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420화 (420/483)

420.

“히어로 레코드?”

“그림자의 서라니? 그게 대체 무엇인가!”

회의장 내부에 소란이 찾아왔다.

“네가 보기에는 어떻지?”

루메른 3대 가문이자 루메른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은 제르온 가문의 가주.

알테크 제르온은 자신의 동생에게 물었다.

요정왕에게 마안을 선물 받은 알비는 거짓된 것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알테크의 물음에 그림자의 서를 바라보던 알비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히어로 레코드와 같은 힘이 느껴집니다.”

알비의 대답에 알테크가 턱을 쓰다듬었다.

“새로운 히어로 레코드라.”

알테크는 흥미롭다는 듯 그림자의 서를 바라보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곁에 있는 데제안 리그아르드는 물론이고 니쉘라 투르시아 역시 탄성을 내지르며 히어로 레코드를 유심히 살폈다.

데제안 리그아르드.

루메리아 시티를 통치하는 리그아르드 가문의 수장.

즉, 그는 세계의 중심, 루메리아의 주인이라 할 수 있었다.

니쉘라 투르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영웅 길드, 트와일라잇의 길드 마스터였다.

트와일라잇 길드는 3000년 전.

루메른이 이끌던 황혼의 기사단에서 시작되었다.

루메른 3대 가문이라 불리는 제르온. 리그아르드, 투르시아.

이들 모두가 오래전 루메른을 따랐던 제자들이었다.

제르온은 루메른의 뜻에 따라 그가 설립한 아카데미를.

리그아르드는 루메른이 일구어냈던 땅을.

투르시아는 루메른이 이끌었던 기사단을 물려받은 것이다.

이 세 가문이야말로 지난 3000년 동안 루메른 아카데미의 히어로 레코드를 지켜오고 관리해온 이들.

그렇기에 세 가문의 수장은 히어로 레코드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히어로 레코드의 역사에 관한 것까지.

“알테크님께서는 그림자의 서라는 것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없네.”

“데제안님께서는?”

“나 역시 없소. 투르시아 가주.”

20대 중반의 니쉘라는 흥미롭다는 듯 그림자의 서를 바라보았다.

니쉘라 투르시아.

26세의 나이에 투르시아의 가주에 오른 여인.

바람의 대정령과 피닉스의 맹약자로 5년 전 있었던 사령 군단의 토벌을 막아내며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젊은 영웅이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이목이 그림자의 서로 쏠린 가운데.

러키트 왕이 말했다.

“그림자의 서라니. 그건 또 뭡니까?”

“그림자들이 이름을 올린 히어로 레코드요.”

“그런 얼토당토않는……!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가짜겠지!”

“러키트 왕. 그대에게 히어로 레코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소만? 그대는 영웅도 그림자도 아니지 않소?”

“큭!”

샤우의 말에 러키트 왕이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웅은 스스로의 힘으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쟁취해낸 자격이라면 왕은 그저 혈통에 의해 계승 받은 자격.

지금 존재하는 국가들은 모두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자들이 건국한 만큼 위대한 영웅의 후예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영웅의 후예라고 무조건 영웅의 자리에 오르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정상 회의에 참석한 왕 중에는 영웅이 아닌 자들도 많았고 러키트 왕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림자의 서를 바라보는 사이.

멜리나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드래곤 중 하나가 중앙 단상으로 다가가 샤우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림자의 서를 멜리나에게 가져갔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은 멜리나가 히어로 레코드를 펼쳐보았다.

모두가 숨죽이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림자의 서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히어로 레코드의 힘.

‘5000년 동안 단 한 번도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적 없는 그림자들의 기록이 지금에 와서 발견된다고?’

‘게다가 저런 온전한 상태로?’

아무리 증거가 나타났다고는 해도 5000년의 세월 동안 진실로 여겨져 온 사실인 만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드래곤 로드인 멜리나가 인정한다면 그들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들 역시 히어로 레코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영웅과 대등한 존재라고.

그런 가운데 히어로 레코드를 살피던 멜리나가 입을 열었다.

“……과연, 이건 그림자들의 기록이군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가짜가 아니란 말입니까?”

“이건 진짜입니다. 게다가…….”

“게다가?”

“시작의 영웅, 카일님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어요.”

“대영웅의 기록이라고요?”

“카, 카일님의 기록이 그곳에 있단 말입니까!”

그림자의 서의 존재를 알렸을 때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놀라는 가운데.

“네.”

멜리나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시작의 영웅은 그림자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때까지 시작의 영웅의 기록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납득이 가는군.”

영웅들이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런 가운데 멜리나가 샤우에게 물었다.

“샨의 황제 샤우. 이 히어로 레코드는 어디에서 찾은 거죠?”

멜리나는 그림자 서의 정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그림자의 서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도 이미 레오에게 들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샤우는 힐끗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샨의 지하에 오래도록 보관되어 온 것을 최근에서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확인 과정을 거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히어로 레코드라 판단하게 되어 세상에 알리고자 이렇게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샤우의 말에 세이룬의 교장 대리, 룬이 입을 열었다.

“잘 되었군.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그림자들이 차별받아 온 건 사실이니.”

미청년의 외모였지만 엘프 사회에서도 장로급의 인사인 룬은 연륜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림자들 역시 지난 5000년 동안 세계를 지켜온 이들이라는 게 증명된 것 아니오?”

“크흠.”

“그렇긴 하지만…….”

몇몇 이들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시작의 영웅이 그림자였다니. 놀라운 이야기긴 하군. 그러니 그림자들의 기록과 함께 이때까지 역사 뒤편에 숨겨져 있었던 건가.”

러키트 왕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크흠. 그림자였던 이를 대영웅과 동일시하는 건가?”

“그에 관해 논의가 필요하지 않겠소?”

몇몇 왕들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무리 드래곤 로드가 인정했고 그들의 기록이 적힌 히어로 레코드가 발견되었다고는 해도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인식은 쉽게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영웅들 만큼이나 그렇지 않은 자들도 많았으니까.

그때였다.

“시작의 영웅이 왜 시작의 영웅이라 불리는지 아나요?”

모두의 시선이 멜리나에게 향했다.

“여러분은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멜리나가 그림자의 서를 덮고 덤덤히 말했다.

“대영웅 중 가장 먼저 목숨을 잃으신 분은 아르온님이세요.”

그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대영웅들이 태초의 악, 에레보스를 토벌한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이 세계니까.

하지만…….

대영웅들과 에레보스의 마지막 전투에 관한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다.

3000년 전.

개벽의 영웅들이 끝없이 부활하는 에레보스의 조각을 히어로 레코드에 봉인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록이 불타 사라졌다.

그리고 찢어지는 과정에서 또다시 많은 기록이 소실 되었다.

소실 된 수많은 기록은 타르타로스에 의해 불타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대영웅들의 마지막 여정에 대한 기록 역시 함께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렇기에 누가 에레보스를 최종적으로 토벌했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알려진 사실은 에레보스 토벌하는 과정에서 모든 대영웅이 죽었다는 것.

대영웅 자체가 각 종족에서 숭배받는 존재인 만큼 종족별 마지막 전투에 관한 이야기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영웅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입을 모아 추측하기로.

최후의 전투는 모든 대영웅이 다 함께 힘을 모아 에레보스를 가까스로 토벌했고 그 과정에서 모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당사자로부터 전해 들은 멜리나는 잊힌 역사를 입에 담았다.

“용자께서는 동료들이 죽는 것이 무서워 스스로 희생하셨어요. 그리고 자신의 모든 걸 시작의 영웅에게 맡기셨습니다.”

‘녀석이 방패를 자처한 건…… 우리가 죽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니까.’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거창하거나 용기 있는 희생이 아니었다.

가장 아르온답게 겁쟁이였던 채로…….

겁에 질린 채 용자답지 않은 최후를 맞이했다.

‘미안해……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약속 못 지켜서.’

울면서 사과하던 겁쟁이를 떠올리며 레오가 눈을 감았다.

“아르온님의 희생을 뒤로하고도 대영웅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엄숙한 멜리나의 말에 모든 이들이 입을 벌렸다.

모든 이들이 깨달았다.

지금 멜리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잊혔던 역사의 진실이라는 것을.

“두 번째로 목숨을 잃으신 분은 드웨노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에레보스를 쓰러트릴 무구를 남기시고 눈을 감으셨죠.”

‘나아가게, 카일. 뒤따라올 자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주게. 그 검은 그걸 위한 검일세.’

시작이라는……. 자신이 만든 유일한 작품인 무구를 남기고 드웨노는 눈을 감았다.

“세 번째는 루나님 이셨어요.”

‘나까지 떠넘겨서 미안.’

둘 중 하나라면 자신보다는 네가 나을 거라며 모든 걸 맡겼던 루나.

“네 번째가 바로 리시나스님이셨죠.”

‘우리는 세상을 구할 거야.’

끝까지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리시나스까지.

“모든 대영웅님을 대신하여 혼자서 에레보스를 쓰러트린 카일님은 최후의 영웅이자.”

멜리나가 숨죽인 영웅들을 바라보았다.

“영웅의 시대를 연 시작의 영웅이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이 시작의 영웅이라 불리는 거죠.”

“로드께서는……. 그 사실을 어찌 알고 계십니까?”

한 사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멜리나가 빙긋 웃었다.

“드래고니아에는 여러 세계의 진실이 잠들어 있죠.”

멜리나는 그림자의 서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분명 그 당시 시대에는 영웅이라던가 그림자라던가……. 그런 구분이 없었을 거예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시작의 영웅께서는 기꺼이 그 짐을 짊어지신 거겠죠.”

자리에서 일어난 멜리나는 직접 그림자의 서를 단상 위에 돌려놓았다.

“세계는 혼란스럽습니다. 시작의 영웅과 성운의 시조의 재림에 이은 혜성의 마법사의 재림.”

멜리나가 세이룬 쪽을 바라본 후 데미안 쪽을 바라보았다.

“드웨노님의 유산을 이은 영웅 후보생들의 등장.”

마지막으로 멜리나의 시선이 잠시 레오에게 향했다.

“그리고 시작의 영웅의 기록까지.”

멜리나가 심호흡했다.

“잊혔던 대영웅과 개벽의 영웅의 유산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타르타로스의 움직임 역시 심상치 않습니다. 언제까지 잘못된 과거의 관습에 얽매일 생각이죠?”

“웃!”

“그, 그건…….”

“영웅은 강대한 힘을 가지고 신이 인정한 위업을 이루는 존재이기 이전에 변혁을 일으키는 존재입니다.”

또박또박-

힘을 주어 한마디씩 하는 멜리나의 말에 모든 이들이 집중했다.

“영웅이라던가……. 그림자라던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5000년 동안 이어져 온 재앙의 위협을 완전히 뿌리 뽑을 때. 드래곤 로드로서 선언합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제부터 그림자는 영웅과 동등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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