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418화 (418/483)

418.

신력.

신성이라고도 불리는 힘으로 말 그대로 신들이 사용하는 힘이었다.

그런 만큼 인간, 엘프, 수인, 드래곤 같은 지상의 존재들이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신들이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며 사라진 힘.’

물론 신력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었다.

히어로 레코드가 바로 신력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말 그대로 하계에 마지막으로 남은 신의 잔재였다.

‘이후에 이 세계에서 모습을 드러낸 신력이라면.’

히어로 레코드 속에서 만났던 과거의 신, 피브아.

그는 비록 과거의 편린이라 할지라도 전지전능에 가까운 신이었고 그는 레오에게 가호를 내려 자신의 힘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그때 얻은 신력은 이미 모두 사용했어.’

피브아가 넘겨준 신력을 통해 레오는 두 가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전생의 힘을 구현하는 것.’

잠시 동안 시공간을 넘어 시작의 영웅, 카일의 힘을 손에 넣었다.

‘두 번째는…….’

레오가 주먹을 꾹 쥐었다.

과거의 존재였던 루나를 잠시나마 지금의 시간대로 불러오는 것.

세이룬 때와는 달랐다.

세이룬은 3000년 동안 개벽의 세계에서 에레보스와의 싸움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지만 엄현히 살아 있다.

살아 있는 공략자를 영웅의 세계 바깥으로 꺼내오는 것은 히어로 레코드의 주인인 레오의 권한이다.

하지만 이미 죽은 과거의 인물인 루나는 아니다.

‘히어로 레코드가 이루어 낼 수 있는 기적의 한계를 뛰어넘은 일이야.’

그렇게 루나를 잠시동안 영웅의 세계 바깥으로 꺼내 옴으로서 피브아의 신력은 모두 소진되었다.

그 피브아의 신력을 담았던 그릇인 폴리움 역시 세이룬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이 신력은 대체 뭐지?’

“신력이라면…… 신들의 힘을 말하는 건가요?”

레오의 말을 듣고 놀라던 멜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맞아.”

“세상에. 그렇다면 이 힘으로 레오님이 카일님이셨던 시절의 힘이라던가…… 다른 대영웅님을 지금의 시대로 모셔 오는 게 가능한 건가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흥분한 멜리나의 물음에 눈을 가늘게 뜬 레오가 정신을 집중했다.

의지를 행사하여 신력을 내뿜으려고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걸 본 레오가 중얼거렸다.

“당장에 이걸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군. 애초에 말해주기 전까지 눈치채지도 못했을 정도로 너무 미약한 힘이야.”

레오의 말에 멜리나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오님께서 신력을 얻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멜리나가 고민하더니 이내 말했다.

“그림자 사이에서는 레오님을 그림자의 신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신성학에 대해서는 조예가 없지만. 신들이 존재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는 확실하게 아는 사실이 하나 있어.”

“어떤 거죠?”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어. 그건 다른 종족도 마찬가지야.”

재앙의 시대 이전은 신의 시대라 불렸던 만큼 신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던 시대다.

신은 지상의 존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초월적 존재다.

“지상의 주민들이 섬기든 말든 신은 신경 쓰지 않지. 그런 만큼 아무리 날 신처럼 여기고 숭배한다고 해도 내가 딱히 신성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렇군요.”

멜리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됐든 내 몸에 신성이 쌓인 건 사실이야. 만약 이유를 알아내고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레오의 붉은 눈이 반짝였다.

‘신력은 분명 앞으로의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거야.’

***

샨 제국의 참석, 그리고 침묵의 용의 등장.

예상 밖의 일과 혹시나 하는 사건이 이루어졌다.

정상 회의에 관한 외부의 관심은 더더욱 뜨거워졌다.

전 세계가 루메리아 시티를 주목했다.

하지만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와중에도 자신의 일로 바쁜 이들도 있는 법.

그리고 그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그 정상 회의의 중심 한복판에 있는 루메른의 1, 2학년들이었다.

다음 학기에 루메른에 남느냐 그렇지 않느냐.

1학년들의 토너먼트 평가전으로 모든 것이 걸려 있었다.

“렌 교수님께서는 이번 1학년 토너먼트에서 누가 이길 거라 생각하세요?”

이미 모든 정규 수업은 끝이 났다.

2학년의 경우에는 시험 역시 모두 마무리되었다.

폭주를 일으키는 횟수가 잦아서 그렇지 루메른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유능한 교수인 렌은 이미 2학년들의 채점을 모두 끝마친 상황.

그런 만큼 렌과 그의 부교수 안나는 학기의 마무리를 기다리며 한 학기 진행한 강의실에서 느긋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학구열이 많은 루메른 학생들인 만큼 방학을 앞둔 지금에 상황에서도 궁금한 걸 물으러 오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개인 교수실에서 기다리지 않는 건 학생들이 찾아오기가 강의실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열정이 넘치는 교수시라니까.’

렌은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가장 유력한 것은 아이나 베이드나겠지.”

찻잔에 든 홍차를 입에 머금은 렌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책에 시선을 주었다.

렌은 굉장한 미남인 만큼 지금 모습만 본다면 굉장히 지적인 마법 교수였다.

안나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저 골때리는 책만 안 읽고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마법사가 기사와 소환사보다 우월한 이유’ 라는 책을 읽고 있는 렌을 보며 안나는 두통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그때 강의실 문이 열렸다.

렌과 안나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강의실을 찾은 의외의 학생들을 보며 렌의 눈이 가늘어졌다.

“세이룬?”

그런 렌의 반응에 안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세이룬 아카데미.

그건 이번 학기 렌을 가장 많이 발작시킨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런 상황에서 세이룬 학생들이 강의실을 찾아오니 안나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또 광분하면 안 되는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안나는 세이룬 학생들이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름이 분명…… 앙르 비잔이었지?’

그들은 별의 마법의 성취가 낮다는 이유로 세이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하급반 학생들이었다.

물론 지금은 세이룬의 정책 변경과 렌이 쓴 [별의 마법 입문서]를 통해 인생이 바뀌어 하급반을 벗어난 상태였다.

“앙르 학생이었죠?”

“아! 안나 부교수님!”

앙르를 포함한 하급반 출신 학생들이 안나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반가워요 여러분! 다들 잘 지냈나요?”

“네!”

“모두 안나 부교수님과 레오 선배님 덕분이에요!”

1학년들이 환하게 웃으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레오 선배? 학교도 다른데 레오 선배? 지금 너희가 무슨 말을 떠들고 있는지 알고 있나?”

그때 탁-! 책을 덮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은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흉흉했다.

그런 렌의 살벌한 기세에 세이룬 1학년들이 겁에 질렸다.

“여긴 왜 온 거냐!”

“누, 누구세요?”

앙르가 용기를 내어 대표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이름은 렌 호르스! 너희가 감히 선배라 칭한 레오 플로브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지!”

“……거짓말 마세요.”

안나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말했지만 렌은 귓등으로 듣지 않았다.

렌의 이름을 들은 앙르와 1학년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더니 앙르가 대표로 말했다.

“렌 교수님이셨군요! 인사드립니다! 앙르 비잔이라고 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 있던 학생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인사를 하자 렌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렌 교수님이 저술하신 [별의 마법 입문서]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어요. 감사해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교수님!”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에요!”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보내는 세이룬 1학년들을 보며 렌이 호오!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네가 그 앙르 비잔이군. 편지는 잘 받았네. 과연! 생각했던 대로 우수한 우등생이로군!”

조금 전까지 있는 대로 적의를 내비쳤던 주제에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하는 렌을 보며 안나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후 렌은 세이룬 1학년들과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세이룬에서 렌 교수님의 명성은 굉장히 높아요.”

“엘프도 아닌데 별의 마법을 어떻게 그렇게 깊게 이해할 수 있는지 감탄하는 이가 많아요.”

“새로운 시각에서 별의 마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여름 방학 때 초빙 교수님으로 초청할 수도 있대요.”

“후후후! 마법으로 명성 높은 세이룬에서 그런 평가를 해주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머리란 게 있고 또 그게 장식이 아니라면 그 망할 귀쟁이들도 내 논문의 위대함을 알아보는 건 당연한 거다, 안나 부교수!’

‘……그렇게 말했으면서.’

안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후 또 다른 세이룬 1학년 우등생인 에클레르와 요이니아도 렌을 찾았다.

앙르는 그녀들을 보며 물었다.

“레아는 어디 갔어?”

“조금 전까지 같이 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어.”

“렌 교수님과 꼭 만나뵙게 해주고 싶었는데.”

에클레르의 대답에 앙르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안나가 렌에게 다가가 작게 말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세이룬 아카데미를 욕하셨으면서 태도를 싹 바꾸셨네요.”

안나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하자 렌이 훗- 하고 웃었다.

“안나 부교수, 사람은 때와 장소에 맞추어서 자신의 속마음을 숨길 줄도 알아야 하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두고 인격자라고 말하지.”

“누가 그딴 걸 인격자라고 불러요?”

안나가 지적했지만 렌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

샥-! 샥-!

루메른 1학년 교실동 복도.

그곳을 지나가는 1학년 학생들의 시선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세이룬 학생이다.’

‘왜 저렇게 몰래 움직이는 거야?’

‘저러면 티가 안 날 거라고 생각하나?’

루메른 1학년들이 잔뜩 모인 교실동에 세이룬 교복을 입은 채로 대놓고 잠입한 세이룬의 1학년.

레아 팅겔은 현재 누군가의 뒤를 열심히 쫓고 있었다.

뒤쫓는 상대가 복도 모퉁이를 지나자 레아는 재빨리 복도 모퉁이로 다가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상대의 등 뒤를 노려보았다.

‘쟤가 루크 엘다.’

품에서 루크의 사진을 꺼냈다.

사진의 출처는 다름 아닌 칼이었다.

세이룬 학생들과 이동하다가 루크를 발견하고 여기까지 쫓아온 것이다.

‘플로브 선배님의 멘티. 그런 부러운 호사를 혼자서 누리다니, 용서 못 해.’

전혀 잘못하지도 않은 상대에게 경쟁심을 불태웠다.

“……넌 뭐지? 세이룬 1학년이 왜 여기 있는 거냐?”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뒤로 돌리니 그곳에는 하비든이 있었다.

레아는 몸을 돌려 하비든 앞에 서고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턱을 치켜들었다.

“제 이름은 레아 팅겔이에요.”

“레아 팅겔?”

“잠깐만! 세이룬 1학년 수석이잖아?”

여기저기서 경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이룬 1학년 대표께서 여기까지 웬일이지?”

팔짱을 낀 하비든의 물음에 레아가 마주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내 숙적을 쓰러트리러 왔어요.”

“뭐야? 뭐야? 선전포고?”

“루세전을 대비한 건가?”

“대박!”

“숙적이라면 누구? 역시 아이나?”

1학년들이 흥분된 반응을 보였다.

“혼자서 쳐들어왔다, 이 말이군. 배짱 한 번 좋은데?”

하비든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소란이 일자 복도로 우르르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모여든 학생들로 더욱더 소란스러워진 가운데 아이나 역시 모습을 드러내자 학생들이 쫙 갈라졌다.

레아와 아이나 사이에 공간이 만들어졌다.

루메른과 세이룬의 1학년 대표들이 마주한 상황.

아이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상황에 모두가 긴장된 표정을 지을 때였다.

그때 레아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루크 엘다.”

모두의 시선이 루크에게 향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왔던 루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덤벼요.”

“네?”

루크가 상황을 이해 못 하고 되물었다.

다른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장 덤비라고요”

“저는 왜요?”

눈을 치켜뜨는 레아를 보며 루크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내 먹잇감이니까요.”

“세이룬 1학년 대표.”

하비든이 픽- 웃었다.

“루크 엘다는 내 먹잇감이다. 먼저 손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방해하면 당신부터 쓰러트려 주겠어요.”

“내가 할 소리를 하는군.”

찌릿-

하비든이 레아가 서로를 노려볼 때였다.

느닷없이 살벌해진 두 사람을 보며 학생들이 또다시 긴장할 때였다.

“할린드 교수님이다!”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에 흠칫한 1학년들이 순식간에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일사불란한 그 모습에 레아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앗! 루크 엘다! 거기서요! 지금 당장 나랑 싸워요!”

상황 파악을 못 한 레아의 목소리가 복도 전체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눈을 치켜 뜨며 전속력으로 루크를 쫓으려는 순간.

“누가 복도에서 싸워도 된다고 했지?”

소름 끼치게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아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거기다 누가 복도에서 큰소리쳐도 된다고 했지?”

레아가 딱딱한 움직임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루메른 통곡의 벽, 할린드가 서 있었다.

“히익?”

흉흉한 할린드의 기세에 레아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처벌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지?”

레아가 겁에 질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용기 있게 항변했다.

“저, 전 루메른 학생이 아닌데요.”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눈앞의 인간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하지만 할린드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네가 어디 학교인지는 관심 없다.”

할린드는 레아의 뒷덜미를 잡았다.

“루메른에 왔다면 루메른의 법을 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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