을 곱씹었다.

“시대를 짊어질 영웅보다 더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역시나 드래곤 로드님도 에레보스의 완전한 토벌을 목표로 하고 계신 게 아닐까?”

“우리의 가능성을 그 정도로 높게 보고 있다는 거야?”

루니아와 아르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단순히 시대를 짊어지는 것만으로도 보통사람은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일이다.

하지만 멜리나는 그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리아나, 넌 어떻게 생각해?”

루니아는 자신처럼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드리아나에게 물었다.

“흠. 드래곤 로드께서는 얼마나 아름다우실까.”

전혀 관계없는 소리를 하는 드리아나를 보며 아르가 말했다.

“한 대 때려줄까?”

“내가 먼저 칠래.”

사나운 표정을 지은 둘은 그대로 드리아나를 걷어찼다.

***

환영 파티가 끝난 건 자정을 넘긴 새벽 무렵이었다.

이후 외부 인사들은 귀빈 대우받으며 숙소로 안내받았다.

다른 영웅 사관 학교 학생들의 경우에는 각 학년 별 기숙사에 머무르기로 했다.

영웅 사관 학교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이 기회에 교류회를 갖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호! 과연, 이야기는 들었지만 루메른 2학년들은 정말로 기숙사 전을 하는군?”

“이거 다 너희들이 꾸민 거야?”

“괜찮네.”

각 학교의 2학년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기숙사로 자리를 잡았다.

일전에 스미스 전속 계약 당시 친분이 있었기에 2학년들은 어색함 없이 숙소를 정했다.

친분이 있는 학생들이 있는 기숙사를 선택하는가 하면 각 학교의 성향에 맞춰 기숙사를 선택하기도 했다.

아조니아은 글로리를 선호했고 데미안은 하모니.

마지막으로 세이룬은 대체로 노블 쪽으로 모였다.

“네가 노블이라니, 조금 의외네.”

노블 휴게실에 다리를 꼬고 앉은 루니아가 힐끗- 칼을 바라보았다.

그에 칼이 차를 내오며 말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학기가 끝나가지만 내가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다.”

푸념 섞인 칼이 차를 대접해주었다.

“그래도 손님 대접이 훌륭하네.”

다른 세이룬 학생들이 칼이 내온 다과상에 만족했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고퀼리티의 다과상이었다.

기숙사 대표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바드가 말했다.

“참고로 그건 우리 기숙사 서비스가 아니야. 칼 개인의 서비스지.”

“호오, 고마워.”

“고마워요.”

세이룬 학생들이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긴 뭘. 루니아, 여기서도 네가 세이룬 2학년 대표라고 보면 되는 거지?”

칼이 웃으며 루니아에게 묻자 루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루니아에게 칼이 손바닥 크기의 가죽판을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루니아 엘 룬드아님.”

“갑자기 웬 존대? 그리고 이건 뭐야?”

“계산서요.”

“…….”

루니아의 얼굴이 구겨졌다.

칼은 손가락으로 휴게소 한 곳을 가리켰다.

[칼 서비스: 유료]

노블 내에서는 칼이 기숙사 내에서 서비스 일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유료였다.

“참고로 새벽이라 할증까지 붙어.”

“이거 강매잖아!”

“어허! 강매라니! 우리 기숙사 들어올 때 내가 안내 팸플릿도 다 건넸거늘!”

루니아가 발끈했지만 칼은 단호했다.

노블 학생들과 친분이 있어 화를 면한 아조니아와 데미안 학생들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하모니에서는 드리아나에게 셀리아가 다가갔다.

“당신이 드리아나?”

“흠. 보아하니 셀리아 제르딩거인 모양이군.”

“잘 아네.”

“유명하니까.”

드리아나는 자신에게 다가온 셀리아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래서, 내게 말을 건 이유는?”

“당신 드웨노님 세계의 공략자잖아. 기사로서 무구를 다루는 신의 대장장이를 만난 대장장이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잖아?”

“대장장이가 아닐세.”

“뭐?”

“예술가일세.”

셀리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셀리아에게 드리아나가 말했다.

“자네, 누드모델이 되어 볼 생각 없나?”

셀리아는 이 드워프랑은 절대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레오님의 방.”

한편, 글로리 기숙사를 선택한 에이란은 레오의 방에서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상한 책 없나?”

아르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레오의 방 구석구석을 수색했다.

“이, 이상한 책이요?”

“검은 토끼의 약점을 잡을 절호의 기회니까.”

아르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현재 레오는 잠시 방을 비운 상태였다.

방구석을 수색하던 아르는 레오의 책장에 있는 사물함이 살짝 열린 걸 발견하고는 손을 뻗었다.

에이란이 다급히 만류했다.

“사, 사물함을 열어보는 건 안 돼요! 나쁜 짓이에요!”

“난 닫아주려는 것뿐이야. 물론 실수로 손이 미끄러져서 열어 볼 수는 있겠지만.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아르가 능청스럽게 문을 열었다.

삐약-

안에서 자고 있던 피오라가 짜증 난다는 반응을 보이고는 신경질적으로 날개짓을 했다.

화르륵-!

“으갹!”

얼굴에 불이 붙은 아르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에이란은 불을 꺼주는 걸 도왔다.

***

“어땠어? 녀석들을 직접 만나 보니.”

기숙사 공동 정원 벤치에 앉은 레오가 입을 열었다.

“왜 레오님께서 선택하셨는지 알았어요.”

“딱히 그 녀석들만 선택한 건 아니지.”

멜리나의 말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레오님께 이전과 다른 힘이 느껴지는데 제가 알지 못하는 힘을 손에 넣으신 건가요?”

멜리나가 덤덤히 말했다.

“이전과 다른 힘?”

“네. 멜이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느껴져요.”

멜은 멜리나이면서 멜리나 본인은 아니었다.

멜리나의 본체는 드래고니아를 떠난 적이 없다.

멜은 마법으로 만든 일종의 인형.

멜리나는 지금까지 드래고니아에서 잠이 든 채로 멜을 움직여 왔던 것이다.

멜리나의 말에 레오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딱히. 크게 바뀐 건 없는데? 이질적인 힘인가?”

“아뇨. 그저 희미하게 레오님께 히어로 레코드의 힘이 느껴질 뿐이에요. 혹시 히어로 레코드 조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니. 이전에 손에 넣은 히어로 레코드는 전부 너에게 넘겼어.”

자기 자신에게 정신을 집중하던 레오가 멈칫했다.

“이건…….”

미약하지만 분명 어떠한 힘이 느껴졌다.

아르온의 오러도 루나의 마력도 아니다.

드웨노의 불꽃은 더더욱 아니며 리시나스의 마나도 아니었다.

레오가 자신에게서 느낀 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힘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5000년 전 자취를 감춘 힘.

“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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