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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458화 (458/483)

458.

플로브 가문의 저택에 손님이 찾아온 건 에레보스의 조각이 소멸하고 열흘이 지난 저녁이었다.

“다들 맛있게 먹으렴, 오늘은 내가 힘 좀 써봤단다.”

레이나는 빙그레 웃으며 아들의 친구들에게 살갑게 저녁을 대접해주었다.

“와! 감사해요!”

“너무 맛있을 것 같아요!”

첼시와 에이란이 눈앞에 차려진 만찬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고모님께서는 요리 솜씨가 훌륭하시네요.”

셀리아가 감탄했다.

그런 셀리아의 감탄에 레이나가 입을 막고 호호호!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칼이 중얼거렸다.

“그러게. 여기 있는 대부분은 절망적인 수준인데.”

여학생들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칼은 냉큼 레오의 뒤로 숨었다.

“어머니가 한 건 스프 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쉐프가 했잖아요.”

“스프를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데.”

레이나는 뻔뻔하게 말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펼쳐졌다.

수련회가 마무리되었음에도 플로브 가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는 학생은 상당히 많았다.

그 떠들썩한 분위기가 좋은지 레이나도 아들의 친구들에게 굉장히 친절하게 대했다.

“그럼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해볼까?”

첼시 옆에 앉은 아바드가 식사를 잠시 중단하고 물로 목을 축인 후 말을 이었다.

“에레보스의 조각의 토벌 이후 세계 정세에 관해서.”

아바드가 운을 떼자 일리아나가 포크로 샐러드를 콕 집으며 말했다.

“타르타로스의 세력은 쪼그라들고 우리 세력은 승승장구하지 않겠어?”

“확실히 지금 전 세계가 지금 축제 분위기이긴 하지.”

테이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일리아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 말에 셀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넌 어떻게 생각해?”

“타르타로스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지도 몰라.”

셀리아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타르타로스 입장에서는 3000년 전처럼 에레보스 조각이 다시 토발 당한 거야. 그들 입장에서는 재앙적인 타격을 입은 셈이라고.”

“과연, 수세에 몰린 만큼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거지?”

클로에가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화를 들으며 레오는 생각에 잠겼다.

‘헬 카이저가 에레보스의 조각 하나가 소멸했다고 무턱대고 덤비진 않겠지.’

셀리아의 말처럼 타르타로스 입장에서는 재앙적인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헬 카이저의 성격상 마물 여왕이 토벌되고 거인왕이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

힘의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돌발행동을 할 확률은 높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겠지만.’

레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됐든 놈은 움직인다.’

한편 레이나는 학생들의 토론을 들으며 빙긋 웃었다.

‘훌륭하네. 모두가 축제 분위기일 때 앞으로 세계정세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토론도 나누고.’

과연 영웅 후보생들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 네 생각은 어때?”

대화에 참여하던 루니아가 레오의 의견을 구하듯 물었다.

“나는…….”

레오가 입을 열려는 순간.

식당 문이 열리고 시녀가 다가와 레이나에게 작게 말했다.

그 말에 레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식당 바깥에서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식사를 하던 학생들이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뜰 때.

문이 열리고 몇몇 사람이 들어왔다.

셀리아와 첼시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지스 삼촌?”

“로제스님, 여긴 어떻게.”

지스 제르딩거와 로제스 르왈린이 플로브 가문을 방문했다.

두 사람의 반응에 다른 학생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스 제르딩거와 로제스 르왈린.

두 사람 모두 루메른 졸업생 출신이다.

거기에 더해 로드렌 제국에서도 명성 높은 실력자들이다.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영웅과 동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로드렌 제국 내에서의 지위와 위상은 영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거물들이 갑자기 등장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큰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시련을 이겨내다니. 훌륭하구나.”

지스는 조카인 레오와 셀리아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폐하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왔단다.”

“황제 폐하요?”

셀리아와 첼시, 아바드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륙 서부 권력의 최정점.

로드렌의 황제의 친서라니?

“로제스 경.”

지스의 말에 로제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레오 앞으로 다가갔다.

“제르딩거 가문의 레오 플로브는 황제의 서신을 받으시오.”

그 말에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로제스 앞에 섰다.

진중한 표정을 지은 로제스가 아공간에서 편지가 담긴 고급스러운 상자를 꺼내려 할 때였다.

또다시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칼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문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헉?!”

그리고 깜짝 놀란 비명을 내질렀다.

“왜 그래?”

클로에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칼이 말했다.

“거실에 온갖 종족이 다 있어!”

“뭐?”

“그런데 다 거물이야!”

칼의 말대로였다.

식당 바깥에는 세계 신문에 얼굴을 올리는 거물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가네.”

팔짱을 낀 레이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루메른 졸업생 출신으로 레이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무슨 상황인가요, 고모님.”

“지금 우리 가문을 방문하는 자들은 모두 영웅 길드에 소속된 이들이야.”

“네? 영웅 길드에서 왜 플로브 가문에?”

“레오를 영입하기 위해서겠지.”

그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영웅 길드 녀석들. 대체 속셈이 뭐야?”

루메른의 교장실에서 리이나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영웅 길드.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영웅들을 필두로 영웅의 길을 걷는 이들이 소속되는 집단이다.

세계에는 많은 영웅 길드가 존재한다.

그리고 소속된 세력도 가지각색이다.

국가에서 영웅들을 지원하기 위해 길드를 창설 주도하기도 하며 혹은 영웅 명가들이 연합하여 길드를 만들기도 한다.

혹은 영웅 사관 학교 졸업생들에 의해 설립되기도 한다.

특히나 영웅 사관 학교의 영웅 길드들은 유서가 깊다.

영웅 사관 학교에 소속된 영웅 길드의 경우에는 창립자들이 모두 개벽의 영웅들에게 배움을 시사 받은 자들.

3000년의 역사와 개벽의 영웅들과 연관이 깊다는 점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입단을 희망하는 자들도 많다.

하지만 그만큼 입단 자체도 어렵다.

“이 학교 출신이니 만큼 모두 교칙을 잘 알 텐데?”

“길드 연합에서 이사회에 건의했다고 하는군. 실제로 현재 움직임을 보인 영웅 길드가 다수 있는 상황이다.”

할린드가 리이나에게 전해온 소식은 다름 아닌 영웅 길드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단 제의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영웅 길드의 길드원은 타르타로스와의 전투에서 최전방에 파견된다.

영웅 길드의 활동은 위험이 지나치게 크다.

그렇기에 학생의 영웅 길드 입단은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영웅 길드에서 해당 교칙을 풀어줄 것을 건의했단다.

리이나는 영웅 길드들이 이런 움직임을 보인 이유를 꿰뚫어 보았다.

“레오 플로브를 포섭하기 위해서인가?”

영웅 길드에서 루메른의 학칙까지 변경을 건의한 이유는 레오의 영입을 위해서였다.

시작의 영웅 카일과 같은 올 클래스.

거기에 루메른 역사상 전대미문의 최연소 학생회장.

거기까지만 해도 어떤 영웅 길드에서는 충분히 탐을 낼 만한 인재다.

‘하지만 레오 플로브의 가치는 그걸 뛰어넘었지.’

리이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 16세의 소년.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을 나이.

그런데도 이미 루메른 최강을 넘어 영웅에 비견되는 힘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에레보스 조각의 부활에서 레오는 용자 아르온과 드래곤 로드와 함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활한 용자와 침묵을 깬 ‘침묵의 용’의 활약에 주목했지만, 영웅 길드는 아직 학생 신분에 불과한 레오에게 주목했다.

“영웅에 비견되는 힘 정도가 아니라 어지간한 영웅을 넘어서는 힘을 지닌 녀석이란 걸 증명해 버렸으니까. 네 제자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뭐야?”

“제자라고 부르기도 그렇군. 나는 녀석에게 가르친 게 많이 없으니까.”

오랜 시간 루메른의 교사로서 많은 학생들을 담당한 할린드였지만, 레오만큼 가르칠 게 없는 학생도 처음이었다.

“실력, 성격, 성향, 목표. 녀석은 말 그대로 영웅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

할린드의 말에 리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 길드에서 탐을 내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그래도 정도란 게 있지.”

서류를 내려다보며 리이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영웅 길드들의 목적은 레오의 영입.

거기에 더해 미래가 유망하다고 평가받는 황금 세대를 길드 산하로 영입하는 것이다.

“세계에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걸 기회로 생각하고 있는 꼴들이라니.”

리이나가 타르타로스의 움직임을 크게 경계하듯.

영웅 길드들 역시 타르타로스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기회로 여기는 자들도 존재 한다.

“보통 대중들은 영웅은 고결한 존재들이라고 떠들지.”

리이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영웅은 시련을 넘어서야 만이 될 수 있는 위대한 존재.

그리고 신들의 인정을 받는 만큼 고결해 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다.

실제로 고결한 영웅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신들은 위업을 이룩한 자의 인성과 사상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저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위업을 이룬 것만으로도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영웅 중에 괴팍한 성격을 가진 자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

할린드의 말에 리이나가 혀를 찼다.

“괴팍하기만 하면 다행이지. 스스로의 정의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는 미친놈들도 존재하니까 문제잖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영웅은 고결하고 위대한 존재가 아니다.

그중에는 자신의 정의를 위해 잔혹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들도 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자들 역시.

그리고 각자의 야망을 가진 영웅들도 수없이 많다.

영웅은 세계를 이끄는 존재.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라는 사실에 도취한 자들도 얼마든지 있다.

리이나가 턱을 괴었다.

‘5000년 동안 타르타로스가 토벌되지 않은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

재앙의 시대가 종식된 후.

타르타로스의 세력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영웅의 시대가 시작되고 영웅들의 힘은 급격히 강해졌다.

물론 타르타로스에는 재앙적인 3대 군단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울어가는 타르타로스의 군세를 재앙의 시대만큼 올리기란 힘든 일이었다.

오히려 힘이 줄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하지만 지난 5000년간 수없이 많은 대규모 전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르타로스의 힘은 더욱 강성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서로가 원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지.’

수많은 영웅들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이상과 정의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목표가 같을지 몰라도 과정은 순탄치가 않다.

세계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협력 이상으로 견제를 많이 해왔다.

그와 대조되게 타르타로스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움직여 왔다.

그것이 지금의 세계정세가 구축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레오 플로브와 우수한 영웅 후보생들을 원하는 건 각자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그 정의가 꼭 옳다고도 할 수 없지.’

“정말로 이제 레오 플로브는 단순히 학생이 아니게 되었군.”

리이나가 한숨을 쉬었다.

“시대의 중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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