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
“레오와 의뢰 임무를 나가는 건 거의 1년만 이네요!”
릴이 기쁜 듯 소리쳤다.
작년 루메른에서 초빙한 어둠의 대정령인 심연의 정령, 이그니트를 만나러 가는 임무를 맡았던 당시 레오는 릴의 요청으로 파티를 맺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미스터리와 관련된 임무라니! 설마 레오도 저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지은 릴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어떤가요, 레오. 우리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을래요? 학생회장이 동아리 활동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동아리 가입서를 건네는 릴을 보며 레오가 물었다.
“우리 학교에 미스터리 동아리가 있었어요?”
“네! 세상의 괴담이나 미스터리한 일들을 조사하는 동아리죠! 영웅의 세계와 관련된 불가사의들도 많이 연구하고 있어요!”
“정식 동아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부원이 두 명밖에 없어서 그렇습니다!”
릴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에 레오가 말했다.
“미스터리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요. 그냥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낀 의뢰라서요.”
“그렇군요.”
그 말에 릴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하지만 이내 기운을 되찾았다.
“그나저나 여름 방학 당시 레오의 활약상은 잘 들었습니다. 아아, 그 나이에 영웅의 자리에 오르다니! 선배로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후배의 출세를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릴을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릴 선배도 활약상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요.”
3학년 학년 대표 릴 루체.
뛰어난 정령사로 선배들에게 괴수녀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였다.
2학년 때도 굉장한 정령술 실력을 가졌던 그녀는 3학년이 되면서 각성이라도 한 듯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레오의 말에 릴이 손을 저었다.
“레오에 비한다면 정말 부족하죠. 하물며 소환학과 후배인 워레든도 저보다 대단한데요.”
“워레든이요?”
“네. 땅의 대정령과 계약을 맺었잖아요? 아아, 뛰어난 후배들 때문에 선배는 너무 주눅이 드네요.”
현재 루메른 소환학과 학생 중 대외적인 가장 유명한 학생은 워레든이었다.
레오는 이미 학생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받기에 논외로 취급되었다.
사람들의 이목은 자연스럽게 고작 2학년에 대정령과 계약을 맺은 워레든에게 쏠리는 게 당연했다.
루메른 역사에서도 2학년 때 3대 환수나 대정령과 계약을 맺은 소환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아닌 순수한 전투력으로 평가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질풍의 정령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바람 속성을 즐겨 사용하기에 얻은 별명일 뿐.
릴은 모든 속성의 정령과 계약했다.
‘4대 원소의 정령만 다루는 워레든과 비교하자면 확실히 다채로운 공격을 사용할 수 있지.’
거기에 더해 각 속성의 정령술 역시 뛰어나다.
전위, 후위, 서포터까지 못 하는 것이 없는 올라운더.
그 건실함을 바탕으로 나오는 전투력은 막강하다.
확실히 릴에게 화려함은 없다.
압도적인 화력과 특수한 마나 특성이 없으니까 당연했다.
‘하지만 그게 무서운 거지. 특화된 장점은 없어도 모든 점이 특출나고 약점이 없다는 점.’
거기에 1, 2학년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던 릴의 정령술은 3학년에 들어서면서 완벽하게 각성하여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소환학과 교수들조차 실력은 이미 4학년을 넘어 5학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 예상하고 있었다.
[저 정도 실력이면 루메른에서도 세 번째 아닌가요?]
엘시의 말에 라르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번째가 아니라요?]
[레오는 논외로 쳐야죠.]
[그렇네요.]
어둠과 빛의 대정령의 대화를 들으며 레오도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세 번째지.’
레오의 눈에 비친 릴의 성장 속도는 엄청났다.
‘지나치게 겸손한 건지, 아니면 소심한 건지 분간이 안 간단 말이야?’
레오가 속으로 고개를 젓는 사이.
“레오 학생, 릴 학생. 여러분 차례입니다.”
워프 게이트를 관리하던 마법사가 다가와 말했다.
“일단 이동할까요?”
릴이 워프 게이트 위에 올라서자 레오도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환한 빛과 동시에 두 사람이 모습을 감추었다.
***
번쩍-!
워프 게이트가 환한 빛을 내뿜었다.
워프 게이트를 빠져나온 레오는 주변 풍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폐허네요.”
“그러네요.”
레오의 말에 릴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워프 게이트에서 내려왔다.
‘일방통행이군.’
레오는 자신들이 이용한 워프 게이트가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워프 게이트는 한 번 설치하면 영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했으며 방치한다면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이 워프 게이트의 경우에는 이동해 오는 건 가능했지만 이쪽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건 불가능한 상태였다.
레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폐허가 된 건 워프 게이트뿐만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워프 게이트는 번성한 도시에만 만들어진다.
엉망이 된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전쟁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았군요.”
도시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에 의해 건물 잔해가 타오르고 있다.
전쟁의 화마가 긁고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던 릴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동요를 떨쳐냈다.
그리고는 레오를 보고는 감탄했다.
“역시 레오는 대단하군요.”
“뭐가요?”
“전 이런 광경은 익숙한데도 마음이 동요 되는데 레오는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동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습니다.”
“릴 선배는 전쟁터가 익숙한가요?”
“네.”
릴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 집안 출신인 그녀는 어려서부터 전쟁과 관련된 교육을 받았다.
“우리 루체 가문은 대륙 남동부에 있는 테베른 왕국입니다. 대륙에서도 유명한 군사 왕국이죠.”
릴이 전쟁터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곳 북동부만큼은 아니지만, 전쟁이 잦은 지역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루체 가문의 사람으로서 전쟁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루메른에 입학한 이후부터 방학 때마다 저를 전장에 데리고 나가셨죠.”
그 말에 레오가 미간을 좁혔다.
“릴 선배는 후계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죠.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오빠를 보좌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루체 가문의 사람으로서 응당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요.”
릴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레오는 릴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실전 경험이군.’
누가 뭐라 해도 전투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성장 원동력이다.
다만 릴이 경험한 전투는 타르타로스와의 전투가 아닌 인간과의 전투였다.
“릴 선배는 그게 좋나요?”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전장에 나서지 않으면 되잖아요.”
“그럴 순 없습니다.”
릴이 단호하게 말했다.
“영웅은 전장에서 탄생합니다. 그게 타르타로스와의 싸움이든, 인간과의 싸움이든.”
그 말에 레오가 빤히 릴을 바라보았다.
릴은 여전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전쟁의 화마가 덮치고 간 폐허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잠시 후 릴이 레오와 눈을 마주쳤다.
“레오, 나는 영웅이 되어야 합니다. 그냥 영웅도 아니고 당신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영웅이요.”
“영웅이 왜 되고 싶은데요?”
“비웃지 않을 거죠?”
“네.”
레오의 말에 주먹을 입가에 가져다 릴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세계 평화를 이룰 겁니다.”
그 말에 레오는 빤히 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릴은 그런 레오의 시선을 받으며 자신의 덧붙였다.
“전쟁이 없는 세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없이 거대한.
그렇기에 너무 터무니없어 보이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릴은 한없이 진지했다.
자신의 목표에 타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도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비웃음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반응에도 익숙해졌을 것이다.
“멋진 꿈이네요.”
레오가 빙긋 웃었다.
그 반응에 무표정한 얼굴로 레오를 올려다보던 릴의 눈이 살짝 커졌다.
릴도 알고 있다.
자신의 꿈이 터무니 없다는 걸.
그렇기에 자신이 영웅이 되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면 비웃음을 날리거나 릴이 장난을 친다고 생각을 했다.
부정하진 않더라도 긍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마음에도 없는 응원을 전할 뿐.
그렇기에 릴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레오가 자신의 꿈을 ‘긍정’ 해줬다는 사실을.
“내 꿈이 이상하고 터무니없지 않나요? 다들 비웃었는데.”
“예전에 다른 사람의 꿈을 비웃은 적이 있거든요.”
세계를 구하겠노라고 선언하던 리시나스를 떠올렸다.
“그 비웃었던 꿈에 구원받은 적이 있어서요. 그 이후로는 절대 다른 사람의 꿈을 비웃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리시나스를 떠올리며 레오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런 꿈을 꾸는 영웅이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제 목표도 터무니없잖아요?”
릴은 레오의 목표가 무엇인지 떠올렸다.
이미 전교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에레보스의 완전한 토벌.’
대영웅과 개벽의 영웅조차 해내지 못한 일.
그리고 레오는 이미 그 목표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
“어떻게 보면 릴 선배가 추구하는 목표와 제 목표는 같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레오는 이미 보았다.
멸망의 끝에서 세계를 구원으로 인도한 자를.
터무니없는 이상을 실현시킨 친구를 바로 옆에서 보았다.
“뭐랄까, 가슴이 떨리네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릴의 모습에 레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레오는 진심으로 이 세계를 위하는 목표를 가진 릴이 기특했다.
‘리시나스가 살아 있었다면 정말 기뻐했을 텐데.’
레오의 행동에 조금 당황하던 릴이 볼을 쓰다듬었다.
“뭐랄까, 후배에게 이런 취급을 당하면 원래라면 기분이 안 좋아야 정상인데 말이죠.”
처음 만났을 때부터 릴은 레오에게 선배임을 강조하며 레오를 잘 챙기려 했다.
릴 자체가 남을 챙기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선배로서의 위엄을 잃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가 강했다.
“실례.”
레오가 손을 떼며 말하자 릴이 고개를 저었다.
“나쁜 기분은 아닙니다. 오히려 좋네요. 오빠한테 칭찬받는 것 같아서.”
릴이 덤덤하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더니 빙긋 웃었다.
“자, 그러면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으니 출발할까요?”
고개를 끄덕인 레오가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위치부터 파악하죠. 이곳은 카넬 왕국의 변방 영토죠?”
“맞습니다. 원래는 의뢰를 사주한 티뷴 자작가의 영지였지만 이웃 국가인 페티먼 왕국의 침공을 받은 상태죠. 일단 의뢰주인 티뷴 자작을 찾아가야…….”
둥-둥-둥-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며 대화를 하던 레오와 릴이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부우우우우우우-!
뿔나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릴이 손을 들어 올렸다.
릴의 손끝에 바람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런.”
릴이 얼굴을 굳혔다.
“뭐죠?”
“페티먼 왕국군이 쳐들어 왔습니다.”
“루메른 학생은 전쟁에 개입하면 안 되죠.”
“예. 하지만 페티먼 왕국군이 노리는 건 카넬 왕국의 병사들이 아닙니다. 피난민들입니다.”
그 말에 레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초감각을 일으켰다.
주변 일대의 방대한 정보들이 순식간에 레오의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루메른 학생은 타국의 전쟁에 개입하면 안 된다.
하지만 민간인이 습격당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스릉-
검을 뽑은 레오가 말했다.
“가죠.”
“예, 레오.”
레오와 릴이 빠르게 전투가 일어나는 곳으로 날아갔다.