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419화 (419/483)

419.

“루메른에는 좋은 가게들이 많네.”

“정말이에요. 케이크들이 하나 같이 맛있어요!”

루니아의 말에 포크를 문 에이란이 뺨을 감싸 쥐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세이룬 2학년의 또 다른 대표, 루카가 빙긋 웃었다.

“우리 학교도 이렇게 되면 좋겠는데.”

“맞아. 맞아.”

루카는 2학년 중 세 손가락 안에 들던 실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순혈회의 정책에 따라 2학년 1학기부터 학년 대표 자리를 박탈당하는 일을 겪었다.

하지만 세이룬이 정상화 되면서 다시금 대표 자리에 복귀하게 되었다.

1학년 때부터 단짝 3인방이라 불렸던 만큼 세 사람은 현재 함께 루메른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셋이 한참 루메른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야, 야.”

칼이 헐레벌떡 뛰어 왔다.

“무슨 일이야?”

“너희 1학년 후배! 레아 팅겔 있잖아.”

“레아가 왜요?”

에이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칼이 다급히 말했다.

“걔 지금 할린드 교수님한테 붙잡혀서 연구실로 끌려갔데!”

“할린드 교수님?”

“할린드라면 루메른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 중 한 사람이잖아.”

할린드와 세드젠.

루메른의 명교수로 이름 높은 두 사람은 당연하게도 이종족 사이에서도 굉장히 명망 높은 교수다.

그렇기에 당연히 루니아와 에이란도 알고 있었다.

“레아가 왜 그분한테 붙잡힌 거야?”

찻잔을 내려놓으며 묻는 루니아를 보며 칼이 말했다.

“난들 아냐. 뭐 1학년 교실동 복도에서 소란이라도 피웠나 보지!”

“아~ 걔라면 그러고도 남지. 가끔 알 수 없는 폭주를 하니까.”

“확실히 레아는 엉뚱한 구석이 있으니까요.”

“전에는 빨간 글씨로 레오의 멘티 이름을 잔뜩 써놨더라고. 자기 말로는 저주라나 뭐라나.”

“후후. 그 루크란 아이를 라이벌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네요.”

루니아의 말에 에이란이 입을 가리며 웃자 루카가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서운데.”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세이룬의 대표들을 보며 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너희들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인데. 너희 할린드 교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지?”

“어떤 분인데요?”

“루메른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분이야. 우리 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교수님이라고!”

칼의 설명에 루니아가 턱을 괴었다.

“무서운 선생님이라면 세이룬에도 있어.”

“급이 달라! 급이! 3, 4, 5학년 선배님들은 물론이고 루메른 출신 교수님들! 심지어 졸업해서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선배님들조차 할린드 교수님 앞에서는 설설 긴다고!”

할린드가 무서운 이유.

그건 단순히 루메른의 통곡의 벽이라 불리기 때문이 아니다.

루메른에서 가장 많은 퇴학자를 만드는 교수이기 이전에 할린드는 그냥 사람 자체가 무서운 사람이었다.

에이란이 다급히 말했다.

“하, 하지만 레아는 세이룬 학생이잖아요? 그런 무서운 분이라도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는 너그럽게…….”

“너그러워? 할린드 교수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군.”

칼이 진지하게 중얼 거릴 때였다.

“무슨 일이야?”

마침 주변을 지나가던 일리아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여기 유일한 경험자가 있군.”

일리아나는 1학년 때 딱 한 번, 교칙 위반으로 할린드의 교수실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칼 역시 여러 번 교칙 위반을 저지르긴 했지만, 특유의 잔머리로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켜왔다.

그러나 일리아나는 아니었고 선을 넘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야, 세이룬 1학년이 할린드 교수님 교수실로 끌려갔다고 하던데?”

“아.”

일리아나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 같으면 할린드 교수님 교수실로 끌려가느니 접시에 코 박고 죽는 걸 선택할 거야.”

‘도대체 무슨 짓을 당하는 거야?’

루니아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해야 하죠?”

에이란이 다급히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없어.”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말하는 칼을 보며 루니아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일단 그분에게 안내해 줄 수 있어?”

그 말에 칼과 일리아나가 딴청을 부렸다.

“가는 것도 무서워? 너희가 그러고 영웅 후보생이냐?”

“난 아닌데.”

“무서운 걸 어떻게 해.”

당당한 칼과 일리아나를 보며 루니아가 칼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안내해.”

“왜 나냐고!”

칼이 억울하다는 듯 비명을 질렀지만 루니아는 듣지 않았다.

***

정상 회의장.

루메른 영웅의 탑 상층부에 존재하는 황혼의 전당이라 불리는 곳.

대대로 루메른에서 개최되는 정상 회의는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회의장 가운데 벽에는 다섯 개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다름 아닌 개벽의 영웅들의 초상화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검을 든 아르온.

도끼를 든 드웨노.

지팡이를 쥔 루나.

책을 들고 있는 리시나스.

마지막으로 카일까지.

재앙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세계에 미래를 선사한 최고의 대영웅들의 동상이었다.

황혼의 전당에 들어서는 왕들과 영웅들은 개벽의 영웅들의 초상화와 대영웅의 동상에 각각 예를 취하고 자리에 앉았다.

학생회장 신분으로 정상회의에 참석한 레오 곁에는 다른 학교의 학생회장들도 앉아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자리에 앉은 가운데.

가장 상석.

공석인 의회장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뚜벅- 뚜벅-

잠시 후 황혼의 전당으로 멜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멜리나는 여전히 면사포를 쓴 채 작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온화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지만 멜리나의 등장만으로 좌중은 압도당했다.

개벽의 영웅 초상화와 대영웅의 동상 앞에 선 멜리나는 양손을 모으고 잠시 동안 예를 표했다.

그러고는 상석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무가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세계를 위해 이곳에 모인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모두가 멜리나를 주목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간단해요. 최근 심상치 않은 타르타로스의 동향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죠. 이에 관련해서 발언해주실 분 있으신가요?”

멜리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까무잡잡한 피부의 드워프가 손을 들었다.

“네베로움의 왕. 발언하세요.”

“우선 위대한 드래곤 로드께 무한한 축복이 있기를.”

발언권을 얻은 네베로움 왕이 멜리나에게 예를 표한 다음 입을 열었다.

“아조니아의 교장, 제피아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뭐죠?”

“최근 나의 왕국에서 수인족 출신 히어로 헌터들이 다수 출몰하기 시작했소. 우리 네베로움 왕국은 그 악독한 배신자들을 처단하려 했소.”

네베로움 왕의 얼굴이 사납게 변했다.

“하지만 가증스러운 배신자들은 강했고 토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소. 그래서 나는 우리 왕국의 자랑스러운 전사들. 아이언 피스트 제4단을 출전시켰소.”

네베로움 왕의 말에 회의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네베로움은 드워프들의 나라인 만큼 광산이 풍부한 나라다.

그런 만큼 질 좋은 양질의 무구를 생산할 수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종족을 대표하는 드워프 5왕국 중 한 축을 꿰차고 있었다.

그런 네베로움을 대표하는 전사단이 바로 ‘아이언 피스트’ 였다.

“제 4단은 전멸했소.”

여기저기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네베레움 왕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이 회의에 참석하기 직전,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생존자의 증언이 있었소. 보름달이 뜬 밤이 아님에도 수화를 하는 수인들이 있었다고!”

눈을 부릅뜨고 제피아를 노려보았다.

“말해주시오, 제피아님. 아조니아는 진즉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들었소! 그런데 왜! 그 사실을 공표하지 않아 우리 왕국의 젊은 인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오!”

네베레움 왕의 외침에 제피아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건 사과드립니다. 폐하. 하지만 아조니아 역시 사실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아조니아의 명예 때문에 은폐한 것 아니오! 5000년 동안 수인들이 해내지 못한걸 한낱 배신자들이 해내니까! 그 사실이 부끄러워 그런 것 아니오!”

“말을 조심해라! 네베레움 왕!”

다른 수인 왕국의 왕이 언성을 높였다.

“네베레움 왕이 옳은 말을 하고 있거늘! 무슨 권리로 말을 삼가라고 하는가!”

“옳은 말? 그대들이 약해서 사냥을 당한 것 아닌가! 그걸로 감히 용자의 후예인 우리들의 명예를 더럽히려 드는가!”

“뭐라고!”

흥분한 수인과 드워프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민감한 문제였다.

수인은 종족 전체의 위신과 명예가 걸렸고.

반대로 드워프는 종족의 창창한 인재들이 죽임을 당했다.

한 번 붙은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쉿-!”

그때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그 한 마디에는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언쟁을 멈춘 수인과 드워프들이 멜리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이곳에 모인 게 아니에요.”

멜리나가 수인 측을 바라보았다.

“해당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발표하지 않은 아조니아 아카데미의 행동은 확실히 아쉽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한 혼란에 수인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에……. 그리고 수인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었으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 다음은 드워프들을 바라보았다.

“미래가 유망한 아이언 피스트들의 죽음은 매우 비통한 일입니다. 애도를 표하는 바에요.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도 있습니다. 히어로 헌터들은 영웅, 혹은 그에 준하는 이들을 사냥하는 존재들이에요. 무수히 많은 강력한 영웅이 그 가증스러운 배신자들의 교활한 함정에 빠져 목숨을 잃었어요.”

멜리나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깃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히어로 헌터들을 사냥할 수 있는 자들이 존재해요.”

멜리나가 회의장 한 곳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서 유일무이한 존재.

가장 있어야 하지만 또 가장 이질적인 자.

그림자의 나라, 샨 제국의 황제 샤우였다.

“젊은 아이언 피스트들이 목숨을 잃은 이유는…….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멜리나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이해관계로 얽혀 있고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들이 서로의 치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몇몇 이들은 헛기침을 멜리나의 눈을 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잊고 협력을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멜리나가 힘 있게 말했다.

“네베레움 왕. 왜 샨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죠?”

“……. 우리 일은 우리가 해결한다. 그것이 우리의 긍지입니다.”

“그 긍지……. 훌륭하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것만 있나요?”

멜리나의 말에 네베레움 왕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그림자의 도움을 받는 것 자체를 창피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림자는 영웅과 동등한 존재예요”

그 말에 인간측에서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러키트의 왕. 발언하세요.”

대륙 북부에 자리 잡은 인간 왕국, 러키트의 왕인 그가 말했다.

“로드께서 하시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림자들은 확실히 히어로 헌터를 사냥하는데 특화 된 자들이죠. 하지만 어둠속에서 일하며 그만큼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참혹한 일들도 많이 저지르는 자들입니다. 필요악 같은 존재죠.”

“그림자는 악이 아니에요.”

“제가 실언을 했군요. 하지만 뭐가 됐든 그림자의 도움을 받는 건 영웅에게 있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겁니다.”

러키트 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은 철저하게 영웅을 보좌하는 자들. 절대 영웅과 동등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그들이 절대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들은 절대 신들에게 인정받지 못합니다.”

러키트 왕의 발언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샤우를 바라보았다.

그런 가운데 샤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잘되었군. 히어로 레코드에 관해서 내가 여러분께 보여줄 것이 있소.”

“무엇이오?”

샤우는 멜리나를 바라보았다.

멜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샤우는 품에서 작은 함을 꺼내 황혼의 전당 중앙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중앙에 있는 오리하르쿤으로 만들어진 진열 테이블 위에 함을 내려 놓고 열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 순간.

“히어로 레코드?”

누군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각 영웅 사관 학교에서 보관하고 있는 히어로 레코드도 저렇게 온전한 상태는 아니야!”

“가짜인가?”

“하지만 이 힘은 분명……!”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멜리나가 입을 열었다.

“샨 황제, 그건?”

“히어로 레코드, 그림자의 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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