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루니아는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루메른의 아바드, 아조니아의 르웬, 데미안의 디그네스와 아메란.’
루니아는 세이룬의 학년 대표.
거기에 학생회장 후보이다.
사납고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가 세이룬 최고의 우등생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런 만큼 기본적으로 경쟁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영웅 사관 학교의 실력자들의 인적사항을 잘 알고 있었다.
‘모두 각 학교에서 유명한 마법사 학생들이야.’
이들 모두가 영웅 사관 학교 2학년생 중 최고의 마법사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카와 루메른의 클로에 뮐러가 빠지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아마 다른 곳에 배정되었겠지.’
절벽 밑으로 떨어질 때는 미처 몰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뿔뿔이 흩어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수련회에 입소하자마자 시작인 모양이야.”
아바드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르웬이 말했다.
“그렇네요. 이렇게 다섯 명이 모인 건 아마 같은 조라는 의미겠죠?”
자신의 탐스러운 여우 꼬리를 만지작거리는 르웬을 보며 디그네스가 입을 열었다.
“마법사들만 모인 것도 그에 걸맞은 시련을 주기 위해서겠지.”
“네, 분명해요. 지금 확인해보니 절벽 위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요. 결계가 처져 있어요.”
데미안의 아메란도 말을 거들었다.
“다들 생각이 비슷한 모양이네.”
루니아가 빙그레 웃었다.
마법사답게 모두가 상황 분석이 빠르고 정확했다.
“자, 그럼 목적지는 이 수풀 너머라는 소리네?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 응?”
수풀을 바라보던 루니아는 순간 위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파동에 고개를 들었다.
푹-!
절벽 위에서 떨어진 검과 창, 방패가 바닥에 꽂혔다.
“무기?”
“이게 왜 우리한테 온 거지?”
의아한 얼굴로 다가가 각자 마음에 드는 병장기를 쥐었다.
루니아가 창을 들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쿠웅-! 쿠웅-!
지축이 흔들렸다.
번쩍-!
수풀 너머의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아무래도 시험이 시작된 모양이네요.”
르웬이 심드렁한 얼굴로 검지를 세웠다.
화르르륵-
손가락 끝에 작은 파이어볼 하나가 타올랐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의 구체가 수풀로 날아들었다.
꽈아아앙! 화르르르르륵!
강력한 폭발과 함께 화염이 휘몰아치며 주변 일대를 불태웠다.
쿠웅-! 쿵!
하지만 미지의 괴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걸 본 르웬의 눈이 꿈틀거렸다.
쿵! 쿵-!
시야에 들어온 커다란 갈색의 물체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사납게 포효했다.
“캬호!”
“저게 뭐야?”
“후훗.”
“……곰?”
루니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바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디그네스는 떨떠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굉장히 귀여운 곰인형이네요.”
아메란이 감탄을 터트렸다.
“뭔가 대단한 게 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스럽네.”
르웬은 코웃음을 치며 손바닥에 마법진을 생성시켰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 올리고 있는 곰인형을 향해 마법을 해방 시켰다.
콰가가가가강-!
무시무시한 돌풍이 불어닥치며 눈앞에 있는 모든 걸 날려 버렸다.
자욱하게 흙먼지가 일었던 흙먼지가 걷히자 르웬이 흠칫했다.
다른 이들 역시 놀란 표정을 짓는 순간.
콱-!
곰인형의 손끝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리더니 날카로운 발톱이 튀어나왔다.
“엑?”
르웬이 멍한 소리를 내뱉는 순간.
“캬아아아!”
사나운 표정을 지은 곰인형이 그대로 손을 내리쳤다.
꽈아앙-!
르웬이 다급히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 곰인형의 앞발이 꽂혔다.
섬뜩한 손톱자국과 함께 땅이 터지듯 흙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귀여운 외관과 다른 살벌한 모습에 모든 이들이 순간 굳어 버렸다.
“이 곰탱이! 왜 마법이 안 통하는 거죠?!”
“마법 공학으로 움직이는 가디언의 일종 같군. 항마력이 높아서 어지간한 마법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겠어.”
르웬의 다급한 외침에 아바드가 앞으로 나섰다.
그런 아바드 곁에 루니아가 서며 말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강력한 화력으로 불태우면 된다는 소리네?”
화르르륵-
루니아의 몸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세이룬 학년 대표님의 실력을 한 번 볼까?”
“기대해도 좋아.”
루니아가 빙긋 웃으며 마법을 해방했다.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앙-!
곰인형 발밑에서 화염의 기둥이 치솟았다.
“멀쩡해?”
루니아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바드도 마법을 완성 시켰다.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회오리가 루니아의 불꽃과 곰 인형을 가둬 버렸다.
화악-!
하지만 그런 마법에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는 듯 곰인형은 발톱으로 불꽃과 바람을 찢어버리고 돌격했다.
“일단 뛰어!”
“대체 저 곰인형은 정체가 뭐야!”
다섯 명의 마법사가 기겁하며 도망쳤다.
디그네스가 땅 속성 마법을 사용하자 땅이 치솟아 오르며 거대한 벽을 만들어냈다.
콰앙-!
두꺼운 벽을 아무렇지 않게 돌파한 곰인형이 앞발을 마구 휘두르며 속도를 높였다.
이번에는 아메란이 물 마법을 이용해 바닥에 거대한 늪을 만들었다.
첨벙- 첨벙- 첨벙-!
하지만 곰인형은 그 위를 마치 평지처럼 달리며 다섯 사람을 추격했다.
“끼요오오오!”
머리를 마구 비틀며 입에서는 침까지 흘리기 시작한 곰 인형.
이쯤 되니 기괴함을 아득히 초월한 공포 그 자체였다.
“저 곰인형! 방금 바위에 걸렸는데 발이 찢어졌어!”
“뭐?!”
“마력이 아닌 순수한 물리력은 통하는 것 같아!”
아바드의 외침에 루니아가 곰인형을 자세히 관찰했다.
과연 나뭇가지와 바위에 걸려 찢어졌는지 부드러워 보이는 천 바깥으로 솜뭉치가 삐져나와 있었다.
그걸 본 디그네스가 자신과 전속 계약을 맺은 르웬에게 소리쳤다.
“이 무기로 곰인형을 쓰러트리라는 이야기군! 르웬! 네 차례야!”
“왜 내 차례라는 거죠?!”
“넌 수인이잖아!”
“수인이라고 모두 무술에 강할 거라는 편견은 버려!”
르웬이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차라리 힘이 센 드워프인 댁이 상대해! 아니면 환수를 다룰 줄 아는 루니아 엘 룬드아! 당신이 나서면 되겠네요!”
“드워프라고 다 힘이 무지막지하게 센 건 아니야! 난 섬세한 마법사 장인이라고!”
“진작부터 그러려고 했는데 환수 소환이 안 돼!”
서로가 서로에게 왁왁 소리를 지를 때였다.
“케에에에에엑!”
“꺄아아아악!”
어느새 바로 등 뒤까지 쫓아와 포효하는 곰인형을 본 학생들이 기겁하며 더욱 속력을 높였다.
***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아?”
“글쎄요, 모르겠네요.”
첼시의 말에 첸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겁쟁이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양이군.”
“보르만군은 두려움이 없나 없군요.”
“물론! 이 몸은 야성이 넘치는 아조니아의 전사이자 용자 아르온의 후예니까!”
보르만이 자신의 터질듯한 근육을 자랑하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드리아나가 말했다.
“자네.”
“뭔가? 이상한 말투의 드워프 소녀여!”
“훌륭한 육체를 가졌군.”
“호오? 나의 근육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건가?”
“물론. 혹시 예술을 위해 모델이 되어 볼 생각 없나?”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벗게.”
“좋다! 보아라! 드워프 소녀여! 수인의 단련 된 아름다운 육신을!”
힘자랑과 근육 자랑을 좋아하는 보르만은 망설임 없이 상의를 훌렁 벗었다.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며 포즈를 취하는 보르만.
그런 그와 파티를 맺은 적이 있는 첼시는 인상을 찡그렸다.
“또 저러네.”
“첼시! 너도 전투 마법사라면 육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난 너처럼 근육 덩어리가 될 생각은 없어.”
“꾸준히 육체를 단련하면 근육뿐만 아니라 그 땅딸막한 키도 커질지 몰라!”
울컥한 첼시가 지팡이로 보르만을 한 대 후려갈기려고 하자 첸 시아가 첼시를 말렸다.
“좋아, 멋져!”
그러든 말든 드리아나는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고 그에 보르만이 우쭐했다.
“마저 벗게.”
“아니, 그건 좀.”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드리아나의 말에 당당하던 보르만도 어깨가 움츠렸다.
“장난들은 그만 치고 어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지 않을까?”
세이룬의 남학생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들이 떨어진 곳은 다름 아닌 지하 석실이었다.
사각형의 거대한 방 내부에 광원이라곤 마력등 뿐.
“입구를 찾을 수 없지 않나? 그래서 건설적인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네.”
드리아나의 말에 세이룬 학생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스트립쇼가 건설적인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드르르륵-
그때 바닥이 붉게 점멸하며 빛났다
우웅-!
학생들이 다급히 붉은색 불이 들어온 구역에서 벗어났다.
“야! 보르만! 뭐해! 피해!”
보르만은 척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붉게 빛나는 구역에 당당히 서 있었다.
“훗!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피하고 보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아! 일단 부딪혀 보…….”
파지지지지지직!
“으그그그그그극?”
보르만이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치이이익-!
바닥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살이 타는 냄새가 울려 퍼졌다.
보르만이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훗, 따끔하군.”
다시 한번 보르만이 서 있던 바닥이 빛나기 시작했다.
“야! 이제 피해!”
“아니! 난 이깟 함정에 굴하지 않고 이겨 보이겠…… 커억-!”
콱-!
첸 시아는 빠르게 보르만에게 다가가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쾅-!
날아간 보르만이 벽에 부딪혔다.
파지지지직-!
보르만이 있던 자리에 맹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빛이 사라지자 첸 시아가 빙긋 웃었다.
“구해주려고 그랬어요.”
“두 번 구해주다가 죽을지도 모르겠군.”
팔짱을 낀 드리아나가 고개를 저을 때였다.
번쩍-!
동시다발적으로 바닥 여기저기에 붉은색 빛이 나는 구역이 생성되었다.
“아무래도 이 바닥을 피하는 훈련인 모양이군.”
“패턴을 다 클리어하면 길이 열리는 함정일까요?.”
세이룬 학생의 중얼거림에 첸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첼시는 자세를 낮추며 자신만만하게 중얼거렸다.
“뭐야, 간단하겠네.”
“계속 간단하진 않을 걸세.”
드리아나의 말과 함께 바닥의 패턴이 복잡하게 빛났다.
***
“시작부터 상당히 지독하군.”
마법으로 띄운 화면을 보며 레오가 중얼거리자 멜리나가 빙긋 웃었다.
“각자의 장기를 최대한으로 살리거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훈련을 준비했어요.”
입소 첫날 훈련을 계획한 건 다름 아닌 멜리나였다.
“아르온님처럼 최전방에서 적들을 섬멸할 능력을 지닌 후보생들은 아직 육체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욱 한계를 뛰어넘게 단련할 수 있도록 오러를 제한하고 육체에 중력 마법을 더했죠.”
멜리나는 절벽을 오르는 학생들을 가리킨 다음 솜인형들에게 쫓기는 학생들을 가리켰다.
“루나님 같은 마법사들은 위기 상황에서 대응 능력을 키워주고 싶었어요.”
“확실히 루나는 마법을 못 쓰는 상황에서도 활약을 했지.”
마법이 통하지 않는 상대나 마법을 쓰기 힘든 상황에서도 루나는 무용지물이 되지 않았다.
‘칼이 활이 됐든…… 심지어 몽둥이로 적을 내려찍기도 했으니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루나는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난전에서 막강했다.
실제로 위기 상황에서는 레오와 드웨노가 지켜주지 않아도 혼자서 위기 상황을 탈출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솜인형인 이유는 뭐야?”
곰, 토끼, 강아지, 고양이 등등.
온갖 가디언치고는 특이한 외관에 관해 묻자 멜리나가 환하게 웃었다.
“귀엽잖아요.”
입에 침까지 흘리며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학생들을 쫓아다니는 솜인형들은 귀여움과는 거리가 물었다.
‘얘도 가끔 보면 참 감성이 특이해.’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드웨노님처럼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끈질김이 가장 필요하잖아요? 더군다나 고통을 참고 버틸 정신력도 필요하죠.”
“그래서 준비한 게 전기 고문이다?”
“전기 고문이 아니죠.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반복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바닥 패턴에서 한 번 틀리면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패턴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또한 실패했을 때의 전기 충격 역시 강해진다.
‘확실히 대응 능력과 집중력은 키울 수 있겠군.’
학생들에게 가장 슬픈 건 앞으로 있을 수련에 비하면 오늘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레오가 혀를 찼다.
“다들 고생이네. 방학인데 놀지도 못하고.”
‘아이들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건 레오님이시잖아요.’
멜리나는 속마음을 입 밖으로는 꺼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같이 고생하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애들이랑 같이 구르는 것도 뭔가 아니잖아.’
멜리나는 어깨를 토닥거리며 한숨을 폭- 쉬었다.
***
타닥- 타닥- 타닥-
장작이 타오르고 있었다.
드워프는 발로 그 장작을 꺼트리며 캠프를 정리했다.
엘프 마도사는 끄응-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래곤은 이미 일어나 산 너머의 타오르고 있는 검은 불꽃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인 전사는 자리에 앉아 검은 뽑은 채 검날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 바위에 주저앉은 채 육포를 질겅질겅 씹던 인간이 말했다.
“아르온.”
“…….”
“아르온?”
“어, 응? 불렀어?”
정신을 차린 아르온이 자신을 부른 카일을 바라보았다.
“괜찮냐?”
“응, 난 괜찮아.”
“무서우면 말해.”
“난 괜찮아.”
아르온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아르온을 보며 기지개를 켜던 루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별일이네! 전투가 코앞인데 아르온이 떨지를 않아! 이런 일은 처음 아니야?”
루나는 호들갑을 떨며 카일이 먹으려던 빵을 가로챘다.
카일이 인상을 쓰며 뺏으려 하자 루나가 와구와구 빵을 입에 욱여넣었다.
“이 망할 귀쟁이가.”
카일이 양손으로 루나의 뺨을 눌러대자 루나는 카일의 목을 졸랐다.
“바보들은 아침부터 기운차구먼.”
드웨노가 혀를 차며 아르온을 보았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군.”
“응, 언제까지 떨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아르온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런 아르온을 유심히 바라보며 리시나스가 물었다.
“아르온.”
“응?”
“정말 괜찮아?”
“물론이야.”
아르온이 용기라는 이름의 검을 고쳐 쥐었다.
“걱정 마.”
스릉-!
검이 날카롭게 빛났다.
“너희는…… 내가 꼭 지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