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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427화 (427/483)

427.

플로브 가의 영토는 평화로운 시골 영지였다.

영지에는 광활한 포도밭이 있었고 질 좋은 포도가 재배되었다.

그 포도를 통해 생산되는 와인은 왕국 내에서도 제법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오오. 와인 창고가 훌륭한걸?”

칼이 플로브 본가의 와인 창고를 보며 감탄사를 터트릴 때였다.

“그러게 말이야. 기다리다 심심했던 참이었는데 좋은 와인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뭐니?”

와인 창고 한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칼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마법사를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토루아 선배님?”

“안녕, 칼 토마스. 쥬엔이 신세를 많이 졌다고 하던걸?”

남부 마탑 소속인 토루아는 마탑주의 딸인 쥬엔의 멘토였던 칼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멘토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뭐.”

“뭘 그렇게 흥분해?”

“야, 레오. 토루아 선배님이라고. 토루아 선배님.”

레오의 말에 칼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작년까지 마법학과에서 엘레나 선배랑 인기 순위 1, 2위를 다퉜던 미녀!”

“그게 뭐?”

“엘레나 선배는 무서워서 아무도 못 다가갔던데 반해 토루아 선배님은 많은 후배에게 친절했던 분이라고. 그래도 1학년 때는 말 한 번 제대로 붙이기 힘들었는데 졸업하신 후 이렇게 뵙게 되다니.”

학생회의 부회장이자 루메른 학생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던 만큼 1학년들이 감히 말을 걸 수 없던 위치에 있던 게 토루아였다.

특히나 동기생 중 만년 꼴찌인 칼은 더더욱.

감동한 표정을 짓는 칼을 보며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칼을 보며 빙긋 웃은 토루아가 와인잔을 내려놓은 후 칼 앞으로 다가왔다.

“학과 선배를 존경할 줄 아는 좋은 후배구나. 봐, 레오. 네 친구를 보고 좀 배워. 학과 선배에게 그 시큰둥한 태도는 뭐니?”

“전 마법학과가 아닌데요.”

“하긴, 학생회장 일로 바쁘기도 하겠다. 어쨌든 이번 학생회장은 마법학과에서 나와서 기뻐.”

레오는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토루아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칼 토마스. 쥬엔이 신세 진 것에 대해 보답하고 싶은데.”

토루아는 양손을 뻗어 칼의 손을 잡아 주며 웃었다.

성숙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토루아를 보며 칼이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아니야. 보답해줄게. 넌 연금 마법에 능통하니 나랑 비약 실험을 해보는 게 어때?”

“토루아 선배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영광이죠!”

“응, 칼. 너는 마법사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 뭐라고 생각하니?”

“탐구요?”

“좋아, 아주 훌륭해. 그럼 그 탐구를 하기 위해 하는 행위는?”

“……실험?”

“굉장해, 굉장해.”

토루아는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그런 토루아의 반응에 칼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어딘지 모르게 상기 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토루아는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럼 그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연구겠죠.”

“아니, 실험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칼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칼, 너는 드웨노님의 연금서를 계승했지? 혹시 거기에 위험하거나 혹은 효과가 애매해서 실험체가 필요한 비약은 없었니?”

“없었는데요.”

“응, 거짓말이야.”

답은 이미 정해 놓은 토루아가 칼을 보며 해맑게 웃었다.

칼은 망설이지 않고 도망쳤다.

하지만 곧바로 토루아에게 잡혔다.

“레, 레오! 살려 줘!”

“이히히히! 못 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치는 칼을 붙잡은 토루아가 마녀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 친구를 레오가 측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죽지는 않을 거야.”

“레오 말이 맞아. 내가 후배를 죽이기야 하겠니? 죽을 만큼 괴로울 수는 있지만.”

“그것도 싫거든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비명을 내지르는 칼을 뒤로하고 레오는 와인 창고를 빠져나왔다.

칼이 아니면 자신에게 들러붙을 게 분명했다.

탐구에 눈을 뜬 마법사가 그 누구보다 귀찮은 존재라는 걸 레오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카일, 나랑 마법 실험하자.’

환하게 웃으며 손에는 온갖 실험 도구를 들고 있던 루나를 떠올리며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가까스로 토루아에게서 벗어난 칼이 와인 창고를 나오며 물었다.

“대체 왜 토루아 선배님이 여기 있는 거야?”

“이번에 수련회 교관으로 초빙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토루아 선배가?”

“응. 그 외에도 리스 형님, 울타 선배와 자무아 선배도 오실 거야.”

작년 졸업생들이 교관으로 온다는 말에 칼이 혀를 내둘렀다.

“설마 다른 영웅 사관 학교 졸업생들도 오냐?”

“그렇지 않을까?”

“장난 아니겠네.”

칼이 고개를 저었다.

루메른 뿐만 아니라 세이룬, 아조니아, 데미안의 작년 졸업생들 역시 졸업 후 대활약을 하고 있는 영웅 후보생이다.

그런 이들이 모두 오다니.

“이거 또 학교 간의 경쟁이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멜리나를 통해 이번 수련회를 계획했던 레오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아니긴 그러려고 부른 건데.’

***

그날 저녁.

플로브 가문의 영지에 있는 저택에 두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흥, 완전 시골 영지네요.”

저택 문 앞에 선 엘리자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레이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나? 예쁜 아가씨는 누구?”

“안녕하세요, 엘리자 헤르긴이라고 합니다.”

엘리자는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레이나를 보며 예의를 차렸다.

그녀의 예법은 굉장히 예의가 발랐는데 레이나가 오래전 루메른을 졸업한 선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아, 기억이 났어요. 소환학과 학생이죠? 들어와요.”

반갑게 엘리자를 맞이한 레이나는 저택 안으로 들였다.

정문을 지나 거실로 향하자 그곳에는 레오와 칼이 있었다.

“오우, 엘리자.”

“흥, 먼저 와 있었군요. 칼 토마스.”

칼이 반갑기 인사하자 엘리자는 코웃음을 쳤다.

“일찍 왔네. 모이는 건 내일 아침까지인데?”

“북적거리는 건 딱 질색이에요. 뭐, 당신이랑 같이 있는 것도 내키진 않지만…… 칼 토마스라면 미리 와 있을 거라 생각했죠.”

특유의 앙칼진 목소리로 말한 엘리자가 레이나에게 인사했다.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나 플로브님.”

“여행으로 피곤할 텐데 편히 쉬어요.”

플로브 가문에는 워프 게이트가 없는 만큼 주변 영지에서 장거리로 이동해 와야 한다.

“배려 감사합니다.”

대륙 북부 지방을 대표하는 영웅 명가의 후계자답게 엘리자는 우아하게 인사했다.

그러고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다가가 칼 옆에 앉았다.

그걸 보고 레이나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엘리자가 손톱을 정리하며 말했다.

“차.”

그 말에 칼이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자 엘리자가 말했다.

“난 당신에게 다음 학기도 심부름 서비스를 기간제로 구매했는데요?”

“아, 그거 방학 시즌에는 유효하지 않아.”

“흥.”

엘리자가 품에 손을 집어넣더니 검지와 중지 사이에 하얀 종이를 끼운 채 꺼냈다.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아가씨.”

수표를 냉큼 받은 칼이 뛰어갔다.

“레오 플로브, 당신의 영지에서 진행되는 수련회인 만큼 당신은 드래곤 로드와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엘리자가 손톱을 다듬으며 말했다.

“수련회 계획이 뭐죠?”

“이번 수련회 동안 각자가 목표하는 이상에 조금씩이라도 다가가는 게 목표야. 엘리자 너 같은 경우에는 우선 페가수스와 계약하는 게 목표랬지?”

“흥, 당신이 페가수스와 계약했다고 아주 쉬운 것처럼 말하는군요.”

“계약 준비는 다 끝나지 않았어?”

레오가 빙긋 웃었다.

“매개체와 맹약 대상자는 준비되어 있잖아?”

헤르겐 가문은 대대로 3대 환수와 계약을 맺어 왔다.

그중 엘리자는 페가수스의 맹약자로서 적성을 가지고 있었다.

레오의 말대로 후계자가 된 시점에서 이미 맹약을 할 페가수스와 매개체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너만 준비되면 되는 거 아니야?”

“당신.”

도발하듯 말하는 레오를 보며 엘리자가 울컥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안 돼요, 레오 도령. 엘리자 양은 단순해서 그렇게 도발하면 곧장 무모한 짓을 해 버린다고요.”

“꺄아아아아악?!”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엘리자가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어느새 엘리자 옆에는 첸 시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앉아 있었다.

“시아! 내가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게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죠!”

눈을 치켜뜨며 하이톤으로 소리치는 엘리자를 보며 첸 시아가 뺨을 감싸며 말했다.

“하지만 엘리자 양이 놀라는 모습은 귀여운걸요.”

“제발 귀여워하지 마요.”

어딘지 모르게 가학성이 느껴지는 첸 시아의 눈빛에 엘리자가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니?”

엘리자의 비명 소리를 듣고 레이나가 거실로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첸 시아가 왼쪽 주먹을 오른쪽으로 감싸는 동부의 전통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레이나님. 첸 시아라고 합니다. 그때 뵈었는데 기억 나시나요?”

“물론 기억하지. 그때 이후에 네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

“레오 도령이 제 이야기를 많이 했나요?”

첸 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레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칼이 해줬어.”

어느새 다과상을 가져온 칼이 첸 시아를 향해 V를 해 보였다.

칼이 엘리자에게 다과상을 건네주는 사이 레이나가 물었다.

“그래서 시아 양은 우리 아들이랑 무슨 사이?”

“몸과 마음을 바쳐 레오 도령을 보필하고 있어요.”

“푸흡. 콜록! 콜록!”

차를 홀짝이던 엘리자가 자신도 모르게 내뿜었다.

“무슨! 학생이!”

붉어진 얼굴로 엘리자가 입을 뻐끔거리자 칼이 옆에서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아에게 레오는 은인이니까. 너 무슨 상상을 하는 거…… 커헉!”

엘리자가 주먹으로 칼의 옆구리를 후려갈겼다.

첸 시아의 말을 들은 레이나가 오른손으로 볼을 감싸며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들, 전에는 셀리아를 하녀로 부리더니 이번에는 연상 누나가 널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섬긴다고 하네. 엄마는 아들 취향이 조금 걱정되는걸?”

“하녀는 또 무슨 소리야?”

옆구리를 붙잡고 낑낑거리던 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이나의 말에 레오가 한숨을 쉬었다.

“셀리아, 걔는 자기가 내기에서 져서 하녀를 자청한 거고 시아는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러는 건데 제 취향이랑 무슨 관계인가요?”

“셀리아양이 뭐 어쨌다고요?”

“셀리아 제르딩거가 뭐요?”

첸 시아와 엘리자가 레오의 말에 물었다.

“작년에 셀리아가 잠시 레오의 하녀를 해준 일이 있었거든. 너무 귀여웠었어. 사진도 찍어뒀는데 한번 볼래?”

“네! 너무 귀여울 것 같아요.”

첸 시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레이나가 사진을 찾으러 갔다.

엘리자 역시 관심이 있는 듯 레이나 쪽을 힐끗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참 우리 동기들은 사이가 좋아.”

“뭐가?”

“어떻게든 약점을 잡아서 놀리려고 들잖아.”

“그게 사이가 좋은 거냐?”

옆구리를 붙잡은 칼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거지.”

‘내일이면 난리 나겠군.’

눈에 불을 켜고 소리칠 셀리아를 떠올리며 칼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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