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
“대체 안에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거야?”
리에니아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눈앞에 치솟은 검은 화염의 벽 때문에 너머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걸 본 토루아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우웅-!
토루아의 마법에 의해 거대한 빛의 송곳이 생성되었다.
콰아아악-!
토루아가 벽을 향해 마법을 날려 보냈다.
화악-!
하지만 검은 화염은 토루아의 마력을 집어삼켰다.
그걸 본 토루아의 눈이 꿈틀거렸다.
“제가 해 볼게요.”
루니아가 주문을 외웠다.
화르르륵-!
그녀의 전신에 백색의 화염이 피어올랐다.
콰아아아-!
루니아의 몸을 휘감은 백염이 더더욱 화력을 더해갔다.
“루니아 양?!”
에이란이 다급히 루니아를 불렀다.
화륵-!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카락이 순백색으로 변한 루니아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불태워 부정한 것들을 말살하는 염제의 불꽃.
마지막 피닉스 킹, 카타리우가 루니아에게 준 불꽃은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불꽃이었다.
불꽃에 화상을 입으며 루니아가 마법을 완성시켰다.
“염제!”
화악-!
백색의 태양이라도 나타난 듯.
하늘 위로 뻗은 루니아의 손바닥 위에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나타났다.
루니아가 그 화염의 구체를 검은 불꽃의 벽을 향해 던졌다.
파지지지직!
검은 화염과 하얀 화염이 서로 뒤섞였다.
하지만 이내 엄청난 반발이 일어나 서로를 밀어냈다.
상극의 힘이 만난 듯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
화악-!
하지만 이내 검은 불꽃이 루니아의 불꽃을 집어삼켰다.
콰가가가가가가강-!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폭발이 일어났다.
“크윽?!”
엄청난 섬광과 폭발의 후폭풍에 모든 이들이 눈가를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쿠오오오오옹-!
폭발음이 잔향이 되어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불꽃의 벽은 건재했다.
“젠장!”
원래의 붉은 머리카락으로 돌아온 루니아가 주먹을 움켜쥐며 거칠게 소리쳤다.
너무 강하게 쥔 나머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흘러나왔다.
화상으로 인해 온몸에서 화끈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루니아는 분하다는 듯 화염의 벽을 바라보았다.
‘뭐가 차기 학생회장이야! 뭐가 루나님의 후계자라는 거야!’
최근 루니아는 들떠 있었다.
대대로 피닉스와 계약한 룬드아 가문의 일원으로 오래전 사라졌던 피닉스 킹의 힘을 계승했다.
거기에 더해 혜성의 마법사에 이은 성운의 시조, 루나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더더욱 드래곤 로드 멜리나에게도 인정을 받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멀어.’
레오와의 거리는 여전히 까마득했다.
‘아니, 그런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어!’
아무리 자신이 강해졌다고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레오의 뒤를 쫓기 위해 달려왔다.
루니아를 분노케 하는 건 레오와 자신과의 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무능해!’
레오의 목표가 무엇인지 안다.
다름 아닌 에레보스의 토벌.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목표.
하지만 주변에서 한껏 떠받들어진 나머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앞으로의 싸움에서 자신은 분명 레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실제로 루니아는 지금 동안 세 번이나 에레보스와의 전투를 경험했다.
첫 번째는 루나의 세계에서.
두 번째는 드웨노의 세계에서.
세 번째는 세이룬에서.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에 정화의 불꽃을 손에 넣음으로 에레보스에 맞서 싸울 힘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어…!’
자신이 상대한 건 에레보스의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꽉 쥔 주먹을 파르르 떠는 루니아를 보며 에이란이 다급히 그녀의 손을 쥐었다.
“루니아 양, 몸을 돌보세요! 그러다 몸이 망가져요…!”
“지금 내 몸을 신경 쓸 때가…!”
“에이란 양의 말을 들어요, 루니아 양.”
루니아 앞으로 멜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리하게 힘을 사용해서 몸이 망가진다면 도움이 될 수 없어요. 아니, 오히려 짐이 되겠죠.”
멜리나의 말에 루니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루니아를 보며 멜리나가 쓰게 웃었다.
“지금 여러분에게 큰 걸 바라지는 않아요. 그저 아르온님이 싸우는데 조금의 힘만 보태주시면 돼요. 그건 졸업생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아직 이 전장에 설 자격이 없다는 건가요?”
토루아의 물음에 멜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래요. 제가 여러분을 아르온님께 추천한 것도 조금의 지원만을 바랐을 뿐이에요.”
멜리나의 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멜리나가 말했다.
“기죽지 말아요. 오히려 여러분께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니까요.”
“네?”
“여러분은 아직 어려요.”
멜리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졸업을 했다고 해도. 최고의 학생이라고 해도. 여러분은 아직 미숙할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은 영웅이 아니라 영웅 후보생이니까요.”
멜리나가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이라도 승리의 확률을 올려 보겠다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여러분을 전장에 세운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에요.”
멜리나가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니 여러분의 탓이 아니에요. 오히려 아주 잘해주었어요. 이제부터는 어른인 나에게 맡겨요.”
멜리나가 양손을 모았다.
멜리나의 몸에서 은색의 마력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영웅 후보생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머리카락이 넘실거린다.
이내 은빛의 마력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멜리나가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니힐.”
화악-!
일순간 검은 불꽃의 벽이 자취를 감추었다.
“굉장해.”
토루아가 입을 벌렸다.
리시나스의 마법.
지금 이 세계에서 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명.
시작의 영웅인 레오가 첫 번째였고 그녀의 마력을 계승한 멜리나가 두 번째였다.
검은 화염의 불꽃이 사라졌다.
레오와 아르온을 대치하고 있던 에레보스의 시선이 멜리나에게 향했다.
-그저 하찮기만 한 피조물이 아니었군. 레코드 시스템으로 어리석은 자의 힘을 계승한 것인가?
쿠궁-!
에레보스의 시선이 멜리나를 비롯한 영웅 후보생.
그리고 저 멀리 성에서 자신의 피조물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는 다른 후보생들에게로 향했다.
-과연, 5000년 동안 어리석은 자가 남긴 감언이설에 넘어가 쓸데없는 희망을 품은 것들이 많아진 모양이군.
“리시나스님께서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에레보스.”
멜리나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서릿발 같은 모습이었다.
“리시나스님은 세상을 구원으로 이끈 위대한 지혜의 왕이시다.”
-쓸데없는 거창한 칭호일 뿐이다. 지혜의 왕도 시작의 영웅도.
에레보스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은 그저 어리석은 자와 살아남은 영웅이면 충분하다.
고오오오오오-!
에레보스의 손에 무시무시한 화염이 일렁였다.
지금까지의 공격은 모두 장난이었다는 듯.
상상을 초월하는 파멸의 힘이 담긴 불꽃의 덩어리가 넘실거렸다.
-용자여, 저 하찮은 피조물들이 네가 말하는 희망이라면 그 희망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상기시켜주마.
콰아아아아악-!
에레보스가 불덩어리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그와 함께 지진이 일어났다.
지상이 거세게 흔들렸다.
쩌적- 쩌저저적-!
바닥이 갈라졌다.
쿠화아아악-!
크오오오오오오!
갈라진 바닥에서 끝없이 마수들이 튀어나왔다.
눈에는 살육의 의지만 남은 이형의 마수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성을 향해 돌격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끝없이 출몰하는 마수들의 진군을 본 울타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뭐지?”
“거의 군단급이잖아!”
리에니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현재 마수들의 진격은 작년 세이룬에서 보았던 마물 여왕의 군단과 비슷한 규모의 진격이었다.
“군단급의 병력을 창조한 모양이군요.”
멜리나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 상식을 초월하는 광경에 영웅 후보생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모습을 드러낸 마물의 규모만 해도 실라투나의 군단과 맞먹는 수준이다.
물론 실라투나의 군단에는 고위 마족이 다수 배치된 만큼 질적인 면에서는 앞서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즉석에서 군단장이 이끄는 군단급의 병력을 만들어내는 건 전율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마수의 숫자는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 광경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멜리나가 레오를 보았다.
눈이 마주친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멜리나가 말했다.
“여러분, 성으로 돌아가 마수의 진격을 막을 준비를 하세요.”
“네!”
“그러면 에레보스는…?!”
“아르온님과 레오 플로브에게 맡겨 봅시다.”
영웅 후보생들의 물음에 멜리나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영웅 후보생들이 돌아가려고 하자 에레보스가 비웃음을 날렸다.
-자격도 없는 하찮은 피조물들이여, 그 대가를 치루어라!
콰아아아악-!
에레보스가 팔을 휘두르자 허공이 갈라졌다.
그와 함께 그곳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검은 손이 뻗어 나와 후보생들을 덮쳤다.
그걸 본 멜리나가 손을 휘둘렀다.
번쩍-!
은색의 마법진에서 생성된 빛이 에레보스가 소환한 검은 손들을 날려 보냈다.
하지만 에레보스의 공격을 다 막아내지는 못했다.
공격을 피해 살아남은 검은 손들이 집요하게 후보생들을 노렸다.
울타는 페가수스의 힘을 이용해 그 손들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토루아는 마법으로 날려버렸고 루니아와 엘리자의 경우에는 에이란이 아니무스의 검으로 에레보스의 공격을 떨쳐냈다.
그걸 본 에레보스의 눈이 꿈틀거렸다.
“쟤들을 너무 무시하지마.”
레오가 에레보스를 향해 비웃었다.
“네놈을 친히 여섯 조각 내준 내가 선택한 아이들이다.”
화악-!
레오가 에레보스와의 거리를 벌렸다.
“조잡한 네 공격 따위가 통할 것 같아?”
-감히 이 몸의 힘을 조잡하다고 하는 것이냐?
“그래. 잠깐의 싸움을 통해 너에 대해 제법 많은 걸 알아냈거든.”
레오의 붉은색 눈이 빛났다.
“첫 번째. 넌 부활은 했지만 온전한 상태는 아니야. 심지어 첫 번째 부활한 조각과도 단절이 되어 있어. 첫 번째 조각의 기억을 전혀 알지 못 하고 있어.”
이것은 크다.
에레보스가 봉인되고 5000년.
그리고 첫 번째 조각이 봉인되고 3000년이다.
이 세월 동안 세계는 계속해서 에레보스에 대항할만한 힘을 길러왔다.
그건 단순히 오러와 마법, 소환술의 발전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세계가 품고 있는 저력에 대해 에레보스는 무지했다.
“애초에 3000년 전 기억이 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덤비지도 않았겠지.”
레오가 에레보스를 비웃었다.
“두 번째. 네놈은 마족이나 마물을 창조하는 권능에 특화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거야.”
조금 전 군단을 만들어내는 걸 보고 확신했다.
그 권능만큼은 온전한 상태의 에레보스와 큰 차이가 없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다른 조각에 비해 전투력이떨어진다는 소리지.”
물론 다른 조각에 비해 약할 뿐이지.
태초의 악의 한 조각으로서 가진 전투력은 가공할만한 수준이다.
‘아르온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야.’
그렇기에 이 조각은 지금 이 자리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토벌해야 했다.
눈앞의 조각이 타르타로스의 지배권을 손에 넣는 순간.
강력한 군단장들이 창조될 것이다.
“세 번째. 네놈의 힘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야.”
불꽃은 타오를수록 강해진다.
그리고 눈앞의 에레보스는 막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
그런 만큼 화력이 약하다.
에레보스에게 있어 이 세계는 곧 장작과도 같다.
세계를 태울수록 에레보스의 힘 역시 강해진다.
‘3000년 전 부활한 조각은 오랫동안 타올랐어.’
그리고 지금까지도 타오르고 있다.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레오를 보며 에레보스가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네놈들을 끝장내는 데는 충분하다.
“그럴까?”
-그렇다, 네놈이 레코드 시스템으로 불러낸 동료가 다른 자였다면 네놈에게 또다시 토벌당했겠지. 하지만 용자인 이상. 네놈은 죽을 것이다.
“헛소리.”
레오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너는 용자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나. 안 그런가 용자여?
“웃기지 마! 카일은 죽지 않아. 넌… 무조건 내가 쓰러트릴 테니까!”
-그래, 어디 한 번 발버둥 쳐봐라!
고오오오오-!
에레보스의 몸에서 검은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아르온은 자신을 덮치는 화염을 보며 이를 악물고 초감각을 발동시켰다.
그 순간.
콰가가가강-!
에레보스의 검은 불꽃이 아르온을 덮쳤다.
검은 화염 속에서 아르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초감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