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아르온은 깊게 고민했다.
지금 시대는 아르온이 태어나고 자랐던 시대와는 달랐다.
아르온이 살아야 했던 시대는 앞날이 캄캄했던 시대였다.
‘아이들은 꿈조차 꿀 수 없었지. 리시나스를 따라나섰던 나조차도 내가 원했던 시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어.’
아이들의 희망찬 밝은 미래를 원했던 아르온조차도 막연히 상상하기만 했을 뿐 감도 잡지 못했던 평화의 시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빼앗겼던 세대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접하게 된 평화의 시대는 아르온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하지만 아직 위협이 끝나지 않았다.
언제 다시 재앙의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
지금 이 평화가 깨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아르온이 지금 가르치는 건 이제 무대에 설 준비를 하는 자들.
“이미 무대에 올라간 아이들에게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르온의 말에 멜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졸업생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아.”
“굉장히 황송하고 감사한 말씀이네요. 가르침은 어떤 식으로 하실 생각이신가요?”
“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걸 잘못하는 편이거든.”
아르온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방법은 단 한 가지야.”
“한 가지요?”
“응.”
***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바니르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얼굴에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아조니아의 졸업생이자 전 학생회장인 그녀이지만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상에는 아직 자신보다 강한 맹자가 많이 있다.
아르온을 처음 봤을 때 단번에 알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수인이 유약해 보이지만 강하다는 사실을.
자신의 위에 서 있는 사람이란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도발을 당하면 자존심이 상했다.
“에이, 에이. 왜 흥분하고 그러실까.”
리에니아가 방긋방긋 웃으며 바니르의 어깨를 토닥였다.
“한 번 상대해드리면 되지.”
특유의 가벼운 말투로 말은 했지만 리에니아도 도발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날카로운 눈으로 아르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 리스?”
“그래.”
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아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시작할까?”
아르온의 말에 검을 뽑은 리스가 말했다.
“리에니아, 바니르.”
리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자.”
그 말에 리에니아와 바니르가 일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화악-!
바니르가 아르온에게 돌격했다.
탁-!
리에니아는 엄청난 속도로 숲속을 가로질러 달렸다.
고오오오오-!
검을 늘어트린 리스는 제르딩거의 불꽃을 끌어냈다.
방심하지 않고 순식간에 전투태세로 전환되는 것이 빠르다.
‘영웅의 시대라 불린다더니.’
평화의 시대이기 이전에 영웅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 시대.
영웅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전장에 선 이들의 마음가짐은 확실히 달랐다.
아르온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바니르를 바라보았다.
스릉-!
어느새 양손에 칠흑같은 검신을 가진 롱소드와 단검의 중간 길이 정도 되는 검을 쥔 바니르가 눈을 번뜩이며 쌍검을 휘둘렀다.
콰가가가가가가각-!
아르온과 바니르 사이에 불똥이 튀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진 검격을 아르온이 한 손으로 막아냈다.
한 손으로 자신의 공격을 모조리 쳐내는 아르온을 보며 바니르의 눈이 꿈틀거렸다.
아르온이 다른 손으로 바니르를 제압하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바니르가 자세를 낮추었다.
화악-! 화르르르르륵-!
어느새 다가온 리스가 검을 휘둘렀다.
불꽃의 오러가 넘실거렸다.
콰가가가가강-!
아르온의 손과 리스의 검이 격돌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마치 파도가 쏟아지듯, 불꽃이 아르온을 덮쳤다.
‘불꽃의 오러를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잖아?’
모든 속성 중에서도 가장 거칠고 다루기 힘든 불꽃 속성.
아르온을 불태울 듯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으면서도 바니르에게는 타격을 주지 않는다.
아르온이 손에 힘을 주었다.
화악-!
순간 아르온에서 뻗어 나온 황금의 오러가 리스의 검을 밀어냈다.
그리고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바니르를 다른 손으로 막았다.
콱-!
검이 다 휘둘러지기 전에 빠르게 아르온에게 막혔다.
리스와 바니르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어.’
‘순수한 기술.’
이 짧은 공방으로 단번에 꿰뚫어 봤다.
아르온은 자신들을 상대하면서도 아직 여유가 있다.
‘대체 이런 사람이 어디서 나온 거지?’
“뭘 하고 있는 거야?”
숲속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아르온과 세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던 멜리나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셨군요.”
“네 마력이 느껴지길래.”
새벽에 잠을 자던 레오는 멜리나가 마법을 썼다는 걸 눈치채고 이곳에 왔다.
멜리나가 펼친 마법은 다름 아닌 결계였다.
“아르온이 부탁한 거야?”
“네. 졸업생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으시다며 저에게 부탁했어요.”
“그래?”
레오는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졸업생들이 많은 걸 얻어 갈 수 있을까요?”
“그거야 하기에 따라 나름이겠지.”
레오는 리스와 바니르를 상대하고 있는 아르온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하지만 최강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게 많을 거야. 무술에 관해서 아르온은 정점이니까.”
리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수인을 상대로 처음부터 최선을 다했다.
자신들보다 우위에 선 강자라는 걸 알았기에 방심 같은 건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반의 준비로 전투에 들어갔음에도 눈앞에 펼쳐진 결과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반격하지 않았어.’
리스와 바니르의 끝 없는 공세에도 아르온은 공격을 하지 않았다.
모든 공격이 가로막혔다.
마치 높이를 알 수 없는 벽을 상대하는 것만 같았다.
‘대체 어디서 이런 사람이 나타난 거야?’
“너희의 전력은 그 정도가 아닐 텐데?”
아르온이 리스와 바니르를 보며 말했다.
“너희의 전력을 보여 줘.”
아르온이 손을 들어 올렸다.
고오오오오-!
손끝에서 황금색 오러가 흘러나왔다.
그걸 본 리스와 바니르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게 힘들다면 내 쪽에서 가줄까?”
아르온이 웃으면서 발걸음을 옮긴 순간.
번쩍-!
순백의 섬광과 함께 아르온을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콰가가가가가강-! 쩌저저적-!
아르온이 손을 뻗어 화살을 붙잡았다.
탁-!
그 순간, 화살에서 폭발하듯 차가운 냉기가 아르온을 덮쳤다.
아르온의 몸이 얼어붙었다.
아르온이 눈동자를 굴려 화살이 날아온 쪽으로 향했다.
‘오러와 마법의 융합. 위력이 상당하네.’
“하압!”
바니르가 아르온과 거리를 좁혔다.
쩌적-! 쨍-!
아르온이 얼음을 뚫고 나와 바니르에게 덤벼들었다.
확-!
순간 바니르의 몸이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오러 특성.’
아르온의 초감각이 개방되었다.
그 순간.
화르르륵-!
거대한 화염의 기둥이 치솟았다.
아르온이 리스를 바라보았다.
고오오오오오-!
이글거리는 피닉스의 불꽃이 리스의 검에 압축되어갔다.
진홍색 빛이 넘실거리는 검을 양손에 고쳐 쥔 리스가 아르온을 향해 검을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리에니아의 활이 자신을 겨눈 게 느껴졌다.
화악-! 피잉-!
검과 화살이 양방향에서 아르온을 노렸다.
아르온이 양손을 펼쳤다.
화르륵! 쩌저저정-!
폭염의 검격과 혹한의 화살이 아르온을 노렸다.
순간.
고오오오오-!
“뭐?”
리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르온 오러가 폭염의 오러와 혹한의 오러를 휘감았다.
휘오오오-!
마치 물길을 유도하듯.
아르온이 손을 모으자 아르온의 손안에서 상극의 힘이 회전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에니아도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리스와 리에니아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아르온을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르온이 자신의 공격을 방어하는 순간 손발을 묶어 빈틈을 만들려 했다.
그 빈틈을 세 사람 중 가장 빠른 바니르가 파고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율스럽게도 아르온은 리스와 리에니아의 공격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통제권을 가져갔다.
‘아니, 저 오러를 베어내면!’
어둠 속에서 바니르가 아르온에게 접근했다.
그 순간, 바니르는 심장이 철렁 주저앉는 걸 느꼈다.
완벽하게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춘 바니르가 아르온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 순간.
쩌저저저적! 화르르륵!
혹한의 화살이 리스에게 날아들었고 폭염의 검격은 멀리 있는 리에니아에게 날아갔다.
“크윽!”
화르르륵-!
리스가 피닉스의 오러를 내뿜었다.
쩌어어어억-!
하지만 공격을 다 방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 나갔다.
꽈앙! 화르르륵-!
리에니아 역시 공격을 방어하지 못했다.
턱-!
“컥?”
바니르는 아르온에게 목이 잡혀 제압당했다.
버둥거리며 반격하려던 바니르가 이내 몸을 축 늘어트렸다.
승부는 갈렸다.
한 수 위, 두 수 위 같은 수준이 아니었다.
‘차원이 달라.’
바니르를 바라보던 아르온이 빙긋 웃으며 손을 놓아주었다.
털썩-
바니르가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훌륭해. 너희는 한 시대를 짊어지기 충분한 영웅들이구나. 안심했어.”
리스가 혹한의 오러를 자신의 오러로 밀어내며 다가왔다.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리에니아는 온몸이 그을린 상태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르온을 바라보았다.
“안심할 필요가 있나요? 당신은 이미 차원이 다른 강자잖아요.”
리에니아가 이를 악물고 물었다.
그런 리에니라를 보며 아르온이 대답했다.
“내가 강한 것과는 상관이 없어. 너희는 아직 젊잖아?”
아르온은 주저앉은 상태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바니르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너흰 아직 미래가 창창해. 미래에 더 대단해질 거야. 그런 의미에서 너희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데.”
“도움이요?”
“이거, 배워 보지 않을래?”
아르온이 손을 내밀었다.
그 위에는 황금색 오러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예?”
세 사람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르온은 손바닥 위에서 회전하고 있는 오러를 보며 말했다.
“딱히 특별한 기술 같은 건 아니야. 그저 오러의 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요령이지.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조금 전처럼 다른 이의 공격을 튕겨낼 수도 있어.”
세 사람은 조금 전 아르온이 리스와 리에니아의 공격을 튕겨냈던 걸 떠올렸다.
“2학년들이 배우기에는 아직 위험한 기술이라서. 너희들이 배워서 나중에 후배들에게도 알려 줄래?”
“우리에게 이런 대단한 기술을 가르쳐주는 이유가 뭡니까?”
리스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눈앞의 남자가 2학년에게 초감각이란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파악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자신들에게는 또 다른 오러 스킬을 전수해준다고 한다.
리스의 물음에 아르온이 웃었다.
“안심하고 싶어서.”
아르온의 대답에 리스와 리에니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아르온의 손에서 회전하는 황금색 오러를 바라보던 바니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오러가 나선형으로 회전한다고? 거기에 오러의 위력을 극대화한다니…….’
3000년 전.
용자 아르온의 후계자라 전해지던 대전사 아조니아.
혜성의 마법사 세이룬이 별의 마법을 재정립했다면 대전사 아조니아는 용자 아르온의 오러 스킬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수인들이 사용하는 [용자의 숨결]을 만든 자도 아조니아다.
그런 아조니아의 대표적인 스킬이 하나 있다.
‘스파이럴.’
오러를 회전시켜 위력을 극대화하는 기술.
‘아조니아님께서는 이 또한 아르온님의 기술이라고 하셨어.’
용자의 숨결처럼 스파이럴 역시 아조니아가 수인들에게 전해주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개벽의 영웅들은 세계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 아르온이 사용하는 오러 스킬은 소실 된 아조니아의 기술과 너무도 유사했다.
‘사장 된 기술을 사용하고 황금색 오러를 사용하는 수인 남자, 게다가 아르온님과 닮은 외모.’
바니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설마…… 당신은……?”
바니르가 떨리는 눈으로 아르온을 바라보았다.
그런 바니르를 보며 아르온이 검지로 입을 가렸다.
부드럽게 미소 짓는 아르온을 보며 바니르가 몸을 떨었다.
‘용자…… 아르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