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
수련회가 시작되고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변방의 시골 영지답게 플로브 가문의 산에는 험준한 지형들이 많았다.
그중 저 멀리 아래, 거친 계곡물이 흐르는 낭떠러지 위.
학생들은 희미하게 보이는 계곡물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요? 오늘은 뭘 하는 거죠?”
일리아나가 살짝 질린 얼굴로 물었다.
그에 아조니아의 졸업생, 토끼 수인 바니르가 덤덤히 말했다.
“뭘 하긴.”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낭떠러지를 향해 턱짓했다.
“뛰어.”
그 말에 일리아나를 포함한 그녀에게 훈련받는 학생 일동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오늘은 간단한 담력 훈련이라고 했잖아요?!”
아조니아 2학년, 여우 수인 르웬이 다급히 소리쳤다.
“이게 그 담력 훈련이야.”
바니르가 덤덤히 말했다.
“싸움에 있어서는 용기는 필수야. 너희도 알겠지만 이건 수인의 덕목만이 아니라 영웅 후보생들이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들이지.”
그 말에 일리아나가 손을 들었다.
“그거랑 맨몸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 궁금한데요.”
“진정한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
“마음에서 나오는 거죠.”
일리아나의 대답에 바니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바니르를 보며 이번에는 세이룬의 학생, 티레나가 손을 들었다.
“철저한 준비에서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틀렸어요.”
이윽고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지만, 바니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르웬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바니르 선배님께서 생각하는 진정한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다는 거죠?”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네?”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쥐어짜 냈을 때. 비로소 진짜 용기가 되지. 맨몸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훈련 역시 마찬가지야.”
바니르가 르웬에게 다가갔다.
“생물은 본능적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이 훈련은 그 원초적인 두려움을 이겨내는 훈련이야.”
“그런 무식한 방법이라면 다른 수인 학생들에게 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요? 왜 하필이면 수인 학생은 저만 있는 거죠?”
르웬이 뾰족한 반응을 보였다.
그 말에 바니르가 덤덤히 말했다.
“다른 아조니아 학생들은 무식하니까 진정한 용기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절벽에서 뛰어내릴 게 분명하거든.”
“확실히 바보들은 그렇겠죠.”
“하지만 너희는 달라.”
바니르는 르웬을 포함한 자신이 맡은 학생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혹해서 뛰어내릴 바보들이 아니야.”
“훗, 역시 학생회장씩이나 하신 분이라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확실히 제가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는 편이에요.”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일리아나를 보며 바니르가 말했다.
“너희 모두 쓸데없이 잔머리를 잘 굴리는 타입이야. 그렇다 보니 이런 비상식적인 훈련에 의문을 느끼면서 계속 공포를 느낄 녀석들이지. 툭 까놓고 말해서 쪼잔하고 소심한 성격들이지.”
가슴을 후벼 파는 신랄한 말에 학생들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에게는 이런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인 정신 나간 훈련이 딱이야.”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인 정신 나간 훈련이란 걸 알면 시키지마요!”
르웬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확-!
바니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르웬을 들어 올린 후 그대로 절벽으로 던져 버렸다.
“아아아악!”
여우 수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르웬의 모습을 덤덤하게 바라보던 바니르가 말했다.
“다음, 뛰어내린다. 실시.”
하지만 그 말에도 뛰어내리는 학생은 없었다.
바니르는 일리아나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이것보다 좀 더 이성적인 훈련을……!”
“괜찮아, 안 죽어.”
“어떻게 보장해요!”
“이 정도에 죽으면 네 나약함을 탓하렴.”
“그, 그런 무책임한……! 캬아아아아아악?!”
냉정한 바니르의 말이 끝나고 일리아나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어디서 일리아나의 비명 소리 안 들려?”
넬라가 쓰게 웃으며 묻자 클로에가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들리는데.”
“잘못 들었나 보네.”
“환청이 들릴 만도 해.”
클로에가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엉망으로 당하고 있으니까.”
“하하하하! 클로에 뮐러. 마법학과 치고는 근성이 좋구나.”
자무아가 어깨를 풀며 다가왔다.
하지만 온화한 미소에는 살벌함이 맺혀 있었다.
자무아가 맡은 학생들의 과제는 지극히 단순했다.
반격하지 않고 자무아의 공격을 버티면 되는 방어 훈련이었다.
문제는 자무아의 무자비한 공격이었다.
순수한 완력으로는 작년 졸업생 중 ‘최강’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자무아는 오러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음에도 육탄전만으로도 어지간한 대형 마법에 버금가는 위력을 어김없이 뿜어냈다.
‘차라리 마법이나 소환술이라면 방어 방법이 있는데…… 자무아 선배의 공격은 순수한 물리력이라 더 어려워.’
정통형 마법사로서 클로에도 무방비 상태를 대비한 대비책을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주변에 동료나 반격을 대비해둔 대비책일 뿐.
철저하게 방어만을 목적으로 했을 때는 대응책이 부족했다.
누가 뭐라 해도 클로에는 공격 특화형 마법사였다.
그때 드리아나가 앞으로 나섰다.
“호오?”
자무아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날 혼자 막아내겠다는 건가?”
“예. 전 대장장이 이전에 아군의 방패입니다.”
“과연, 데미안의 학년 대표답군.”
평소와 달리 진중한 목소리로 자무아 앞에 선 드리아나.
그 얼굴은 한없이 진중했다.
그 모습을 본 클로에가 몸을 일으켰다.
“도울게.”
찌이이익-!
그리고 자무아의 공격을 막아내며 너덜너덜해져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치맛단을 무릎 위까지 찢어 버렸다.
활동하기 편한 차림이 된 클로에를 보며 자무아가 마음에 든다는 듯 씩- 웃었다.
“터프한데?”
드리아나는 빤히 클로에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래, 얼음 조각도 괜찮을 것 같군.”
“뭐?”
“각선미가 예술이군. 클로에라고 했던가? 예술 작품의 모델 되어 볼 생각 없나?”
“누드 모델은 사절이야.”
“그건 걱정 말게. 세미 누드일세. 전신은 필요 없어. 하반신만 있으면 되니까.”
“절대 거절이야.”
클로에는 싸늘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이제 소환수의 감정이 느껴지나?”
양팔을 벌리고 묻는 루메른의 작년 졸업생, 울타를 보며 루니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루니아 뿐만 아니다.
그 옆에는 엘리자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요.”
“어허.”
울타는 하늘을 바라보며 개탄했다.
페가수스의 맹약자인 울타가 맡은 학생은 단 두 사람.
루니아와 엘리자뿐이었다.
“어찌하여 모르는 건가! 누누이 말했지만, 환수와의 친화력은 나보다 너희 두 사람이 높다! 그런데 왜 이 간단한 걸 하지 못하는 거지?”
“내 소환수도 아닌 남의 소환수 마음을 어떻게 읽어요?”
“루니아 엘 룬드아의 말에 동감이에요, 울타 선배님.”
엘리자의 말에 울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피오라, 네가 원하는 건 이거지?”
울타는 손등에 앉아있는 피오라에게 크림을 올린 과자 하나를 건넸다.
삐약-!
피오라는 울타가 건네는 과자를 보며 날개를 펄럭이며 기뻐했다.
울타가 루니아와 엘리자에게 시키고 있는 건 소환수의 마음을 읽는 훈련이었다.
자신의 소환수의 마음을 읽는 건 소환술사에게 있어 너무나도 당연한 행위.
그렇기에 울타는 레오의 맹약자인 피오라를 불러왔다.
“잠깐만요! 아까 저도 그 과자를 줬는데요?”
루니아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원래 피오라의 맹약자로 낙점되었던 루니아는 레오에게 맹약자 자리를 뺏겼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피오라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만큼 피오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크림이 안 올라갔잖아, 크림이.”
삐약- 삐약-
“크으-!”
울타의 질책에 피오라가 거들자 루니아가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알겠나? 너희에게는 사랑이 부족하다는 내 말뜻을! 그런 의미에서 무릎 꿇고 눈을 감아라. 지금부터 사랑이란 무엇인지 깊게 고찰해보도록.”
장엄하게 소리친 울타가 획-! 하고 떠났다.
루니아와 엘리자는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일주일 내내 이렇게 무릎 꿇고 명상만 하고 있었다.
“엘리자 헤르긴.”
“뭐죠, 루니아 엘 룬드아.”
“저분이 말하는 사랑이란 게 대체 뭐야?”
“나한테 묻지 마요.”
두 소녀가 이해하기에는 천재 소환사이기 이전에 괴짜로서 명성 높은 울타의 생각은 한 차원 너머에 있는 것이었다.
***
“레오 플로브다”
“밥이다!”
“줄 서! 줄 서!”
저녁 식사 시간.
수련회 참석한 모든 학생이 밝은 표정으로 줄을 섰다.
어느새 야영지 한가운데는 커다란 주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어느덧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영웅 후보생들은 이 상황에 훌륭하게 적응하고 있었다.
밤마다 이어지는 습격에도 이제는 큰 무리 없이 대응했다.
극한의 상황까지 몰렸지만, 이제는 수련회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까지 생겨났다.
“오늘도 이 시간을 위해 버텼다!”
“레오! 오늘 메뉴는 뭐야?”
모든 학교의 만장일치로 식사 총책임자가 된 레오가 말했다.
“바베큐.”
“바베큐!”
“오오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들 좋을까?”
“이 시간이 유일한 낙이니까.”
레오의 보조를 돕던 첼시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요리가 완성되고 배급이 마무리되었다.
친한 학생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시간을 보낼 때였다.
“레오 오빠! 여기 와!”
칼 옆에 앉은 첼시가 레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니, 난 다른 곳에서 먹을게.”
그렇게 대답한 레오는 접시를 들고 야영지를 조금 벗어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나무 밑에 등을 기대고 앉아 멍하니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아르온이 있었다.
“저녁 먹어.”
“고마워.”
식사를 건네는 레오를 보며 아르온이 웃으며 받았다.
그리고 노을 지는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예쁘다. 리시나스가 왜 이 풍경을 되찾기 위해 모든 걸 걸었는지 알겠어.”
고기를 한입 문 아르온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카일, 너도 이 풍경을 되찾고 싶었던 거야?”
“글쎄. 난 별생각이 없었는데.”
레오가 피식 웃으며 아르온 곁에 앉았다.
“카일.”
“왜.”
“네가 날 구해주지 않았다면, 난 그때 에레보스에게 죽었지?”
“…….
아르온의 물음에 레오가 침묵했다.
그런 레오를 보며 아르온이 덤덤히 말했다.
“괜찮아. 다 알고 있으니까.”
“뭘?”
“전투에 들어가기 직전, 난 내가 그곳에서 죽을 거라는 걸 알았어.”
“알고 있었다고?”
“응. 초감각이 때로는 알기 싫은 것까지 알려준다는 걸 너도 알고 있잖아?”
놀라는 레오를 보며 아르온이 덤덤하게 말했다.
“난 죽음을 각오했었어. 그리고 이렇게 세상이 구원받은 걸 알았으니 난 괜찮아. 네가 내 죽음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아르온이 레오를 보며 웃었다.
미래의 친구가 자신을 미래로 데려온 순간부터.
아르온은 레오가 자신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르온은 레오가 그런 감정을 지니지 않기를 바랐다.
“네가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지금 시대에 머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걸 신경 쓰지 마. 돌아간다고 해도 난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었어.”
‘각오를 했다는 녀석이…… 그렇게 죽기 싫은 눈을 했었냐.’
아르온이 레오의 감정을 알아보듯 레오 역시 아르온의 감정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잠을 좀 자.”
아르온은 현세에 온 이후부터 단 한숨도 자지 않고 있었다.
무섭기 때문이다.
눈을 떴을 때 에레보스가 눈앞에 있을까 봐.
“그렇게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으면 걱정을 안 하려고 해야 안 할 수가 없어.”
“……응.”
레오의 말에 아르온이 웃었다.
그리고 살짝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때 레오 쪽으로 아르가 다가왔다.
“검은 토끼! 아칸 교관님은……!”
“주무시네요.”
함께 온 에이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칸 교관님의 주무시는 모스으읍! 웁-! 웁-?!”
아르온의 자는 모습을 보며 아르가 흥분하려는 순간.
드리아나가 한 손으로는 아르의 입을 막고 다른 팔로는 아르의 목을 조르며 제압했다.
“명치를 한 대 쳐서 기절시키면 난동을 안 부리겠지?”
루니아가 주먹을 움켜쥐며 낮게 중얼거리자 아르가 마구 발버둥 쳤다.
그때 칼을 따라온 첼시가 아르온 앞에 쪼그려 앉은 후 작게 감탄했다.
“그런데 정말 용자 아르온님과 많이 닮았네. 동일 인물이라고 해도 믿겠어.”
“그러게 말이다.”
칼은 곁에 같이 쪼그려 앉은 채 능청스럽게 중얼거렸다.
***
화르르륵-!
정신을 차린 순간, 눈앞에 보인 건 검은 불꽃이었다.
‘아, 꿈이구나.’
아르온은 지금 이 상황이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손에 쥐어진 부러진 애검 ‘브레이브’로 시선이 향했다.
용기라는 이름의 검의 수명이 끝났다.
에레보스와의 전투에서 수명이 다한 것이다.
‘아니…….’
아르온은 알고 있다.
검이 부러진 건 검의 내구성이 다해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검을 만든 드웨노의 실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끝까지 휘두르지 못했기 때문이야.’
동료들을 위해 에레보스를 단신으로 막아내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아르온은 에레보스와의 전투 도중 싸움을 포기했다.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뒤는 드웨노가…… 루나가…… 리시나스가…… 카일이…… 알아서 해줄 거야.’
체념했다.
‘카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은 친구에게 기댔다.
‘돌아가기 싫어.’
죽는 것이 두렵다.
‘아직 나를 위해 하고 싶은 걸 찾지도 못했어.’
죽음의 공포 앞에서 한 번 꺾인 용기는 용자를 망설이게 했다.
쿠구구구구구궁-!
그 순간, 세계가 흔들렸다.
***
쿠구구구구궁-!
“지진?”
첼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땅 아래를 바라보았다.
땅 아래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번쩍-!
그 순간 아르온의 눈이 번쩍 뜨였다.
화악-!
일순간 아르온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커헉?’
그걸 본 칼이 속으로 숨을 토해냈다.
에이란 역시 기겁했다.
갑작스러운 지진에 첼시가 한눈을 파는 그 순간.
아르온이 갑작스럽게 수화한 것이다.
아직 달이 뜨지 않았다.
아니, 달이 떴다고 해도 오늘은 보름달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르온이 수화를 한다면?
“갑자기 웬 지진이……!”
“체, 첼시 양! 넘어질 수도 있어요!”
“야, 첼시. 중심 좀 잡아!”
에이란과 칼이 첼시의 시야를 가렸다.
“뭐야? 그냥 작은 진동인데 넘어지긴 뭘 넘어져? 그리고 내 앞은 왜 막았어? 뭐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첼시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숨기긴!”
칼이 능청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크허어어어어엉-!”
그 순간.
아르가 드리아나의 손을 치우고 포효했다.
갑작스러운 포효에 첼시가 귀를 막고 인상을 썼다.
“왜 갑자기 포효야!”
“캬아아야아앙! 커흠! 큼! 하울링 연습.”
“……너희 수상해.”
첼시가 더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
멍한 표정을 짓던 아르온이 정신을 차렸다.
칼과 에이란은 그런 아르온을 바라보며 입을 뻥긋거렸다.
영문을 몰라 하던 아르온에게 레오가 작게 말했다.
“수화 풀어.”
상황을 파악한 아르온이 수화를 해제했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수화?”
첼시가 수화한 아르온의 모습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어떻게 수화를? 보름달도 아닌데 수화를 할 수 있는 건 저 고양이 뿐이잖아?”
놀라는 첼시를 보며 아르가 팔짱을 꼈다.
“훗! 이 몸의 하울링에 반응하여 아칸 교관님이 수화한 모양이군!”
우쭐하며 가슴을 쫙 펴는 아르.
그런 아르를 보며 루니아와 드리아나가 냉큼 말했다.
“드디어 성공했어?”
“대단하구먼. 역시 내 전속 모델다워.”
“누가 네 전속 모델이야.”
세 사람이 상황을 넘기기 위해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 첼시가 ‘아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르 튠은 하울링으로 다른 수인을 수화시킬 수 있었지?”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 첼시를 보며 칼과 에이란이 덧붙였다.
“대단해요! 아르 양!”
“오오, 역시 아조니아의 대표다워.”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하려고 발악하던 칼은 재미있다는 듯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첼시를 보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절친한 사이인 만큼 이해했다.
이 레오 앞에서만 고분고분 귀여운 척하는 작은 악마는 이미 상황을 다 파악한 것이다.
“너희들 사람을 바보로 아는 거야? 그런 어설픈 연기에 넘어갈 것 같아?!”
첼시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리고 당황하는 아르온 앞에 다가가 말했다.
“아칸 교관님!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용자 아르온님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