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
레오의 손에 하나의 지팡이가 별빛처럼 빛났다.
코테메스.
혜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팡이.
드웨노가 만들고 루나가 이름 붙인 신기급의 지팡이로 현존하는 마도 지팡이 중 최강의 지팡이라 할 수 있었다.
만들어질 때도 신의 대장장이라 불린 드웨노가 장인의 혼을 불태우며 만든 지팡이니 만큼 엄청난 마력을 품고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루나 녀석이 온갖 술식을 떡칠해서 마개조를 했지. 자기 마력을 담는 건 덤이고.’
거기에 루나의 후계자인 세이룬의 손을 거치며 세이룬의 마력까지 더해졌다.
‘문제는 그만큼 다루기도 어려운 마도 지팡이가 되었다는 거지.’
오랜 세월 코메테스를 제대로 다룬 가문은 없다.
세이룬의 피를 이은 팅겔 가문에서조차.
이유는 간단했다.
‘지팡이 제작자도 그걸 사용하던 녀석과 물려받은 녀석도 희대의 천재니까.’
레오 역시 세이룬에게 코메테스를 받은 이후 완벽하게 다루게 된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였다.
코메테스를 쥔 레오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에레보스의 모습이 거의 안 보일 높이까지 올라온 레오가 마력을 일으켰다.
우웅-!
레오의 마력에 반응한 코메테스가 빛을 발했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레오의 눈이 회색으로 변했다.
마력을 일으킨 레오의 몸에서 회색의 마력이 일렁였다.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기하학적인 룬어로 이루어진 마법 술식의 결정체.
단순히 마법이 아닌 하나의 마법 체계였다.
이 세상에서 오직 단 한 사람.
시작의 영웅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체계.
레오는 나직이 주문의 이름을 되뇌는 것으로 마법을 완성시켰다.
“바이블.”
주문이 완성되자 바이블의 마법술식이 빠르게 변화했다.
마법진 속에 새로운 룬어가 새겨졌다.
별의 마법의 마법 술식이었다.
레오가 코메테스를 쥐고 마법을 전개했다.
번쩍-! 파지지지지직-!
아름다운 마법 술식이 레오의 주변에 생성되었다.
그걸 보고 레오가 주문을 외웠다.
레오의 마법 영창에 맞추어 마법 술식이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그와 함께 대기의 마나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전장 전체에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졌다.
목소리가 아니었다.
대기의 마나가 떨리며 만들어낸 소리.
“이건 대체 뭐지?”
울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지팡이를 쥐고 주문을 영창하던 토루아가 눈을 크게 떴다.
“마법 영창이야.”
누군가의 영창에 대기의 마력이 공명한다.
그 공명이 선율로처럼 들리는 것뿐이었다.
“별의 마법.”
마법의 정체를 알아차린 리에니아가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레오 플로브?”
입을 떡 하니 벌렸다.
“굉장해요, 레오님.”
에이란도 감탄했다.
“대체 얼마나 강력한 마법인 거야?”
루니아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여러분.]
귓가로 멜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내가 지휘하겠어요. 울타 군은 리에니아 양을 데리고 에레보스를 공격하세요.]
그 말에 울타가 자신의 페가수스 에이리아의 고삐를 잡았다.
화악-!
엄청난 속도로 비행하며 에이리아가 뇌전을 내뿜었다.
파지지지직-!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날아가는 와중에 리에니아가 몸을 일으켰다.
화악-!
엄청난 속도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리에니아는 개의치 않고 활의 시위를 잡아당겼다.
고오오오오오-!
활시위를 당기며 주문을 입에 담았다.
리에니아가 별의 주문을 외우자 레오와 공명하던 대기의 마나가 리에니아의 주문에 반응했다.
리에니아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뭐지?’
레오의 마법 영창에 맞춰 함께 영창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주문의 위력이 더더욱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리에니아가 낼 수 있는 최대 위력을 한참 넘어선 힘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안정한 느낌은 없다.
‘오히려 안정 되어 있어.’
꽈악-!
리에니아가 활 시위를 더욱 강하게 잡아당겼다.
‘마치 이게 원래의 위력인 것처럼.’
굉장히 자연스러운 마력의 움직임에 리에니아가 주문을 끝마쳤다.
“종언.”
파앗-!
리에니아가 활 시위를 놓자 화살 형태를 한 종언의 마법이 에레보스를 향해 날아갔다.
번쩍-! 꽈아아앙-! 화아아아악-!
마법의 여파로 에레보스를 중심으로 나무와 풀들이 반대 방향으로 누웠다.
화르르륵-!
검은 화염이 쏟아져 나오자 멜리나가 말했다.
[토루아 양, 땅의 마법으로 불꽃을 막아주세요.]
토루아가 마법 술식으로 대지를 움직였다.
쿠과가가가가강-!
거대한 토벽이 솟아 올라 화염을 막아냈다.
‘토루아의 마법은 위력에 변화가 없어.’
리에니아가 마력을 일으켜 마법을 사용했다.
냉기가 손에 휘몰아쳤다.
일반적인 마법 술식으로 펼친 마법은 위력에 변화가 없었다.
리에니아가 별의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평소와는 명백하게 다른 마력의 반응이 일어났다.
“토루아! 별의 마법을 사용해!”
“지금 별의 마법은 평소보다 위력이 강해지고 있어!”
그 말에 토루아도 다급히 마법을 확인했다.
그리고 리에니아의 말 뜻을 이해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루니아와 에이란 역시 변화를 눈치챘다.
“무슨 상황이죠?!”
엘리자가 다급히 묻자 루니아가 말했다.
“몰라. 확실한 건 별의 마법 술식이 레오의 주문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거야.”
그 말과 함께 레오의 마법이 완성 되었다.
번쩍-!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
번쩍-!
하늘을 뒤덮은 별빛의 광채에 에레보스의 눈이 꿈틀거렸다.
에레보스도 경시하기 어려운 위력의 마법이었다.
에레보스가 아는 한 이만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
-루나 루비넌스?
콰가가가가가강-!
빛의 기둥이 그대로 에레보스를 짚어 삼켰다.
거대한 섬광과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광경을 본 아르온의 눈이 크게 뜨였다.
“루나?”
마치 루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르온은 알고 있었다.
지금 시대에 루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루나가 아니라면 별의 마법을 이렇게 구사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카일!’
아르온이 미소 지었다.
‘역시 카일은 대단해.’
멈춰 버린 자신과는 명백하게 달랐다.
환생한 이후에도 카일은 계속해서 자신을 연마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루나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마법이 진보했어. 아직 전성기의 힘을 되찾지 못했지만, 힘을 되찾으면 분명 내가 알고 있는 카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질 거야.’
아르온이 손에 힘을 주었다.
화르르륵-!
그때 먼지를 뚫고 검은 화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심했다는 표정은 뭐냐?
“에레보스.”
쿵-!
에레보스가 아르온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레오의 마법에 직격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레보스는 아직 건재했다.
-과연, 루나 루비넌스가 아니군.
에레보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살아남는 영웅인가.
에레보스의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레오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5000년 동안 잘 잤나?”
-그 꼴이 뭐냐? 살아남는 영웅.
“네가 아직도 살아있으니 널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다시 살아난 거지, 뭐.”
레오가 입매가 휘어졌다.
입가에 명백한 비웃음을 담은 레오를 보며 에레보스가 말했다.
-세계의 종말을 5000년이나 미뤘으면 네놈의 역할을 충분히 한 셈이겠지.
쿠궁-
에레보스가 레오를 비웃었다.
-이 세계를 불태울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나와는 다르다. 필멸자인 네놈이 사라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터. 그런데 네놈은 죽지도 못하고 내 앞에 서 있구나. 크하하하하하하-!
에레보스의 광소가 울려 퍼졌다.
-주어진 운명조차 거스르다니. 정말로 놀랍군. 네놈은 살아남는 영웅이라는 이름에 그 누구보다도 어울리는 존재다, 카일이여.
화악-!
그에 따라 강렬한 검은 화염이 휘몰아쳤다.
멜리나가 다급히 두 사람을 돕기 위해 접근하려 했다.
그런 멜리나를 보며 에레보스가 눈을 부릅떴다.
-어디 감히 하찮은 피조물 따위가 이 자리를 넘보는 것이냐!
“크윽?!”
분노에 찬 에레보스의 일갈과 함께 검은 화염의 벽이 치솟았다.
그 모습을 본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굉장히 차별이 심하시군?”
-살아남는 영웅, 그리고 용자. 너희는 하찮은 피조물 따위와는 다르다.
“뭐가 다르다는 거냐?”
-5000년 전, 이 몸이 세계를 불태울 때. 가증스러운 신들은 이 세계에서 자취를 감추었지. 내 오랜 숙적들은 다시 이 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화르르륵-!
에레보스의 몸이 검은 불꽃으로 타올랐다.
-세계의 멸망은 기정사실이 되었지. 그런 상황에서 그 운명을 거스른게 바로 네놈들이다.
태초부터 존재해 온 순수한 악.
그저 세계를 불태우기 위해 존재해온 멸망의 존재.
신들이 사라지고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세계의 멸망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영웅들은 끝내 에레보스를 쓰러트리고 그 멸망을 막아냈다.
-신들조차 이루지 못한 위업을 이룬 네놈들이다. 나에게 있어 너희들은 신들보다 더 강대한 숙적. 그런 너희를 하찮은 피조물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 감사히 여겨라. 너희는 태초의 악인 나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니.
“거참 빌어먹게 황송해서 욕설이 나올 지경이네.”
레오가 이를 갈았다.
-크흐흐흐. 그래서.
에레보스의 시선이 아르온에게로 향했다.
-신들의 레코드 시스템으로 존속하는 네놈은 굉장히 안도하고 있군. 아르온이여. 죽기 직전에는 그렇게 두려움에 떨었으면서 말이다.
“그런 건 이제 상관없어.”
아르온이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 얼굴에는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직함이 깃들어있었다.
“죽음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아. 세계는 구원받았으니까.”
아르온이 검을 에레보스에게 겨누었다.
“사라지는 것도 두렵지 않아. 카일이 네놈을 쓰러트릴 걸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후후후. 크흐흐흐흐. 크하하하하하하!
에레보스가 광소를 터트렸다.
그걸 본 레오가 인상을 썼다.
“뭐가 그렇게 우습냐?”
-우습지 않을 수 있나! 카일이여! 이 몸은 그대들이 어째서 이 안타까운 자를 용자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에레보스가 아르온을 바라보았다.
-잘 들어라, 겁 많은 용자여. 살아남는 영웅은 혼자다. 네놈도 신의 대장장이도, 성운의 시조도, 어리석은 자도 없다. 오직 이 세계에 혼자 남아 있다!
“아니! 카일에게는 우리의 정신을 이은 후계자가 있어! 혼자가 아니야!”
-그 잘난 후계자란 게 저기 있는 하찮은 피조물들이냐?
에레보스의 시선이 전장에 선 멜리나와 영웅 후보생들에게 향했다.
잠시 후 에레보스는 딱하다는 듯 아르온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너희를 대신할 수 없다, 용자여.
“아니! 저 아이들은 분명…….”
-너희를 대신한다고 하여도 용자여…… 너는 하나의 사실을 간과했구나.
“뭐?”
-살아남는 영웅이 나와 또다시 맞서 싸운다는 건 말이다.
에레보스가 몸을 숙였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너희가 겪었던 그 고통을 다시 한번 되풀이한다는 걸 의미한다.
아르온의 얼굴이 굳었다.
“아르온, 신경 쓰지 마.”
레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미 각오는 됐으니까.”
-네놈은 각오가 됐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겁 많은 용자도 그럴까?
에레보스의 입매가 비틀렸다.
-친우들이 죽는 게 무서워 스스로를 희생하면서도 끝내 죽음을 두려워하고 세상이 구원받는 것을 의심한 유일한 대영웅이여. 내가 본 다른 자들의 최후를 알려주마.
화르륵-!
에레보스의 몸이 불타올랐다.
-멋대로 자신의 이상을 살아남는 영웅에게 떠넘겼지. 이루지 못한 꿈을 떠넘기고! 살아남는 영웅이 해낼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으며 멋대로 만족하고 눈을 감았다! 그래! 그들의 믿음은 옳았다!
레오가 얼굴을 굳히고 마력을 일으켰다.
-결국! 살아남는 영웅은 세상을 구했으니까! 너희 다섯 명의 비원을 이루어주겠다며 죽지도 못하고 끝까지 발버둥 쳤다! 이 몸이 경이로울 정도로! 너희 다섯 명 중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지!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그 고통을 되풀이하려 하고 있지!
레오가 아르온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이상하구나? 용자여. 어째서 죽을 때와 똑같은 표정을 짓는 것이냐?
울 것 같은 얼굴로 일그러진 아르온의 얼굴을 보고 에레보스의 얼굴이 희열로 물들었다.
“이 자식이……!”
레오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실로 즐겁구나, 숙적을 무너트리는 건.
큭큭- 웃던 에레보스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잡담은 여기까지다.
에레보스의 몸에서 흉흉한 살기가 쏟아졌다.
-이제 네놈들을 불태워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