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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462화 (462/483)

462

2학기 개학식이 끝나고.

학과 일정을 마무리한 학생들이 기숙사 건물로 들어왔다.

“컴 백 홈!”

제일 먼저 글로리 기숙사로 들어온 일리아나가 휴게실 소파로 다이빙하듯 달려들어 누웠다.

“휴게실 소파가 그리웠다니까~”

자기집 안방인 마냥 소파 위에 뒹굴뒹굴하는 일리아나.

그 외에 다른 학생들이 익숙하다는 듯 휴게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야, 너희 수련회는 어땠냐?”

“직접 용자를 만나 보니 어때? 위압감이 있으셔?”

“부럽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수련회에 참가했던 학생들 주변으로 학생들이 우르르 모였다.

개학식 일정 덕분에 시원하게 묻지 못했던 수련회의 일에 관해 묻기 위해서였다.

그중에서 동급생들이 궁금해 하는 건 역시나 아르온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에게 모여드는 기숙사 친구들을 보며 일리아나가 소파에서 똑바로 앉더니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위엄 있게 말했다.

“궁금하다면 이 몸에게 쿠키와 홍차를 바쳐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리아나 주변에 모여들었던 동급생들이 매몰차게 그녀에게서 몸을 돌려 첸 시아와 클로에게 다가갔다.

“이야기를 나누려면 군것질이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클로에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자 오오오-! 환호성을 내지르며 매점으로 향했다.

“왜 클로에가 말하면 다 준비하는 건데!”

“넌 너 혼자 먹을 것만 준비해오라고 한 거잖아.”

“맞아, 돼지도 아니고.”

“내가 어딜 봐서 돼지야! 그리고 숙녀에게 그게 무슨 폭언이야?!”

일리아나가 야유하는 남학생들을 향해 손에 잡힌 쿠션을 마구 휘둘렀다.

“다들 시끌벅적하네.”

기숙사 휴게실로 들어온 레오가 웃으며 말했다.

“레오, 이제부터 수련회 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할 생각이야. 이리 와.”

클로에가 웃으며 자신의 소파 곁은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러자 소란스럽던 휴게실 분위기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클로에와 일리아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오늘 일찍 올라가서 쉬려고.”

“굉장히 일찍 주무시네요.”

곁에 서 있던 첸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레오가 말했다.

“개학식이라 정신없어서 조금 피곤하네.”

“하긴, 학생회장이시니만큼 일정 때문에 피로하시겠네요. 혹시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방으로 가져다드릴까요?”

“괜찮아.”

레오가 방으로 올라가자 조금 미묘하던 분위기가 살짝 풀렸다.

휴게실로 들어온 첸 시아가 한쪽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자 클로에가 의아한 듯 물었다.

“다들 왜 그래?”

“뭐가?”

“레오를 다들 어색해하는 분위기잖아.”

의아한 얼굴로 묻는 클로에를 보며 글로리 학생들이 머리를 긁적였다.

“너희야 수련회 때도 그렇고 여름 방학 내내 레오의 집에 있어서 체감을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글로리 남학생 한 명이 볼을 긁적였다.

“지금 완전히 난리 났어.”

그 말에 클로에와 일리아나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에야 또다시 재림한 태초의 악과 그것을 물리친 아르온님의 이야기만이 관심사였겠죠.”

첸 시아가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세계 유수의 영웅 길드들이 레오 도령을 탐내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서서히 집중된 건가.”

그 말대로였다.

세계를 구한 대영웅이 다시 쓴 영웅담에만 눈이 팔려있던 대중이 레오라는 존재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이후에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까지 올리며 레오 도령에게 무수히 많은 대중이 열광하기 시작한 거죠.”

세계는 언제나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바란다.

그것이 전설과 신화 속의 영웅들에 필적하는 영웅담을 쌓는 영웅이라면 더더욱.

이전까지 레오의 신분은 아직 영웅 후보생이었다.

이 세계는 신의 인정을 받아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는 자만이 진정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세계다.

그런 만큼 아무리 대영웅의 세계를 공략하고 위업을 이루었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비친 레오는 미래가 촉망받는 영웅 후보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히어로 레코드에 등재되었다.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전까지는 동급생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레오는 우리가 평생을 다 바쳐 목표하는 경지에 이미 올라갔잖아.”

남학생이 머리를 긁적였다.

“뭐랄까, 이전에도 대단한 놈이란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범접하기 힘들다는 느낌?”

다른 여학생도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레오 도령은 이제 학생들이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지.’

2학년 기사학과 탑인 자신조차도 감히 레오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다.

그런 만큼 다른 학생들은 감히 우러러도 보기 힘든 높이로 느껴질 것이다.

“확실히 레오의 학교생활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지겠네.”

클로에가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레오를 원하는 이들은 더더욱 노골적으로 움직일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일리아나가 살짝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때까지 간만 보던 애들도 더욱 노골적으로 움직일 거야.”

일리아나의 중얼거림에 첸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리아나 양은 그게 싫나요?”

“응. 그러네. 내일부터 첸 시아 주변에는 다가가면 안 되겠다.”

영문 모를 소리에 첸 시아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말이야.”

고민하던 클로에가 푸른 눈을 깜빡이더니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레오의 이명은 대체 뭐야?”

***

방으로 들어온 레오를 반긴 것은 두 여성이었다.

다름 아닌 멜과 그녀가 후계자로 지목한 엔키니아스였다.

“멜은 그렇다 치고, 엔은 왜 여기 있는 거야?”

“앞으로 이곳에 머물며 레오님을 보좌하라는 로드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말에 레오가 멜을 바라보았다.

“엔은 유능한 아이니까 분명 레오님께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저를 레오님의 개인 비서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그 말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비서로서 어떤 걸 해줄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대리 청강. 대리 과제, 대리 숙제 등등…….”

“전부 교칙 위반을 하는 것뿐이군.”

“학생들이 가장 싫어할 것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교수가 눈앞에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잘도 하는군.”

“로드께서는 안 걸리면 죄가 아니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잘도 가르쳤군.”

“감사해요.”

“칭찬한 거 아니거든?”

쑥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멜을 보며 레오가 혀를 찼다.

‘어떻게 꼭 교묘하게 남 속이는 건 이렇게 잘 따라하지? 혹시 드래곤들 종특 인가?’

지혜의 왕이자 희망의 불빛으로 불렸던 리시나스.

공명정대했던 리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온갖 속임수와 사기의 달인이었다.

‘뭐, 진실로 만든 속임수와 사기도 많지만. 뭐가 됐든 참 나쁜 건 잘 따라 하네.’

작게 한숨을 쉬며 레오가 엔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 녀석은 유능하지.’

일전의 에레보스 조각의 전투에서도 크게 활약했다.

‘멜이 후계자로 선택한 만큼 유능할 수밖에 없겠지만. 결정적으로 이 애의 고유 마법은 큰 도움이 될 거야.’

엔의 고유 마법 미러.

타인의 모습을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있는 마법이었다.

“뭐, 도와준다면 말릴 이유는 없지. 앞으로 잘 부탁해.”

그 말에 엔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나저나 멜. 내 이름이 쓰인 히어로 레코드는 확인했어?”

레오는 아직 자신의 이름이 쓰인 히어로 레코드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네.”

“정확하게 뭐라고 쓰여 있었지?”

“레오님의 성함만 쓰여 있었어요.”

그 말에 레오가 생각에 잠겼다.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이 쓰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레오는 놀랐다.

한편으로는 혹시나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럴 걱정은 없는 모양이었다.

“왜 이름만 쓰여 있는 거지? 혹시 역사에서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만 올린 영웅이 있나?”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어요. 역사상 레오님이 최초세요.”

멜의 대답에 레오가 고민에 잠겼다.

‘나는 이미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이 쓰여 있어.’

히어로 레코드에 최초 기록된 영웅.

‘게다가 나는 히어로 레코드의 주인이기도 해.’

그런 상황에서 이명도 위업도 없이 이름만 덩그러니 쓰여졌을 뿐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쓰여 있다고 했었지.’

“레오님,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요.”

“말해 봐.”

“레오님께서 원했기에 이름이 쓰인 게 아닐까요?”

멜 역시 레오가 히어로 레코드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다가 레오는 몇 번이고 히어로 레코드를 고쳐 쓴 적이 있다.

그림자의 서는 물론이고 과거, 재앙의 시대에 활약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했다.

불타 사라졌던 혜성의 마법사 세이룬의 기록 역시 되살린 적 있다.

그것들은 신의 기록이 아니다.

히어로 레코드의 주인인 레오 플로브가 쓴 기록이다.

“흠. 확실히 그럴듯한 이야기네.”

레오가 턱을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무명의 영웅이라, 나쁘지 않네.”

“화려한 이명들이 있는데 그게 탐나지는 않으세요?”

“딱히.”

“확실히 레오님이세요. 다들 히어로 레코드가 내려주는 이명을 탐나 하는데 말이죠.”

“나한테는 이미 시작의 영웅이라는 번듯한 이명이 있잖아. 새삼 애들처럼 신들이 내리는 이름을 탐내는 것도 웃기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엔이 입을 열었다.

“애초에 레오님의 성함 앞에 그 어떠한 미사여구도 무의미하다고 생각됩니다.”

옆에 있던 엔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레오님은 존재 그 자체로 존귀하신 분이니까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들 중 가장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엔이 뭘 좀 아네요!”

멜이 환하게 웃었다.

엔은 이미 레오의 정체를 멜에게 들어 알고 있다.

“호오.”

엔의 말을 듣고 감탄하던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러면 나랑 리시나스 녀석 중 누가 더 위대하냐?”

“그거야 당연히 지혜의 왕이시죠.”

딱-!

“절 왜 때리세요?”

꿀밤을 얻어맞은 멜이 머리를 부여잡고 울상을 지었다.

“후계자 교육을 잘못시켜서. 방금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게 나라고 말하더니 말을 바꿨잖아.”

“그건 리시나스님은 오래전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엔은 조금의 흔들림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엔을 바라보며 혀를 차던 레오가 멜에게 물었다.

“넌 내가 위대한 것 같냐, 리시나스 녀석이 위대한 것 같냐.”

“그거야 당연히 리시나스님이시죠.”

맞을 걸 알면서 꿋꿋하게 의지를 관철하는 멜의 머리를 레오가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히어로 레코드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 후.

레오가 입을 열었다.

“멜.”

“예, 레오님.”

“로드의 권한으로 세계에 드래곤들을 파견시켜.”

“혹시 모를 타르타로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인가요?”

멜의 물음에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마 너희가 생각하는 타르타로스의 대대적인 침공 따위는 없을 거야.”

“예?”

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령왕은 더 음험한 녀석이야.”

레오가 혀를 찼다.

“5000년 전.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타르타로스의 힘이 강력하던 시절에도 마족들은 세계의 마지막 보루 가드스론을 넘지 못했다. 이쪽은 지금보다 더 사람도 부족하고 물자도 부족했는데 말이야.”

“그거야 그때는 레오님과 리시나스님…… 그리고 대영웅님들이 건재하던 시절이었잖아요.”

“우리라고 처음부터 세계의 판도를 뒤엎을 정도로 강했던 건 아니야.”

수없이 많은 전장을 넘어서고 앞으로 나아가며 강해졌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세계를 구할 수 없었어. 포기하지 않고 세계를 위해 모든 걸 걸었던 건 우리뿐만이 아니야.”

레오는 전장에 함께 섰던 동료들을 떠올렸다.

“사령왕은 알고 있어. 영웅의 저력을. 그렇게 현재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놈은 절대로 전면전을 선택하지 않아. 그렇다고 가만있지도 않을 거야. 에레보스의 조각 하나가 토벌된 지금. 가장 타격을 받은 건 녀석이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세계의 어둠속으로 파고들겠지. 권모술수는 녀석의 특기니까.”

타르타로스가 수없이 강성했던 종족들의 땅을 갈취했던 건 다름 아닌 사령왕의 공적이다.

그 갈취한 땅을 사령왕은 에레보스에게 장작으로 바쳤다.

“에레보스의 봉인으로 권능의 힘이 약해진 지금도 녀석의 권능은 위협적이야.”

죽은 자를 지배하는 사령왕의 권능.

“지난 5000년 동안 권능을 어떻게 발전시켰을지 알 수 없어. 게다가.”

레오가 혀를 찼다.

“에레보스의 조각이 하나 더 부활했다는 건. 다른 조각이 언제 부활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소리야.”

첫 번째 조각이 부활하는 데 2000년이 걸렸고 또다시 3000년이 지나 조각이 부활했다.

다음 조각의 부활은 수천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지. 만약에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이번처럼 타르타로스보다 먼저 놈을 토벌해야 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레오가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녀석들의 페이지를 찾아야겠어.”

레오가 말하는 페이지가 무엇인지 멜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찾고 있겠지. 하지만 더욱 거기에 공을 들였으면 해. 되도록 종장의 페이지로.”

“타르타로스에서 알게 되면 더더욱 노골적으로 움직일 텐데요?”

“그러면 오히려 환영이지.”

레오가 주먹을 쥐었다.

“놈들도 대대적으로 움직이면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어. 놈들이 들쑤시는 곳에 우리도 전력을 집중시키는 거야. 그것만큼은 녀석들도 총력전으로 나올 거야.”

5000년 전 사라졌던 대영웅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타르타로스 입장에서 완전한 재앙이다.

“내 정체도 알려지고 이쪽의 패도 드러난 이상 더 이상 눈치 볼 필요 없겠지.”

레오가 붉은 눈을 번뜩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사령왕 사냥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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