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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439화 (439/483)

439.

터벅- 터벅-

레오와 아르온은 요정왕의 거처 심부에 숨겨진 지하로 연결된 원형 계단을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과연.”

레오는 기나긴 통로를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확실하게 억누르고 있군.”

이 계단에 들어선 순간부터 강력한 요정왕의 힘이 느껴졌다.

“단순한 결계가 아니네?”

아르온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3대 환수 중 피닉스가 검과 창 같은 무구, 페가수스는 기마를 상징한다면 요정은 방패, 즉 방벽을 의미한다.

“외부와 말 그대로 단절되어 있네.”

‘물리적인 개념을 뛰어넘어 차원적으로도 분리되어 있군.’

지금 걷고 있는 이 계단 자체가 하나의 이 공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요정의 마법은 그 자체만으로 고유 마법 급으로 분류되는 강력한 마법이며 요정왕은 그 강력한 마법을 마스터한 마법사이기도 하다.

이곳은 그 요정왕이 5000년의 세월 동안 차원에서 분리해온 영역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요정의 마법과는 완전 다른 구조인데?’

레오가 알고 있는 요정의 마법과는 달랐다.

“마법 술식 구조가 루나 녀석 스타일인데?”

“아, 확실히 루나의 마법이랑 닮았어.”

레오의 말에 아르온이 감탄했다. 날아가던 실로드가 대답했다.

-루나가 연구한 요정 마법 술식을 바탕으로 만든 결계니까요.

“과연 루나네.”

“마법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평가받았으니까.”

아르온이 감탄하자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계단을 내려갔다.

체감 시간으로는 한나절이 훌쩍 떠난 시간.

하지만 이 영역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외부와는 다르다는 것이 실로드의 설명이었다.

이윽고 레오와 아르온, 그리고 실로드는 하나의 거대한 석문 앞에 도달했다.

레오의 눈이 가늘어졌고 아르온은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 문 너머에 에레보스의 조각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왔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하게 되니 절로 몸이 반응했다.

-열겠어요.

쿠구구구구구궁-

실로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석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레오와 아르온은 석실 내부로 들어섰다.

내부에 있는 건 성인 남성 크기만 한 인간 형상의 검은 물체였다.

타나 남은 숯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했고 녹아내려 엉겨 붙은 쇳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분명한 건 밤하늘보다도 어두운 검은색이었다는 점과 희미하게 에레보스의 힘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형태도 다르고 내뿜는 기운도 미약했다.

하지만 에레보스와 맞서 싸운 레오와 아르온은 이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에레보스.”

아르온의 중얼거림에 레오가 에레보스 앞으로 다가갔다.

말 그대로 불씨가 완전히 꺼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때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었던 재앙적 존재다.

게다가 에레보스의 조각은 3000년 전.

다시 타올랐던 적이 있다.

‘실로드도 지난 5000년 동안 이걸 없애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지?’

실로드라고 에레보스의 조각을 이렇게 방치만 했던 건 아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요정왕의 힘을 이용해 에레보스의 조각을 없애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불꽃이 사라졌다고 해도 에레보스는 에레보스.

신들조차 두려워하는 태초의 재앙이었다.

레오조차 기적적으로 토벌에 성공했지만, 완전히 소멸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저 여섯 조각으로 나누는 게 최선이었다.

‘나도 섣부르게 건드릴 수 없겠어. 내가 괜히 건드렸다가 자극하는 꼴이 된다면 그것도 문제야.’

레오의 힘은 에레보스에게 있어서는 천적 그 자체.

봉인된 에레보스에 레오의 힘이 더해진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었다.

‘억누르고 타르타로스에게서 지켜내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라는 건가.’

다행인 점은 에레보스의 조각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령왕조차도 조각을 깨우는 법을 모르는 상황이야. 뭐가 됐든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이겠지.’

레오가 에레보스의 조각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아르온이 킁킁- 코를 움직였다.

“확실히 내가 알고 있는 에레보스의 냄새와는 다르네.”

-어떻죠?

“기본적으로 기분 나쁜 악취가 느껴지는 건 똑같지만. 좀 더 지독해졌어.”

-지독해졌다?

“응. 마치 타다 남은 잿더미 같아.”

인상을 찌푸리는 아르온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다시 타오를 기미는?”

레오의 물음에 아르온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 느낌은 전혀 없어.”

아르온의 물음에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일단 이 조각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니까.”

레오가 실로드를 바라보았다.

“실로드, 조금만 더 부탁해.”

-이곳을 지키는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실로드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가슴을 탁- 쳤다.

-난 위대한 대영웅들의 동료였는 걸요?

“믿음직스럽네.”

레오는 그런 실로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르온?

실로드는 말없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아르온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죠?

“아니, 실로드는 많이 바뀐 것 같아서.”

-5000년이나 지났으니까요.

실로드는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르온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만약…… 만약 내가 5000년 전 죽지 않았다면.”

고개를 든 아르온이 물었다.

“겁쟁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무슨 뜻이야?”

“진짜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지금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처럼. 진짜 용자가 될 수 있었을까?”

-지금 이야기 속의 아르온이라, 상상이 안 가네요. 그쵸, 레오?

“그러게.”

레오와 실로드의 대화를 들으며 아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다면 나는 진짜 용자가 되겠어.”

“뭐?”

“그게 내 새로운 목표야.”

“그럴 필요가 있을까? 넌 지금도…….”

“아니. 이전의 나와는 달라질 거야.”

아르온이 의욕적으로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런 아르온을 보며 뭐라 말하려던 레오가 피식 웃었다.

“힘내 봐라.”

“응!”

***

울창한 숲속 작은 연못가.

“후욱! 후욱! 멋있어요! 후욱!”

“히이이이이이익!”

아르온은 자신의 발에 매달린 아르를 보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용자가 어쩌고 어째?”

레오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벙찐 표정을 짓던 첼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응? 무슨 말이야?”

“혼잣말이야.”

딱 잘라 대답한 레오는 아르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그만해, 네가 그러면 수업이 안 되잖아.”

그 말에 아르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아르온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아르온은 냉큼 첼시 뒤로 갔다.

첼시는 입을 헤- 벌리고 그런 아르온을 올려다보았다.

“발작 증세가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 검은 토끼! 아르온님의 모습을 봐!”

아르는 첼시 뒤에 숨은 아르온을 바라보았다.

“아아! 멋져! 최고야! 수화한 아르온님 최고! 아흑! 너무 눈부셔!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겠다고!”

아르온을 보며 눈을 가리며 흥분하는 아르.

“늠름해! 용자의 관록이 느껴져!”

“너 안경 맞춰야 하는 거 아니야?”

자신보다 작은 첼시 뒤에 숨은 아르온을 보며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아르의 모습에 레오가 한숨을 쉬었다.

“레오 오빠.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

“아르온님이 내가 봐 왔던 이야기 속 아르온님과 많이 다른 데 원래 이런 성격이셨어?”

설마설마하는 얼굴로 묻는 첼시를 보며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세상에.”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현대 사람들에게 있어 용기의 상징 그 자체인 용자 아르온이 실은 겁쟁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눈이 맛이 가서 무섭기는 하지만.’

첼시는 아르의 눈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하필 제 뒤에 숨으세요?”

“뭔가 익숙해서 안심된달까?”

아르온의 대답에 첼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아르온은 진정한 아르 앞으로 다가갔다.

“한번 수화해볼래?”

그 물음에 아르는 오러를 활성화했다.

수화한 아르를 보며 아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하울링을 사용해봐.”

그 말에 아르가 숨을 들이켰다.

그걸 본 첼시가 마법으로 대기를 조작했다.

-크허어어어어엉!

거대한 포효소리에 첼시는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굉장하네.’

첼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조니아의 2학년 대표로서 위엄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아르의 포효를 들은 아르온은 팔짱을 꼈다.

“지금 시대에는 하울링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했지?”

“네!”

아르온의 하울링은 적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아군에게 용기를 준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사용자에 따라 여러 효과가 있다.

신체 능력을 일순간 향상시킨다거나 적을 혼란하게 만드는 등.

“그런 특성을 지닌 수인들은 주로 마법사나 소환사들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아르의 힘찬 대답에 고민하던 아르온이 숨을 들이마셨다.

-커허엉!

아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찬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광경에 압도된 아르와 첼시는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괴, 굉장해.”

“멋있어!”

첼시가 전율했고 아르는 흥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사람이 아르온의 위엄에 감탄하는 사이 레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보다 몸이 한결 가벼웠다.

“하울링에 버프 효과를 더한 거야?”

“응.”

“뭐?”

“그러고 보니 몸이……?”

레오의 물음에 아르온은 태연하게 대답했고 아르와 첼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 시대의 하울링의 사용법과 마법사들이 버프 마법을 사용할 때 마나 흐름을 혼합시켜 봤어.”

지금 시대 수인들이 사용하는 하울링과 아르온이 사용하는 하울링은 오러 사용법이 다르다.

원본이라 할 수 있는 하울링 역시 아르온만의 고유 기술.

후대의 수인들은 그 하울링을 연구하고 개량하여 익혔다.

그 과정에서 원본과 많이 달라졌고 아르온은 사용할 수 없었던 다른 효과들이 발생했다.

아르온은 아르의 발성과 현대 수인들의 하울링에 대한 특성을 듣고 즉석에서 없던 효과를 구현한 것이다.

“그, 그게 되는 거예요?”

“하니까 되네?”

“역시 아르온님!”

경악하는 첼시를 보며 아르온이 웃었고 아르는 눈을 반짝이며 아르온은 찬양하기 바빴다.

“하지만 아르, 네게서 수화를 시킨다고 하는 특별한 힘은 느껴지지 않는걸?”

“저도 딱 한 번, 우연히 한 거라…….”

“그래? 그러면 하울링 발성법을 수련하면 나타나지 않을까? 하울링에는 특별한 수련법 하나가 있거든.”

“오오오! 뭔가요!”

아르가 눈을 반짝 빛냈다.

아르온은 그런 아르의 뒤로 가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올렸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아르를 데리고 연못가로 향했다.

아르의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렸다.

“서, 설마?”

“응. 물에 빠지면 돼.”

휘익! 풍덩!

“우냐아아아아?!”

고양이 비명을 내지르며 허우적거리는 아르를 보며 아르온이 소리쳤다.

“물속에서 최대한 크게 소리쳐!”

“뽀글뽀글뽀글꾸르르르르르!”

물을 싫어하는 아르였지만 어떻게든 물속에 얼굴을 박고 포효를 내질렀다.

“푸헉!”

숨이 다해 바깥으로 얼굴을 내민 아르가 숨을 쉬려 하자 아르온이 말했다.

“바로 들어가!”

“녜헥?”

“이건 루나가 내가 하울링을 강화할 수 있게 도와준 수련법인데. 괴로워도 효과는 확실해. 찰나의 순간 숨을 최대한 깊게 들이마셔.”

“네! 후읍!”

아르가 다시 얼굴을 물속에 넣었다.

뽀글뽀글뽀글!

“쿠헥!”

텁!

“에엑!?”

아르는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물로 밀어 넣는 아르온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수, 숨 못 셨…… 쿠헥!”

“살고 싶으면 숨 쉬어!”

“뽀그르르르르르르!”

첨벙첨벙!

“……저건 그냥 물고문 아니야?”

“그러게.”

“아르온님, 혹시 저 바보 고양이가 무서워서 익사시키시려는 건가?”

아까 전 아르를 보며 두려움에 떨던 모습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걸? 굉장히 하기 싫다는 표정이잖아.”

잔인한 손속과 다르게 아르온은 마음이 아픈 얼굴로 아르를 물속으로 떠밀고 있었다.

자기도 하기 싫지만 아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루나가 자기에게 한 거랑 똑같이 하네.’

당시는 아직 아르온이 십 대이던 시절이었다.

수련의 결과 아르온은 하울링을 완벽하게 다루게 되었다.

루나의 수련법에 큰 도움을 받은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 아르온은 루나를 불신하게 되었지만.’

“효과가 있으려나?”

떨떠름한 첼시의 물음에 레오가 턱을 괴었다.

“용자가 직접 시키는 훈련이니 효과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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